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 세 퀴즈 영웅 박춘록의 인생 역전
“퀴즈 영웅 박춘록, 베스트셀러 작가 박춘록…
원하는 모든 것을 꿈꾸세요”
지역내일
2009-02-20
(수정 2009-02-20 오전 10:43:32)
퀴즈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어? 나도 아는 문젠데? 나도 한번 나가 봐?’ 하지만 결승전으로 치닫고 경합이 치열해질 즈음에는 귀신같이 맞히는 그들을 보며 혹시 PD랑 아는 사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TV 속에서 ‘아줌마 퀴즈 영웅’ 박춘록 씨가 탄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퀴즈 프로그램 4개에서 우승했다니 의혹의 눈초리를 더욱 거둘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주부 퀴즈 영웅을 찾아 청주까지 다녀온 뒤 그런 생각은 접기로 했다. 퀴즈 영웅은 ‘그냥’ 탄생될 리 없음을 박씨에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취재|문영애 리포터 happymoon30@naver.com 사진|최선주
충북 청주시 모충동의 한 아파트. 퀴즈 영웅 박춘록 씨(41)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퀴즈 영웅이 되는 그 비결이 뭐냐고. 그가 꼽은 첫째 비결은 ‘자신감’이다. ‘난 할 수 있어, 달인이 될 수 있어, 영웅이 될 수 있어!’ 그는 퀴즈대회를 앞두고 혼자 이런 생각을 곱씹었단다. 두 아들에게도 물어본다. 하지만 그 질문은 항상 “엄마, 퀴즈 영웅 될 수 있지?”하는 의문형이 아니라 확인형이다. 행여 아들 중 하나라도 “글쎄요…” 하고 얼버무리면 그날로 혼쭐이 난다.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확신을 갖게 하는 게 그가 자신감 키우는 방법이다. ‘1단계 떨어지면 어쩌지? 그러다 공연히 망신살만 뻗치면 어쩌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단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떨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뭔가를 시작할 때 안 되는 이유를 100가지는 댈 수 있을 만큼 소심하고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이제는 못한다는 소리를 아예 하지 않아요.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이루어지니까요.”
이것이 박씨가 40년을 살면서 깨달은 인생의 원동력이다.
2남 1녀 중 둘째,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하다
“공부한다는 놈을 더 가르칠걸….”
요즘 박씨의 친정엄마는 이런 얘기를 자주 하신단다. 사연은 이렇다. 박씨는 2남 1녀 중 둘째. 어린 시절 박씨는 공부에 그다지 욕심이 없었다. 성적은 중학생 때까지 60명 중 5~6등으로 좋은 편이었지만, 성적표를 가져가도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이 그저 도장 찍어 가라는 얘기만 듣곤 했다고. 아버지가 몸져누우신 상태, 어머니 혼자 돈을 벌어 온 가족이 먹고살던 시절이라 오빠와 남동생에 치여 그의 공부까지 뒷바라지해주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형제들 기죽을까 봐 그랬구나 싶다가도, ‘엄마가 칭찬 한 번만 해줬다면 더 열심히 했을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박씨는 일찌감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3교대로 일하며 하루 4시간씩 수업을 받는 산업체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도 그의 선택. 돈을 벌어 대학에 가겠다는 포부였다. 공부는 잘하는데 집 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모인 그곳에서 박씨는 첫 시험부터 1등을 했다. 하지만 돈을 벌면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 고3 무렵 앓아 누우면서 졸업 후 치른 학력고사 성적도 기대 이하로 떨어졌다.
“4년제 대학에 갈 점수는 안 돼고, 해서 대전전문대 원서를 냈는데 합격했어요. 당시 등록금이 50만 원 정도였는데, 제 수중엔 100만 원이 전부였죠. 그걸 갖고 등록금 내고 대학 다닐 생각하니까 막막하더라고요.”
여자가 아니라 사회인 되고 싶어 시작한 자격증 공부
버는 족족 고향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다 보니, 그에게 남은 건 퇴직금이 전부였다. 결국 당찬 둘째는 대학 대신 속기학원에 등록했다. 6개월간 공부하던 그는 결국 고향인 충남 부여로 내려갔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박씨가 아니다.
