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46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호주제 폐지로 행복한 사람 _ 정최경희씨 “부모 성을 함께 쓴다고? 취지가 괜찮구나. 정최경희! 어때?” 최경희씨(34·의사)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생활을 시작할 무렵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 시작되자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버지는 “아버지 성보다는 엄마 성을 앞에 쓰니까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며 그 후로 막내딸을 ‘정최경희’라 부르셨다. 비록 집안에서만 그렇게 부르셨지만, 이 일이 계기가 돼 그는 지금도 공적문서가 아닌 경우에는 항상 이 이름을 사용한다. 경희씨는 사실혼은 유부녀, 법적으로는 아직 처녀다. 1999년 1월 결혼했지만 남편 김시완(37)씨 동의 아래 혼인신고를 안했다. “혼인신고를 하면 남편이 호주가 되고 내 본적도 남편 본적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 황당했어요. 내 문제로 닥치니까 진짜 심각해지더라고요.” 호주제를 거부하는 의미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들 부부는 호주제 폐지운동에 동참하는 뜻에서 그해 3·8 여성대회에도 참가했다. “연말정산 할 때 배우자 공제를 못 받는 게 좀 아깝긴 해도” 크게 불편한 것 없이 지냈는데 지난해 딸 지민이를 낳으면서부터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언젠가는 호주제 폐지가 되겠지 생각하고 있다가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더라고요. 출생신고는 해야 하니까 지민이를 내 호적에 올리려고 했죠. 그랬더니 현재 민법 상 아버지가 인지되는 경우에는 ‘부가입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예요. 두 달쯤 지나서 이번에는 지민이만의 호적부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고아라면 가능하지만 부모가 엄연히 살아 있으니 또 안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출생 신고를 아예 안 해버렸어요.” 경희씨는 “본과 4학년 때 죽을 만큼 아프면서 ‘다시 살게 되면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라며 “잘못된 관습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노력이에요”라고 말했다. 호주제 폐지 후 2008년에야 개인별 신분등록부가 만들어진다는 말에 경희씨는 또 고민이다. 지금까지는 지민이가 잘 자라 다행이지만 병원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큰 일이다. “지민이가 자기만의 호적을 갖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겠죠?(웃음)” /신민경 기자 2005-03-08
- 멕시코 최고 여갑부, 부시와 친분있는 미대사 결합은 우연인가 한 달 전부터 멕시코 전역은 ‘세기의 결혼’으로 떠들썩하다. 멕시코 언론은 2월 26일, 멕시코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치러진 ‘세기의 결혼식’의 진짜 이유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족과 친지, 가까운 친구 등 40여명 앞에서 멕시코 최고 여성갑부 마리아 아순시온 아람부루사발라(Maria Asuncion Aram-buruzabala)는 주멕시코 미국 대사인 토니 가르사를 남편으로 맞았다. 문제는 토니 가르사 대사가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라고 르몽드는 3일자에서 전했다. 올해 41세의 마리아 아순시온은 19세 이른 나이에 여덟 살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뒀으나 성격차이를 이유로 이혼했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마리아순’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미모의 여성의 재산은 15억 달러. 지난해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부호 순위에서는 377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무일푼으로 스페인 바스크에서 멕시코로 건너온 그녀의 할아버지는 ‘모델로’(Modelo)라는 이름의 호프를 차렸다. 바로 그곳에서 현재 세계 판매 5위의 ‘코로나(Corona)’ 맥주가 탄생했다. 마리아순은 9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모델로 그룹의 부회장이 됐다.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해 있는 멕시코 사업 세계에서 마리아순은 ‘철의 여인’으로 이름나 있다. 아버지 사망 당시 적자였던 자회사 두 곳을 합병, 흑자로 돌려놨다. 2000년에는 6천만달러로 멕시코 방송 거대기업 ‘텔레비자’(Televisa) 주식을 매입 경영에 참가하고 있다. 토니 가르사 주멕시코 미대사(50)는 멕시코 국경 근처에 위치한 텍사스 브라운스빌의 한 검소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르사 대사의 조부모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이민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주유소를 경영했다.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젊은 토니는 오랫동안 민주당 텃밭이었던 텍사스에서 공화당 지지자로서 정치활동에 입문했다. 