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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조선을 조국으로 알고 살았다” 중국 상해에는 해방 후 60년 동안 ‘조선’을 조국으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고 ‘하나의 조선’이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 중국 상해에는 수백 명의 조선 사람이 귀국하지 않고 그곳에 남았다. 1949년 국공내전이 끝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이들의 운명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됐다. 당시 중국 정부는 양자강 이북의 조선 사람에게는 ‘중국’ 국적을 부여했다. 그러나 양자강 이남지역의 조선 사람에게는 ‘북한’ 국적이 주어졌다. 중국과 북한 당국이 이런 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중국 국적을 부여받은 사람은 ‘조선족’으로 불렸고, 북한 국적을 받은 사람은 ‘교민’이라 불렸다. 이들은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외국인’으로서 온갖 설움을 당했다. 현재 상해에는 4~5만 명의 조선족, 4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 ‘북한국적 교민’은 대부분 사망하고 생존자는 30여명뿐이다. 이들은 남북한 중국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다. 세 나라 모두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교민과 조선족의 차이는 한국과 중국이 축구경기를 할 때 드러난다. 조선족이 중국을 응원할 때 교민들은 한국 팀을 응원한다. ◆상해 임정, 인성학교에서 민족정신 교육= 상해시 노만구 마당로 협성리 1호.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섰지만, 이 자리에는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성학교’라고 불리는 학교 건물이 있었다. 인성학교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기고 망국의 한을 안은 채 상해로 건너온 조선 사람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던 곳이었다. 인성학교는 1916년 9월 27일 설립된 상해 한인기독교 소학교를 계승한 것이다. 1917년 2월 정식초등학교로 출범했다. 여운홍 선우혁 이유필 등이 학교를 운영했다. 이후 임시정부가 수립되며 임정이 운영하는 학교가 됐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임시정부는 상해를 떠났다. 상해에 남은 교민들은 인성학교를 지켰으나 1935년 11월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인성학교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살아났다. 역사 국어 교과서는 북한에서 보내온 것을 사용했다. 교민들도 이 학교근처에 모여 살았다. 1970년대 이후 인성학교에 대한 북한의 지원이 거의 끊겼다. 이때부터는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고, 연변 조선족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로 공부를 했다. 1980년대 중반 학생이 단 2명이 남으며 인성학교는 폐교됐다. ◆“조국 자유방문이 마지막 꿈”= 현재 북한 영사관은 인성학교 출신들에 대한 교민관리를 거의 못하고 있다. 몇 해 전 70이 넘은 한 할머니는 북한국적이 싫다며 공민증을 북한영사관에 반납했다. 아무런 신분증이 없으니 아무 곳도 오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몇 해 전부터는 대한민국 상해총영사관에서 고령의 교민들에게 명절 때 용돈을 보내고, 적십자사에는 달력을 보내주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이들을 북한 주민으로 취급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방문할 수 없다. 생활기반이 상해에 있으니 ‘탈북자’가 될 수도 없다. 1943년생인 한영숙씨는 본인의 뜻과 관계없이 ‘교민’이 됐다. 그녀는 인성학교에서 공부했고, 중국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아들도 인성학교에 보냈다. 한씨는 1988년 (주)대우의 도움으로 임시여권을 받아 조국에 왔다. 그녀는 관계당국을 찾아다니며 “선친 때부터 중국에 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은 북한 국적은 내 뜻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에 사는 언니가 일찍이 한씨의 가호적을 만들어놓은 덕분에 1989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그러나 다섯 달 만에 주민등록은 취소됐다. 그녀는 1997년까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버티다 결국 중국으로 돌아왔다. 현재는 한국식당 코리아와 중국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한류 덕분으로 한국식당은 장사가 잘된다. 한씨는 “이미 80이 넘는 교민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 생활기반이 상해에 있으니 영구귀국은 원하지 않는다. 단지 자유로운 방문을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인성학교 동창들이 있다는데 그들이 우리를 초청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한씨는 인성학교 옛터에 기념비라도 하나 세우는 게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상해= 신명식 기자 2005-08-19