고향에서 전자 회사, 포장 공장 등을 오가며 공장 생활을 하던 박씨는 좀더 나은 직업을 갖기 위해 신문 구직 광고란을 살펴보다 ‘고압가스화학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한다. 그러나 막상 자격증을 따고 나니, 여자는 현장 투입이 안 되니 자격증만 걸어놓고 경리를 하라는 얘기가 들렸다. 매일 책상과 바닥 닦기에 신물이 나던 차에 신문에서 여자 중장비 훈련 모집 공고를 본 그는 그 길로 원서를 넣어 합격했다.
이후 롤러운전기능사와 굴삭기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4년 7개월가량 전국을 돌며 아스팔트를 깔러 다녔다. 안산, 반월부터 멀게는 진주까지 다니는 사이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2년간 연애, 자취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퀴즈 영웅에게도 무명 시절은 있었다
퀴즈 프로그램을 빼먹지 않고 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는 결혼 1년 만에 첫 퀴즈 프로그램에 나선다. <알뜰 살림 장만 퀴즈>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말 그대로 살림이 탐나서 참가했다. 늘 TV로 보기만 하다가 때마침 대전 지역 예심이 있다는 소식에 참가했다가 본선까지 진출, 4명 중 3등을 기록했다. 성급하게 방망이를 누른 것이 패인. 하지만 지금껏 주방에 놓인 장식장 등 당시 얻은 살림살이는 어마어마하다. 살림이 들어 있는 문제만 맞힌 결과다. 3등이라는 결과 때문인지, 당시 멀리 서울까지 응원 왔던 남편은 그뒤 다시는 응원길에 동행하지 않았단다. 그 역시 창피한 마음에 행여 누가 알아볼까 싶어 6개월간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다시 용기를 낸 건 2006년. 평소 즐겨 보던 <우리말 겨루기> 예심이 청주에서 벌어진다는 말에 구경이나 갈까 싶어 나섰다가 합격했다. 워낙 따로 공부한 게 없어 합격 전화를 받고는 “저, 공부 좀 하게 좀 늦게 불러주심 안 될까요?” 하며 부탁까지 했단다. 결국 두 달 뒤 우승하고, 연말 왕중왕전에 나가 우승을 거머쥔다. 그 기회로 <우주인 서포터스 선발 퀴즈쇼> <퀴즈 대한민국>에까지 나섰다고.
<퀴즈 대한민국>을 앞두고는 그의 말처럼 무식하게 공부했다. 다음 카페의 ‘일반 상식 따라잡기’와 ‘퀴즈피아’에 고수들이 올린 자료를 기본으로 나만의 자료를 만든 뒤, 최신 시사 중심으로 보고 또 봤다. 무작정 외우지 않고 방향을 돌려가면서 질문을 유추하고, 신문 정독도 빼먹지 않았다. 프로그램 전 열흘가량은 아이들 밥 챙겨주는 시간 빼고 남은 12시간 이상씩은 공부했다고. 이렇게 퀴즈 영웅은 탄생됐다. ‘운’이 아니라 숱한 자격증을 따며 자신을 연마한 박씨 인생의 결과다.
퀴즈 영웅이기 전에 알뜰한 두 아이 엄마
대한민국 퀴즈 영웅이 된 뒤 집안에서도 대우가 달라졌다. 오랜만에 들른 시댁에서 시누이나 남편이 “야~” 하고 부르면 시아버지가 “퀴즈 영웅한테 어디서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며 한 말씀 하신단다. 며느리가 퀴즈 영웅됐다고 동네 잔치까지 해주신 시아버지다. 매일 TV 속 퀴즈 프로그램을 보다 아줌마들이 우승하면 “저 아줌마 독한 거 봐!” 하던 남편도 남자들은 술, 담배를 해서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할 뿐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두 아들 앞에서도 보다 자랑스러운 엄마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꿈꾸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마음에 뿌듯하다. 하지만 그뿐. 퀴즈 영웅이라 해서 생활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박씨의 생활은 알뜰살뜰 그 자체다. 지금껏 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해 탄 상금만 해도 수천만 원이지만, 박씨 가족의 한 달 생활비는 20만 원 안쪽이다.
