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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코로나 시대 똑똑한 투자 프리미엄 오피스텔 재택근무와 언택트 문화가 대중화 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기에 1인 가구 확산이라는 사회적 변화가 더해져 집의 의미는 좀 더 다양화 되고 있다. 이제 집은 개인의 휴식처임과 동시에 근무지이기도 하다. 공간의 의미와 활용도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질 듯하다. 앞으로의 주거공간은 자연을 품어 힐링 기능을 갖추면서도 재택근무가 가능한 환경을 갖춰야 하며, 시티라이프의 편리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 수영구 광안리에 세워지는 ‘해링턴 타워 광안 디오션’은 조정대상지역 해제는 물론 조망, 고급 커뮤니티 시설, 개발호재를 두루 갖춰 초저금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실속 있는 투자처로 평가받고 있다.바다를 품은 101동-프리미엄 오션 뷰‘해링턴 타워 광안 디오션’은 모두 3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동마다 특징이 있는데 101동은 광안리 최초 3베이 전면 설계로 광안리 바다를 내 집 앞 정원처럼 품는 특급 오션뷰를 자랑한다(일부 실 2베이, 분리형). 특히 호텔 급 커뮤니티 중 5층에 위치한 피트니스 클럽과 인피니티 사우나는 극대화된 오션뷰로 거주 이용자의 힐링은 물론 용지 한계로 인한 향후 오션뷰 상품의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거주자라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영구 오션뷰를 누릴 수 있고, 수요자라면 관광 특구의 풍부한 임대 수요로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다 무한 전매가 가능하니 환금성이 높아 더욱 매력적이다. 비규제 단지인 만큼 대출규제, 전매제한을 비롯해 세무조사, 자금출처 확인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사계절 쉼 없이 축제가 이어지는 관광특구에 위치해 있으므로 바닷가 세컨드 하우스로도 그만이다.부산 최초 구분형 원룸 102동-오션뷰는 덤 102동은 원룸형이지만 부산 최초로 거실과 룸을 분리 설계해 특화시킨 오피스텔이 배치되어 있다. 일부 실을 제외하고 오션뷰도 확보했다. 중간 문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거실과 주방, 침실이 구분되어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강 시 집중력을 높이는 데 좋다. 피트니스 클럽과 인피니티 사우나는 물론 북카페, 다이닝룸 등 호텔 급 프리미엄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루프탑 힐링가든 및 포디움 옥상정원 등이 조성되어 있어 광안대교와 광안리 해변의 야경을 즐기며 힐링할 수 있다. 단지 바로 옆에는 광안리 해수욕장과 해변산책로가 있고, 왕복 4차로의 광안해변도로도 가깝다. 또한 광안리 카페거리, CGV,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몰, 홈플러스 등 슬세권(잠옷, 슬리퍼와 같은 편한 복장으로 편의시설 이용) 시티 라이프를 가능케 하는 다양한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고, 광안리 해상레포츠센터에서 서핑, 요트 등 다양한 해상 레저까지 즐길 수 있다.합리적인 가격, 특화된 설계의 103동 103동에는 부산에서 전무후무할 것으로 예상되는 ‘특화 설계 타입’이 들어선다. 단 36실에서만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 설계로 호텔식 고급 마감재를 사용했다. 일부 실은 바다조망권도 확보했다. 101, 102동에 비해 분양가는 합리적인 편이다. 전 실 주방에는 빌트인 콤비냉장고, 2구 하이브리드 쿡탑, 음식물 탈수기, 슬림형 후드 등이 갖춰져 있으며, 일부 실에는 광파오븐도 제공된다. 전 실 입주자에게는 이사, 청소, 세무사 등을 도와주는 연계서비스와 생활용품을 대여해주는 셰어링 서비스, 위탁운영과 위탁중개 등 임대 업무 지원 서비스 등으로 구성되는 프리미엄 주거서비스인 ‘해피 서비스’가 제공된다. 현재 강남구 삼성동에 홍보관이 운영 중이며,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사전 예약 방문제로 운영 중이다. 문의 1600-1325 2020-06-18
- 부산 역사여행 예전엔 ‘부산’하면 푸른 바다와 항구, 멋진 야경, 그리고 맛집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작년 11월에 방송된 ‘알쓸신잡3 부산편’ 방송을 보면서 부산이 품고 있던 우리나라 현대사의 굴곡에 대해 알게 됐다.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였고, 수많은 피난민이 부산으로 모여들었던 곳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방송을 통해 부산에 아직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들을 보면서 미처 몰랐던 게 부끄러웠고, 아이들과 꼭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 그래서 모처럼 맞은 연휴, 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피란수도 부산으로 역사여행을 떠났다.한국전쟁 당시 부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한국전쟁 당시 부산의 모습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 가운데 ‘임시수도기념관’과 ‘장기려박사기념 더나눔센터’를 찾았다. ‘임시수도기념관’은 임시수도 시기의 대통령 관저와 전시관, 그리고 야외에 전시된 6.25 스케치로 꾸며졌다. 대통령 관저는 원래 1926년 경남도지사 관사로 준공된 건물로, 임시수도 때 대통령 내외와 비서관들이 거주하면서 집무를 수행하고 주요 국빈을 맞이했던 공간이다. 일본식 가옥으로 지어진 데다 대통령 관저로 쓰이던 때의 모습을 잘 구현해놓아서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전시관에서는 전쟁 당시 피란민의 생활과 정치 상황 등 부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야외 공간에는 피란 당시 천막 학교를 재현해 놓아서 눈길을 끌었고, 종군 화가였던 김성환 화백의 생생한 스케치를 통해 19세 청년이 바라본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경험했다.‘장기려박사기념 더나눔센터’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의 기념관과 지역주민의 나눔실천 공간이 함께 있는 곳이다. 장기려 박사는 전쟁 때 부산 영도에 복음병원을 세우고 피난민을 무료로 진료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아오셨다. 