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공원 길을 오르다보면 낯익은 간판이 보인다. 통키타 가수 임인식씨가 운영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다. 20여년이 넘게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 출연했다. 실제로 그의 인생에서는 별이 빛난다.
밤에는 통기타 가수로 생활을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봉사자가 된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봉사하고 있는 ‘한빛 장애인 후원회’에서는 별이다. 반짝이는 별로 빛난다. 그것이 햇수로 17년이 넘어 간다.
늘 생활에 쫒기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능하면 봉사의 날과 겹치지 않게 하려 노력한다. 공연이 있을 때나 방송 출연 섭외가 갑자기 들어오면 난감 하지만 최우선 순위는 역시 봉사가 먼저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 봉사하는 것 자체가 삶의 일부인 노래처럼 몸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음악
무작정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았고 힘든 시절을 노래와 함께했다. 그가 봉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도 자신이 살아 온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17년 전 처음 봉사를 목적으로 뜻을 같이 한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단체가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장애우들의 재활을 후원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같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광주를 본부로 지부가 전국으로 조직되어 장애우들의 삶에 빛이 되었다.
비인가 시설인 한빛 장애인 후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현재는 600여명에 이르고 임인식씨는 4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단지 노래만이 아니라 장애우들의 목욕, 이발, 빨래, 청소까지 할 수 있는 일들 중 손이 모자란 곳을 스스로 찾아 단지 형식이 아닌 직접 몸으로 모든 것을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비인가시설인만큼 턱없이 모자라는 재정은 일반 회원들의 십시일반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법인 설립을 하라는 권유를 이곳저곳에서 받지만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아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는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는 한 봉사를 놓을 생각이 없다. 1년에 한번 장애우들과 함께하는 전국 고적답사 여행 뿐 아니라 지난 7월에는 비가 오는 하루를 우중(雨中)에 축구를 하며 체육대회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봉사는 삶의 빛으로 다가와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은 맑다. 그가 부르는 노래 역시 특이한 음색으로 사람을 흡입하는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연유에선지 그가 운영하는 ‘별이 빛나는 밤’은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너무 못생긴 얼굴이니 잘 나오는 사진이 없을 것이다”고 그는 말하지만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7년 동안 변함없는 마음과 애정으로 장애우들과 함께했다. 그가 찾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밀알의 집, 용두동 사랑의 집, 소망의 집, 예일의 집, 온누리 재활원, 화순 사랑의 집, 광주 여성 장애인연대, 은혜학교 등 한 달에 한 번의 봉사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는 매일을 이 지역 전역을 발 길 닿는 데로 찾아가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진 재주 중 하나지만 그들은 불편한 몸으로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며 오히려 감사해하는 마음은 이미 그의 삶이 봉사로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장애우들 부모를 볼 때마다 가슴이 울컥해진다. 자신도 자식을 두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부모 마음을 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으로 인해 정작 본인의 삶도 지탱하기 힘든 부모들을 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도 자식에게 헌신하는 것이 부모다”며 자신은 움직일 수 있는 몸과 노래를 할 수 있으니 봉사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봉사는 이어질 것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간간히 아버지를 따라 봉사에 나서는 아이들을 보면 그는 또 고맙다. 그는 아이들에게 큰 것도, 여느 아버지들처럼 많은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이들 셋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물이 흐르듯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스며들어 세 아이 모두 어른이 되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로 살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고속으로만 오르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삶을 터득해가게 하는 옳은 아빠가 분명 맞다. ‘왼 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했는데 조그만 봉사가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부끄럽다는 그는 현재 광주, 전남 가수협회지회장이며 전대 평생교육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문의 : 011-628-1144
범현이 리포터 baram816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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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통기타 가수로 생활을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봉사자가 된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봉사하고 있는 ‘한빛 장애인 후원회’에서는 별이다. 반짝이는 별로 빛난다. 그것이 햇수로 17년이 넘어 간다.
늘 생활에 쫒기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능하면 봉사의 날과 겹치지 않게 하려 노력한다. 공연이 있을 때나 방송 출연 섭외가 갑자기 들어오면 난감 하지만 최우선 순위는 역시 봉사가 먼저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 봉사하는 것 자체가 삶의 일부인 노래처럼 몸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음악
무작정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았고 힘든 시절을 노래와 함께했다. 그가 봉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도 자신이 살아 온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17년 전 처음 봉사를 목적으로 뜻을 같이 한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단체가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장애우들의 재활을 후원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같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광주를 본부로 지부가 전국으로 조직되어 장애우들의 삶에 빛이 되었다.
비인가 시설인 한빛 장애인 후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현재는 600여명에 이르고 임인식씨는 4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단지 노래만이 아니라 장애우들의 목욕, 이발, 빨래, 청소까지 할 수 있는 일들 중 손이 모자란 곳을 스스로 찾아 단지 형식이 아닌 직접 몸으로 모든 것을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비인가시설인만큼 턱없이 모자라는 재정은 일반 회원들의 십시일반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법인 설립을 하라는 권유를 이곳저곳에서 받지만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아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는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는 한 봉사를 놓을 생각이 없다. 1년에 한번 장애우들과 함께하는 전국 고적답사 여행 뿐 아니라 지난 7월에는 비가 오는 하루를 우중(雨中)에 축구를 하며 체육대회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봉사는 삶의 빛으로 다가와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은 맑다. 그가 부르는 노래 역시 특이한 음색으로 사람을 흡입하는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연유에선지 그가 운영하는 ‘별이 빛나는 밤’은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너무 못생긴 얼굴이니 잘 나오는 사진이 없을 것이다”고 그는 말하지만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7년 동안 변함없는 마음과 애정으로 장애우들과 함께했다. 그가 찾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밀알의 집, 용두동 사랑의 집, 소망의 집, 예일의 집, 온누리 재활원, 화순 사랑의 집, 광주 여성 장애인연대, 은혜학교 등 한 달에 한 번의 봉사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는 매일을 이 지역 전역을 발 길 닿는 데로 찾아가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진 재주 중 하나지만 그들은 불편한 몸으로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며 오히려 감사해하는 마음은 이미 그의 삶이 봉사로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장애우들 부모를 볼 때마다 가슴이 울컥해진다. 자신도 자식을 두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부모 마음을 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으로 인해 정작 본인의 삶도 지탱하기 힘든 부모들을 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도 자식에게 헌신하는 것이 부모다”며 자신은 움직일 수 있는 몸과 노래를 할 수 있으니 봉사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봉사는 이어질 것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간간히 아버지를 따라 봉사에 나서는 아이들을 보면 그는 또 고맙다. 그는 아이들에게 큰 것도, 여느 아버지들처럼 많은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이들 셋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물이 흐르듯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스며들어 세 아이 모두 어른이 되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로 살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고속으로만 오르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삶을 터득해가게 하는 옳은 아빠가 분명 맞다. ‘왼 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했는데 조그만 봉사가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부끄럽다는 그는 현재 광주, 전남 가수협회지회장이며 전대 평생교육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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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이 리포터 baram816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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