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46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결혼이민자 한국이름 지어줍니다” 농촌지역의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사회에 빨리 정착할 수 있게 한글이름을 지어주는 사업이 계속 진행돼 눈길을 끌고 있다. 농협중앙회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지난 2007년 10월부터 결혼이민자 중 귀화 농업인을 대상으로 ‘농촌지역 다문화가정 성·본 창설 및 개명허가신청’ 무료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개명 신청대상은 국제결혼 후 국내에서 2년 이상 거주하고 출입국관리소에 귀화 신청을 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농업인이다. 이들은 관련 서류를 갖춰 거주지 지역 농협 또는 농협 시군지부에 법률구조를 신청하면 된다.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법원을 거쳐 개명이 결정되면 신청자가 구청 또는 면사무소에 호적 정정을 신청하고 3~4일후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 개명 비용은 전액 무료다. 이 사업은 농협의 ‘농업인 무료 법률구조사업’ 중 하나로 실시되는데 관련 비용은 지난 1996년부터 농협이 법률구조공단에 기부해 적립한 ‘농업인 무료법률구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필리핀 출신으로 1999년 전남 곡성에 시집와 사는 ‘아우라 아우리 아렐 아바체’씨는 2007년 10월 농협 곡성군지부를 통해 ‘이미선’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개명했다. 유영신 농협중앙회 준법감시실 과장은 “그동안 한 해 20~30건 정도 신청자가 있었는데 올해부터 집중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3-27
- 화병, 어떤 사람에게 잘 생기나? 효당한의원 장상원 원장現)부산시 한의사회 금정구회장화병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질환으로 특히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고부간의 갈등, 자녀 교육문제 등의 장기간 스트레스로 인해 화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갱년기 질환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화병은 중년 이후의 여성들에게 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하지만 사회문화의 변화로 요즘에는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과로에 지친 남성의 화병 발생도 증가하고 있으며,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소년에게서도 화병의 발생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화병은 스트레스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스트레스성 질환은 갑작스런 스트레스에의 노출로 인해 발생되는 반면, 화병은 특정한 스트레스에 6개월 이상 노출되고 그것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경우 발생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화병의 진단은 가슴답답, 무엇인가 치밀어 오르는 증상, 몸이나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 그리고 급작스러운 화의 폭발, 혹은 분노 등의 특징적인 4가지 증상 중 2가지 이상의 증상이 현저하게 느껴질 때를 말합니다. 화병은 만성질환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동일한 스트레스를 장기간 받게 되면 이로 인해 불완전한 억제가 발생되어 신체증상과 정신 및 행동에 이상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화병으로 인한 신체 증상은 가슴이나 머리 쪽으로 열감이 있게 되고, 한숨이 자주 나오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무력감, 어지럼증, 손발이 저리거나 땀이 나고 예민해져 짜증을 잘 내게 됩니다.체질의학적으로 화병은 성격이 급한 소양인과 심장의 기운이 약하고 내면적인 성향이 강한 소음인에게서 주로 많습니다. 소음인은 마음속에 묻어두는 경향이 있어 오랫동안의 스트레스에 노출되게 되면 심장의 기운이 더욱 약해져서 심장의 두근거림, 자주 놀라고 피곤을 쉽게 느끼게 됩니다. 소양인은 위와 심장에 열이 많아 가장 스트레스에 가장 취약한 체질입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개의 경우 참지 않고 불만을 곧바로 표현하거나 해결하고자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힘들 경우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 쪽으로 열감을 느끼게 되며 두통이 자주 발생하고 어깨와 뒷목이 묵직해 지는 증상을 보입니다. 화병의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로 인해 무너진 기의 흐름을 올바르게 하여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이 안정되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인 치료 방법입니다. 상체열을 하강시키고, 하체는 따뜻하게 하는 한의학의 치료법은 외부적인 증상 치료와 더불어 몸의 균형과 기운의 흐름을 바르게 하여 건강한 삶을 찾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09-03-11
