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46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화목한 가정이 제일 큰 희망이 되었어요” 울산 천영길씨 가족 “현대자동차, 엄청나게 발전했죠. 처음에 회사가 세계자동차 10위 안에 들어야 한다며 ‘GT-10''을 이야기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죠. 물론 나도 그렇구요. 전에는 국내에서만 잘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다들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현대자동차 차체1부에 근무하는 천영길(40) 씨는 회사의 발전상을 실감한다. 비록 지난 98년에는 IMF에 이은 구조조정으로 큰 홍역을 앓기도 했지만 그룹 경영진이 바뀌면서 큰 변화가 계속 되었다. 천 씨도 큰 변화를 겪었다. 지난 1990년에 입사해서 차체3부에서 근무하던 중 98년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0년에 다시 복직하여 계속 현대자동차를 다니고 있다. 한번 직장을 잃어본 터라 지금 다니는 이 일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고 있다. 더구나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가장의 몫을 다하느라 직장의 소중함을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된다. 확 달라진 회사에 깜짝 놀라 다시 회사에 출근해 보니 회사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회사가 ''GT-10''을 부르짖었을 때, 천 씨도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년. 현대자동차는 세계 7위의 자동차유수업체로 발전하였고, 이젠 ‘GT-5'', 세계5위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작업자들이 전과는 달리 품질에 아주 신경을 쓰고 있더라고요. 회사 시스템도 그렇고”라며 천 씨는 현장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고 지적한다. 중국과 인도, 터키와 미국 등 해외공장도 생겼고 해외 판매도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현대자동차의 성장이 눈부시다. 창사 이래 최대 매출과 흑자라는 기록은 7년 째 매년 갱신되고 품질 향상과 아울러 브랜드 이미지도 올라가 있다. 이제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현대자동차가 더욱 발전하여 평생직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여기까지 오는 그의 지난날은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소농의 아들에서 노동자로 변신 경남 양산군 하북면 통도사 근처에서 3남3녀의 막내로 태어난 천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농사일과 아버지 수발을 혼자서 해냈다. 2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2년간 농사를 짓다가 친구 이야기 한마디로 현대자동차에 입사원서를 내는 바람에 농군에서 노동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일단 다녀보고 마음에 들면 다니고, 아니면 그만 둘 생각”이었던 천 씨는 입사하고 나서 당시 한창 활발하던 노동조합 운동에 곧바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열심이던 노동조합활동이었지만 결혼을 한 후에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변했다고 느꼈다. 살 집도 있어야 하고 태어난 아이들도 잘 키워야 했다. 당장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아내 문난초(38) 씨와 함께 두 사람은 허리띠를 졸라 맸다. 천 씨는 아내의 알뜰함을 바탕으로 재테크에 눈을 돌렸다. 퇴직금 중도청산한 돈에다 은행에서 대출한 돈을 합해서 주식에 투자를 한 결과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았다. 별 탈 없이 회사 다니고 아이들 잘 크는 것이 소망 천 씨는 “(현대자동차가) 평생직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 갖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라며 “회사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은 종업원 누구나 다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젊은 날의 열정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불혹으로 접어든 그에게는 알뜰한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수연(5)과 아들 창희(4)의 존재가 제일 큰 희망이고 책임감이다. 세간에서는 현대자동차 노동자가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비난을 퍼붓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내 문 씨도 “그 연봉은 신랑이 늘 힘든 주야 맞교대근무와 잔업을 하고 휴일 특근까지 하면서 번 것인데 무조건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하면 참 억울해요”라며 장시간 근로라는 어려움이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지금은 그에게 제일 중요한 가족의 행복이 회사 발전과 궤를 같이 하지만 늘어나는 해외공장이 꼭 반갑지만은 않다. 아직도 정리해고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는 천 씨에게는 회사가 다짐하는 고용안정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 문 씨는 회사가 잘 되고 있어 고용불안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마다 되풀이하는 파업을 이제는 자제했으면 좋겠다”며 “갈등이 꼭 투쟁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아이들이 보면 좋은 영향을 받을 것 같지 않아서”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이제 이 부부의 희망은 하나다. 가족 간에, 동료 간에, 노사 간에, 나아가 사회 곳곳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더 나은 사회,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10년 쯤 후에 못 가 본 여행을 애들 데리고 같이 가는게 이들의 소박한 꿈이다. 울산 송진휴 기자 jhso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10
