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은서(가명·45)씨는 요즘 한시름 덜었다. 작년에 홀로 된 시어른 수발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홀로’를 고집하는 시어른 덕택에 아파트도 한 채 준비해야 했고 말이 혼자 생활하는 것이지, 일주일에 두어 번 찾아가 밑반찬이며 청소, 병원 방문까지 오히려 같이 사는 이보다 더 힘들었다.
“올 필요 없다. 오려면 전화하고 와라” 시어른의 재혼 후 처음 이 말을 들은 박 씨는 “섭섭하기도 했고 작고한 시어머니가 짠했다”고 전한다. 불같은 성질의 두 양반이 부부로 만나 한 치 양보 없이 살다가 재혼 한 새사람에게는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온화함에 배신감도 느꼈다. 특히 딸들은 엄마 생각에 ‘서운함이 먼저 앞섰다’, ‘너무 빠른 진전에 혹 어머니 생전에 이미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현실 속 ‘바람난 그들’은 최근 드라마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KBS 주말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선 할아버지 나충복(이순재)과 안영숙(전양자)의 사랑이 무르익어가고, SBS 주말극 ‘행복합니다’에서도 20년 동안 혼자 살아온 철곤(이계인)과 안집사(권기선)의 만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연극 역시 출연진 평균 나이 61세의 뮤지컬 ‘러브’와 70대의 사랑을 그린 강풀 원작의 연극 ‘그대를 사랑 합니다’는 최근 연장 공연에 들어갔다.
노망, 주책 - 절대 피해야 할 단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혼 이혼이 주목받았다면 이젠 황혼 재혼 시대다. 가족이 할 일은 생각지도 않던 어르신들의 로맨스에 당황하지 않는 게 필요하다. 한진 노블병원 조성진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배우자와 같이 사는 것이 독신 상태보다 평균 수명, 질병에 안 걸리는 비율, 정서적 안정성 등이 월등하다”며 “중년 이후의 사랑에 대해 ‘노망’이나 ‘주책’이라는 단어로 폄하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정작 본인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가도 자녀 혹은 며느리 눈치 때문에 진심을 숨기고 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과 이현주 교수는 “가족들이 화사한 옷 한 벌 선물하며 새로운 로맨스를 인정해주는 센스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현대 어르신들은 이미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어, 더 이상 옛날 ‘뒷방 노인네’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더 젊어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들의 심리적인 준비다. 90세에도 그들의 성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조성진 전문의는 “성적인 욕구에는 단순한 포옹이나 애무도 포함된다”며 “인간의 성욕은 심리적인 부분이 크기 때문에 일부러 좌절시킬 필요는 없다”고 당부했다. 재혼이든 연애든 자기 생활을 할수록 다른 가족들에게 심리적, 육체적으로 의지하는 비율이 줄어든다는 의견도 있다.
로맨스도 좋지만 ‘돈’이 얽혀 있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자녀들이 ‘재혼’을 반대하는 현실적인 이유 중 하나가 ‘재산분배’다. 최근엔 ‘혼전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혼전문 김재춘 변호사는 “나중에 재산 분할 분쟁이 일어날 경우를 방지해, 결혼 생활 도중 유고(有故)시 일정액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변호사 공증을 받아두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재혼과 이성교제는 행복의 ‘윤활유’
지난 2002년, 노인들의 사랑과 성생활을 그린 영화 ‘죽어도 좋아''가 개봉돼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지금껏 금기시됐던 노인의 성을 적나라하게 해부, 성을 통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노년기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황혼재혼의 경우 정상적인 성생활 보장은 물론, 사회적 소외감과 고독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표현된다.
‘광주, 전남 노인의 전화’에 따르면 어르신들의 이성교제나 성에 대한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마은주 실장은 “요즘 어르신들은 성을 감추기보다 상담을 해가며 표현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노인의 성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 또 부모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가족들의 인식변화도 중요한 과제다.
