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동은 동으로 관양2동, 서로 달안동, 남으로 평안동, 북으로 관양1동이 각각 위치해 있다. 이곳은 관양2동에서 분리한 지역으로 농경지가 대부분이었으나 1993년 평촌신도시 건설과 함께 시청을 비롯해 관공서가 밀집한 지역이 되었다.
부림동은 관양동의 관(冠)자와 관악산의 악(岳)자를 더해 관악동으로 정했다가 여론에 따라 개칭하게 되었다. 산림이 울창하고 부자가 많았다는 관약1동의 자연취락명인 부림말에서 취한 것이라는 유래가 있다.
평촌동은 조선시대에는 과천군 하서면 일동 및 이동 지역이었다. 1914년 시흥군 서이면 이동리로 개칭되었고 이후 안양면 이동리, 안양읍 이동리로 되었다가 1973년 안양시 승격과 함께 평촌동이 되었다. 자연 취락으로 민배기, 벌말 등이 있었고 해방 후 동일방직과 삼화왕관, 오뚜기 식품 등 크고 작은 기업이 운영되다가 일부 기업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아파트가 신축되었다.
이곳은 신도시 개발계획 이전에는 대부분 농촌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안양의 여타 지역보다 주민들이 단합되어 조직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금주운동을 전개하고 소비절약을 통해 교육 및 자선 공익사업의 기금을 마련해 애국운동을 했다. 평촌동 주민들은 1924년 금주동맹회를 100여명의 회원으로 조직한바 있다. 일본 폐망직전까지 일본은 이곳에 비행장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며 1994년 명지대학교박물관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이곳에서 유물이 발굴되었다.
평안동은 1993년 시 조례에 의해 평촌동에서 분동되었다. 이곳은 평촌신도시의 교육, 교통, 공원의 중심지역으로 중앙공원 등이 입지한 쾌적한 환경지역이며 병원, 백화점, 전철역 등 생활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주거지역이다. 동명은 평촌지구의 평(坪)자와 안양의 안(安)자를 취해 평안동이라 칭하게 되었다.
귀인동은 평안동에서 1994년 분리되었다. 동으로 갈산동, 서로 평안동, 남으로 신촌동, 북으로 의왕시 내손동이 각각 위치해 있고 평촌지구 내에서는 평촌동의 벌말동과 함께 옛마을이 그대로 남아있다. 학계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곳은 역사적으로 안양지방에서는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라는 결과가 밝혀졌다. 즉 1990년 명지대박물관이 평촌지구 지표조사에서 찌르개, 긁개 등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귀인마을에서 출토했다. 마을 안쪽 구릉 정상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와 백제 초기의 주거지도 함께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귀인동의 유래는 옛 평촌동의 자연취락인 귀인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선시대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이 마을에 들러 머물다 갔다고 하여 귀인(貴仁)이란 마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정리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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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동은 관양동의 관(冠)자와 관악산의 악(岳)자를 더해 관악동으로 정했다가 여론에 따라 개칭하게 되었다. 산림이 울창하고 부자가 많았다는 관약1동의 자연취락명인 부림말에서 취한 것이라는 유래가 있다.
평촌동은 조선시대에는 과천군 하서면 일동 및 이동 지역이었다. 1914년 시흥군 서이면 이동리로 개칭되었고 이후 안양면 이동리, 안양읍 이동리로 되었다가 1973년 안양시 승격과 함께 평촌동이 되었다. 자연 취락으로 민배기, 벌말 등이 있었고 해방 후 동일방직과 삼화왕관, 오뚜기 식품 등 크고 작은 기업이 운영되다가 일부 기업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아파트가 신축되었다.
이곳은 신도시 개발계획 이전에는 대부분 농촌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안양의 여타 지역보다 주민들이 단합되어 조직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금주운동을 전개하고 소비절약을 통해 교육 및 자선 공익사업의 기금을 마련해 애국운동을 했다. 평촌동 주민들은 1924년 금주동맹회를 100여명의 회원으로 조직한바 있다. 일본 폐망직전까지 일본은 이곳에 비행장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며 1994년 명지대학교박물관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이곳에서 유물이 발굴되었다.
평안동은 1993년 시 조례에 의해 평촌동에서 분동되었다. 이곳은 평촌신도시의 교육, 교통, 공원의 중심지역으로 중앙공원 등이 입지한 쾌적한 환경지역이며 병원, 백화점, 전철역 등 생활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주거지역이다. 동명은 평촌지구의 평(坪)자와 안양의 안(安)자를 취해 평안동이라 칭하게 되었다.
귀인동은 평안동에서 1994년 분리되었다. 동으로 갈산동, 서로 평안동, 남으로 신촌동, 북으로 의왕시 내손동이 각각 위치해 있고 평촌지구 내에서는 평촌동의 벌말동과 함께 옛마을이 그대로 남아있다. 학계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곳은 역사적으로 안양지방에서는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라는 결과가 밝혀졌다. 즉 1990년 명지대박물관이 평촌지구 지표조사에서 찌르개, 긁개 등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귀인마을에서 출토했다. 마을 안쪽 구릉 정상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와 백제 초기의 주거지도 함께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귀인동의 유래는 옛 평촌동의 자연취락인 귀인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선시대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이 마을에 들러 머물다 갔다고 하여 귀인(貴仁)이란 마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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