- [미군공여지특집] 해방과 함께 등장한 미군 - 지자체와 미군공여지 “흔적 없이 깨끗이 빠져나가라” 기지 문화 확산 … 한때 지역경제 좌지우지 “한국 경제력 뛰면서 미군 경제력 줄었다” 해방과 함께 한국 현대사에 큰 그림자를 드리웠던 미군. 주한미군이 주둔한 지방자치단체는 모두 저마다의 미군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군감축과 한강이남 후퇴, 미군공여지 활용 등을 놓고 정부와 미군측은 다각도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는 아직 마음이 무겁다. 미군기지가 이전한 뒤 토지 활용방안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전국 25개 지방자치단체에 76개의 미군기지가 있다. 자치단체는 미우나 고우나 미군기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동두천시의 경우 지역경제의 절반을 미군기지로 인한 간접효과를 누려왔다. 그러나 미군 공여지로 인한 그동안의 피해는 천문학적 액수를 기록한다. 재산세 종합토지세를 부과할 수도 없었고, 개인 재산권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50년만에 이전하는 미군기지로 공여지가 있는 25개 지자체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공여지를 무상으로 양여받아 공원 등 공공용지와 지역경제 거점 단지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해방과 함께 발을 들여놓은 미군을 광복 60주년을 맞아 미군 공여지가 있는 지역의 속사정을 들어본다. “처음엔 초콜릿을 줬어. 그리고 달러를 줬지. 이젠 그들이 줄게 없어. 깨끗하게 땅이나 빨리 내놨으면 좋겠어.” 전체 행정구역 면적의 42%가 미군 공여지인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앞 상가 주인의 말이다. 그는 미군의 행적에 대해 “공적은 분명하지만 지금은 도움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60~70년대 전국이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이곳 동두천은 호황을 누렸다. ‘돈두천’이라고 불리고 ‘지나가던 개도 1달러는 안문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돌았다. 속칭 ‘양공주’가 등장하고 부대찌개가 날개 달린 듯 팔렸다. ‘양공주’ 중 일부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동두천시 보산동 캠프 케이시는 동아시아 최고의 화력을 자랑하던 미2사단 사령부였다. 지금은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로 옮겼지만 미군의 숫자나 군무원들은 여전했다. 캠프 케이시의 군무원으로 있다 퇴직한 김모씨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동두천 미군은 지역에서 환영받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민주화 바람이 불고 미군 관련 사고가 늘어나면서 미군측이 부대원 단속을 하기 시작하면서 외출을 꺼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군 외출이 줄어들더라도 보산동 관광특구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관광특구 상인회 정인근 회장은 “미군에 대한 시각이 바뀌면서 미군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동두천 지역은 여전히 미군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밝혔다. ‘미군 특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미군기지 이전이 가시화되면서부터다. 정 회장은 “미군만 평택으로 이전하고 기지는 그대로 남아있어 골칫덩이”라며 “지금처럼 미군들이 절반 정도 빠진 상태라면 영업도 안되고 규제만 남아있기 때문에 차라리 미군과 기지가 빨리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군의 월급은 130여만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이 한달 동안 기지 주변 클럽 등에서 쓰는 돈은 60여만원으로 과거처럼 미군 특수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 미군도 징병제였던 60년대 부유층 자녀들이 파견군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에는 한국 물가 등과 비교했을때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봤다. 그러나 70년대부터 모병제로 바뀌면서 ‘돈을 쓰는’ 미군들이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미군은 지역에서 ‘원조군’이라는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도심 한 가운데 미군기지가 있는 인천 부평도 상황은 마찬가지. “미군부대라고는 하지만 안에 고물 창고, 빵공장 같은 것만 있는 것 같던데 지역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빨리 이전했으면 좋겠어요.” 부평미군부대(일명 캠프마켓) 옆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조용환(53)씨는 미군부대의 조속한 이전을 희망했다. 대부분 부평시민들이 그렇지만 미군부대가 더 이상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부분이 없고 오히려 걸림돌만 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거의 매일 동네를 통해 미군부대내로 커다란 고철을 실은 트럭, 빵 차가 오간다”며 “도심 한가운데 알짜배기 땅에 고물상 빵공장을 운영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지적했다. 미군부대를 둘러싸고 있는 현대·우성아파트 주민들은 더욱 미군부대의 이전을 바란다. 미군부대 터였다가 지난 2002년 4월5일 인근 주민들에게 개방된 ‘부영공원’ 때문. 부영공원은 잘 보존된 나무 등으로 인해 주민들에게 더 없는 휴식·운동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인근 주민들은 “미군이 옮겨가면 더 없이 좋은 녹지·공원이 생길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있다. 그러나 미군부대가 존재했기에 지금의 부평이란 도시도 생겼다. 