가톨릭사랑노인복지센터 이형숙(50)원장은 “어르신들의 이성교제나 재혼은 당사자들의 제2의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건강한 노인의 성문화 정착을 위해 어르신들 스스로 이성간 경제적 형편과 가족사항 등을 고려해 재혼과 이성교제를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노인의 성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노인 성교육과 함께 사회적인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범현이 리포터 baram816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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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필요 없다. 오려면 전화하고 와라” 시어른의 재혼 후 처음 이 말을 들은 박 씨는 “섭섭하기도 했고 작고한 시어머니가 짠했다”고 전한다. 불같은 성질의 두 양반이 부부로 만나 한 치 양보 없이 살다가 재혼 한 새사람에게는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온화함에 배신감도 느꼈다. 특히 딸들은 엄마 생각에 ‘서운함이 먼저 앞섰다’, ‘너무 빠른 진전에 혹 어머니 생전에 이미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현실 속 ‘바람난 그들’은 최근 드라마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KBS 주말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선 할아버지 나충복(이순재)과 안영숙(전양자)의 사랑이 무르익어가고, SBS 주말극 ‘행복합니다’에서도 20년 동안 혼자 살아온 철곤(이계인)과 안집사(권기선)의 만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연극 역시 출연진 평균 나이 61세의 뮤지컬 ‘러브’와 70대의 사랑을 그린 강풀 원작의 연극 ‘그대를 사랑 합니다’는 최근 연장 공연에 들어갔다.
노망, 주책 - 절대 피해야 할 단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혼 이혼이 주목받았다면 이젠 황혼 재혼 시대다. 가족이 할 일은 생각지도 않던 어르신들의 로맨스에 당황하지 않는 게 필요하다. 한진 노블병원 조성진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배우자와 같이 사는 것이 독신 상태보다 평균 수명, 질병에 안 걸리는 비율, 정서적 안정성 등이 월등하다”며 “중년 이후의 사랑에 대해 ‘노망’이나 ‘주책’이라는 단어로 폄하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정작 본인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가도 자녀 혹은 며느리 눈치 때문에 진심을 숨기고 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과 이현주 교수는 “가족들이 화사한 옷 한 벌 선물하며 새로운 로맨스를 인정해주는 센스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현대 어르신들은 이미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어, 더 이상 옛날 ‘뒷방 노인네’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더 젊어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들의 심리적인 준비다. 90세에도 그들의 성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조성진 전문의는 “성적인 욕구에는 단순한 포옹이나 애무도 포함된다”며 “인간의 성욕은 심리적인 부분이 크기 때문에 일부러 좌절시킬 필요는 없다”고 당부했다. 재혼이든 연애든 자기 생활을 할수록 다른 가족들에게 심리적, 육체적으로 의지하는 비율이 줄어든다는 의견도 있다.
로맨스도 좋지만 ‘돈’이 얽혀 있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자녀들이 ‘재혼’을 반대하는 현실적인 이유 중 하나가 ‘재산분배’다. 최근엔 ‘혼전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혼전문 김재춘 변호사는 “나중에 재산 분할 분쟁이 일어날 경우를 방지해, 결혼 생활 도중 유고(有故)시 일정액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변호사 공증을 받아두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재혼과 이성교제는 행복의 ‘윤활유’
지난 2002년, 노인들의 사랑과 성생활을 그린 영화 ‘죽어도 좋아''가 개봉돼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지금껏 금기시됐던 노인의 성을 적나라하게 해부, 성을 통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노년기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황혼재혼의 경우 정상적인 성생활 보장은 물론, 사회적 소외감과 고독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표현된다.
‘광주, 전남 노인의 전화’에 따르면 어르신들의 이성교제나 성에 대한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마은주 실장은 “요즘 어르신들은 성을 감추기보다 상담을 해가며 표현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노인의 성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 또 부모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가족들의 인식변화도 중요한 과제다.
가톨릭사랑노인복지센터 이형숙(50)원장은 “어르신들의 이성교제나 재혼은 당사자들의 제2의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건강한 노인의 성문화 정착을 위해 어르신들 스스로 이성간 경제적 형편과 가족사항 등을 고려해 재혼과 이성교제를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노인의 성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노인 성교육과 함께 사회적인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범현이 리포터 baram816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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