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46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CJ홈쇼핑, 결혼 관련 상품 할인판매 CJ홈쇼핑(CJmall.com)의 웨딩컨설팅 샵 ‘디어포 웨딩(Dear for wedding)’은 결혼 비수기인 여름철을 대비해 15일까지 ‘알뜰 결혼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이번 행사에선 6월에서 8월 사이에 결혼하는 예비 부부를 대상으로 ‘웨딩 패키지’ 등을 할인 판매한다. △‘웨딩 패키지’는 리허설 사진과 드레스(본식, 리허설), 메이크업과 헤어(본식, 리허설) 및 신부 한복 등을 모두 포함해 188만원 △‘집중케어 3회 패키지’는 8단계에 걸친 피부 관리 서비스를 총 3회 이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현재 17만 1000원 △다이아몬드는 3부 상품이 4만 8000원(시중가 68만 8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 외에도 청첩장을 전 상품 50%할인해 판매하고 있다. ( 02-541-3443) /전예현 기자 newslove@naeil.com 2005-05-09
- ‘교황청 콘돔금지령’에 정면반발 아프리카를 뒤덮고 있는 21세기 흑사병 에이즈(HIV 에이즈 바이러스/AIDS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심각성을 보다 못한 남아프리카 신부들이 바티칸의 계율을 거부하고 직접 콘돔 배포에 나섰다. 유엔 에이즈기구(UNAIDS)에 따르면 2004년 11월말 현재 에이즈에 감염된 인구는 3940만명(3590만~4430만명)으로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이중 감염자가 가장 많은 (2340만~2840만명)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530만명으로 최고 수준이다. ◆“콘돔만 있어도 에이즈 예방 가능” = 남아공의 에이즈 퇴치와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 선봉에 선 루얀다 은곤야마.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난 평신도로 교구 일과 지역 주교 회의에 열성적으로 참석했지만 아무리 해도 세계적으로 에이즈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콘돔 사용을 금지하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는 동의 할 수 없었다. 그는 바티칸의 이런 태도를 ‘범죄적’이라고 비난한다. 32세의 은곤야마는 몇 달 전, 남아공의 에이즈퇴치 협회인 ‘트리트먼트 액션 캠페인’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남아공주교회의’ 협회 마저 탈퇴했다. 그는 “콘돔만 사용했어도 에이즈를 피할 수 있었을 사람들의 얘기를 듣노라면 신앙 자체에 의문까지 들게 된다. 사람들이 성관계를 좋아하고 혼외성관계를 맺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곤야마와 주교를 포함한 남아공 가톨릭 신자들은 에이즈 바이러스를 막는 방법으로서의 콘돔 사용을 적극 권장한다. 이들의 입장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전 교황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콘돔이 수백만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하지 피임을 목적으로 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하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많은 가톨릭신자들은 바티칸의 핵심 강령이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인 만큼, 바티칸이 콘돔 사용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콘돔 사용을 주장하는 가톨릭 사제 중 가장 유명한 케빈 다울링 루스텐베르크 주교는 “임신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다”면서 “우리는 모든 이의 생명을 구할 수는 없지만 콘돔 사용으로 상당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콘돔 사용을 주장하는 이들은 2001년 ‘결혼한 부부 중 한명 혹은 둘 다가 HIV 바이러스 보균자일 경우 콘돔 사용은 바로 양심의 문제’라고 선언한 남아공주교회의 선언을 내세운다. ◆“자유분방한 성관계 현실 인정해야” = 그러나 310만명의 신도를 자랑하는 남아공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은 이런 발표가 선언에 명시된 예외적 상황에서만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선언의 또 다른 단락이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콘돔의 사용은 금지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러 신부와 사제들은 결혼한 부부에 한정돼 있는 이 논리가 동거상에 있는 커플이나 결혼은 했지만 배우자가 에이즈 보균자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부부에게도 적용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남아공의 가톨릭 단체들은 고위사제가 부재중을 틈타 콘돔을 무료 배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에이즈 퇴치에 열성적인 가톨릭 교도일수록 콘돔사용에 긍정적이다. 어떤 가톨릭신자라도 빈민굴에서 에이즈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절규를 목격한 사람들이라면 ‘콘돔을 사용하라’고 말할 것”이라고 케이프타운의 가톨릭 주간지인 더 사우던 크로스의 군터 심머마허 편집장은 지적했다. 한편, 바티칸 내 진보진영도 베네딕토 16세 새 교황에 콘돔 사용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콘돔 사용을 통한 인위적 피임과 관련 에이즈는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큰 위협이라며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콘돔이 필요하다고 바티칸을 설득하고 있다. /이지혜 리포터 2main@naeil.com 2005-05-09