철 지나면 부쩍부쩍 크는 아이들 옷은 웬만하면 얻어다 입히고, 한 번 가면 10만 원 훌쩍 넘는 마트 대신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본다. 간혹 명절에 아이들 옷을 사줘도 3천~4천 원짜리 티셔츠가 전부다. 외식도 사절. 책도 꼭 필요하면 헌책방을 이용하고, 대부분 재활용 쓰레기 분리 수거 날 이웃이 버린 책들을 몽땅 들고 와서 읽는다. 세계미술 기행, 세계사 등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게 있는 대로 모두 읽는 편이다. 욕실 앞에 차곡차곡 쌓인 세계 명작도 친척집에서 얻은 책이다. 드는 비용은 부식비와 신문 대금 정도. 하지만 박씨는 아이들에게 새 옷, 새 책을 못 준다는 사실에 미안하거나 가슴 아프지 않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못 도와줘! 자녀 학습 원칙
엄마가 퀴즈 영웅이니 아이들은 얼마나 공부를 잘할까? 심지어 현관 앞에 걸린 상장만 봐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박씨는 모두 선입관이라 말한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 늘 엄마는 못 도와준다고 얘기해왔어요. 몸이 안 좋기도 했지만, 혼자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죠. 대신 공부는 선생님 눈 밖에 나지 않을 만큼만 하라고 해요.”
공부 닦달하지 않는 엄마. 처음 퀴즈 대회 출전을 준비하면서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아나간 자신처럼,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그런 계기가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두 아이 역시 엄마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둘째는 욕심이 많아 성적도 좋고, 이것저것 배우고 싶다며 오히려 엄마에게 매달린다. 태어나면서 선천성 거대결장을 앓아 세 차례 수술 끝에 건강해진 첫째는 엄마를 닮아 낙천적이다. 항상 아이들에게 “자신있지?” 하고 물으면 두 아이 모두 “엄마, 나도 열심히 해볼게요”라고 답한다고.
박씨는 올해 퀴즈 프로그램 대신 책으로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다. <퀴즈 대한민국> 출연을 준비하며 ‘퀴즈 영웅이 돼 꼭 책을 내겠다’던 혼자만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아직까지 정확한 방향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그간 준비해온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을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박씨의 집을 나서는 순간, 다시 화이트보드 속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난 전교 1등!-문종경, 베스트셀러 작가 아자아자!-엄마’라는 글. 이리 꿈을 꾸니 이루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박씨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취재|문영애 리포터 happymoon30@naver.com 사진|최선주
충북 청주시 모충동의 한 아파트. 퀴즈 영웅 박춘록 씨(41)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퀴즈 영웅이 되는 그 비결이 뭐냐고. 그가 꼽은 첫째 비결은 ‘자신감’이다. ‘난 할 수 있어, 달인이 될 수 있어, 영웅이 될 수 있어!’ 그는 퀴즈대회를 앞두고 혼자 이런 생각을 곱씹었단다. 두 아들에게도 물어본다. 하지만 그 질문은 항상 “엄마, 퀴즈 영웅 될 수 있지?”하는 의문형이 아니라 확인형이다. 행여 아들 중 하나라도 “글쎄요…” 하고 얼버무리면 그날로 혼쭐이 난다.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확신을 갖게 하는 게 그가 자신감 키우는 방법이다. ‘1단계 떨어지면 어쩌지? 그러다 공연히 망신살만 뻗치면 어쩌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단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떨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뭔가를 시작할 때 안 되는 이유를 100가지는 댈 수 있을 만큼 소심하고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이제는 못한다는 소리를 아예 하지 않아요.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이루어지니까요.”
이것이 박씨가 40년을 살면서 깨달은 인생의 원동력이다.
2남 1녀 중 둘째,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하다
“공부한다는 놈을 더 가르칠걸….”