그는 1994년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의 주지사 선거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했다. 부시는 텍사스 주지사가 되자 그를 차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가르사는 부시가 대통에 당선되면서 주멕시코 미국 대사직을 거머쥔다. 장차 미국의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가르사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라틴계 미국인 중 한명으로 꼽힌다고 네고시오스 히스파노스지는 전했다. “사람들은 많은 의문이 꼬리를 무는 이 결혼 얘기밖에 하지 않는다”고 멕시코 부호들관련 시평 담당자인 과달루페 로애자는 말한다. “대사는 혼자서도 매우 행복해 보였는데. El dio el braguetazo (엘 디오 엘 브라구에타소), 그는 행운을 잡았다. 텍사스 주지사가 되기를 원하며 선거 캠페인에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대사의 결혼에 대해 의심을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또 마리아순에 대해서는 “부시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인과 결탁하는 것이 그녀의 사업에는 확실히 득이 되는 일이다”라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이지혜 리포터 2main@naeil.com 2005-03-04
- “혼수 가전구입 비용 평균 400만원” 올 봄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혼수용 가전제품 구매비용으로 약 400만원을 준비하며, 품목 선택시 예비 신랑들이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전문점 하이마트에 따르면 최근 매장마다 4~5월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 방문객이 하루 평균 5~6쌍으로 부쩍 늘었으며, 예상 비용은 400만원대가 가장 많았다. 이는 젊은 부부들이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등 필수가전에 집중하고 나머지 품목은 과감히 생략하거나 소품은 쓰던것이나 선물받은 용품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 때문으로 회사측은 분석했다. ◆혼수 필수 품목 변화 = 예비부부들이 구입하려는 가전제품 품목은 평균 6~7개. 얼마 전까지 TV, 냉장고, 세탁기 및 청소기, 전자레인지, 압력밥솥과 가스레인지 등이 전통적 혼수 품목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자레인지와 청소기를 밀어내고 에어컨, 김치냉장고, PC 등이 주요 혼수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또 웰빙 가전으로 꼽히는 비데, 연수기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각 매장의 점장들이 올해 효자상품으로 꼽은 제품은 에어컨. 여름이 오기전 예비부부들이 서둘러 예약판매를 이용하면 결혼식 전에 공사를 마칠 수 있고, 사은품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작은 제품보다는 큰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도 강해져, 품목수를 줄이더라도 대형 가전제품을 하나씩 마련하려는 예비부부도 많아졌다. TV는 32인치 HD급 일체형 TV가 가장 인기가 높고,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추는 경우 가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40~50인치 프로젝션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디지털 방송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 대화면 TV를 구입할 때는 90%이상이 셋톱박스가 내장된 일체형 TV를 선호했다. 냉장고는 양문형 냉장고, 홈바가 달린 냉장고의 인기가 높다. 특히 예비부부들은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 중에서 인테리어 기능을 강화한 제품을 선호했다. 세탁기는 드럼세탁기 중에서도 10~12kg 건조겸용 제품이 인기다. ◆예단 대신 가전제품 선물하기도 = 한편 최근 나타나는 새로운 혼수 구매 경향으로는 △예비 신랑들의 적극적 의견 개진 △비용을 신랑 신부가 절반씩 부담 △부모님께 예단 대신 가전제품 선물 등이 꼽혔다. 하이마트 양재점 김길영 판매실장은 “전통적인 예단 대신 부모님께 가전제품을 선물하는 예비 신부들이 늘었다”며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사면 신랑이 바람난다는 미신이 깨지고, 친지들에게 선물로 가전제품을 사달라고 주문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어 “신부의 혼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PC나 복합기 등은 신랑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3월말까지 특별 할인행사 = 한편 하이마트에서는 3월 말까지 ‘혼수대축제’를 열고 △삼성, LG, 소니, 이레, 디지털디바이스 등의 PDP, LCD 특별 할인행사 △삼성, LG, 만도, 캐리어 에어컨 예약판매 연장 실시 △200만원 이상 고객중 추점을 통해 만화청첩장 무료 제작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사은품으로는 품목별로 비데, 디지털카메라, 김치냉장고, 주방용품 등이 제공된다. /전예현 기자 newslove@naeil.com 2005-03-03