- 인터뷰-손용기 제주교도소 소장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는 제주교도소 손용기(57) 소장. 제주와 맺은 인연이 남다르다. 그는 76년 부산구치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78년 간부(교위)가 된 뒤 첫 근무지가 제주교도소다. 10년 뒤인 88년에 과장(교감)으로 승진한 뒤 다시 오게 된 곳도 제주다. 그러다가 지난 1월 소장으로 다시 제주근무를 하게 됐다. 30년 근무 경력 가운데 세 번을 제주에서 보낸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제주대학교 야간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제주아가씨를 만나 결혼까지 하는 행운을 얻었다. 남다른 인연만큼 애정도 각별하다. 직원들 경·조사를 직접 챙기는 것은 물론이다. 각종 동호회를 활성화해 직원들 사기를 높이는데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동호회만 18개나 된다. 요즘처럼 수용자 인권이 강조되면서 자칫 직원들 사기가 떨어지기 쉽다는 판단에서다. 손 소장은 “직원들이 악성 수용자에 의해 고소고발로 시달릴 때 안타깝다”면서 “사기가 높아야 의욕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동호회에 세 군데나 직접 가입했다. 또한 직원들 생일이 되면 일일이 소장실로 부른다. 작은 선물이지만 도서상품권을 직접 전해주기 위해서다. 선물보다 더 큰 의미는 직원들을 직접 만나서 가정사를 들으면서 직원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다져진 직원들 간 화합은 수용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신축한 다른 교도소들에 비해 낡은 건물이지만 큰 사고 없이 잘 지내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또 이웃한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은 것이나 각종 봉사활동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신 원칙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이다. 제주도 특성 때문이다. 그는 “이곳은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거나, 먼 친척 관계일 정도로 가깝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곳 보다 훨씬 더 원칙을 지키면서 근무해야 사고가 없다”고 강조했다. 화합에 기초한 원칙준수 이것이 손 소장의 교정철학이다. /제주=정재철 기자 2005-05-06
- 초등학생, 북한 주민에 현실적 거리감 초등학생 10명 중 7명 이상이 북한 주민을 이웃이나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결혼 상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10명 중 8명이 부정적인 답변을 해 북한 주민을 이웃과 동포로는 인식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교조 초등위원회는 지난 4월 16일부터 23일까지 전국 초등학교 4~6학년 10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을사조약 100주년, 해방과 분단 60주년,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 맞이 통일의식 설문조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72.5%는 북한 주민을 한 동네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또 가까운 친구로 사궐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71.6%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에 ‘결혼상대로 맞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80.3%가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초등학생들이 북한과 통일에 대한 정보를 얻는 통로는 ‘TV, 라디오, 영화’가 57.1%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16%가 학교 수업을 통해서라고 답해 했다. 또 북한의 생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57%의 학생들이 ‘잘은 모르지만 조금 알고 있다’고 답했고 34.4%는 거의 모르고 있거나 완전히 모른다고 응답했다. 반면 ‘잘 알고 있다’는 답변을 한 학생은 8%에 불과해 북한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은 ‘북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복수 응답)는 질문에 24.6%가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고 형제로서 반갑고 그리운 나라’라고 답했다. 