또 국내 최초로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창설해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평생을 근검하게 인술을 베푼 그분의 삶을 둘러보면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새기는 시간이었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내가 이웃에게 베풀면 내 가족도 북에서 다른 이들의 베풂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생전 장기려 박사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피난민의 삶. 그 흔적을 찾아서해운대, 태종대, 광안리… ‘부산’하면 떠오르는 바다 풍경이자 지명이다. 하지만 부산(釜山)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부산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산이다. 그리고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엄청난 인구가 부산으로 유입되면서 사람들은 판잣집을 지으러 산으로, 산으로 올라갔고, 부산 원도심권과 산동네는 아는 이 하나 없는 땅에서 맨주먹으로 삶을 꾸려가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특히 아미동 비석마을의 이야기는 그 당시 등을 대고 누울 곳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아미동 일대는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고, 해방이 되면서 부산에 살던 일본인들은 황급히 귀국했다. 한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던 공동묘지에 피난민들이 살 곳을 찾아 들어왔고, 일본인 묘지는 집터로 개간되면서 비석, 주춧돌 등 묘지석으로 집의 축대를 쌓은 것이다.무덤 위를 밟고 산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지만 비바람을 피해 아이들과 살려면 어쩔 수 없었을 피난민들. 그래서 매장된 고인을 위해 매일 물 한 잔 떠놓고. 제사상 차릴 때 밥 한 그릇 더 올리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고 한다. 한적한 평일 오후에 찾은 ‘비석문화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다. 관광지가 아니므로 조용히 둘러보는 배려가 필요하고, 경사진 길을 제법 걸어야 하므로 너무 어린아이에게는 힘든 코스일 수 있다.부산 영도의 영도대교와 깡깡이예술마을부산 영도는 태종대로 유명하고, 최근에는 ‘희여울문화마을’이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이곳 외에도 부산의 역사를 품은 영도대교와 ‘깡깡이예술마을’이 있다. 영도는 근대 조선산업이 출발한 곳으로 1887년 다나카 조선소가 처음 세워지면서 조선소와 배를 수리하는 철공소가 영도 대평동과 남항동에 자리를 잡았다. 배를 수리할 때 녹을 떨어내는 깡깡이질은 필수였고, 당시 영도에 살던 피난민, 특히 아지매들이 이 일을 도맡게 됐다. 때문에 이 일대가 깡깡이마을로 불렸다.무거운 망치를 들고 높은 곳에 올라가 강판을 때려대는 깡깡이질은 정말 힘든 노동이었고 안전사고의 위험도 도사리는 작업이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깡깡이질에 나섰던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슬펐다. 대평동의 근대산업유산과 해양문화를 확인하고 깡깡이유람선을 탑승하는 투어가 주말에 진행된다. 이곳에는 지금도 수리조선소가 밀집해있어 혼잡하니 가급적이면 주말 정기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으며,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조선소나 작업장에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영도대교는 1934년 11월에 개통된 도개식 다리로, 위로 들어 올리는 다리를 보려고 준공식 날에 부산, 김해, 밀양 등지에서 6만이나 되는 인파가 몰려왔다고 하니 당시의 핫이슈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슬픔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피난길에 만약 헤어지게 되면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고, 부산에 도착한 피난민들이 가족을 찾기 위해 영도다리를 찾았다.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바로 이 무렵 영도다리 이야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영도대교 옆에는 영도대교의 도개하는 모습을 본뜬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인 ‘영도웰컴센터’가 있다. 영도의 관광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영도다리의 역사를 둘러볼 수도 있는 곳이다. 영도다리는 1966년 도개를 멈췄다가 2013년 기존 4차선 도로를 6차선으로 복원, 개통하면서 매일 오후 2시에 영도대교 도개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영도웰컴센터’ 전망대에서 바라본 영도대교의 도개 장면은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기억에 남았다.책방골목부터 자갈치시장까지…살아 움직이는 부산을 느끼다서울에 청계천 헌책방거리가 있다면 부산에는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다.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씨 부부가 보수동사거리 입구 골목 안 목조건물 처마 밑에서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 등으로 노점을 시작한 것이 지금의 보수동 책방골목이 되었다고 한다. 부산 소재 학교는 몰론이고 피난온 학교까지 구덕산 자락 보수동 뒤 산등에서 노천에 천막교실이 열리면서 보수동 골목길은 더욱 붐비게 되었고,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들은 헌책이라도 구입하기 위해 보수동을 찾았다. 책방골목을 따라 내려오면서 손때 뭍은 책도 구경하고, 북카페에 들러 한숨 돌리는 휴식의 시간도 가졌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는 뭔가 아련하고 향수에 젖게 하는 헌책의 향기가 느껴졌다.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남쪽을 향해 걷다 보면 부평 깡통시장, 국제시장, 자갈치시장이 이어진다. 부평 깡통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 통조림 등을 취급했다고 해서 ‘깡통시장’으로 불렸다. 시장 골목에는 맛있는 먹거리를 골라먹는 재미가 있고,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산의 대표적 시장이 가까이 모여 있는 만큼 취향에 따라 선택해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임시수도기념관- 관람시간 : 9시~18시(관람료 : 무료)- 휴관일 : 1월1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괸)●장기려박사기념 더 나눔센터- 관람시간 : 10시~19시(관람료 : 무료)- 휴관일 : 매주 월요일●영도웰컴센터- 운영시간 : 9 2019-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