- “화목한 가정이 제일 큰 희망이 되었어요” “현대자동차, 엄청나게 발전했죠. 처음에 회사가 세계자동차 10위 안에 들어야 한다며 ‘GT-10'을 이야기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죠. 물론 나도 그렇구요. 전에는 국내에서만 잘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다들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현대자동차 차체1부에 근무하는 천영길(40) 씨는 회사의 발전상을 실감한다. 비록 지난 98년에는 IMF에 이은 구조조정으로 큰 홍역을 앓기도 했지만 그룹 경영진이 바뀌면서 큰 변화가 계속 되었다. 천 씨도 큰 변화를 겪었다. 지난 1990년에 입사해서 차체3부에서 근무하던 중 98년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0년에 다시 복직하여 계속 현대자동차를 다니고 있다.한번 직장을 잃어본 터라 지금 다니는 이 일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고 있다. 더구나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가장의 몫을 다하느라 직장의 소중함을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된다.확 달라진 회사에 깜짝 놀라다시 회사에 출근해 보니 회사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회사가 'GT-10'을 부르짖었을 때, 천 씨도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년.현대자동차는 세계 7위의 자동차유수업체로 발전하였고, 이젠 ‘GT-5', 세계5위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작업자들이 전과는 달리 품질에 아주 신경을 쓰고 있더라고요. 회사 시스템도 그렇고”라며 천 씨는 현장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고 지적한다.중국과 인도, 터키와 미국 등 해외공장도 생겼고 해외 판매도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현대자동차의 성장이 눈부시다. 창사 이래 최대 매출과 흑자라는 기록은 7년 째 매년 갱신되고 품질 향상과 아울러 브랜드 이미지도 올라가 있다. 이제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현대자동차가 더욱 발전하여 평생직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여기까지 오는 그의 지난날은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소농의 아들에서 노동자로 변신경남 양산군 하북면 통도사 근처에서 3남3녀의 막내로 태어난 천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농사일과 아버지 수발을 혼자서 해냈다. 2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2년간 농사를 짓다가 친구 이야기 한마디로 현대자동차에 입사원서를 내는 바람에 농군에서 노동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일단 다녀보고 마음에 들면 다니고, 아니면 그만 둘 생각”이었던 천 씨는 입사하고 나서 당시 한창 활발하던 노동조합 운동에 곧바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열심이던 노동조합활동이었지만 결혼을 한 후에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변했다고 느꼈다.살 집도 있어야 하고 태어난 아이들도 잘 키워야 했다. 당장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아내 문난초(38) 씨와 함께 두 사람은 허리띠를 졸라 맸다. 천 씨는 아내의 알뜰함을 바탕으로 재테크에 눈을 돌렸다. 퇴직금 중도청산한 돈에다 은행에서 대출한 돈을 합해서 주식에 투자를 한 결과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았다. 별 탈 없이 회사 다니고 아이들 잘 크는 것이 소망천 씨는 “(현대자동차가) 평생직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 갖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라며 “회사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은 종업원 누구나 다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젊은 날의 열정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불혹으로 접어든 그에게는 알뜰한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수연(5)과 아들 창희(4)의 존재가 제일 큰 희망이고 책임감이다.세간에서는 현대자동차 노동자가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비난을 퍼붓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내 문 씨도 “그 연봉은 신랑이 늘 힘든 주야 맞교대근무와 잔업을 하고 휴일 특근까지 하면서 번 것인데 무조건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하면 참 억울해요”라며 장시간 근로라는 어려움이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지금은 그에게 제일 중요한 가족의 행복이 회사 발전과 궤를 같이 하지만 늘어나는 해외공장이 꼭 반갑지만은 않다. 아직도 정리해고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는 천 씨에게는 회사가 다짐하는 고용안정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 문 씨는 회사가 잘 되고 있어 고용불안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마다 되풀이하는 파업을 이제는 자제했으면 좋겠다”며 “갈등이 꼭 투쟁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아이들이 보면 좋은 영향을 받을 것 같지 않아서”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한다.이제 이 부부의 희망은 하나다. 가족 간에, 동료 간에, 노사 간에, 나아가 사회 곳곳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더 나은 사회,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10년 쯤 후에 못 가 본 여행을 애들 데리고 같이 가는게 이들의 소박한 꿈이다. 울산 송진휴 기자 jhso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10