- 3대입법과 행정도시법 맞바꾼 2월국회 하루에 110개 법안 처리 … 헌정 사상 처음 한나라 반대한 ‘NSC법’ 직권상정으로 처리 예상대로 2월 임시국회 최대쟁점은 ‘행정수도 후속대책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이었다. 국가보안법 개폐, 과거사법, 사립학교법 개정 등 지난 연말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3대 입법안’은 아예 논의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3대입법과 행정수도 후속대책을 맞바꾸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2일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은 ‘공주·연기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안(행정도시법안)’ 등 110개. 이는 헌정사상 1일 처리건수로 최다 신기록이다. 이전까지는 지난 2002년 11월 8일 본회의에서 처리한 84건이 1일 최다건수 기록이었다. 특히 행정도시법안은 법사위 통과를 거치지 않고 김덕규 부의장이 오후 10시 50분께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해 재석 178명 중 찬성 158, 반대 14, 기권 6표로 가결됐다. ◆민법 개정안 처리 = 국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의 정무직 보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한 ‘NSC법 개정안’도 직권상정을 통해 표결로 처리했다. 국회는 또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2008년 1월 1일부터 호주제가 폐지되고 호적 대신 새로운 신분등록제가 사용된다. 또 부부가 결혼전에 합의하면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고 부모와 성이 다른 재혼 가정의 자녀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을 바꿀 수 있게 된다. 기업의 분식회계 행위를 2년간 집단소송에서 제외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안도 처리했다. 외환보유고의 여유자금을 투자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한 한국투자공사(KIC)법안과 재건축시 일정 비율의 임대아파트 공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개편하는 내용 등의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의결했다.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쌀 한 가마에 대한 목표가격을 설정한 뒤 시장가격과의 차액을 보전해주는 내용의 쌀소득보전기금법 개정안, 추곡수매제도 폐지를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회사정리법 화의법 개인채무회생법을 하나로 묶어 법체계를 일원화한 채무자회생파산법(통합도산법)도 처리됐다. 국회는 그러나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4개 법안 가운데 미발령 국립사대 졸업자 1000명을 채용하는 내용의 ‘국립사대졸업자 교원 미임용자 임용특별법’ 개정안, 병역문제로 미발령된 200명을 채용하는 내용의 ‘병역의무 관련 교원 미임용자 채용특별법안’ 등 2건은 처리를 유보했다. ◆“국회개혁 필요성 느낀다” = 지난 연말 국보법 등 4대입법 처리를 둘러싸고 극심한 대립을 보였던 여야는 2월 국회에서 상생의 정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법사위 회의장을 점거하고 본회의장 의장석 앞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등 구태는 여전했다. 무더기로 쌓인 법안을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처리한 것도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원내수석 부대표는 ‘상생도 선진도 없는 2월 임시국회’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114건의 입법을 추진하면서 오후 4시부터 본회의 일정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졸속, 날림”이라면서 “국회 개혁의 필요성을 질실히 느낀다”고 비판했다. /신창훈 기자 chunsim@naeil.com 2005-03-03
- [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다]2004년 근로자연극제에서 국무총리상 수상한 ‘Actor 2002’ 대표 김석진 아마추어 연극의 모범답안 ‘김장하는 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가면 있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가도 있다. 연극에 대한 열정과 끼로 뭉친 직장인 극단 ‘Actor 2002’의 연습실 말이다. 신입단원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는 논현동 지하 연습실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25평 남짓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단원들의 연습이 한창이다. 이방인에겐 다소 썰렁하게 느껴지는 지하실의 냉기도, 낯선 이의 방문도 아랑곳없이 십여 명의 단원 모두가 연습에만 열중하고 있다. “어떤 놈이야! 도대체 어떤 우라질 놈이 이런 짓을 한 거야!” “계십니까? 김치국 선생 계십니까? 아무도 안계세요?” “어, 이것들이 진짜로 왔네! 진짜로….” “뭐해요? 누가 왔나 본데 문 안 열어 주구….” “열어 주지 마! 열어 주지 마!” 신입단원들과 그들의 연기지도를 맡은 선배가 서너 명씩 패를 지어 연습을 진행하는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대사들과 후배들의 발성과 액션을 지도하는 선배들의 코멘트가 뒤섞여 흡사 경매장에라도 들어온 기분이다. 