우리 지역에도 많은 다문화가족이 생기고 있고, ‘결혼이민자’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살고 있습니다. 낯선 이 땅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결혼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 이노우에 토모코(41)씨를 我줌마에서 만나보았습니다.
정상붕자? 이노우에 토모코!
이노우에 토모코씨는 1996년 한국 남자와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왔다. 벌써 한국생활 14년차에 접어든다. 살짝 어색한 발음도 있지만, 한국말도 꽤 유창한 편이다.
“처음 3년 정도는 힘들었어요. 한국과 일본은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가 커요.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밥 먹을 때 젓가락만 사용하니까 그릇을 들고 먹어요. 상에 놓고 먹으면 고개를 숙여야 해서 개처럼 보인다고 안 좋아해요. 그런데 한국은 그릇을 들고 먹으면 거지 같다고 좋게 보지 않잖아요. 다른 이민자들 얘기 들어보면 특히 시어머니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갈등하는 사례가 많아요.”
토모코씨가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것만큼 힘들었던 게 또 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과 ‘이름’ 때문이었다. 결혼 전까지 무역회사에 다니고, 호주에서 여행사 일을 하고, 영국 유학도 가고, 미국에서 남편을 만나는 등 일과 여행을 사랑했던 토모코씨.
“한국에 와서 제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활동을 못하게 하는 ‘동거비자’ 때문에 살림만 해야 하니까 답답했어요. 요즘은 ‘결혼이민자비자’로 바뀌어서 직업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요. 그리고 주민등록제도가 가족관계증명서로 바뀌면서 한자가 없어졌어요. 그 때문에 ‘이노우에 토모코’의 한자표기인 ‘井上朋子’(정상붕자)가 한글로 모든 공적인 자료에 적혀있는 거예요. 병원에 가면 의료보험카드를 보고 ‘정상붕자씨~’라고 호명을 해요. 모두들 쳐다보죠. 저는 부끄럽고 기분이 나빴어요. ‘정신병자’라고 들리는 듯도 하구요.(웃음)”
토모코씨는 자기 이름을 찾기 위해 동사무소에 민원을 넣고, 법원에도 문의 전화를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뭐가 문제냐?’는 차가운 반응과 외국인은 개명이 안 된다는 답변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불편함을 호소했고,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진정서를 써서 보냈다. 여성단체포럼에서 주최한 토론시간에 이 문제에 대한 사례를 발표했고, 국민권익위원회의 신문고에도 글을 올렸다. 결국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외국인 개명 문제가 해결이 되어 이제 ‘이노우에 토모코’라고 한글로 적힌 가족관계증명서를 갖게 되었다.
결혼이민자와 고양시민을 위한 봉사활동
“결혼이민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정보가 중요해요. 좋은 지원 내용이 있어도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고양시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기면서 결혼이민자모임을 만들고 대표를 맡게 되었지요. 다문화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서 센터에 제출도 하고, 신문스크랩 등 정보수집을 해서 카페에 올려요. 제가 다음포털에서 ‘고양파주결혼이민자 카페’를 운영하거든요. 다른 결혼이민자분들이 ‘언제쯤 적응하고 살기가 편해져요?’라고 물어오면서 마음을 열 때, 힘든 일을 상의해 올 때 보람을 느껴요. 그리고 지난주부터는 아람누리 도서관에서 일본어 그림책 읽기를 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엄마들 반응이 좋아요. 다음 주에는 어린이집 네 곳을 다니면서 다문화 수업을 해요. 이런 활동으로 결혼이민자들이 배려만 받는 게 아니라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토모코씨는 한류 열풍이 불기 전인 2001년부터 자신의 홈페이지(http://ehon.chu.jp)를 통해 일본에 한국을 알려왔다. 온라인 그림책을 소개하고 고양시의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는데 방문자의 반응도 좋았고, 홈페이지 콘테스트에서 ‘아이디어 상’을 받기도 했다.
내가 있는 땅이 내 땅 내 나라
토모코씨는 여자여서 행복하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오빠들은 모두 집과 직장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본인은 ‘내가 가는 땅이 내 땅이고 내 나라’라는 생각으로 또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되어 소중하다는 것. 다양한 국적의 결혼이민자들과 만나면서 ‘나는 지구인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어머니가 계신 오사카에 다녀오는데, 언제부턴가는 ‘한국으로 빨리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도 놀랐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IMF를 극복하는 한국을 보면서 희망과 에너지를 발견했어요. 지금도 힘든 시기이지만, 빨리 변화에 적응할 것이고, 다문화사회도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고양시민들도 부드럽고 여유가 있어 좋아요. 외국인이라고 갑자기 표정이 바뀌거나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저 같은 경우야 외모가 비슷해서 덜 하지만 말도 서툴고 외모가 차이 나면 상처 받을 수 있거든요. 캄보디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필리핀 여성들과 얘기해 보면 똑똑하고 재미있는 분들이 참 많아요. 모두 더불어 산다는 마음으로 편견 없이 따뜻하게 대해주면 좋겠어요.”
토모코씨는 자연스러운 한글작문을 위해 백석동 흰돌YMCA복지관에서 한글 고급반에서 공부를 했다. 앞으로 영어 공부는 물론, 한국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전문적인 공부도 더 해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동병상련인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멘토 역할도 꾸준히 하겠다고 한다. 조용하면서도 씩씩한 아줌마, 이노우에 토모코씨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 본다.
