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깔을 벗어 던지고 울긋불긋한 단풍이 만개 하는 가을이다. 계절이야 때가 되면 바뀌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문턱에 선 올 가을은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직 단풍을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지난 주말 가족들을 이끌고 청계산을 찾았다. 청계사 입구에 들어서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10살, 7살 된 두 딸들이 신명나서 앞장서서 걷는 모습에 나의 걸음도 빨라졌다. 청계산에 올 때마다 정상까지 가보지 못한 터라 오늘은 굳은 결심으로 끝까지 오르기로 했다. 올라가는 산길에서 한 등산객에게 정상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청계산을 종주 할 수 있는 최단 코스를 알려주었다. 석기봉, 망경대, 매봉을 둘러 볼 수 있는 길로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호젓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산행 길
곧게 뻗은 소나무 숲 사이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맛을 즐겼다. 30분 정도 가파르지 않는 편평한 길을 따라 올라가니 진한 숲 내음이 풍겨오고 상쾌한 공기가 온 몸에서 감돌았다. 동그랗게 말린 잎새들을 밟자 바스락 소리에 앉아 있던 새들도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곧이어 급경사를 이루는 가파른 길이 나왔다. 이쯤 되자 적당히 숨이 가빠지면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두 아이들은 아빠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산을 오른다. 한 시간 반정도 오르자 사람들이 이 길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쉽지 않다며 두 딸들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쉬운 길로 갈걸’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미 내딛은 발걸음, 등산의 묘미를 느끼며 오르기로 했다. 만만치 않은 길을 걸어 왔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개벗나무, 다릅나무 등을 보면서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다.
석기봉에 다다르자 발 밑 아래 보이는 과천 시내와 능선 하나 하나가 시야를 사로잡는다. 손에 잡힐 듯한 하늘과 봉우리들을 보자 올라오는 동안 힘듦을 순식간에 잊게 한다. 잠시 목을 축이고 앉아 산행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등산객에게 “등산은 혼자하면 심심하고 둘이면 정겹고 여럿이면 대화가 오가서 좋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매봉 보다 더 높은 망경대가 실제 정상
조금만 더 가면 해발 618.2m의 망경대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망경대 부근에 군사시설이 많아 보통 매봉까지만 올라갔다 내오곤 했다고 한다. 때문에 매봉을 정상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정상은 망경대다. 하지만 망경대로 가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슬아슬한 돌계단과 가파른 암벽 때문에 바위를 짚고 걸어야 할 정도다. 행여 아이들 손에 생채기가 날까 걱정스러웠지만 씩씩하게 걷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드디어 눈 아래 망경이 전개된다고 하여 세인들이 ‘망경대’라고 부르고 노래도 유행하는 곳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망이 빼어난 망경대에 서니 산과의 일체감이 들면서 바로 이 맛에 힘든 산을 오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 곳에서 왼쪽 길로 올라가면 매봉과 매바위와 닿는다. ‘정상까지 올라왔으니 그만 그냥 내려갈까’잠깐 고민하다 천천히 발걸음을 매봉으로 옮겼다. 지금까지 걸어온 가파른 길에 비하면 적당히 땀이 나면서 즐길 수 있는 오름길이다. 매바위가 보인다. 100m만 올라가면 매봉이라는 푯말에 반가움이 더한다. 꾀를 부리며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던 두 녀석을 이끌고 천천히 걸었다. 매봉의 비석이 눈에 띈다. 서울과 과천의 모습을 보니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에 따스한 햇살과 맑은 공기에 감사했다.
청계사에서 하산의 아쉬움 달래
내려갈 길을 생각하니 아득했지만 오히려 쉼 없이 내려올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청계사로 연결되는 길이 보였다. 청계사는 하산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곳으로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길이 15m에 높이 2m의 차돌을 붙여 만든 거대한 와불상으로 어마 어마한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청계사 안 쪽으로 들어가자 동종도 보인다. 승려 사인이 만든 종으로 음통 대신 공기구멍을 뚫어 종소리를 조절한다고 했다.
청계사 뒤쪽에는 사람들이 조심스레 쌓아 놓은 돌탑들이 보인다. 큰 돌탑, 작은 돌탑들 옆에 두 녀석이 조심스레 작은 돌 한 개를 올려놓는다. 두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빌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자연을 옴 몸으로 느끼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다음 번에는 어떤 산에 오를까’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이민경 리포터 mk4961@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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