조용환씨는 “과거 신촌(지금의 현대쇼핑몰 앞 상권)에는 술집과 양공주가 많았다”며 “부평에서 돈 번 사람들은 미군의 떡고물도 부자된 사람들이 많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던 30여년전 그는 미군으로부터 초콜렛과 담배 등을 얻었다고 한다. 그나마 미군부대로부터 나오는 갖가지 물자 덕에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풍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산곡동의 한 상인은 “그때는 미군이 고마운 존재였고 미군부대에 다닌다면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말했다. 미 공군이 위치한 전북 군산시. 미성동 아메리카타운의 한 자영업자는 “미 공군기지가 처음 들어설때만 해도 아주 살만했다. 그런데 국내 물가가 오르고 필리핀 여성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미군들의 외출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아메리카타운에는 일반상가 65곳, 특수관광유흥음식점 15개 등이 영업하고 있다. 최근들어 미군측이 아메리카타운 출입통제령을 내려 영업이 어려운 실정이다. 적어도 21세기의 한국에서는 미군이 지역경제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2005-08-09
- 현대카드, 가을맞이 웨딩박람회 개최 현대카드는 올 가을 결혼 계획이 있는 회원들을 위해 홈페이지를 통해 저렴하게 웨딩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가을맞이 웨딩 박람회’를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쿠키웨딩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이번 웨딩 박람회에는 가전, 가구, 신혼여행, 예물, 예단, 사진촬영, 드레스, 웨딩 컨설팅 업체 등 50여 업체가 참여하여 토탈 서비스를 제공한다. 웨딩 박람회에 참여하는 전 업체에서는 3~6개월까지 무이자 할부를 받을 수 있다. 전자랜드, LG전자 및 하이프라자, 가구 전문점 보루네오와 이즈마인은 3개월, 에넥스는 6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을 준다. 이 외에 보루네오는 5%(특정품목), 전자랜드는 4%(9월부터)를 추가로 할인해준다. 박람회를 통해 드레스, 메이크업, 사진, 부케, 마사지로 구성된 웨딩 패키지를 구매하는 회원은 갤럭시 예물시계 남녀 세트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이 웨딩 패키지는 2~6개월 무이자 할부도 가능하다. 또 이번 행사를 통해 신혼여행을 예약하는 고객에게는 여행가방, 수중 방수 카메라를 증정하고, 단수 여권을 무료로 발급해준다. 5대 면세점에서는 10~30%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 상품을 구매하지 않고 홈페이지를 통해 박람회 참여만 해도 푸짐한 경품을 준다. 웨딩 박람회는 11월 30일까지 진행되며, 현대카드 회원이면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행사 관련 문의는 02-516-2249로 하면 된다. 2005-08-05
- <신문로 칼럼>한민족 디아스포라의 기억(심재웅 2005.08.03) 심 재 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1945년 광복 기억을 되새기고 지난 60년을 돌아보기 위한 여러 가지 기념행사가 국내에서 기획되고 있지만 눈을 해외로 돌려보면 광복60주년과 국권상실 100주년을 바라보는 해외동포사회는 다소 차분한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 이외의 전 세계에 600만명으로 추산되는 해외동포사회의 기원은 1905년의 국권상실 무렵일 것이다. 1905년 국권상실의 시점을 전후하여 많은 이들이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하여 정착하기도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이 후 식민지 지배의 와중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중앙아시아, 사할린, 그리고 일본 등지로 이주하여 흩어져 사는 삶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원래 고향을 떠난 유대인들의 이산을 일컫는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지난 100년 동안 한민족의 흩어져 사는 삶은 한민족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로 부를 수 있다. 지금은 한국기업 지사, 한국인 유학생 그리고 한국에서 온 여행객을 전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가 세계화를 외치기 이전에 디아스포라의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살았던 미주지역의 한 작은 도시에서도 한국인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자의 3세, 한국전쟁이후 정착한 교민, 60년대 말과 70년대에 기술이민으로 정착한 이들, 외국가정에 입양된 후 장성한 한인들, 국제결혼으로 낯선 땅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룬 사람들, 타국에서 사업으로 자수성가하여 기반을 이룬 이들, 그리고 1.5세와 2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역사속으로 물러나는 1,2세대 미주지역은 그나마 나은 편일 것이다. 다른 지역에 이주한 동포들은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등 세계사의 거센 소용돌이속에서 매서운 시련을 겪고도 광복이후 한민족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게 된 경우도 있다. 