- 불황일수록 건강 더 챙긴다 대형병원 건강검진 일주일 전 예약해야 소득 상관없이 의료보건비 지출도 꾸준 #신 모(여 35)씨는 얼마 전 어머니의 건강검진 날짜에 맞춰 휴가를 냈다. 60대인 어머니가 검진 받는 것을 보조하기 위해서였다. 100만원 정도의 검진비용이 들었지만 큰 병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꺼이 접수했다. 신씨는 “친구 부모님이 검진을 받고 암을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을 보고 필요성을 느꼈다”며 “연세가 많아질수록 성인병에 노출되기 쉬운데 미리 병을 발견하고 관리하기 위해 검진을 권해드렸다”고 전했다. #김 모(여 31)씨는 얼마 전 몸이 불편한 곳이 있어 병원에 필요한 부분만 진단하는 정밀검진을 신청해 검사를 받았다. 괜히 미심쩍은데도 참고 있기보다는 조기에 알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검진비용이 아깝다고 미루다가 정작 간단한 수술로 해결할 일이 큰 수술이 돼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검진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의료비라도 아끼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건강검진을 받는 환자는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서울 시내 주요 병원 건강검진센터엔 예약이 넘쳐나 건강검진을 받으려면 순서를 기다려야 할 판이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매일 260~280명의 정해진 인원만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데 이미 포화 상태라 예약 날짜를 받으려면 최소한 일주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개별 검진이 아닌 직장인 단체 검진을 주로 하는 백병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백병원 관계자는 “종합검진을 받는 직장인들의 수는 큰 변동이 없으며 지금도 꾸준히 예약을 받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직장에서 단체로 검진을 받는 것 외에 개별적으로 접수를 많이 하는 경우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경우가 있다. 실제로 몇몇 검진센터들은 예비부부를 위한 별도의 검진코스를 마련해놓고 있다. 최저 40만원대에서 100만원 정도의 종합검진비용이 드는 종합병원의 건강검진 외에도 20~30만원 대의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검진을 하는 검진센터들도 예약 환자가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8년 도시근로자가구 소득5분위별 월평균 의료보건비용 지출비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소득별 구분 없이 모든 계층에서 의료보건비 지출은 꾸준히 늘어 건강에 대한 관심은 소득과 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건강관리협회 관계자는 “불황이라고 해서 건강관리를 등한시한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건강에 대한 관심은 경기와 상관없이 꾸준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다만 가정형편이 빠듯한 환자의 경우 조금 더 저렴하고 알뜰한 검진을 통해 건강관리를 하려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박소원 범현주 기자 hopepar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3-10
- 정부, 저소득가구에 교육비 지원 (서울=연합뉴스) 정윤섭 기자 = 가장의 사망, 질병 등으로 소득원이 없어져 위기를 맞은 가정에 자녀 교육비를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10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이러한 내용의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을 심의, 의결한다. 개정안은 긴급지원 대상 가정의 초.중.고등학교 학생이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수업료, 학교운영비, 학용품비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또 긴급지원 대상이 되는 `위기상황'' 인정 요건을 `주소득자의 사망 사유로 소득을 상실하고 가구구성원에게 다른 소득원이 없을 때''에서 `가구구성원의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경우''로 완화했다. 아울러 긴급지원 기간 연장절차도 간소화했다. 현재는 지방자치단체장 직권으로1회 연장을 한 뒤 추가 연장을 위해선 긴급지원심의위의 의결이 필요했지만 개정안은 지자체장 직권으로 2번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이와 함께 외국인의 경우 한국인과 결혼해 자녀를 둬야만 긴급지원 대상자로 인정했으나 우리나라 국민과 결혼해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은 긴급지원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이어 ▲국가건강검진위원회의 구성과 건강검진종합계획 수립을 규정한 건강검진기본법 시행령안 ▲지자체가 거의 운영하지 않는 노인복지상담원 제도를 폐지하는 노인복지법 개정안 ▲정신질환자 사회복귀시설의 종류를 규정한 정신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을 처리한다. 이밖에 공무원 징계종류인 해임과 정직 사이에 ''강등'' 제도를 신설하는 공무원 징계령 개정안과 경기도 의왕시와 하남시, 동두천시에 경찰서를 신설하는 경찰청 직제 개정령안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처리된다. jamin74@yna.co.kr(끝)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3-10