- “화목한 가정이 제일 큰 희망이 되었어요” “현대자동차, 엄청나게 발전했죠. 처음에 회사가 세계자동차 10위 안에 들어야 한다며 ‘GT-10'을 이야기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죠. 물론 나도 그렇구요. 전에는 국내에서만 잘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다들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현대자동차 차체1부에 근무하는 천영길(40) 씨는 회사의 발전상을 실감한다. 비록 지난 98년에는 IMF에 이은 구조조정으로 큰 홍역을 앓기도 했지만 그룹 경영진이 바뀌면서 큰 변화가 계속 되었다. 천 씨도 큰 변화를 겪었다. 지난 1990년에 입사해서 차체3부에서 근무하던 중 98년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0년에 다시 복직하여 계속 현대자동차를 다니고 있다.한번 직장을 잃어본 터라 지금 다니는 이 일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고 있다. 더구나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가장의 몫을 다하느라 직장의 소중함을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된다.확 달라진 회사에 깜짝 놀라다시 회사에 출근해 보니 회사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회사가 'GT-10'을 부르짖었을 때, 천 씨도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년.현대자동차는 세계 7위의 자동차유수업체로 발전하였고, 이젠 ‘GT-5', 세계5위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작업자들이 전과는 달리 품질에 아주 신경을 쓰고 있더라고요. 회사 시스템도 그렇고”라며 천 씨는 현장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고 지적한다.중국과 인도, 터키와 미국 등 해외공장도 생겼고 해외 판매도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현대자동차의 성장이 눈부시다. 창사 이래 최대 매출과 흑자라는 기록은 7년 째 매년 갱신되고 품질 향상과 아울러 브랜드 이미지도 올라가 있다. 이제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현대자동차가 더욱 발전하여 평생직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여기까지 오는 그의 지난날은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소농의 아들에서 노동자로 변신경남 양산군 하북면 통도사 근처에서 3남3녀의 막내로 태어난 천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농사일과 아버지 수발을 혼자서 해냈다. 2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2년간 농사를 짓다가 친구 이야기 한마디로 현대자동차에 입사원서를 내는 바람에 농군에서 노동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일단 다녀보고 마음에 들면 다니고, 아니면 그만 둘 생각”이었던 천 씨는 입사하고 나서 당시 한창 활발하던 노동조합 운동에 곧바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열심이던 노동조합활동이었지만 결혼을 한 후에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변했다고 느꼈다.살 집도 있어야 하고 태어난 아이들도 잘 키워야 했다. 당장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아내 문난초(38) 씨와 함께 두 사람은 허리띠를 졸라 맸다. 천 씨는 아내의 알뜰함을 바탕으로 재테크에 눈을 돌렸다. 퇴직금 중도청산한 돈에다 은행에서 대출한 돈을 합해서 주식에 투자를 한 결과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았다. 별 탈 없이 회사 다니고 아이들 잘 크는 것이 소망천 씨는 “(현대자동차가) 평생직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 갖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라며 “회사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은 종업원 누구나 다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젊은 날의 열정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불혹으로 접어든 그에게는 알뜰한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수연(5)과 아들 창희(4)의 존재가 제일 큰 희망이고 책임감이다.세간에서는 현대자동차 노동자가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비난을 퍼붓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내 문 씨도 “그 연봉은 신랑이 늘 힘든 주야 맞교대근무와 잔업을 하고 휴일 특근까지 하면서 번 것인데 무조건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하면 참 억울해요”라며 장시간 근로라는 어려움이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지금은 그에게 제일 중요한 가족의 행복이 회사 발전과 궤를 같이 하지만 늘어나는 해외공장이 꼭 반갑지만은 않다. 