이제 길게는 1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1세대, 2세대는 흩어져 살았던 삶의 기억을 안고 역사속으로 물러나는 시점에 있고 3세대, 4세대는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정체성과 소수민족출신의 이민자로서 적응해야 하는 현실적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세대가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세계화의 경쟁에서 그나마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한 우리가 한민족 디아스포라 100주년을 맞이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필자는 무엇보다도 해외동포사회의 흩어져 사는 삶의 기억들이 소리없이 사라지기 전에 한민족 역사의 소중한 기록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오사카와 연해주, 그리고 사할린이든 또는 비교적 최근에 이주한 독일과 아르헨티나이든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기록에 담자는 것이다. 비록 연로하긴 하지만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1세대, 2세대의 일기와 편지 그리고 비망록과 같은 자료와 흩어져 사는 삶의 생생한 체험을 담은 생애사(life history)와 구술사(oral history)를 채록하여 보존하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 사업을 전 세계에 있는 한민족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사업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정부와 기업 그리고 민간단체가 한민족 디아스포라 기록사업의 기금을 조성하여 현지 한민족 공동체의 3세대, 4세대의 청년들이 연로한 1세대, 2세대의 기억을 채록하고 풀어 쓰는 프로젝트를 실행할 것을 제안한다. 1세대 등의 삶 채록·보존해야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생성되는 기억과 기록의 외형적 산출물도 역사적 가치가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한민족 공동체의 새로운 세대가 앞서간 세대의 삶을 되새기고 소수민족으로서의 당당한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의 출처와 내용을 둘러싼 의혹과 공방으로 광복 60년, 국권상실 100년의 여름이 어수선하기만 한 요즈음, 어떤 디지털 카메라의 광고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주장하지만 필자는 역설적으로 ‘기억은 기록의 어머니이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지난 100년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기억이 더 이상 역사의 흔적으로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서 보존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5-08-02
- 사례관리기사 부천의 새로운 실험 - 보건·의료 원스톱서비스 ‘건강하게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복지사-수혜자 공감대 형성에서 출발 치료·후원자·취직 알선으로 자립 도와줘 가난에 절어 나라의 지원을 받는 사람에게 병이란 일반인의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다. 하루하루를 아픔으로 맞이하는 이들은 매순간 죽음과 대면하고 있다. 이들에겐 한두 가지의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도움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이 건강하게 홀로 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복지네트워크가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를 중심으로 한 부천시의 촘촘한 복지그물망에 많은 지자체들이 관심을 갖고 벤치마킹하고 있다. 종합적인 의료복지서비스가 절실한 이들이 건강하게 홀로 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사례관리’라고 부른다. 사례관리는 지역사회의 복지자원을 총동원해 수혜자에게 다방면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현대복지의 핵심이자 지향점이다. 부천시는 지난 2001년부터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시범사업으로 10개의 사례관리사업을 벌여왔다. 이 가운데 2개의 특징적인 사례관리를 취재했다. 그러나 수혜자(클라이언트·Client)를 만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부천종합사회복지관 김인숙 복지부장은 “복지사도 클라이언트와 라포(Rapport)를 형성하려면 최소 수개월이 걸린다”며 “낯선 사람과 불쑥 마주치면 기존의 라포가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라포’란 상담심리학 용어로 ‘타인과의 공감대’를 의미한다. # 소사구에 사는 서진석(가명·37)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기초생활수급자다. 서씨는 8년 전인 1997년 폐건물에서 떨어진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함몰될 정도로 뇌를 크게 다쳤다. 이 때문에 결혼한 후에도 정기적인 직장을 갖지 못해 막노동과 식당종업원 등 비정기적인 일자리를 전전했다. 서씨 대신 처 여순희(가명·35)씨가 공장에 다니면서 가정의 가계를 책임졌다. 여씨는 자활의지가 높았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심리가 불안정했다. 서씨 가족이 집중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지난 2002년. 서씨가 친구와 함께 절도죄를 저지르다 잡히면서부터다. 인천지방법원은 서씨에게 집행유예 1년과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내렸으나 서씨의 정신질환으로 집행이 어려웠다. 부천보호관찰소는 서씨를 부천종합사회복지관에 의뢰했다. 복지관측은 서씨 가족에 대한 장·단기 목표를 세웠다. 김인숙 복지부장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한 결과 서씨의 공황·폐쇄공포증 발병률을 낮추고 서씨 가족을 신용불량 상태에서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였다”며 “이를 위해 병원 방문횟수를 늘리고 후원자를 찾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소사자활후견기관과 범박동 사회복지전담요원, 세종병원, 세명실업, 한국자산관리공사, 부천시장애인복지관 등이 사례관리에 참여키로 했다. 