- “결혼이민자 한국이름 지어줍니다” 농협·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지원 농촌지역의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사회에 빨리 정착할 수 있게 한글이름을 지어주는 사업이 계속 진행돼 눈길을 끌고 있다. 농협중앙회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지난 2007년 10월부터 결혼이민자 중 귀화 농업인을 대상으로 ‘농촌지역 다문화가정 성·본 창설 및 개명허가신청’ 무료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개명 신청대상은 국제결혼 후 국내에서 2년 이상 거주하고 출입국관리소에 귀화 신청을 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농업인이다. 이들은 관련 서류를 갖춰 거주지 지역 농협 또는 농협 시군지부에 법률구조를 신청하면 된다.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법원을 거쳐 개명이 결정되면 신청자가 구청 또는 면사무소에 호적 정정을 신청하고 3~4일후에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 30만~100만원 정도 들어가는 개명 비용은 전액 무료다. 이 사업은 농협의 ‘농업인 무료 법률구조사업’ 중 하나로 실시되는데 관련 비용은 지난 1996년부터 농협이 법률구조공단에 기부해 적립한 ‘농업인 무료법률구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실제 필리핀 출신으로 지난 1999년 전남 곡성에 시집와 살고 있는 ‘아우라 아우리 아렐 아바체’씨는 2007년 10월 농협 곡성군지부를 통해 성은 이씨, 본은 백곡인 ‘이미선’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개명했다. 또 지난 2002년 강원도 인제군으로 시집온 키르키즈스탄공화국의 ‘쟈키로바 하니파 아미리지 노브나’씨도 농협 인제군지부를 통해 지난해 ‘김영미’(본은 인제)라는 새이름을 얻었다. 유영신 농협중앙회 준법감시실 과장은 “그동안 한 해 20~30건 정도 신청자가 있었는데 올해부터 집중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3-26
-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배우는 증권 첫걸음]⑩재무설계 재무설계란 개인 재원의 적절한 관리를 통해 개인이 재무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유의해야 할 것은 ‘부자되기’로 통하는 재테크와는 개념이 다르다는 점이다. 재테크가 약간의 무모한 투자 개념을 담고 있다면 재무설계는 개개인의 생애 이벤트에 맞게 자금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가는 것이므로 무조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현재 소득과 자산 수준에 맞는 재무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인이 안고 있는 위험 3가지 = 얼마 전 결혼해서 갓 낳은 아이도 한 명 있는 30대의 한 남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가 현 시점에서 재무설계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부분은 아마도 현대인의 화두 중 하나인 노후자금일 것이다. 노후자금까지 생각해서 재무설계를 하기 시작하면 떠오르는 고려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려해야 할 요인은 △장수의 위험 △물가상승률의 위험 △저금리의 위험 등이다. 현대인은 현대의학의 발전 등으로 예전보다 훨씬 더 긴 은퇴기간을 가지게 됐고, 게다가 저금리 시대가 되면서 은행에 돈을 예치해 두고 이자로 생활하는 은퇴생활을 바라기도 힘들게 됐다. 여기에 물가상승률까지 생각한다면 은퇴시기 동안 아무리 생활비를 적게 쓴다고 하더라도 해가 갈수록 필요한 돈은 더 많아지게 된다. 여기에 은퇴 전까지 자녀들의 교육자금이나 결혼자금까지 미리 모아둘 생각을 한다면 액수는 천문학적이 될 수도 있다. ◆분산·장기·정기투자 = 이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저금리 상품에만 돈을 투자하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 김 부장의 주장이다. 1-2년안에 쓸 돈이라면 당연히 은행의 확정금리 상품에 묶어두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분산투자라는 원칙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5년 이후에 쓸 돈이라고 생각하고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 특히 적은 돈으로도 큰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개인투자자로서는 적립식 펀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김 부장이 중요시하는 분산투자(단기자금과 장기자금의 분리) 장기투자(주식에 투자했다면 길게 잡을 것) 정기투자(정기적으로 돈을 투자하라)의 3원칙이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3-26