시골 이장처럼 느긋한 걸음으로 연습실 구석구석을 돌며 후배들의 연습을 지켜보는 김석진 씨(36세)의 눈길에는 연극과 사람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 실려 있다. Actor 2002의 대표로서 극단을 이끌어 온 그는 직장에서는 이벤트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팀장이지만 연극으로 만난 단원들 사이에서는 ‘대박 김’이나 ‘김 작가’로 통한다. 실제로 김석진 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단원들과 똘똘 뭉쳐 역량을 쌓은 끝에 2004년, 극단을 창단한 지 햇수로 3년 만에 ‘대박’을 터뜨렸다.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창작극 ‘김장하는 날’이 근로자연극제 최고상인 국무총리상과 작품상을 거머쥔 것. “사실 2003년도에도 근로자연극제에 출품을 했었어요. 그때 제가 좀 시도를 했던 부분이 뭐냐면 보통 한 극단에 한 작품씩 출품을 하잖아요. 근데 저희는 두 작품을 했어요. ‘불 좀 꺼 주세요’하고 ‘하녀들’이라는 기존 극이죠. 결국은 두 작품 다 미역국을 먹었지만 그걸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것이 참 많았죠. 하여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려고 많이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2004년도에 창작극을 출품해서 최고상을 타게 된 거죠.” 몇 개월 동안 머리 속에서 궁굴리기만 하다가 ‘맘먹고 쓰기 시작한 지 4일 만에’ 탈고했다는 ‘김장하는 날’에는 전북 정읍이 고향인 김석진 씨의 어린 날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장하는 날, 일손을 거들기 위해 모여든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걸쭉한 입담과 구수한 사투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난한 시골 농가의 가정사를 통해 우리 시대 가족과 이웃의 의미를 묻는 이 작품은 연극제 심사위원들에게 ‘아마추어 연극이 지향해야 할 답안을 보는 듯했다’는 격찬을 듣기도 했다. 실험하고 도전하는 연극의 매력 김석진 씨가 연극을 시작한 것은 1996년. 이벤트 학원에서 만난 후배의 소개로 ‘셰익스피어 1986’이라는 직장인 극단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연극에는 문외한이었던 그가 ‘정통 셰익스피어극’을 지향하는 그 극단에 들어간 것은 연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 마시는 게 좋아서였다. 그런데 몇 차례의 공연에 스텝이나 배우로 참여하면서 차츰 연극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공연을 준비하고,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진정한 사람의 관계와 인간의 삶에 대해 배우게 돼요. 연극이라는 게 음악회처럼 개인이 나와서 발표하는 게 아니잖아요. 전체적인 조화와 팀워크가 필요한 작업이죠. 직장인들이 없는 시간 쪼개서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서 연기를 해보는 것도 상당히 유익한 경험이지만, 이것도 작은 사회집단이다 보니 연습하면서 서로들 싸우기도 많이 싸우거든요.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되는 게 바로 연극의 매력이 아닐까요.” 연극의 ‘맛’을 알고 연극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면서 갈등도 생겨났다. ‘맥베드’, ‘로미오와 줄리엣’, ‘시저는 죽기를 거부했다’ 등의 공연에 참여하면서 그가 얻은 결론은 ‘셰익스피어극은 내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추어 집단이 만드는 연극이라면 좀 더 새롭고 실험적인 연극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2002년, ‘셰익스피어 1986’을 박차고 나온 김석진 씨가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몇몇 사람들과 만든 직장인 극단이 바로 Actor 2002였다. 이들의 ‘온라인 연습실’이라 할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Actor2002 )의 회원은 350명이지만 실제 연습에 상시적으로 참여하는 인원은 25~30명 선. 구성원의 연령과 직업도 다양해서 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신입단원 중에는 10대의 고등학생도 있고, 가정이 있는 40대 직장인도 있으며,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연수원에 다니는 이도 있다. 그러나 결혼해서 가정을 가졌거나 40대에 진입한 단원들의 충성도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Actor 2002를 이끌어가는 주축은 사실상 20~30대 직장인들이라고 봐야 한다. 바쁜 직장인들이 연극을 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정기 연습일은 일주일에 두 번이지만 매년 무대에 올리는 정기 공연과 워크숍 공연, 근로자연극제 시기가 다가오면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 다니랴 연극하랴 정신없이 돌아치는 세월이 부담스럽기도 하련만, 이 ‘연극 폐인’들은 연습이 없는 날이면 인터넷 카페에 모여 회포를 풀어야 직성이 풀린다니 담배보다 더 끊기 힘든 게 연극의 매력인가. ‘직장 일과 병행하는 게 힘들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뜻밖에도 김석진 씨는 ‘병행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제가 직장에서 공연이나 콘서트, 지역축제 쪽 일을 많이 하는데요. 