정경화 리포터 71khj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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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붕자? 이노우에 토모코!
이노우에 토모코씨는 1996년 한국 남자와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왔다. 벌써 한국생활 14년차에 접어든다. 살짝 어색한 발음도 있지만, 한국말도 꽤 유창한 편이다.
“처음 3년 정도는 힘들었어요. 한국과 일본은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가 커요.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밥 먹을 때 젓가락만 사용하니까 그릇을 들고 먹어요. 상에 놓고 먹으면 고개를 숙여야 해서 개처럼 보인다고 안 좋아해요. 그런데 한국은 그릇을 들고 먹으면 거지 같다고 좋게 보지 않잖아요. 다른 이민자들 얘기 들어보면 특히 시어머니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갈등하는 사례가 많아요.”
토모코씨가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것만큼 힘들었던 게 또 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과 ‘이름’ 때문이었다. 결혼 전까지 무역회사에 다니고, 호주에서 여행사 일을 하고, 영국 유학도 가고, 미국에서 남편을 만나는 등 일과 여행을 사랑했던 토모코씨.
“한국에 와서 제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활동을 못하게 하는 ‘동거비자’ 때문에 살림만 해야 하니까 답답했어요. 요즘은 ‘결혼이민자비자’로 바뀌어서 직업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요. 그리고 주민등록제도가 가족관계증명서로 바뀌면서 한자가 없어졌어요. 그 때문에 ‘이노우에 토모코’의 한자표기인 ‘井上朋子’(정상붕자)가 한글로 모든 공적인 자료에 적혀있는 거예요. 병원에 가면 의료보험카드를 보고 ‘정상붕자씨~’라고 호명을 해요. 모두들 쳐다보죠. 저는 부끄럽고 기분이 나빴어요. ‘정신병자’라고 들리는 듯도 하구요.(웃음)”
토모코씨는 자기 이름을 찾기 위해 동사무소에 민원을 넣고, 법원에도 문의 전화를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뭐가 문제냐?’는 차가운 반응과 외국인은 개명이 안 된다는 답변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불편함을 호소했고,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진정서를 써서 보냈다. 여성단체포럼에서 주최한 토론시간에 이 문제에 대한 사례를 발표했고, 국민권익위원회의 신문고에도 글을 올렸다. 결국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외국인 개명 문제가 해결이 되어 이제 ‘이노우에 토모코’라고 한글로 적힌 가족관계증명서를 갖게 되었다.
결혼이민자와 고양시민을 위한 봉사활동
“결혼이민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정보가 중요해요. 좋은 지원 내용이 있어도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고양시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기면서 결혼이민자모임을 만들고 대표를 맡게 되었지요. 다문화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서 센터에 제출도 하고, 신문스크랩 등 정보수집을 해서 카페에 올려요. 제가 다음포털에서 ‘고양파주결혼이민자 카페’를 운영하거든요. 다른 결혼이민자분들이 ‘언제쯤 적응하고 살기가 편해져요?’라고 물어오면서 마음을 열 때, 힘든 일을 상의해 올 때 보람을 느껴요. 그리고 지난주부터는 아람누리 도서관에서 일본어 그림책 읽기를 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엄마들 반응이 좋아요. 다음 주에는 어린이집 네 곳을 다니면서 다문화 수업을 해요. 이런 활동으로 결혼이민자들이 배려만 받는 게 아니라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토모코씨는 한류 열풍이 불기 전인 2001년부터 자신의 홈페이지(http://ehon.chu.jp)를 통해 일본에 한국을 알려왔다. 온라인 그림책을 소개하고 고양시의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는데 방문자의 반응도 좋았고, 홈페이지 콘테스트에서 ‘아이디어 상’을 받기도 했다.
내가 있는 땅이 내 땅 내 나라
토모코씨는 여자여서 행복하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오빠들은 모두 집과 직장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본인은 ‘내가 가는 땅이 내 땅이고 내 나라’라는 생각으로 또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되어 소중하다는 것. 다양한 국적의 결혼이민자들과 만나면서 ‘나는 지구인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어머니가 계신 오사카에 다녀오는데, 언제부턴가는 ‘한국으로 빨리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도 놀랐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IMF를 극복하는 한국을 보면서 희망과 에너지를 발견했어요. 지금도 힘든 시기이지만, 빨리 변화에 적응할 것이고, 다문화사회도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고양시민들도 부드럽고 여유가 있어 좋아요. 외국인이라고 갑자기 표정이 바뀌거나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저 같은 경우야 외모가 비슷해서 덜 하지만 말도 서툴고 외모가 차이 나면 상처 받을 수 있거든요. 캄보디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필리핀 여성들과 얘기해 보면 똑똑하고 재미있는 분들이 참 많아요. 모두 더불어 산다는 마음으로 편견 없이 따뜻하게 대해주면 좋겠어요.”
토모코씨는 자연스러운 한글작문을 위해 백석동 흰돌YMCA복지관에서 한글 고급반에서 공부를 했다. 앞으로 영어 공부는 물론, 한국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전문적인 공부도 더 해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동병상련인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멘토 역할도 꾸준히 하겠다고 한다. 조용하면서도 씩씩한 아줌마, 이노우에 토모코씨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 본다.
정경화 리포터 71khj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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