복지관은 먼저 여씨를 소사자활후견기관에 취업시켜 경제적 안정을 꾀했다. 인터넷 산악동호회를 연계해 월 10만원이상의 후원금을 받도록 했다. 특히 매월 일정액을 빚 상환에만 쓰도록 했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빚 137만2966원을 갚아 신용불량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일단 경제적 자립의 토대는 놓인 셈이다. 다음은 서씨의 건강문제. 성가병원을 섭외해 서씨의 정신질환 진료 횟수를 늘렸다. 그러나 서씨의 거동이 어려워 별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두통 및 우울, 발부종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복지관측은 서씨의 정신질환 문제를 장기과제로 돌려 계속 지원키로 했다. 김인숙 복지부장은 “서씨가 많이 지쳐 있어 정신질환 치료를 받기 힘들었다”며 “건강이 회복돼 거동이 가능해지면 확보한 자원과 본격적으로 연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홍지민(가명·19)씨는 지난 2001년 이동목욕서비스와 방문물리치료를 신청하기 위해 부천장애인종합복지관을 직접 찾았다. 허리가 아파 휠체어에 의지하느라 목욕에 불편을 겪기 때문이었다. 장애인복지관측은 홍씨를 면접한 결과 목욕서비스와 물리치료 이상의 경제적·심리적·의료적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집중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호섭 복지사는 “홍씨의 척추가 지속적으로 아픈 원인이 정신과적 질환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복지관은 부천시정신보건센터에 홍씨를 맡겨 정신과 테스트를 받게 하고 김종호 신경정신과와 연계해 약물치료를 지속했다. 소사구보건소에서는 월 2회 홍씨를 방문해 소변줄을 교체하고 상세한 의료정보를 제공했다. 또한 정서적 안정을 위해 인터넷 성서모임 동호회를 소개하고 월 4회 방문컴퓨터 교육을 했다.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게 되면서 홍씨의 정서적인 면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웃는 날이 많아졌고 자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심곡본동 천주교회도 도움의 손길을 보탰다. 홍씨에게 말벗 자원봉사자를 보내고 척추수술비를 후원해줄 ‘빈첸시오회’를 찾아냈다. 빈첸시오회의 도움으로 홍씨는 척추고정핀 적출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허리의 통증은 많이 줄어들어 장시간 휠체어를 타도 별다른 문제가 없게 됐다. 이호섭 복지사는 “홍씨는 중복 장애로 정신적·신체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여러 기관의 서비스를 제때에 적절히 받을 수 있어 지속적으로 호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씨는 현재 국립재활원에 입소해 재활의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획특집2팀 2005-07-04
- 현대홈쇼핑 장애인 웨딩페스티벌 후원 현대홈쇼핑은 장애인 결혼 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장애인 웨딩 페스티벌''을 후원한다고 30일 밝혔다. 한국절단장애인협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7월 1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며, 개그맨 홍록기씨의 사회로 휠체어댄스, 패션쇼 등이 펼쳐진다. 패션쇼에는 장애인 등 30여명이 무대에 오르며, 시각장애인으로는 최초로 국회에 진출한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 부부, 장애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국가대표 역도선수 정금종씨 부부 등도 모델로 나설 예정이다. 2005-07-01
- 하반기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제정 등 문화-교육연계사업 활발 정부가 하반기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을 제정하는 등 문화예술 분야와 교육을 접목시키는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지난달말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법안 소위를 통과함에 따라 정기국회 통과를 거쳐 하반기까지 제정될 것이라고 21일 밝혔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제정으로 현재 전국 곳곳에서 진행중인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사업이 보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기반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부는 또 전국 각지 학교와 공연장, 예술단체 등을 연계한 체험형 문화예술교육사업을 올여름부터 본격 실시한다고 밝혔다. 체험형 문화예술교육사업은 그동안 ‘찾아가는 문화활동’ 등과 같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거나 입시과목에 밀려 형식적 수준에 그쳤던 학교의 예술 교육을 정부차원에서 좀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진행된다. 문화부는 특히 ‘공급’부문에 집중된 기존 지원정책을 ‘수요’ 중심으로 바꾸고 학교와 문예회관 등 사회 문화예술교육 자원간 연계를 강화하는 등의 방향으로 추진된다. 이를 통해 전국 각 지역, 특히 문화소외지역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다양하고 창의적인 문화예술 활동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앞서 문화부는 지난해 11월 예술국 안에 문화예술교육과를 신설한 데 이어 올해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위해 322억원의 예산을 편성한 바 있다. 