아직도 정리해고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는 천 씨에게는 회사가 다짐하는 고용안정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 문 씨는 회사가 잘 되고 있어 고용불안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마다 되풀이하는 파업을 이제는 자제했으면 좋겠다”며 “갈등이 꼭 투쟁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아이들이 보면 좋은 영향을 받을 것 같지 않아서”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한다.이제 이 부부의 희망은 하나다. 가족 간에, 동료 간에, 노사 간에, 나아가 사회 곳곳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더 나은 사회,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10년 쯤 후에 못 가 본 여행을 애들 데리고 같이 가는게 이들의 소박한 꿈이다. 울산 송진휴 기자 jhso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10
- CJ홈쇼핑 ‘디어 포 웨딩’ 오픈 2주년 기념행사 CJ홈쇼핑이 운영하는 웨딩컨설팅숍 ‘디어 포 웨딩’이 오픈 2주년을 맞아 이달 말까지 경품 행사를 연다. 상담을 받은 고객 37쌍에게 추첨을 통해 다이아몬드반지, 전통자개 보석함, 신부 스킨케어 등을 증정한다. CJ홈쇼핑은 또 디어 포 웨딩이 호텔, 웨딩홀 등 전국 150개 예식장에 대한 예식장 예약과 원하는 브랜드를 선정하면 결혼 비용이 산출되는 셀프 견적 등의 서비스를 새로 선보인다. CJ홈쇼핑 관계자는 “디어포 웨딩은 서울 청담동에 240평 규모의 매장으로 2004년 2월 문을 연이래 정찰제 도입 등 합리적인 결혼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모두 2000쌍이 이용했다”고 말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09
- 용인 여성회관 예절교실 인기 ‘최고’ 경기도 용인 여성회관 예절교실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용인여성회관이 겨울방학 특별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중인 예절교육이 접수당일 마감되는 등 높은 참여율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일부터 6일까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예절교실에는 14명의 신청자 전원이 참석해 우리나라 전통 복장인 한복을 입어보고, 다례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필리핀 출신 코로냐미르피스(24)씨는 “한국에 와서 여러 번 한복을 입어봤지만 제대로 한복 입는 법을 배우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며 “설날에는 예쁘게 한복을 입고 시부모님한테 세배를 할 것”이라고 즐거워했다 /선상원 기자 wo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09
- (수요일 기사) “화목한 가정이 제일 큰 희망이더라” 소농의 아들에서 노동자로 변신 경남 양산군 하북면 통도사 근처에서 태어난 천영길(40)씨는 3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가진 땅이 없어 문중 논 5마지기를 겨우 부쳤지만 탈곡기가 있어 탈곡한 대가로 받는 쌀이 있어 굶고 살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천 씨는 농사일과 아버지 수발을 혼자서 다 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2년간 농사를 짓다가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노동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가 1990년 10월. 천 씨는 “처음엔 일단 다녀보고 마음에 들면 계속다니고 아니면 그만 둘 생각이었다”며 차체 3부에 배치됐다. 막상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보니 노동조합에서 집회와 시위가 한창이었고 피 끓는 젊은이였던 천 씨는 곧바로 노동조합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었다. 다시 복직하고 나니 회사 발전이 눈에 들어왔다 현장에서 작은 불만들이 쌓여서 파업 등 큰 싸움이 매년 벌어졌다. 천 씨는 이러한 과정에 죽어라 참여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에는 결혼 때문에 한번 빼먹은 것 말고는 꼬박꼬박 참석할 정도였다. 이렇게 열심히 노동조합활동을 하던 중 1998년 IMF라는 태풍은 천 씨를 정리해고의 아픔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당시 한창 현장 활동에 열심이었던 터라 복직에 대한 신념이 있었고, 미혼이라 생계걱정이 크게 없어 복직활동에 더 열심일 수 있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러다가 2000년 3월 31일 천 씨는 소망하던 복직이 되어 승용1공장으로 다시 출근하게 되었다. 제일 잘 한 선택, 결혼 2001년 7월 만난 부인 문난초(38) 씨는 “처음 봤을 때 ‘저 남자구나’라는 느낌이 왔어요”라며 천씨에게서 남자다움을 느꼈단다. 그리고 만난 지 석 달 뒤 결혼으로 이어졌다. 문 씨는 “신랑이 현대차 다닌다고 말은 들었지만 막상 노조활동 하는 것을 보고서는 많이 놀랐다”며 특히 울산의 문화가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녀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나 유대감이 아주 강해요”라며 울산 문화가 생경했다고 말한다. 결혼을 하고 나니 둘을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살 집도 있어야 하고 태어난 아이들도 잘 키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당장 집을 살 준비를 해야 했다. “아내가 정말 알뜰합니다”라며 “그 덕으로 아파트 분양 받을 준비는 어느 정도 했지요”라고 말하는 천 씨는 평범한 노동자 가장의 모습 그대로다. 