요즘 박씨의 친정엄마는 이런 얘기를 자주 하신단다. 사연은 이렇다. 박씨는 2남 1녀 중 둘째. 어린 시절 박씨는 공부에 그다지 욕심이 없었다. 성적은 중학생 때까지 60명 중 5~6등으로 좋은 편이었지만, 성적표를 가져가도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이 그저 도장 찍어 가라는 얘기만 듣곤 했다고. 아버지가 몸져누우신 상태, 어머니 혼자 돈을 벌어 온 가족이 먹고살던 시절이라 오빠와 남동생에 치여 그의 공부까지 뒷바라지해주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형제들 기죽을까 봐 그랬구나 싶다가도, ‘엄마가 칭찬 한 번만 해줬다면 더 열심히 했을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박씨는 일찌감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3교대로 일하며 하루 4시간씩 수업을 받는 산업체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도 그의 선택. 돈을 벌어 대학에 가겠다는 포부였다. 공부는 잘하는데 집 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모인 그곳에서 박씨는 첫 시험부터 1등을 했다. 하지만 돈을 벌면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 고3 무렵 앓아 누우면서 졸업 후 치른 학력고사 성적도 기대 이하로 떨어졌다.
“4년제 대학에 갈 점수는 안 돼고, 해서 대전전문대 원서를 냈는데 합격했어요. 당시 등록금이 50만 원 정도였는데, 제 수중엔 100만 원이 전부였죠. 그걸 갖고 등록금 내고 대학 다닐 생각하니까 막막하더라고요.”
여자가 아니라 사회인 되고 싶어 시작한 자격증 공부
버는 족족 고향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다 보니, 그에게 남은 건 퇴직금이 전부였다. 결국 당찬 둘째는 대학 대신 속기학원에 등록했다. 6개월간 공부하던 그는 결국 고향인 충남 부여로 내려갔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박씨가 아니다.
고향에서 전자 회사, 포장 공장 등을 오가며 공장 생활을 하던 박씨는 좀더 나은 직업을 갖기 위해 신문 구직 광고란을 살펴보다 ‘고압가스화학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한다. 그러나 막상 자격증을 따고 나니, 여자는 현장 투입이 안 되니 자격증만 걸어놓고 경리를 하라는 얘기가 들렸다. 매일 책상과 바닥 닦기에 신물이 나던 차에 신문에서 여자 중장비 훈련 모집 공고를 본 그는 그 길로 원서를 넣어 합격했다.
이후 롤러운전기능사와 굴삭기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4년 7개월가량 전국을 돌며 아스팔트를 깔러 다녔다. 안산, 반월부터 멀게는 진주까지 다니는 사이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2년간 연애, 자취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퀴즈 영웅에게도 무명 시절은 있었다
퀴즈 프로그램을 빼먹지 않고 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는 결혼 1년 만에 첫 퀴즈 프로그램에 나선다. <알뜰 살림 장만 퀴즈>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말 그대로 살림이 탐나서 참가했다. 늘 TV로 보기만 하다가 때마침 대전 지역 예심이 있다는 소식에 참가했다가 본선까지 진출, 4명 중 3등을 기록했다. 성급하게 방망이를 누른 것이 패인. 하지만 지금껏 주방에 놓인 장식장 등 당시 얻은 살림살이는 어마어마하다. 살림이 들어 있는 문제만 맞힌 결과다. 3등이라는 결과 때문인지, 당시 멀리 서울까지 응원 왔던 남편은 그뒤 다시는 응원길에 동행하지 않았단다. 그 역시 창피한 마음에 행여 누가 알아볼까 싶어 6개월간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다시 용기를 낸 건 2006년. 평소 즐겨 보던 <우리말 겨루기> 예심이 청주에서 벌어진다는 말에 구경이나 갈까 싶어 나섰다가 합격했다. 워낙 따로 공부한 게 없어 합격 전화를 받고는 “저, 공부 좀 하게 좀 늦게 불러주심 안 될까요?” 하며 부탁까지 했단다. 결국 두 달 뒤 우승하고, 연말 왕중왕전에 나가 우승을 거머쥔다. 그 기회로 <우주인 서포터스 선발 퀴즈쇼> <퀴즈 대한민국>에까지 나섰다고.
