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호계권역이라 함은 북구의 구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일대를 말한다. 여기에는 호계동을 포함해서 창평동, 매곡동, 신천동 등이 포함된다.
지금은 행정구역의 정비로 호계동, 창평동, 매곡동, 신천동 등이 농소동으로 변경되었다.
농소는 고려시대 때 흥려부사 박윤웅이 농소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1997년 7월 15일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농소1동(창평·호계·매곡·신천동), 농소2동(매곡·신천·중산동), 농소3동(시례·상안·천곡·달천·가대동)으로 나누어졌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농소1동의 마을 유래를 살펴보고 지역 변화상을 들여다본다.
창평동
옛날 군대의 창고가 있었다하여 ‘창평’, ‘창들’이라 하였다. 창평에는 차일마을과 원지마을이 있다.
매곡동(梅谷洞)
1914년 행정구역이 합쳐질 때에 마동·신기리와 함께 ‘매곡리’라 해서 농소면에 편입되었으며, 조선시대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성지의 비설 매화락지의 혈을 가진 곳이라 하여 매곡이라 하였다. 매곡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신천동(新泉洞)
크고 찬 샘이 있어서 찬새미, 찬샘 또는 하천, 냉천이라 하였는데, 후에 신천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제내리·약수동 일부를 병합하여 신천리라 해서 농소면에 편입되었다. 농소2동주민센터가 있다.
호계동(虎溪洞)
호계동은 일반적으로 예부터 수박골이라 불렀으며 영조 5년(1729) 이래 수박성이라하여 오다가 고종 4년(1967)에 와서 수박리로 고쳐 표기했다. 1928년 시장, 수동, 갱생, 중앙, 명곡 등 5개 동으로 분동후 1939년 시장, 수동, 수성으로 재편돼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이를 합해 호계리라 했다.
일제 강점기에 몇차례의 명칭 변경이 있었고, 광복이 된 1945년 수성, 수동, 시장 등 3개 행정마을로 분동해 오다 1997년 7월 울산광역시의 승격으로 호계동의 법정동 명칭을 확보하게 되었다.
호계 명칭은 마을 동편에 범과 같이 생긴 산봉이 있고 여기에서 흐르는 시내가 있는 마을이라 정해졌다.
주요 지명 및 유래
▶ 당수골 「당숫골」 - 홈골 북쪽에 있는 마을. 당수나무(둥구나무)가 있었다.
▶ 동대산 - 호계동과 대안동에 걸쳐 있는 443.9m의 산 . 「대동여지도」와 「청구도」에는 ‘봉서산’으로 되어 있다.
▶ 매매이「매모골·개미골좦 - 홈골 서북에 있는 골짜기. 개미가 많다.
▶ 범의등 「복호등」 - 홈골 동남에 있는 골짜기. 범이 있었다 한다. 풍수지리상 복호혈이 있다고도 한다.
▶ 수박곡 「수박골·숲밭골」 - 호계동에서 중심되는 마을. 수박을 많이 심었다.
▶ 수동 「갱생부락」 - 수박골 동쪽에 있는 마을.
▶ 시장 「장태」 - 호계장이 있는 마을.
▶ 호계광업소 - 매곡동에 있는 고령토·장석 광산.
▶ 홈골 「호곡·홍골」 - 호계동에 있는 마을. 옛날 홈이 있었다.
▶ 호계장터 - 처음 5일장은 지금의 호계역과 농소1동사무소 사이에 장터가 형성되었다. 1935년 7월에 이종태, 이규완, 최정규씨 등이 자신들의 땅을 농소면에 기증해 현재 장터를 이룩해 지금까지 5일장터로 운용되고 있다. 현재 1일, 6일자로 5일장이 서고 있다.