별 탈 없이 회사 다니고 아이들 잘 크는 것이 소망 천 씨는 “(현대자동차가) 평생직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 갖고 있다”며 “회사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날의 열정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불혹으로 접어든 그에게는 알뜰한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수연(5)과 아들 창희(4)의 존재가 제일 큰 희망이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가거나 여전히 자유롭고 싶지만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잘 한 선택이 아내와의 결혼과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습이다. 아내 문씨는 남편과 아이들 건강이 제일 큰 관심거리다. “주야교대근무 하면 아무래도 밤낮으로 생활이 자꾸 바뀌니까 남편이 많이 힘들어 해요”라며 남편 걱정을 하다가도 “피곤할 텐데도 아이들 챙기고 같이 놀아주는 것 보면 참 고맙다”고 칭찬한다. 아내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해마다 되풀이하는 파업을 이제는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애초 의도는 순수했다는 건 알지만 지금은 좀 퇴색된 것 같아요”라고 그녀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10년 후에는 가족 여행 떠나고파 회사가 잘 되고 있어 고용불안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문 씨는 현대자동차 사원들의 연봉이 높다고 알려진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한 마디로 그 연봉은 장시간 근로의 대가로, 주야 맞교대근무를 하면서 번 것이기에 단순히 액수가 많다고 비아냥거리는 시선을 대할 때는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이제 이들 부부의 희망은 하나다. 가족과 동료, 그리고 노사 간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더 나은 사회,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게는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조그만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길 바라고, 당장은 큰 딸 수연이가 밥을 잘 먹어서 튼튼하게 자라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고 나면 10년 후에는 애들 데리고 못 가 본 여행을 가보고 싶은 것이 천씨 가족의 조그만 새해 소망이다. 울산 송진휴 기자 jhso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10
- 좋은 관상으로 고치려면 신년이 되면서 좋은 관상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얼굴부위를 성형하려는데 관심이 높다. 이들 ‘관상족’들은 좋은 관상으로 교정해 자신의 운명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것. 주로 창업이나 결혼, 졸업 등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미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일반 성형족과는 달리 관상족들은 보형물을 채워 넣어 볼륨감 있고 풍성한 느낌의 시술을 받는 편이다. 주로 부와 명예 등의 사회적 성공이나 애정운과 관련되어 있는 이마와 볼, 입술, 귓불 순으로 많이 시술되고 있다. 먼저 이마는 관상학적으로 부와 명예 등 전체적인 운을 관장하는 부위. 입신양명과 관계있는 부위이기 때문에 관상족들이 가장 많이 선호한다. 관상학적으로 좋은 이마란 넓은 듯하면서 중앙부분이 두툼하니 볼륨감 있는 이마. 반면 지나치게 좁거나 움푹 들어간 이마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어려워 직장을 자주 옮기게 된다고 한다. 볼은 사회적 위치를 상징한다. 광대뼈가 적당히 발달하면 추진력이 있어 사업을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입술은 모양새에 따라 배우자 운을 담은 부위다. 위·아래가 도톰하면서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 것이 좋은 입술. 주로 연인 혹은 부부간의 갈등으로 고민하거나 새로운 이성의 만남을 원하는 사람들이 시술받는다. 귀는 재운과 무병장수를 나타낸다. 특히 두툼한 귓불은 재운이 뒤따라 금전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일이 적다고 한다. 따라서 돈 문제로 고민하거나 몸이 허약 해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귀 성형에 관심을 가진다. 도움말 유상욱 그랜드성형외과원장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06
- 황우석 사단 사칭 ‘카사노바’ 구속 국내외 명문 의대 출신의 의사로 신분을 속이고 미혼 여성에게 접근, 결혼을 미끼로 성관계를 갖고 돈을 뜯어낸 혐의(사기 등)로 30대 남성이 구속됐다. 서울 성동경찰서가 5일 구속한 박 모(34)씨는 지난해 4월 인터넷채팅사이트에서 알게 된 ㄹ(여)씨에게 “명문대병원 신경외과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내년에 미국으로 유학 갈 예정이니 결혼해서 함께 가자”고 유혹해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박씨는 ㄹ씨와 ㄹ씨의 모친으로부터 결혼비용 등의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260여만원을 받아 챙겼고 지난해 8월에는 서울 모처에서 돈을 주고 가짜 하객을 동원해 결혼식까지 그럴 듯하게 올렸다. 그러나 박씨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ㄹ씨가 해당 대학병원에 근무 여부를 조회하면서 정체가 발각되자 집을 나와 또 다른 범행 상대를 물색했다. 이후 박씨는 10월부터 ㄱ(여)씨, 11월부터 ㅈ(여)씨 등 다른 여성들을 만나 비슷한 수법으로 결혼을 빙자해 440여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씨는 특히 ㅈ씨를 만나 “하버드 의대를 나와서 지금은 황우석 사단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속인 뒤 수시로 ㅈ씨의 집에 드나들며 명품 가방과 벨트, 액세서리 등 700여만원 어치의 금품을 턴 혐의(절도)도 추가로 적발됐다. 조사결과 박씨는 고졸 출신의 무직자이지만 명문대 총장의 직인을 위조해 가짜 졸업증명서와 성적표, 장학금 수령영수증 등을 만들어 갖고 다니며 자신의 신분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박씨의 수첩에 여성 40여명의 이름이 적힌 사실로 미뤄 피해자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들 대다수가 고소를 꺼리고 있어 수사 확대는 어려울 전망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06
