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

주엽고 장금자 교사

실험과 놀이로 과학 가르치는 ‘교실 속 마술사’

지역내일 2008-12-26 (수정 2008-12-26 오후 4:12:51)


벤젠분자를 선물로 받았어요. 무슨 얘기냐고요? 투명한 보라색의 비즈로 눈결정체처럼 생긴 벤젠분자를 예쁜 귀고리로 만들어 주셨어요. ‘비즈로 만나는 분자모형’, 핸드폰고리로도 만들어 선물한대요.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자를 이런 방식으로 만나게 해주는 선생님이 계시네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과학을 실험과 놀이를 통해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교실 속 마술사’, 주엽고의 정금자 교사를 만나봤습니다.

올해의 과학교사상과 ‘교실 속 마술사’
올해로 고양시에서만 14년 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금자 교사는 2007년 ‘올해의 과학교사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과학교사들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위있는 상이다.
정 교사가 무원고 재직 당시 수원 수성고와 함께 과학선도학교로 지정되었다. 사업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교사를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교사교육에 촛점을 맞추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외부강사를 초빙해 실험수업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실험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2005년부터 ‘교실 속 마술사’라는 과학교사동호회를 만들어 외국의 과학실험 사례를 직접 번역했다. 그 내용을 수업에 직접 적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현재까지 네 권의 책이 나왔다. ‘교실 속 마술사’는 16명의 교사로 구성되어 있다. 방과후에 시간을 내어 만나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데도, 올해만 10번의 모임을 가졌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도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런 과학교사들의 노력이 경기도교육청을 통해 ‘찾아가는 테마연수’라는 이름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 선생님들이 도교육청이 있는 수원까지 가지 않고 주엽고에서도 연수를 받을 수 있다. 정금자 교사의 감회가 남다를 터.
“초등과 중등에서도 학과 수준에 맞게 적용하면 좋을 거예요. 우선 선생님들의 교습법이 달라져야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교사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예상외로 성과가 좋아요. 그동안 번역하고 실험했던 내용을 토대로 재미있는 실험을 엄선해서 책으로 출판하자는 의견도 모아지고 있어요.”

‘창릉사랑’, 내가 사는 지역 살펴보기
주엽고는 전국동영상촬영대회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호수공원의 생태환경’이란 작품으로, 2007년에는 ‘창릉천의 가을’이라는 작품으로. 두 번 모두 정금자 교사의 지도가 뒷받침 되었다.
‘호수공원의 생태환경’을 찍을 때 정 교사의 역할은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주고 실험내용을 보여주고 인터뷰에 응하는 정도였다. 지난해 창릉천 생태를 조사할 때는 좀 더 일이 많았다. 창릉천 발원지인 북한산 사기막골까지 가려면 1시간이 걸려 수업 끝나고 가면 날이 어두워지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아이들이 시간이 없을 때는 정 교사 혼자서 동영상을 찍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발원지에서 행주산성까지 창릉천을 다 훑었다. 그는 창릉천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영상편집 응용 소프트웨어인 프리미어프로를 독학했다. 생태 쪽이 전공이 아니라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단다.
그 인연으로 ‘창릉사랑’이라는 동아리까지 만들어 학생 10여 명과 함께 내 고장의 생태에 대해 관심있게 연구하고 있다. 올해는 동영상이 아니라 창릉천의 생태도감까지 만들었다. 특별히 사진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구도가 잘 잡힌 생태사진을 찍어온다. “아이들의 창의성에 놀랄 때가 많아요” 하며 제자 자랑이 이어진다.
“안전에 대한 부담감도 많았죠. 그리고 생태조사 하러 갈 때마다 학원 간다고 거짓말하고 왔다는 아이들 이야기 들으면 가슴이 아프기도 했고요. 고생해서 찍은 창릉천의 생태사진을 수업시간에 보여주었더니 아이들이 우리 지역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느냐’며 놀라더군요.”

공교육에서 희망찾기는 서로의 믿음에서부터
정금자 교사는 고3 수험생을 둔 엄마다. 그런데도 수능 2주 전에 실시하는 연구수업을 자처했다. 그것도 실험위주의 수업으로. 모두들 힘들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그러나 실험을 통해 집중도와 개념이해도를 높여 수업을 받은 고3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생물실을 현대화해서 깔끔한 인테리어로 ‘자꾸만 가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기도 했다.
“공교육에서 희망을 찾으려면 학생, 교사, 학부모 상호간의 ‘믿음’이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교사 스스로도 자존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저 역시 교장선생님께서 믿어주셨기 때문에 이런 과학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항상 감사드려요.”
공부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인생에서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는 정금자 교사는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을 좋아한단다.
정경화 리포터 71khj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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