중간제목 : 변화하는 도농복합지역 ‘호계’
농촌, 도시, 상업, 공업지역이 혼재하고 있는 호계는 농촌지역은 대부분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중노년층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1997년 이전 농소면사무소(현, 농소1동주민센터) 주변의 호계시장, 신흥상업지구인 호계구획정리지역내 상업지역의 일반 주택주민과 도시개발을 통해 조성된 아파트 지역의 청장년층 주민들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기존의 농소읍 소재지로서 농소1, 2, 3동의 사회, 경제적 중심지역이고 동북지역은 동대산이 감싸고 서쪽으로는 동천강을 접하고 있는 도농복합지역으로 농소1, 2, 3동과 함께 울산의 전원도시로서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대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연마을 주민 및 호계시장과 호계구획정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상업인, 소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소시민, 호계구획정리내의 단독?연립 주민, 산업단지 종사자, 수급자 세대, 거주외국인 등 계층 구성이 다양해 계층간 생활양식과 가치 태도가 차별화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울산 북구의 타 동에 비해 단독?연립주택 거주비율이 높은 편이다. 또한 신흥거주지로 대우월드메르디앙 등 3,600세대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2010년 준공예정으로 조성 중에 있어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 확대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박은심 리포터 ionews21@hanmail.net
미니인터뷰/농소1동 주민센터 이상련 동장
“깨끗한 마을 만들기 최선 다할 터”
“서울에 청계천이 있다면 호계엔 호계천이 있다”
지금의 깨끗해진 호계천이 자랑스럽다는 농소1동 이상련 동장은 사회진흥 프로그램의 하나인 깨끗한 마을 만들기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각종 쓰레기로 오염된 농소의 중심 하천인 호계천을 살리고 동대산 자락의 수려한 자연경관 등을 조성하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호계천 살리기 사업이 올해는 아름다운 농소1동 가꾸기 사업단으로 더욱 확대 운영되고 있다.
아름다운 농소1동 가꾸기 사업단은 8개조 40명이 매월 3~4일씩 야간환경 단속과 월1회 합동 환경취약지 환경정비에 나서고 있다. 또 호계천 주변 꽃박스 설치와 호계천 내 유채꽃 씨앗 파종 등 사계절 꽃피는 마을로 가꾸는 데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이 동장은 “정말 죽어가는 호계천이 다시 살아났다”면서 “주민 자율구성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 이 사업이 지금의 깨끗한 마을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도 지속적인 사업을 통해 누구나 찾아도 인상 찌푸리지 않는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상련 동장은 전통과 역사가 숨 쉬는 호계에 엄청난 애정과 열의를 지니고 있었다.
박은심 리포터 ionews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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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행정구역의 정비로 호계동, 창평동, 매곡동, 신천동 등이 농소동으로 변경되었다.
농소는 고려시대 때 흥려부사 박윤웅이 농소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1997년 7월 15일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농소1동(창평·호계·매곡·신천동), 농소2동(매곡·신천·중산동), 농소3동(시례·상안·천곡·달천·가대동)으로 나누어졌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농소1동의 마을 유래를 살펴보고 지역 변화상을 들여다본다.
창평동
옛날 군대의 창고가 있었다하여 ‘창평’, ‘창들’이라 하였다. 창평에는 차일마을과 원지마을이 있다.
매곡동(梅谷洞)
1914년 행정구역이 합쳐질 때에 마동·신기리와 함께 ‘매곡리’라 해서 농소면에 편입되었으며, 조선시대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성지의 비설 매화락지의 혈을 가진 곳이라 하여 매곡이라 하였다. 매곡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신천동(新泉洞)
크고 찬 샘이 있어서 찬새미, 찬샘 또는 하천, 냉천이라 하였는데, 후에 신천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제내리·약수동 일부를 병합하여 신천리라 해서 농소면에 편입되었다. 농소2동주민센터가 있다.
호계동(虎溪洞)
호계동은 일반적으로 예부터 수박골이라 불렀으며 영조 5년(1729) 이래 수박성이라하여 오다가 고종 4년(1967)에 와서 수박리로 고쳐 표기했다. 1928년 시장, 수동, 갱생, 중앙, 명곡 등 5개 동으로 분동후 1939년 시장, 수동, 수성으로 재편돼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이를 합해 호계리라 했다.
일제 강점기에 몇차례의 명칭 변경이 있었고, 광복이 된 1945년 수성, 수동, 시장 등 3개 행정마을로 분동해 오다 1997년 7월 울산광역시의 승격으로 호계동의 법정동 명칭을 확보하게 되었다.
호계 명칭은 마을 동편에 범과 같이 생긴 산봉이 있고 여기에서 흐르는 시내가 있는 마을이라 정해졌다.
