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청소년 활동 대축제 보건복지부 장관상, 횡성 안흥고등학교

닭으로 독거노인 마음 사로잡은 ‘44 나눔 훼미리’

무심코 참여한 봉사활동, 아이들의 닫힌 마음 열게 해

지역내일 2008-10-30 (수정 2008-10-30 오후 2:46:45)

꼬꼬댁 꼬꼬꼬...
전교생 57명의 조그마한 시골 학교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닭들이 점령한 뒷산에서 아이들이 닭을 잡으러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쫓아다니느라 진땀을 뺀다. 지켜보던 나머지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시골 학교에 울려 퍼지는 닭 우는 소리
‘44 나눔훼미리’ 담당교사 권오승 선생님은 조금은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변화시킬까 고민하다 동물을 키우다보면 정성을 쏟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인성도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본인도 매년 아프리카에 있는 케냐 마사이족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가면 갈수록 맘이 꽉 차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감정을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어서 닭 키우기를 시작하게 됐다.
이런 사연을 신경호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듣게 된 춘천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김종대 대표가 삼계탕용 닭을 기증하면서 봉사활동은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0여 마리 정도만 주려니 했는데 김대표가 한번 줄 때마다 몇 백 마리씩 주어 나중엔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지금까지 ‘44 나눔 훼미리’의 손을 거쳐 간 닭들만 1000마리가 훨씬 넘는다. 닭의 사료는 학생들의 급식 후 나오는 잔반과 가끔 마을에서 팔다 남은 양배추나 배춧잎들로 충당했다.

봉사하면서 변화되는 아이들
석지영(2년)양은 “아이들과 함께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서 청소도 하고 삼계탕도 끓여 드렸어요”라고 말하며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그냥 학교수업의 일부분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했는데 나중에는 뭔가 가슴 뿌듯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한다. 닭잡기 전문가로 거듭났다는 원영훈(2년)군은 “처음 닭을 잡았을 때는 꿈속에서도 닭이 나올 정도로 밤잠을 설쳤는데 지금은 숙련된 전문가답게 능숙하게 잘 합니다”라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한번은 닭들에게 저녁밥을 주고 양계장문을 닫지 않아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닭들은 밖으로 나와 밭에 있는 농작물들을 죄다 뜯어먹고 학생들은 그 닭들을 다시 집어넣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선생님의 제자사랑
학창시절 도시락을 싸오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권오승 선생님은 도시락을 두 개 싸와 본인에게 도시락을 건네주던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선생님의 사랑 덕분에 희망을 키울 수 있었던 권오승 선생님은 안흥고등학교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학창시절이 떠올라 더욱 각별하다고 한다. 전체 학생 중 수업료를 낼 수 있는 학생이 4명 정도고 나머지 학생들은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학교에 다닐 정도다.
한번은 인터넷 중독으로 학교생활이 힘든 아이가 있었는데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는데도 학교에 나오지 않아 며칠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결국 아이를 발견한 곳은 PC방. 방학 내내 숙식을 하며 밀린 요금 때문에 나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사비를 털어 밀린 요금을 지불해주고 초췌해진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서 맘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지금은 봉사활동 덕분인지 선생님의 진심을 알아줘서인지 어느 누구보다 학교일에 적극적이고 열심이다.
내년에는 안흥고등학교를 떠나야 하는 권오승 선생님은 “아이들에게는 차마 떠난다는 말을 못하겠어서 1년 더 있는다고 말했죠”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영원히 사랑하자라는 뜻으로 지었다는‘44 나눔 훼밀리’. 내년에는 어떤 봉사활동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줄지 기대된다.
선생님의 사랑이 아이들에게로. 아이들의 봉사활동이 마을 전체로 퍼져 안흥고등학교에는 찬바람이 부는 요즘에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이지현 리포터 xvl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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