또 24.2%는 ‘함께 협력하고 통일되어 같이 살아야할 우리 겨레’라고 응답해 한민족 공동체로 인식하는 긍정적인 이미지(44.8%)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북한은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라고 응답한 학생들도 22.3%에 달해 식량난 등 북한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김정일의 일당 독재에 신음하는 나라(9.3%),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기회만 노리고 있는 나라(7.9%)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초등학생들은 남북통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통일은 반드시 되어야 하며 이를 앞당기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56.6%), ‘통일은 되어야 하지만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31.3%) 등 대부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이 되면 가장 좋은 점을 묻는 질문에는 ‘이산가족 만남 등을 통한 고통을 덜어줌’(34.3%), ‘남과 북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옴’(32.3%) 등을 많이 꼽았다. 또 최근 금강산 여행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는 ‘남과 북의 아름다운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음’(13.4%)이나 ‘경제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 줌’(8.2%) 등의 답변이 많았다.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초등학생들은 민간교류 확대와 인도적 지원을 통한 한민족의 신뢰 구축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으로 꼽았다. 북한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묻는 질문에는 ‘북한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자세’(55.3%)를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꼽았다. 뒤를 이어 ‘북한을 개방하고 우리식으로 민주화하려는 노력’(28.7%), ‘북한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노력’(10.7%), ‘미국 등 외국의 협조를 얻으려는 노력’(5.3%) 등의 대답이 나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2005-04-29
- 서울 명예시민 외국인 500명 돌파 서울시 외국인 명예시민이 500명을 넘어섰다. 서울시는 5월1일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중 하나인 지구촌한마당에서 외국인 13명에게 명예시민증을 발급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 명예시민은 총 512명으로 늘어났다. 명예시민 대상자 13명중 웨인 첨리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10년간 서울에 거주하면서 경제협력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해온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또 이탈리아의 지안카를로 팔다니 신부는 35년동안 한국인과 외국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벨기에인 쿡 파울라 한국외대 교수는 한국인과 결혼해 지난 33년간 서울에 거주하면서 ‘네덜란드-한국어사전’을 편찬해 한국을 소개해왔다. 서울시는 지난 1958년부터 ‘공로시민증’을 수여하기 시작해 1972년 ‘명예시민증’으로 명칭을 바꿔 지금까지 총 512명의 외국인에게 시민증을 발급했다. 지금까지 명예시민증을 받은 주요 인사는 폴란드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롯블라트(2001년 수여), 자미머 레르너 브라질 꾸리찌바 전 시장(2003년), 도미닉 바튼 멕킨지 서울사무소 대표(2003년), 언더우드 한미교육위원회 위원장(2004년) 등이 있다. 서울시 명예시민에게는 서울시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거나 시가 주관하는 행사에 주요인사로 초청되는 등 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2005-04-29
- 주식백지신탁제 “위헌 소지 크다” 1급 이상 고위공직자에 대한 주식백지신탁제가 오는 11월 실시될 예정이지만 주식강제 매각 조항을 놓고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주식백지신탁제는 공직자가 1000만~5000만원 이상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갖고 있을 경우 신탁기관에 맡겨 매각하도록 하는 제도로 26일 국회를 통과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 포한돼 있다. 따라서 고위공직자는 올해 12월까지 주식을 신고해야 하다. 심사를 통해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면 주식을 금융기관에 맡겨 매각해야 한다. 하지만 강제 매각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위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공직자의 보유주식을 단순히 맡기는 것은 문제될 게 없지만 의무적으로 매각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 하창우 변호사는 “개인의 재산을 국가가 강제로 처분하는 제도가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다”며 “헌법정신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도 “위헌 소지가 커서 당사자 중 누구라도 헌법소원을 제기하면 위헌이 나올 수 있는 문제”라고 우려했다. 법제도가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자녀가 결혼 후 독립세대를 구성하면 신고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주식 빼돌리기’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생계를 유지하는 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2005-04-27