주요 지명 및 유래
▶ 당수골 「당숫골」 - 홈골 북쪽에 있는 마을. 당수나무(둥구나무)가 있었다.
▶ 동대산 - 호계동과 대안동에 걸쳐 있는 443.9m의 산 . 「대동여지도」와 「청구도」에는 ‘봉서산’으로 되어 있다.
▶ 매매이「매모골·개미골좦 - 홈골 서북에 있는 골짜기. 개미가 많다.
▶ 범의등 「복호등」 - 홈골 동남에 있는 골짜기. 범이 있었다 한다. 풍수지리상 복호혈이 있다고도 한다.
▶ 수박곡 「수박골·숲밭골」 - 호계동에서 중심되는 마을. 수박을 많이 심었다.
▶ 수동 「갱생부락」 - 수박골 동쪽에 있는 마을.
▶ 시장 「장태」 - 호계장이 있는 마을.
▶ 호계광업소 - 매곡동에 있는 고령토·장석 광산.
▶ 홈골 「호곡·홍골」 - 호계동에 있는 마을. 옛날 홈이 있었다.
▶ 호계장터 - 처음 5일장은 지금의 호계역과 농소1동사무소 사이에 장터가 형성되었다. 1935년 7월에 이종태, 이규완, 최정규씨 등이 자신들의 땅을 농소면에 기증해 현재 장터를 이룩해 지금까지 5일장터로 운용되고 있다. 현재 1일, 6일자로 5일장이 서고 있다.
중간제목 : 변화하는 도농복합지역 ‘호계’
농촌, 도시, 상업, 공업지역이 혼재하고 있는 호계는 농촌지역은 대부분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중노년층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1997년 이전 농소면사무소(현, 농소1동주민센터) 주변의 호계시장, 신흥상업지구인 호계구획정리지역내 상업지역의 일반 주택주민과 도시개발을 통해 조성된 아파트 지역의 청장년층 주민들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기존의 농소읍 소재지로서 농소1, 2, 3동의 사회, 경제적 중심지역이고 동북지역은 동대산이 감싸고 서쪽으로는 동천강을 접하고 있는 도농복합지역으로 농소1, 2, 3동과 함께 울산의 전원도시로서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대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연마을 주민 및 호계시장과 호계구획정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상업인, 소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소시민, 호계구획정리내의 단독?연립 주민, 산업단지 종사자, 수급자 세대, 거주외국인 등 계층 구성이 다양해 계층간 생활양식과 가치 태도가 차별화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울산 북구의 타 동에 비해 단독?연립주택 거주비율이 높은 편이다. 또한 신흥거주지로 대우월드메르디앙 등 3,600세대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2010년 준공예정으로 조성 중에 있어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 확대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박은심 리포터 ionews21@hanmail.net
미니인터뷰/농소1동 주민센터 이상련 동장
“깨끗한 마을 만들기 최선 다할 터”
“서울에 청계천이 있다면 호계엔 호계천이 있다”
지금의 깨끗해진 호계천이 자랑스럽다는 농소1동 이상련 동장은 사회진흥 프로그램의 하나인 깨끗한 마을 만들기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각종 쓰레기로 오염된 농소의 중심 하천인 호계천을 살리고 동대산 자락의 수려한 자연경관 등을 조성하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호계천 살리기 사업이 올해는 아름다운 농소1동 가꾸기 사업단으로 더욱 확대 운영되고 있다.
아름다운 농소1동 가꾸기 사업단은 8개조 40명이 매월 3~4일씩 야간환경 단속과 월1회 합동 환경취약지 환경정비에 나서고 있다. 또 호계천 주변 꽃박스 설치와 호계천 내 유채꽃 씨앗 파종 등 사계절 꽃피는 마을로 가꾸는 데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이 동장은 “정말 죽어가는 호계천이 다시 살아났다”면서 “주민 자율구성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 이 사업이 지금의 깨끗한 마을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도 지속적인 사업을 통해 누구나 찾아도 인상 찌푸리지 않는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상련 동장은 전통과 역사가 숨 쉬는 호계에 엄청난 애정과 열의를 지니고 있었다.
박은심 리포터 ionews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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