연극하고 이벤트가 무대 음향이나 조명 등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여러 가지로 공부가 많이 돼요. 예를 들어서 이천 도자기축제를 기획한다고 하면 그 축제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단막극 형식으로 만들어서 극을 공연하기도 하거든요. 바로 그런 부분들이 상통이 되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김석진 씨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린 단어는 ‘공부’였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공부에 포한이 진 사람인지도 모른다. 본래 그가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는 이벤트 쪽이었다. 그러나 그가 대학 입시를 칠 무렵에는 아예 이벤트학과라는 게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방송연예 쪽 학과로 방향을 튼 그는 연거푸 세 번이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에라!’ 하는 심정으로 해병대에 자원했다가 제대 후 1년 동안 서울의 한 이벤트 학원을 다녔다. 결국은 그 학원이 복덩이였다. 원대로 이벤트 회사에 취직하게 된 것도, 연극을 알게 된 것도 다 학원에서 맺은 인연 덕분이니 말이다. 그러나 취직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막상 이 업계에 들어와 보니까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았어요. 이벤트라는 분야가 굉장히 광범위해서 다양한 방면의 지식이 필요했고, 아이템도 계속 개발해야 했지요. 결국 98년도에 방통대 방송정보학과에 입학했는데 이쪽 일의 특성 때문에 일하면서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대요. 지역 문화관광축제 쪽 일을 하다 보면 지방 출장이 잦은데 한번 가면 보름씩, 한 달씩 있다 오거든요. 툭하면 시험도 못 치르고, 작년 2월에야 겨우 졸업했어요.” 10년 세월을 이벤트 일에 쏟아 부은 그의 연봉은 3500만 원. 메이저급 회사와 비교하면 많다고 할 수 없는 액수지만 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 월급을 받으면 제일 먼저 집안 대소사를 위해 붓고 있는 ‘6남매’ 곗돈과 부모님 용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그밖에 기본적인 생활비와 차량 유지비, 연극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을 제하고 남는 돈은 ‘언제 할지 모르는’ 결혼을 위해 저축하고 있다. 이벤트 분야에 십년 세월을 쏟아 부은 그는 한때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공연, 콘서트, 지역축제, 스포츠이벤트를 전문으로 하는 (주)아트카오스의 기획팀장이다.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행사 2005-03-02
- <내일시론>호주제 폐지는 시대의 요구였다(문창재 2005.03.04) 호주제 폐지는 시대의 요구였다 호주제를 폐지하기로 한 국회결정은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인 조치라 할 수 있다. 폐지논의 30여년 만이다. 너무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2일 국회를 통과한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은 한국인 개개인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성(姓)을 간다”는 말이 더 이상 욕이 아닌 세상을 살게 된다.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고, 필요하면 성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성을 ‘출가외인’이라 부르면서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려던 사회관습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여성의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유교적 가치관은 형해(形骸)만 남게 될 것이고,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가족제도와 관념도 사라질 것이다. 민법 개정안은 호주제 폐지만 규정한 것이 아니다. 호적이 없어지는 대신 모든 국민이 하나씩 독립된 신분등록부를 갖게 된다. 가족 개개인이 권리를 인정받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가족 개개인이 권리를 인정받는 시대 열려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 법원의 허가를 얻어 새 아버지 성을 따를 수 있게 되고, 이혼 후 재혼을 하지 않는 경우 어머니 성을 따를 수도 있게 된다.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 삭제되고 8촌 이내의 근친결혼만 금지되어, 결혼의 자유와 권리도 크게 신장된다. 친양자 제도가 도입되어 양자를 양부모 친생자로 신분등록부에 기재할 수 있고, 성도 양부모 성을 따를 수 있게 된다. 