<퀴즈 대한민국>을 앞두고는 그의 말처럼 무식하게 공부했다. 다음 카페의 ‘일반 상식 따라잡기’와 ‘퀴즈피아’에 고수들이 올린 자료를 기본으로 나만의 자료를 만든 뒤, 최신 시사 중심으로 보고 또 봤다. 무작정 외우지 않고 방향을 돌려가면서 질문을 유추하고, 신문 정독도 빼먹지 않았다. 프로그램 전 열흘가량은 아이들 밥 챙겨주는 시간 빼고 남은 12시간 이상씩은 공부했다고. 이렇게 퀴즈 영웅은 탄생됐다. ‘운’이 아니라 숱한 자격증을 따며 자신을 연마한 박씨 인생의 결과다.
퀴즈 영웅이기 전에 알뜰한 두 아이 엄마
대한민국 퀴즈 영웅이 된 뒤 집안에서도 대우가 달라졌다. 오랜만에 들른 시댁에서 시누이나 남편이 “야~” 하고 부르면 시아버지가 “퀴즈 영웅한테 어디서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며 한 말씀 하신단다. 며느리가 퀴즈 영웅됐다고 동네 잔치까지 해주신 시아버지다. 매일 TV 속 퀴즈 프로그램을 보다 아줌마들이 우승하면 “저 아줌마 독한 거 봐!” 하던 남편도 남자들은 술, 담배를 해서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할 뿐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두 아들 앞에서도 보다 자랑스러운 엄마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꿈꾸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마음에 뿌듯하다. 하지만 그뿐. 퀴즈 영웅이라 해서 생활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박씨의 생활은 알뜰살뜰 그 자체다. 지금껏 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해 탄 상금만 해도 수천만 원이지만, 박씨 가족의 한 달 생활비는 20만 원 안쪽이다.
철 지나면 부쩍부쩍 크는 아이들 옷은 웬만하면 얻어다 입히고, 한 번 가면 10만 원 훌쩍 넘는 마트 대신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본다. 간혹 명절에 아이들 옷을 사줘도 3천~4천 원짜리 티셔츠가 전부다. 외식도 사절. 책도 꼭 필요하면 헌책방을 이용하고, 대부분 재활용 쓰레기 분리 수거 날 이웃이 버린 책들을 몽땅 들고 와서 읽는다. 세계미술 기행, 세계사 등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게 있는 대로 모두 읽는 편이다. 욕실 앞에 차곡차곡 쌓인 세계 명작도 친척집에서 얻은 책이다. 드는 비용은 부식비와 신문 대금 정도. 하지만 박씨는 아이들에게 새 옷, 새 책을 못 준다는 사실에 미안하거나 가슴 아프지 않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못 도와줘! 자녀 학습 원칙
엄마가 퀴즈 영웅이니 아이들은 얼마나 공부를 잘할까? 심지어 현관 앞에 걸린 상장만 봐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박씨는 모두 선입관이라 말한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 늘 엄마는 못 도와준다고 얘기해왔어요. 몸이 안 좋기도 했지만, 혼자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죠. 대신 공부는 선생님 눈 밖에 나지 않을 만큼만 하라고 해요.”
공부 닦달하지 않는 엄마. 처음 퀴즈 대회 출전을 준비하면서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아나간 자신처럼,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그런 계기가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두 아이 역시 엄마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둘째는 욕심이 많아 성적도 좋고, 이것저것 배우고 싶다며 오히려 엄마에게 매달린다. 태어나면서 선천성 거대결장을 앓아 세 차례 수술 끝에 건강해진 첫째는 엄마를 닮아 낙천적이다. 항상 아이들에게 “자신있지?” 하고 물으면 두 아이 모두 “엄마, 나도 열심히 해볼게요”라고 답한다고.
박씨는 올해 퀴즈 프로그램 대신 책으로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다. <퀴즈 대한민국> 출연을 준비하며 ‘퀴즈 영웅이 돼 꼭 책을 내겠다’던 혼자만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아직까지 정확한 방향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그간 준비해온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을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박씨의 집을 나서는 순간, 다시 화이트보드 속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난 전교 1등!-문종경, 베스트셀러 작가 아자아자!-엄마’라는 글. 이리 꿈을 꾸니 이루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박씨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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