- ‘박근혜 바람’이냐 ‘역 박근혜 바람’이냐 -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영천 27일 1주일만에 다시 찾은 경북 영천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나라당 찍겠다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었다. 열린우리당 성향의 사람들은 박근혜 바람 때문에 ‘바꾸자’는 바람이 잦아들까봐 긴장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일종의 박근혜 역풍이다. 양쪽 캠프 모두 한 순간도 맘놓을 수 없는 긴장된 선거전을 펼치며 결국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라며 밑바닥 훑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 영천에는 장이 섰다. 평소에는 한산한 완산시장이지만 이날만은 면 단위에서도 장을 보기 위해, 수확물을 팔기 위해 구부정 길을 나선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북적거렸다. 정치인들이 이 날을 놓칠 리 없다. 시장과 동네에서 가장 큰 예식장 사이의 큰 길에선 오전부터 선거유세가 한창이었다. 영천에 쏠린 관심을 보여주듯 각 당 지도부들의 행차도 이어졌다. 오전엔 그 전날부터 영천에 와있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목청이 터져라 지지를 호소했다. 오후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소속 의원들이 1시간 30여분 동안 시장도 돌고 유세도 했다. 박 대표와 문 의장이 돌아다닐 때 아줌마 아저씨들이 뱉는 말에서 지역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박 대표가 돌아다닐 때는 “어찌 저리 야뱄나(여위었다는 사투리)”, 문 의장이 돌아다닐 때는 “노 대통령 직속이 여까지 왔네”다. 박 대표에게는 애처로운 감정이 절로 배어나면서도 노 대통령 직속이 ‘깡촌’에 와서 돌아다니는 것이 여당이라는 프리미엄을 상기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시장 분위기는 어느 쪽에도 만만치 않았다. 한나라당 찍겠다는 사람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열린우리당 기세가 꺾인 것도 아니었다. ‘막상막하’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거판이었다. 장도 볼 겸 선거유세도 들을 겸 나왔다는 50대 아저씨에게 선거 분위기를 묻자 입을 가리면서 조용히 검지손가락 하나만 치켜들었다. 1번 찍겠다는 얘기다. 한번 더 묻자 “이번엔 영천 바뀌는 건 확실해요”라고 말했다. 영천에서는 한나라당을 욕하면서도 열린우리당 찍겠다는 사람은 아직 내놓고 말하기보다 ‘수화(?)’로 말하는 사람이 더 눈에 띄었다. 완산시장에서만 벌써 10년째 장사한다는 생선장수 아저씨도 검지 하나만 치켜들었다가 답답한 듯 얘기를 풀어놓았다. “뭘 불어봅니까. 당연히 1번이지요. 내가 장사를 몇 년 했는데 딱 보면 안다 아입니까. 홍일점 한번 만들어볼 거니까요. 여기가 시범케이스니 얼마나 잘해줄거요. 어차피 속고 속이는 세상이니 한번 여당에 속아보자 이거지. 박 대표야 좋아하긴 해도 그냥 올때만 그런 거지 뭐….” 그러나 나이대가 좀 높아지면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70세를 넘겼다는 한 할머니는 선거 얘기가 나오자 대번에 “참… 박근혜 보면 안타깝잖아. 그렇게 한평생 결혼도 안하고.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그래도 우리가 밥먹고 살았는데, 그거 아니었으면 배고파서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박통 생각하니까 눈물이 다 나. 내 주위 할머니들은 그래도 박근혜 안타까워서 한나라당 찍어야지 그래”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할머니들은 박 대표 3번째 방문만에 마음을 확 줘버렸다. 성별에 따른 차이는 있었다. 할머니들이 한나라당에 우호적이라면 할아버지들은 열린우리당에 호의적이었다. 물론 “이번에 우리당 붙여놨다가 잘 못하면 다시는 영천에 발 못붙이게 할 것”이라는 말은 잊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각 당에서 판단하는 판세도 엇갈린다. 각각의 당에서는 자신들이 이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열린우리당은 박근혜 역풍으로 지지세가 더 결집되고 있다는 게 근거이고, 한나라당 쪽에서는 박 대표 영향으로 역전에 성공했다는 주장이다. 주목할 것은 영천의 특성이다. 먼저 도시와 농촌이 딱 반반씩 공존하는 특성이 있다. 시내와 면단위를 나누면 비율이 거의 50 대 50이다. 유권자 비율로 보면 60대 이상 유권자가 23%로 몇 년 전에 비해 크게 감소한 편이다. 양쪽 선거캠프는 막판에는 결국 발로 뛰는 것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구석구석 발로 뛰고 손도 잡으면서 마지막 지지를 호소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영천 선거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열기가 더욱 세질 듯하다. /영천 =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2005-04-28