아들 손자 딸 아내 며느리 순으로 돼 있는 현행 민법의 호주 승계순위는 호주제도의 여성인권 제약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아들과 손자가 없는 경우에만 딸 차례가 오고, 그나마 아내는 딸 다음인 여성대접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여성을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성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 발상은, 양반이 아니면 벼슬을 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반상(班常) 차별제도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현행 민법의 이런 인권침해 요소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로부터 호주제도 폐지를 공식적으로 권고 받았다. 인권위원회가 호주제의 위헌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고, 헌법재판소가 지난 달 호주제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도 다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헌재는 호주제를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 규정하고, 호주승계 순위, 혼인시의 신분관계,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들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라고 단정했다. 양성평등과 혼인의 남녀동권을 결혼의 기초질서로 선언한 헌법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호주제도의 폐해로 인한 갈등과 불행이 큰 문제가 되어 있다. “왜 나는 아버지와 성이 다르냐”고 묻는 아이의 물음에 말문이 막힌 재혼여성들의 고민은 이민과 허위 실종신고 같은 기막힌 현상으로 나타난다. 오죽하면 호주제도가 없는 나라를 찾아갈까. 아이에게 새 아버지 성을 부여하기 위해 허위로 아이의 실종을 신고한 뒤에 출생신고를 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 경로효친같은 전통적 도덕률 손상되지 않도록 법규 정비해야 이런 일은 이제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이혼율이 높아질수록, 재혼이 허물이 아닌 세상일수록 이런 불행은 보편화 된다. 호주제 폐지가 너무 늦었다는 것은 그런 ‘강요된 불행’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은 넓어진 가족의 범위가 초래할 의식과 관념의 변화다. 현행법은 가족의 범위를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개정안은 배우자와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형제자매까지 가족으로 규정한다. 같이 사는 경우라면 장인 장모 사위 처남 처제까지 가족이 된다. 이런 중요한 변화들이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관념과 개념의 혼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가족제도의 해체를 걱정하는 호주제 옹호론자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숭조(崇祖)사상과 경로효친 같은 전통적인 도덕률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정부는 세심하게 관련 법규를 정비해주기 바란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2005-03-04
- 농협, 새봄맞이 혼수 할인행사 열어 600여 종의 혼수품 일체를 최고 40%까지 할인판매 농협은 결혼시즌을 맞아 ''새봄맞이 혼수 할인행사''를 26일부터 4월 30일까지 경기도 기흥 혼수센터를 비롯한 전국 3곳에서 실시한다. 주요할인 내용은 가구 10~40%, 가전제품 5~20%, 이불 10~15%, 그릇류 10~18%이며, 이밖에 귀금속, 한복 등 혼수 일체에 대해 품목별로 최고 40%까지 싸게 판매한다. 한편, 농협 혼수센터는 경기도 기흥, 전남 화순, 경북 구미 등 3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 곳에서 가전, 가구, 침구류, 보석류 등 혼수 일체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혼수를 장만하는 예비신혼부부들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005-02-25
- ‘충동 이혼 막자’ 숙려기간 도입 충동적 이혼을 막기 위해 법원에 협의이혼을 신청한 부부는 일정기간 이혼에 대해 다시 생각한 뒤 이혼확인을 받도록 하는 ‘숙려기간제도’가 도입된다. 또한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는 협의이혼을 하려면 반드시 법원이 정한 상담위원과 상담을 거치는 방안도 도입된다. 서울가정법원 산하 가사소년제도 개혁위원회(위원장 한명숙)는 24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협의이혼제도 개선방안을 확정의결하고 내달 2일부터 서울가정법원에서 시범실시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앞으로 법원에 협의이혼을 신청한 부부는 지금까지 신청일 당일 오후 또는 다음날 오전에 이혼확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법원이 정한 숙려기간이 지나야 이혼확인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부부가 이혼합의서를 작성해 판사에게 제출하기만 하면 즉시 이혼이 가능한 현행 제도로 인해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는 가정마저 쉽게 이혼을 선택했다는 지적에 대한 개선책이다. 법원은 미성년 자녀가 없는 부부의 협의이혼이나 재판상 이혼의 경우라도 필요할 경우에는 상담을 거치도록 권고할 수 있다. 다만, 이혼이 늦어지면 심각한 피해나 고통이 생길 우려가 있거나 이미 법원 지정 상담기관의 상담을 거친 부부는 숙려기간이나 상담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서울가정법원은 시범실시를 통해 협의이혼을 신청한 부부에 대해 가정폭력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주일의 숙려기간이 지나야 이혼확인을 해주기로 했다. 또한 결혼 1년 이내나 15세 이하 자녀가 있는 경우는 의무적으로 법원 상담위원과 상담을 통해 이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2005-02-24