- 강남구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교육 서울 강남구가 결혼과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위한 재취업교육을 실시한다. 강남구는 교육 중 첫 번째 프로그램인 ‘방과후교사 양성과정’을 9일부터 16주 과정으로 진행한다. 고학력 여성 50명이 신청한 가운데 전공부터 관련 경력과 자격 등 사전심사를 거쳐 교육대상자 15명을 선정했다. 교육생들은 강남고용지원센터에서 1주간 기초훈련과정을 받고 서울교대에서 15주 과정 전문교육을 받는다. 이후에는 지역 내 초·중학교에 방과 후 교사로 배치, 활동하게 된다. 강남구는 방과후교사 외에도 강남지역기자단 과학지도사 문화예술기획자 건강관리사 등 6개 분야 교육과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직업상담부터 전문교육훈련 취업까지 연계한다. 김진명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3-09
- 가수 화요비 ‘개똥이’를 지나 ‘반쪽’으로 돌아오다 가수 화요비 ‘개똥이’를 지나 ‘반쪽’으로 돌아오다 화.요.비.‘개똥이’를 지나 ‘반쪽’으로 돌아오다 이루어지지 않는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는 가수 화요비는 종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깨는’ 모습을 선보여 인기를 끌곤 했다. 그런 화요비가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4차원 캐릭터’를 드러내며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꿀 법한 부부를 그렸으니 사랑을 받은 것은 당연지사. 가창력을 인정받는 몇 안 되는 대한민국 여자 가수 중 한 명인 화요비는 신비주의를 고집하지 않고 대중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팬층을 넓혔다. ‘우리 결혼했어요’를 마치고 ‘반쪽’으로 돌아와 누구보다도 바쁘게 지내는 화요비를 만났다. 사진제공 글로웍스엔터테인먼트(주) 반쪽’이 떠올라 한 시간 만에 가사 썼어요최근 화요비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를 마치고 본업인 음악으로 돌아왔다. 미니앨범 ‘This is love’의 타이틀곡은 ‘반쪽’. 음반이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시대의 ‘Gee’를 누르며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저도 ‘Gee’를 좋아해요. ‘Gee’를 눌렀다기보다는 ‘Gee’가 먼저 사랑을 많이 받다 보니 타이밍이 그런 거죠. (웃음)” 겸손해 하면서도 화요비는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반쪽’은 듣자마자 타이틀곡이라는 느낌이 왔다고. “비트가 강한 노래를 좋아해요. 멜로디에 대중성이 있어서 비트가 강하게 편곡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중성 있는 멜로디에 호소력 있는 화요비의 목소리가 더해져 ‘반쪽’은 완성됐다. 화요비 노래들이 대부분 그렇듯 ‘반쪽’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아파온다.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을 그리는 애절한 가사 때문이다. 가사를 쓴 사람은 화요비 자신. 인터뷰 때마다 본인의 경험인지를 묻는지, 질문도 하기 전에 경험담은 아니라며 손사래 친다. “노래가 좋아서 욕심이 났어요. ‘반쪽’이라는 제목이 생각나 한 시간 만에 써 내려갔죠.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 보다는 살짝 틀어서 쓰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있는 사람을 사랑해서 갈등하는 여자의 마음을 담아 가사를 썼어요.” 화요비는 ‘남자는 모른다’ 이후로 가사를 즐겨 쓴다. 이야기를 만들어 노래에 잘 맞게 붙이는 작업은, 괴롭지만 하고 나면 굉장히 보람이 있다고. “전문가는 아니라서 곡이 마음에 안 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쓰는 스타일이에요. 기복이 심한 작사가죠.” 화요비는 ‘반쪽’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키스신 등을 소화해 그 수위를 두고 인터넷에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원래 연기에 욕심이 있었는데 할 기회가 없었어요. 제 노래에 제가 연기를 하면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잖아요. (웃음) (연기가) 예상 외로 파급 효과가 커서 놀랐어요. 제가 벗은 것도 아니고, 옷의 끈 하나 내려갔을 뿐이거든요. 감독님께서 에로틱하게 몽환적으로 잘 잡아 주신 거예요.” 물론, 그녀도 뮤직비디오 속 이미지가 ‘우결’ 이미지와는 상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가수로서 노래와 어울릴 것이라는 판단 아래 결정했고, 뮤직비디오 작업은 내내 좋은 컨디션에서 부담 없이 진행됐다. 성대 종양 아픔 딛고 환요비 커플로! 지난해 화요비는 가수로서보다 예능인으로 이름을 더 많이 알렸다. 지난 2000년 데뷔한 이래,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을 한 것은 ‘우결’이 처음이다. “원래 신비주의 콘셉트로 활동하면서 예능 프로그램과는 담을 쌓고 지냈죠. 그런데 방송국 분위기가 가수가 노래만 하게 놔두지 않아요. 내가 팔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연예인조차도 있어야 되는 세상이 도래했거든요.” 가수가 노래만 하지 못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야 하는 현실은 이미 여러 번 지적된 바 있다. 