- <밥일꿈>“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든다”(이 정 재 2005.04.28)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든다” 이 정 재 (수협은행 후생담당 과장) 요즘 ‘고객만족 경영’이니 ‘고객감동 경영’이니 ‘고객밀착형 영업’이니 하는 말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 공급자 위주의 시장에서 수요자 위주의 시장으로 개편된 것은 예전의 일이고, 나아가 고객이 제일이자 왕인 시장상황이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고객은 항상 옳고 고객의 요구에 순응하여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렇게 고객을 제일로 여기는 경영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터에 이제는 더 나아가 ‘내부고객’을 만족시키고 감동시키는 경영에 중점을 두어야 할 때라고 본다. 직원들을 잘 대해 주지 않으면서 친절한 고객서비스를 요구하면 직원들은 “회사가 나에게 잘 해주지도 않는데 내가 왜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단 말인가?”고 반문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재의 직장에서는 받는 만큼 일하고 남는 역량과 시간은 개인을 위해 투자하려고 한다. 비록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에 투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회사를 위한 것, 즉 업무역량을 계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직장으로 옮길 것에 대비해서다. 또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서 자격증이라도 하나 더 따둘 심정으로 시간을 투자한다. 이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먼저 애정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뜩이나 성과중심 문화의 확산에 따른 조기퇴직 현상, 개인역량에 따라 급여 또는 처우가 달라지고 있는 직장생활에서 요즘 직장인들의 이런 생각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늦었지만, 지금이야말로 회사가 먼저 직원들을 애정을 가지고 잘 보살펴야 할 때라고 본다. 좋은 환경과 애정 넘치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고객에게 세심한 배려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고, 나아가 마음에서 우러난 서비스가 고객에게도 전달됨으로써 결국 회사에 대한 이익으로 되돌아 온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는 ‘굿데이-굿타임(Good Day Good Time)제도’라는 것을 시행하고 있다. 직원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CEO가 직접 챙겨 축하메시지와 함께 영화티켓이나 문화상품권을 증정한다. 그날은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날만큼은 골치아픈 일 모두 잊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직원 본인보다도 CEO의 메시지를 받은 가족(특히, 아내)이 더 감동한다는 후문이다. 다행히 이런 류의 직원만족 경영을 실천하는 직장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애정어린 회사의 조그마한 정성에 직원과 그 가족은 크게 감동한다.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고 나아가 일류회사를 만든다. 직원에 대한 배려를 생산성 증대와 회사성장으로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기는 하지만, 행복한 직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2005-04-28
- <밥일꿈>“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든다”(이정재 2005.04.28)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든다” 수협은행 이정재 후생담당 과장 요즘 ‘고객만족 경영’이니 ‘고객감동 경영’이니 ‘고객밀착형 영업’이니 하는 말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 공급자 위주의 시장에서 수요자 위주의 시장으로 개편된 것은 예전의 일이고, 나아가 고객이 제일이자 왕인 시장상황이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고객은 항상 옳고 고객의 요구에 순응하여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렇게 고객을 제일로 여기는 경영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터에 이제는 더 나아가 ‘내부고객’을 만족시키고 감동시키는 경영에 중점을 두어야 할 때라고 본다. 직원들을 잘 대해 주지 않으면서 친절한 고객서비스를 요구하면 직원들은 “회사가 나에게 잘 해주지도 않는데 내가 왜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단 말인가?”고 반문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재의 직장에서는 받는 만큼 일하고 남는 역량과 시간은 개인을 위해 투자하려고 한다. 비록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에 투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회사를 위한 것, 즉 업무역량을 계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직장으로 옮길 것에 대비해서다. 또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서 자격증이라도 하나 더 따둘 심정으로 시간을 투자한다. 이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먼저 애정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뜩이나 성과중심 문화의 확산에 따른 조기퇴직 현상, 개인역량에 따라 급여 또는 처우가 달라지고 있는 직장생활에서 요즘 직장인들의 이런 생각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늦었지만, 지금이야 말로 회사가 먼저 직원들을 애정을 가지고 잘 보살펴야 할 때라고 본다. 좋은 환경과 애정 넘치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고객에게 세심한 배려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고, 나아가 마음에서 우러난 서비스가 고객에게도 전달됨으로써 결국 회사에 대한 이익으로 되돌아 온다. 