- <미즈엔 뷰>여풍당당, 그러나 뒤처지는 사회 요즘은 어디를 둘러봐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다. 대학 진학이나 고시 합격에서도 남성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1985년 11월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 여성 합격자는 나를 포함하여 모두 6명이었다. 최초의 여성 사법고시 합격자인 이태영 박사에서 시작하여 그때까지 사법시험에 합격한 여성의 수는 우리 동기 합격자를 포함해 모두 30명이라고 하였다. 그해 합격한 6명이 사상최대 여성 합격이라고 언론에서 야단이었다. 그후 매년 여성 합격자수가 늘더니 20년이 조금 지난 이제는 200명을 훨씬 넘는 여성 합격자가 나온다. 때문에 법원과 검찰에서는 새로운 고민(?)을 한다. 법원과 보직 등에서도 여성의 성적이 월등히 좋다 보니 성적순으로 배치하다 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여성 판사가 너무 많아져 각 법원에 순차적으로 배치한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다. 어디 사법시험뿐인가. 대학에서 전통적으로 남학생들이 선호하는 의대와 법대도 이미 50% 가까이 여학생들로 채워진다고 한다. 예전에 내가 대학에 갈 때만 해도 여학생들은 주로 인문대, 간호대, 사범대 등 전통적인 여학생 선호학과를 택했고 법대, 의대, 공대 등에 진학하는 여학생은 아주 극소수였다. 그 무렵 법정대의 여학생 수는 한 학년에 한두 명에 불과했다. 물론 아예 여학생이 없는 학번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는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막는 걸림돌들이 많이 남아 있다.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학교 성적이 좋아도 취직을 할 때는 더 어려움을 겪는다. 취직을 한 후에도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면 육아의 책임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다. 어린아이를 두고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에게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데 따른 아쉬움과 미안함 그리고 직장 생활과의 갈등이 늘 존재한다. 더구나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진출에 비해 아직도 기혼 여성이 출산 후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국가적인 보육정책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그나마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족이 있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 있어 상주 도우미를 둘 수 있는 가정이 아닌 경우 갈등을 하다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이 아직도 많다. 결국 아이 양육을 가정에만 맡기는 사회 시스템은 여성들의 결혼 기피는 물론이고 출산 기피로 이어진다. 요즘 문제가 되는 출산율 저하는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진 데도 이유가 있겠지만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만큼 보육정책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것도 한몫을 차지할 것이다. 최근 국가에서는 여성들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하여 셋째를 출산하면 육아비용의 일부를 보조해주는 출산 장려책을 쓰고 있다. 그러나 보조금 조금 주는 것으로 셋째를 낳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지 의문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그에 따른 보육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해본다. 2005-02-23
- 미군기지 인근 기지촌 외국인여성 인권침해 심각 ‘직업 가수, 월급 500달러, 시간외 근무수당 150%, 음식과 숙소·의료보험 제공’. 필리핀 여성 엘리스(37)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맺은 계약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강제로 속옷을 입고 춤을 춰야했고 월 100만원 술매상 할당액을 채워야 했다. 그러고도 임금은 제때 받지 못했고 항의하면 오히려 클럽주인은 ‘돈 벌어준 게 뭐 있냐’고 윽박질렀다. 견디다 못한 엘리스는 망가진 몸과 텅빈 통장만 가지고 필리핀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27세인 엘린도 가수로 입국했지만 노래보다 술매상 할당액을 채우는 일을 더 많이 했다. 하지만 할당을 채우지 못해 월급은 첫 달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접대부 역할과 2차 성매매 강요를 견디다 못해 업소를 탈출했다. 세 아이의 엄마인 그는 쌀뜨물로 아이를 키울 만큼 가난했지만 한국에서도 그 가난을 벗지 못했다. 