화요비도 세상의 흐름에 발을 맞춰 어떤 가수로 자리매김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노래만 할래요’라며 신비주의를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이 지닌 또 다른 면인 ‘4차원 캐릭터’를 드러내며 대중과 호흡하는 형식을 택했다. “제가 몇 번 토크쇼 같은 데 나갔을 때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서 예능계에 발돋움을 하는 데 도움이 됐죠. 그러다 ‘우결’이란 좋은 포맷을 만나서 제가 가진 개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어요. 일명 ‘4차원적’ 성격이 만천하에 공개가 된 거죠. 그건 만들어진 이미지는 아니에요. 전 늘 그렇게 살아 왔었는데, 자의든 타의든 베일에 가려져 있던 모습이 조금 더 친숙해진 거죠.” 그렇다면 예능 때문에 잃은 것은 없을까. “전 예능의 수혜자라고 생각해요. 장르 때문에 국한돼 있던 팬층이 아래, 위로 ‘한 방’에 두터워졌거든요. (웃음) 초등학생이나 나이 드신 분들도 절 알게 됐어요. 제가 음반이 나왔을 때도 ‘저 누나, 저 언니 나왔네’ 할 수 있죠.” ‘개똥이’로 불리는 것도 기분 나쁘지 않았단다. “개인적으로 남자친구를 만나봤었으니까 알잖아요. 남자친구랑 재미있는 별명을 붙인다든가 하는 소소한 게 기억에 얼마나 많이 남는지. ‘이걸 계기로 우리가 친해지고 허물없는 사이가 되겠구나’ 했죠. ‘개똥이’가 입에 착 붙기도 하고요. (웃음)” 별명 덕택일까. 가상결혼이지만 화요비는 환희와 정이 많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만나 남편, 아내의 역할을 마치 진짜처럼 가상으로 수행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환희라는 좋은 친구를 얻은 건 ‘우결’ 출연의 큰 수확이죠. 요즘엔 본의 아니게(?) 컴백을 동시에 해서 하루에 두 번씩도 봐서 좋아요. 하는 음악도 같은 장르라 해 줄 얘기가 많고요.” ‘우결’로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녀가 출연을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성대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던 끝자락에 ‘우결’ 출연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힘든 때이기도 하지만, 제 인생 전체를 놓고 봐도 바닥을 쳤던 때였어요. 정말 힘들었죠.” 그녀는 웃음을 띠면서 담담히 말했지만 당시, 그녀는 성대 종양 때문에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폭식증까지 와서 살이 많이 쪘었어요. 그래서 나가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었죠. 사람도 잘 안 만나고 자신감이 없었을 때거든요.” 하지만 출연을 결정한 그는 더 이상 머뭇거 2009-03-24
-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배우는 증권 첫걸음] ⑩재무설계 한국밸류자산운용 김 균 마케팅2부 부장 (사진은 BINY로 보내놨고, 혹시나 해서 재걸씨 이메일로도 넣어놨습니다.) 재무설계란 개인 재원의 적절한 관리를 통해 개인이 재무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유의해야 할 것은 ‘부자되기’로 통하는 재테크와는 개념이 다르다는 점이다. 재테크가 약간의 무모한 투자 개념을 담고 있다면 재무설계는 개개인의 생애 이벤트에 맞게 자금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가는 것이므로 무조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현재 소득과 자산 수준에 맞는 재무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인이 안고 있는 위험 3가지 = 얼마 전 결혼해서 갓 낳은 아이도 한 명 있는 30대의 한 남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가 현 시점에서 재무설계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부분은 아마도 현대인의 화두 중 하나인 노후자금일 것이다. 노후자금까지 생각해서 재무설계를 하기 시작하면 떠오르는 고려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려해야 할 요인은 △장수의 위험 △물가상승률의 위험 △저금리의 위험 등이다. 현대인은 현대의학의 발전 등으로 예전보다 훨씬 더 긴 은퇴기간을 가지게 됐고, 게다가 저금리 시대가 되면서 은행에 돈을 예치해 두고 이자로 생활하는 은퇴생활을 바라기도 힘들게 됐다. 여기에 물가상승률까지 생각한다면 은퇴시기 동안 아무리 생활비를 적게 쓴다고 하더라도 해가 갈수록 필요한 돈은 더 많아지게 된다. 여기에 은퇴 전까지 자녀들의 교육자금이나 결혼자금까지 미리 모아둘 생각을 한다면 액수는 천문학적이 될 수도 있다. ◆분산.장기.정기투자 = 이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저금리 상품에만 돈을 투자하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 김 부장의 주장이다. 1-2년안에 쓸 돈이라면 당연히 은행의 확정금리 상품에 묶어두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분산투자라는 원칙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5년 이후에 쓸 돈이라고 생각하고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 특히 적은 돈으로도 큰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개인투자자로서는 적립식 펀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김 부장이 중요시하는 분산투자(단기자금과 장기자금의 분리) 장기투자(주식에 투자했다면 길게 잡을 것) 정기투자(정기적으로 돈을 투자하라)의 3원칙이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3-25