잘 나간다는 매장에 한번 들러 보자. 직원들이 모두 활기에 차 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모두 신명에 찬 얼굴과 동작으로 움직인다. 한눈에 보아도 행복한 직원들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매장의 직원들은 다들 풀이 죽어 있고, 고객에 대한 반응도 시원치 않은 것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는 ‘굿데이-굿타임(Good Day Good Time)제도’라는 것을 시행하고 있다. 직원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CEO가 직접 챙겨 축하메세지와 함께 영화티켓이나 문화상품권을 증정한다. 그날은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날만큼은 골치아픈 일 모두 잊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직원 본인 보다도 CEO의 메시지를 받은 가족(특히, 아내)이 더 감동한다는 후문이다. 다행히 이런 류(類)의 직원만족 경영을 실천하는 직장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애정어린 회사의 조그마한 정성에 직원과 그 가족은 크게 감동한다.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고 나아가 일류회사를 만든다. 직원에 대한 배려를 생산성 증대와 회사성장으로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기는 하지만, 행복한 직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2005-04-27
- [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광주 ‘늘푸른 설비건설’ 대표 김병록 씨 죽어도 못 잊을 내 인생 최악의 날 2001년 1월 16일 오전 11시 45분경. 순천의 모 오피스텔 천정 텍스 작업을 하던 김병록 씨(54세)가 ‘억!’ 하는 소리와 함께 3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둔중한 신음만 흘릴 뿐, 그는 통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이 사고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워낙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전신을 압박해 오는 숨 막히는 통증도 마치 남의 일인 양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한 인부들의 우왕좌왕하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그는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큰 공사를 앞두고 재수 없게 다치다니!’ 그는 곧 근처의 성가롤로 병원에 실려 갔다. 엑스레이 판독 결과, 김병록 씨의 요추 1번이 심하게 골절돼 있었다. 이틀 뒤, 그는 여섯 개의 금속 나사못을 이용하여 척추뼈를 고정한 뒤 뼈융합을 시키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 해 3월 15일에 3억짜리 전기공사를 맡기로 돼 있었거든요. 그 일을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래, 아파서 죽겄는데도 하루라도 빨리 나갈 욕심에 수술할 때 무통제 주사, 수술 뒤의 진통제를 일절 거부했어요. 근데 담당의사가 최하 5개월은 입원해야 되고 퇴원 후에도 한 2년 동안은 일을 못할 거라고 하는 거예요.” 돈을 벌기는커녕 당분간 바깥출입도 자유롭지 못하게 생겼으니 그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장해 판정도 6급 5호가 나왔다. 공단에서 조사가 나와 평균 임금을 물었을 때 멋모르고 “한 5만 원 적어 놓으쇼!” 하고 대답한 게 실책이었다. ‘노동법’에 무지한 탓에 그저 임금을 싸게 이야기하는 게 좋은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70~80만 원은 받았어야 할 휴업 급여를 50~60만 원밖에 못 받았다. “지금 당장 현장에 가도 기술이 필요한 일은 15만 원 받거든요. 93년 대우전기 공사부 대리 할 때도 월급이 3백이었어요. 직장생활 했던 기록도 다 남아 있구요. 근데 내가 다칠 때는 이걸 몰랐어요. 억울하지만 어쩌겠어요. 일만 할 줄 알았지 노동법에 대해서 너무 몰랐던 거죠. 노무사 찾아가 보니까 소송 과정이 복잡하더라구요. 그래서 ‘에이, 괜히 골치 아픈 일에 메이느니 하루 빨리 나아서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것이 낫겠다.’하고 마음을 접었죠.” “제 고향은 지금 한창 홍길동 생가를 짓고 있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예요. 제 아버지는 우리 8남매 키우느라 평생 뼈 빠지게 일만 하신 분이죠. 낮에 농사일 하시고 밤에는 공사장에 야간 경비 서시고 잠도 한두 시간 밖에 못자요. 그렇게 고생하셔서 악착 같이 자식들 공부시키셨어요. 저야 야간고등학교 간신히 마쳤지만 내 밑에 동생들은 다 대학 나왔거든요. 지금도 생각나는 게 저 장성중학교 갈 때 논 두 마지기 팔아서 교복이랑 가방이랑 등록금이랑 자전거랑 마련해 주셨어요.” 야간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광주로 나온 그는 친척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 운영하는 자동차 부속품 가게에서 먹고 자며 일을 거들었다. 학비 대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월급이 따로 있었겠는가. 비록 주경야독하는 신세지만, 급우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독한 놈’ 소리를 들어가며 밤 한두 시까지 책과 씨름하는 모범 청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자동차 부품 회사를 다니던 그는 70년대 중반에 서울로 올라와 황학동에서 청과물도매를 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부인 김경자 씨. “지금은 저렇게 건장해졌지만, 처녀 적에는 아주 날씬하고 다리가 예뻐서 미니스커트가 잘 어울렸지요. 