- 용인 여성회관 예절교실 인기 ‘최고’ 우리의 전통문화인 생활예절을 몸소 체험하는 용인 여성회관 예절교실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용인 여성회관이 겨울방학 특별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중인 예절교육이 접수당일 마감되는 등 높은 참여율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일부터 6일까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예절교실에는 14명의 신청자 전원이 참석해 우리나라 전통 복장인 한복을 입어보고, 다례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필리핀 출신 코로냐미르피스(24)씨는 “한국에 와서 여러 번 한복을 입어봤지만 제대로 한복 입는 법을 배우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며 “설날에는 예쁘게 한복을 입고 시부모님한테 세배를 할 것”이라고 즐거워했다 여성회관 관계자는 “이번 예절교실이 외국인은 물론 청소년에게 우리 고유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정성함양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앞으로 여건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청소년은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예절교실을 지속적으로 개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의:031-324-8982 선상원 기자 wo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09
- “가정 화목하면 사회도 밝아지겠죠” 장애 가진 아들이 밝게 살아가고 사회 인식도 달라졌으면 “아, 아, 청계천을 찾은 시민여러분께 알립니다. 하천 수위가 올라가고 있으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청계천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청계천을 빠져나가며 주변이 아수라장이 됐다. 지난해 10월 안내방송 시험 과정에서 연습방송이 실제 나가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였다. 서울시설관리공단 청계천관리센터 이재성(37)씨는 CCTV가 전송해온 화면으로 24시간 청계천을 점검하고 긴급 상황시 대피 방송을 한다. 이씨의 하루는 청계천에서 시작해 청계천에서 끝난다. 2006년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 인근 청계천 광장에는 자정 무렵 50만명이 운집했다. 이씨는 폭죽과 함성, 발디딜 틈 없이 몰려든 인파을 바라보며 2006년을 맞았다. 이씨가 청계천에서 맞은 2006년은 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24시간 청계천 CCTV를 보고 있으면 하천과 함께 저도 흘러가는 느낌이 듭니다. 2006년은 청계천처럼 국민 모두가 흘러가듯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을 맞은 이씨 가족에게는 남다른 소망이 있다.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아들 규호(9)가 올해는 혹시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이씨는 26살에 결혼했다. 젊어서 얻은 아이 때문에 주변의 부러움도 샀다. 그러나 둘째 규호가 3살 되던 해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한 행동에 당황했다. 청천벽력과 같이 날아온 진단은 정신지체 장애. 이씨는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부인 박근영씨가 규호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학교 앞에서 하루종일 아들을 기다린 적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이씨는 비번일에 맞춰 규호와 함께 학교에 간다. 규호에게 아버지의 역할은 다른 아버지와는 다르다. 부지런히 아버지들의 모임에도 참석하고, 갖가지 교육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유치원은 장애아를 위한 특수 기관에 보냈지만 초등학교는 일반 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이씨는 “부모의 욕심이었을까요. 혹시나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실제 나아진 아이가 있다는 말에 일반학교를 보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나 이씨는 규호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한달에 5~6일은 24시간 근무해야 한다. 청계천은 주말이나 늦은 오후에 사람들이 몰린다. 주말에는 평균 29만명이 찾는 청계천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잠시도 안전 사고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이씨 부부는 한국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인식을 전환하고 장애인 기반시설이 확충되는 2006년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씨와 부인 박근영씨 그리고 큰딸 서림이와 둘째 규호. 이들 가족은 2006년이 좀더 밝아지는 해가 되길 바란다. 이씨는 “부모가 밝아야 아이들도 밝아진다고 합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사회도 밝아지지 않겠습니까. 24시간 근무도, 아들 녀석 장애도, 밝음을 뺏아갈 수는 없습니다. 새해에는 모두 밝게 사시길 기원합니다”라며 새해 인사를 전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