문화-교육 연계사업은 크게 학교교육 지원사업과 사회교육 지원사업, 전문인력 양성으로 나뉘어 추진된다. 학교교육 지원사업은 교육인적자원부와 함께 추진하는 것으로 학교와 해당 지역의 공연장, 예술단체들이 정규수업이나 특별활동을 통해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 운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사회교육 지원사업은 농어촌 주민, 노인, 장애인, 탈성매매 여성, 국제결혼이주여성, 외국인근로자, 소년원 보호 청소년 등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 지원사업이다. 이밖에도 문화부는 △문예회관과 문화의집 문화예술프로그램 지원 △교사들을 위한 연수프로그램 개발·운영 △교사 연구모임 지원 △3200여 학교에 문화예술 전문강사 지원 △문화예술교육정책 및 관련사업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 및 심포지엄 개최 등 사업을 운영중이다. /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 2005-07-22
- 캐나다서 한국기업에 사기행각 극성 최근 캐나다에서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이 잇따라 발생,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코트라 토론토 무역관은 21일 여권위조·불법체류·거액탈취를 목적으로 한국기업에 접근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의심이 가는 경우 대사관이나 코트라 무역관에 문의해 달라고 밝혔다. 다음은 유형별 사기사례. #1 여권위조 목적 사기 아프리카의 한 회사와 대규모 계약 건을 추진 중인 한국의 A사는 얼마 전 캐나다 CFT라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자사 해외영업부 담당자에게 신분증 사본을 보내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A사 담당자의 개인계좌를 개설해 아프리카 바이어가 송금한 물품대금을 예치한 후 다시 한국내 A사 담당자 외환계좌로 송금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이메일의 주요 내용이었다. 토론토 무역관은 사실 확인을 위해 A사가 제공한 CFT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시도했다. 다른 업체의 이름을 대며 전화를 받는 교환원에게 CFT의 전화번호가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맞는 번호라고 말을 바꾸었다. 토론토 무역관은 즉시 미국의 Citi Group측에 사실 확인 결과 CFT라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번 케이스는 아프리카에 근거를 둔 여권위조단이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일당과 모의하여 진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불법체류 목적 사기 몇 달 전 캐나다를 사업상 방문 중이라고 밝힌 파키스탄인 사업가 두 명이 토론토 무역관을 방문, 한국과 중동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은 한국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사실을 익히 들어왔다며 중고부품을 구입해 중동 지역으로 수출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 사업을 위해 한국에 구매사무소를 설립해야 하는데 한국 입국비자 발급이 거절당했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한국에 회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증하고 입국비자를 발급해주도록 추천서를 써 달라는 것이었다. 무역관에서는 이들이 비자를 발급받은 후 한국에 서 불법 체류할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3 거액 탈취 목적 사기 얼마 전 무역관의 자동응답기에 자신을 북한의 김정일과 결혼한 부인으로 사칭한 여성이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이 여성은 자신이 얼마 전 김정일과 비밀리에 결혼한 부인으로 현재 분쟁에 휘말려 토론토에 은신해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변호사 선임비로 거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 여성은 무역관 측에 이 메시지가 영사관을 통해 북한의 김정일에게 전달되어야 함을 반복 주장하며 정해진 계좌로 돈을 신속히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자신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까지 남기는 등 과감한 태도를 보였다. 이 여성이 남긴 번호는 이 여성과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의 집 전화번호가 맞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북한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일이라는 이름을 도용한 이번 사례는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신종 사기수법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2005-07-20