제가 그때 청과물을 오래 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저 사람 만나려고 서울에 올라왔던가 봐요.” 1975년에 결혼한 두 사람이 이듬해 둥지를 튼 곳은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농장이었다. 5만4천여 평에 달하는 그 거대한 농장의 소유주는 당시 개인병원을 운영하던 병록 씨의 고종사촌 형으로,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한 장준하 씨의 부검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젖소 50~60두에 닭 3만 마리, 사료 공장까지 거느린 그 농장에 오는 관리인마다 한 몫 잡아서 나가곤 했다니, 사촌 되는 이가 김병록 씨에게 관리를 맡긴 이유를 알만 하다. 아버지를 닮아 성실하고 부지런한 데다가 착하기까지 한 김병록 씨는 10원 한 장 허투루 돌리지 않고 새벽부터 밤까지 소처럼 일했다. 76년부터 82년까지 7년 동안 일한 대가로 손에 쥔 것은 일금 3백만 원과 위염. 83년에 광양에 내려와 부인 김경자 씨는 만두집을 열고, 김병록 씨는 83년부터 89년까지 고창기계시스템 기술관리과장, 90년부터 대우전기 공사부 대리, 96년부터 금호전력 공사과장 등 쉬지 않고 일했는데도 아직까지 내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했다. 슬하에 둔 자식은 하나뿐이지만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 치다꺼리에 돈 모을 겨를이 없었던 것.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남의 농장과 가겟방을 전전하며 자란 아들 재일 씨가 구김살 없이 성장해 준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지금까지 한 54년 살아오면서 느끼는 건 사람이 불량기도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남의 것은 10원 한 장 건드리지 않고 사기성 없이 곧이곧대로 산 결과가 이거예요. 우리 고향에서 돼지 한 3천 두 기르는 후배가 있어요. 내가 회사 생활할 때 한 팔년 데리고 있었던 얘거든요. 남보다 기술도 빨리 전수해 주고 반장 주임도 막 시켜 주고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봉게 32평짜리 아파트도 사놓고 그랬더라구요. 저요? 그 회사 나올 때 305만 원 갖고 내려왔어요. 팔잔가 봐요, 허허….” 김병록 씨가 요추 골절로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안 그래도 복잡했던 가정은 더욱 엉망이 됐다. 90년대 후반부터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집안의 경제 사정은 몹시 좋지 않았다. 부인 김경자 씨가 광양에서 십여 년간 해 오던 ‘신포우리만두’ 체인점은 IMF의 된서리와 잇단 오토바이 사고로 간판을 내린 지 오래였다. 전국을 떠돌며 음악을 하던 아들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97년에 얻은 손녀 유림이는 쑥쑥 자라는데 그 밑감당을 어떻게 다 할 것인가. 그래도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암담함 속에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근로복지공단 여수지사에서 보내 준 광주재활훈련원 소개 책자에 그는 눈이 번쩍 띄었다. 그는 7개월여의 병원 생활을 끝나자마자 광주재활훈련원 산업설비과에 입교했다. “나보다 더 심한 장해를 입고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동기생들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어요. 마정용 선생, 김창현 선생 등 도움을 주려는 분들도 많았구요. 제가 원래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인 편이거든요. 그런데 재활훈련원에서 학과 수업과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안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어요.” 한 가지, 훈련 기간 동안의 가족들 생계 문제가 걱정거리였다. 6개월이 지나자 그는 훈련원에 취업 허가를 얻어 전기공사며 보일러공사 일을 다녔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었으나 그걸 걱정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온수온돌기능사, 공조냉동기계기능사, 보일러취급기능사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공부에 몰두했다. 얼마나 공부에 몰두했던지 선생들마저 독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가 이처럼 무리를 하면서까지 열심을 부리는 이유가 있었다. 훈련원을 마치는 대로 창업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김병록 씨 같은 산재 노동자를 위해 자립점포 임대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마침내 2003년 12월 1일, 김병록 씨는 광주 광산구 월곡동에 ‘늘푸른 설비건설(062-953-4616)’이라는 멋진 간판을 올렸다. 사무실 인테리어는 물론 가게 공터를 이용해서 다섯 식구가 생활할 가건물도 그의 손으로 직접 했다. 때마침 음악 활동을 정리하고 돌아온 아들이 몸이 성치 않은 아버지의 일을 돕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뒤늦게 신학대를 졸업한 아내도 광양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을 개시했다. ‘산재’라는 비싼 수업료는 물었지만 그는 새로 얻은 인생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몸의 한쪽 마비되지 않을 정도로 다친 것이 얼마나 다행하며, 200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