기지촌 여성 인권보호 단체인 두레방 주선으로 2월초 필리핀 지역 활동가 오브리(Aubery A. Bautista)가 필리핀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겪는 생활을 둘러보고 내놓은 보고서 중 일부 내용이다. 오브리가 인터뷰한 성산업에 유입된 여성들 대부분은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좀더 나은 삶과 가족 부양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필리핀 정부로부터 ARB(연예인등록증)을 발급받아 연예인으로 한국에 들어오지만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계약과 달리 접대부로 전락한다. 음료판매할당을 채우도록 요구당하고 성매매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추가근무수당은 물론 휴일도 갖지 못한다. ◆기지촌 여성 87%가 외국인 = 주한미군 주둔지 인근 유흥주택가를 일컫는 기지촌. 기지촌은 90년대초까지만 해도 한국여성들이 미군을 상대로 영업을 했다. 속칭 ‘양공주’라 불리던 이들 클럽여성은 일상적인 폭력과 임금착취에 시달렸으며 ‘윤금이 사건’처럼 미군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곤 했다. 이 클럽여성이 러시아, 필리핀 여성으로 자리바꿈하면서 인권 침해가 소리없이 확산되고 있다. 두레방 상담실장인 김동심씨는 “2004년 12월 현재 기지촌 여성의 87%가 외국 여성”이라며 “이들 대부분은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클럽을 탈출해도 불법체류 위험과 생계유지의 어려움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김 실장은 클럽여성들의 노동형태는 사실상 ‘인신매매’라고 불렀다. 업주들이 △클럽여성을 관리해 이윤을 얻고 △애초에 계약 내용을 속일 목적이 있었으며 △여성들이 계약에 묶여 있는 한 이탈은 물론 고발당할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사법당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클럽여성은 불법체류자로 강제출국당하게 된다. ◆유명무실 ‘연예흥행비자’ = 클럽 여성들이 인권 사각 지대에 방치되는 가장 큰 이유는 ‘체류자격’ 때문이다. 주로 예술흥행 비자(E-6)로 입국하는 이들은 비자갱신을 위해 고용주와 계약관계를 증명해야만 한다. 계약연장을 위해 업주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무단이탈로 곧장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다. 월급을 떼이거나 여권을 빼앗기고 2차 성매매를 강요당해도 변변히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국에 남아 있는 가족 생계를 책임진 이들은 ‘한국 잔류’를 위해서라면 인권 따위는 돌아볼 여유가 없다. 지난해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되면서 미군 강력범죄는 줄었다지만 여전히 클럽여성을 상대로 한 피해는 뚜렷한 감소세를 확인하기 힘들다. 미군 당국은 클럽여성 인신매매가 의심되는 업소에 대해 클럽출입금지(zero-tolerance) 조치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김 실장은 “오히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인권 침해는 계약동거나 미군이 가족수당을 받기 위해 벌이는 결혼사기”라고 말했다. 한국 근무 동안 500~1000달러 안팎의 수당을 받기 위해 클럽여성과 결혼한 후 여성에게는 미군가족비자(SOFA비자)를 수속할 수 있는 서류를 준비해 주지 않는 수법이 주로 쓰인다. 심지어 오늘 결혼하고 내일 출국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남편의 정확한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클럽여성들은 한국에서는 마음대로 이혼마저 할 수도 없다. 한번의 인신매매가 장기적이고 연쇄적인 여성들 피해사슬을 만든 결과다.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여권을 뺏긴 여성은 성매매에 시달려도 탈출하지 못하며 클럽을 탈출해도 강제출국 대상자가 된다. 또 결혼사기라도 당하면 신분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생계까지 막막해져 본국에 돌아갈 수도, 한국에 남아있을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단 1건도 고발할 수 없는 현실 = 김 실장은 클럽여성 인권 침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주둔군을 위해 사실상 공창인 외국인 전용클럽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연예 흥행사증(E-6)이 본래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관리감독하는 일도 필요하다. 현재 E-6비자는 사실상 2차 성매매용으로 악용되고 있다. 최소한 피해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합법적 체류자격을 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현재로서는 피해가 생겨도 강제출국 위험 때문에 오히려 피해자가 도망다니는 실정이다. 한국 검찰도 인정하듯 지금까지 클럽 여성이 업주를 고발한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일단 피해가 발생하면 체계적인 구체책을 마련하는 것도 검토해볼 부분이다. 현재 여성부에서 피해 클럽여성 쉼터인 ‘벗들의 집’과 ‘안양 전진상복지관’을 시범운영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하고 재활 프로그램 없이 숙식제공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2005-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