- ‘럭셔리 미시’ 김남주, 대우건설 공로패 사진명 : 김남주 대우건설 지난 5월 김승우와 결혼이후 ‘럭셔리 미시’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김남주가 대우건설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지난 2002년부터 대우건설과 푸르지오의 전속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김남주는 세련되고 고급스런 이미지로 대우건설과 푸르지오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큰 기여를 했다”며 “김남주씨 덕분인지 2003년 첫선을 보인 푸르지오는 빠른 성장세를 보여, 2004년부터 아파트 브랜드 및 광고 인지도·선호도 조사(AC닐슨 조사)에서 줄곳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공로패를 전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푸르지오는 ‘그녀의 프리미엄’이라는 슬로건 아래 김남주를 닮고 싶은 선망의 여인으로 내세워 좋은 효과를 거둬왔다. 지난 6월부터는 김남주, 김승우의 결혼에 맞춰 신혼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멋진 인테리어 등에 반해 샘을 낸다는 설정의 광고가 방송되고 있다. 2005-07-20
- 민방위교육 이대로 좋은가 지난 8일 서울시 한 구청 강당에서 오후 2시부터 민방위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200여명의 참가자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강의실이 꽉 차고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복도로 나와 담배를 피워댔다. 교육이 시작되자 강사가 나와 에이즈와 성병 공포에 대해 한참을 설명한 뒤 콘돔 사용법에 대해 강의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꾸벅꾸벅 졸고 일부는 강사의 코믹한 강의를 키득거리며 들었다. 1시간30분 강의가 끝나자 구청 공무원은 “건물 앞마당에 헌혈차가 왔으니 헌혈을 한 사람에 한해 참가 확인서를 나눠주겠다”며 “헌혈을 하지 않을 경우 나머지 2시간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헌혈을 유도했다. 일부 참가자는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헌혈차로 향했다. 민방위 교육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모습은 이제 일반적인 모습이 됐다. 1975년 민방위기본법이 제정돼 민방위 교육과 훈련이 시작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부실한 내용과 형식적 운영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지자체 홍보장으로 전락 = 민방위 교육장이 자치단체장의 표몰이장으로 변하기도 한다. 광주광역시 한 구청의 경우 구청장이 모두 25차례에 걸쳐 민방위 대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업적을 홍보했다. 이 구청장은 “장학재단 설립, 관광지 개발, 노인복지센터 건립 등은 자신이 한 일이다”고 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또 강사의 음담패설과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경남의 한 지자체 민방위 교육에서 강사가 ‘생활과 안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호주제가 폐지되면 근친결혼이 이뤄지는 등 문제가 많다”며 “여성이 지켜야할 도리인 삼종지도가 무너지면 여성이 접대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해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강원도에서는 강사로 초빙된 인사가 정부정책을 비판하자 교육생들이 이를 청와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서 해촉된 경우도 있었다. 참석 확인도 형식적이다. 보통 아침 7시30분쯤 소집되는데 부인이나 지인이 대신 와서 참석 확인서를 받아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실정이어서 민방위 교육이 시간·예산 낭비라는 질타를 받고 있고 소방교육 등 본래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개선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민방위 교육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꿔 성과를 내고 있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경남 거제군은 전국 최초로 민방위 지원대 발대식을 가졌다. 민방위 지원대는 그동안 자율동원에 의존하던 민방위대 동원체제에서 탈피, 7∼9월 풍수해 대책기간과 1∼3월 산불예방기간에 상시 동원체제로 가동돼 재난복구 및 구호활동을 하게 된다. 또 강원도 속초시는 가스사고 발생시 대처요령을 비롯해 응급환자 발생시 행동요령, 주민신고 요령, 경보 식별 행동요령 등을 코믹한 연극으로 구성해 민방위 대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다. 제주시는 재난 전담 부서인 ‘재난안전관리과’를 신설하고 이론위주의 교육에서 실기·실습 등 실용교육 위주로 교육 과정을 변경했다. 또 생업으로 바쁜 대원을 위해 야간교육과 일요교육을 실시하고 민방위 상설교실을 운영해 본인이 희망하는 날짜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행정자치부는 이런 제주시를 모범 지자체로 선정했다. 서울 강남·송파·강서구 등에서는 인터넷교육을 도입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 구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이버민방위교육은 재난대피 및 대처 요령을 비롯, 시사상식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교육 후에는 간단한 시험을 통해 이수를 확인한다. 인터넷교육을 가장 먼저 도입한 강남구의 경우 올해 상반기 64.2%의 참석률을 기록했다.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르면 소집교육을 받으면 된다. 소방방재청 민방위계획과 김현수씨는 “최근 들어 민방위 교육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라며 “국제테러가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한 훈련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석용 오승완 기자 syjung@naeil.com 2005-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