- ‘한국 근현대사 축소판’ 홍명희의 굴곡 많은 가족사 한국 민족문학 최고봉‘임꺽정’의 작가이자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았던 벽초 홍명희. 그러나 해방이후 월북했다는 이유로 인간 홍명희의 삶은 남한에서 오랫동안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특히 자신과 아버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조부의 친일행적으로‘친일파 후손’이란 딱지마저 따라붙고 있다. 최근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충북의 고향 땅마저 국가에 환수당할 위기에 놓였을 정도다. 적어도 남한에선 벽초 개인적인 삶보다는 가족사가 더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벽초가 남긴 삶의 자취를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족해방운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민족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게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홍명희는 실제 박은식, 신규식을 중심으로 한 ‘동제사’의 해외 독립 운동에 가담했으며 3.1 운동 때는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신사상연구회와 화요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으며 좌우익 세력이 최초로 연대한 민족연합전선체인 신간회의 실질적인 지도자로서 헌신하다 재차 투옥됐다. 벽초는 전통적인 한학의 세계로부터 근대 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사상을 부단히 혁신해 나간‘지성의 소유자’로 통한다. 때문에‘친일파’할아버지 ‘애국자’아버지 ‘월북자’홍명희로 이어지는 벽초의 가족사는 한국 근현대사를 집약해 놓았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3.1운동 90주년을 맞아 벽초와 벽초 가족의 굴곡많은 삶을 되돌아본다. 고향 고택에 이름도 못붙여 … 상속땅 환수당할 판 “민족해방운동에 족적 남긴 민족지도자”재평가 필요 ◆‘조선 천재’유학 때 민족의식 싹 터 = 벽초 홍명희는 혜경궁 홍씨가 태어난 풍산 홍씨 추만공파의 명문 사대부가 출신이다. 유년기 한학 수업을 받을 때부터 비상한 기억력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열한 살 무렵에는 중국의 고전 소설들을 읽기 시작해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일본 다이세이 중학 유학시절에는 학업 성적이 뛰어나 ‘만조보’에 한인수재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홍명희는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조선 삼재’로 불린다. 일본 유학은 홍명희에게 민족의식의 성장이라는 면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벽초는‘대한흥학보’에 기고한 ‘일괴열혈’이라는 시에서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략 앞에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 것은 ‘지방열(지역감정)’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분열을 극복하고 대동단결하는 것만이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부친 자결, 민족운동가로서 내적 성장 =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경술국치때 벽초의 부친 홍범식(1871~1910)선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당시 금산군수를 지내고 있던 홍범식 선생은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유서를 남겼다. 벽초는 부친의 유언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부친의 순국 이후 한동안 은둔하다시피 하며 지내던 홍명희는 1912년 가을 중국으로 건너가 ‘동제사’에 가입해 활동한다. 이 시절 홍명희는 새로운 서양 문물을 접했을 뿐 아니라 민족운동가로서나 문학인으로서 내면적으로 크게 성장한다. 해외에서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홍명희는 만세 시위를 주도한 후 검거되어 1년 간 옥고를 치르게 된다. 출옥 후에는 주로 교육계와 언론계에 몸담으면서 다양한 사회활동에 전념한다. 그러다 1926년말 홍명희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협동해 ‘참다운 민족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신간회운동’을 전개하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된다. ◆은둔 끝내자 정치소용돌이 휘말려 = 일제 말 홍명희는 일제의 협박과 회유를 피하기 위해 창작을 포함한 모든 사회활동을 그만두고 은둔에 들어간다. 1945년 고대하던 해방을 맞은 후 벽초는 정치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투신한다. 하지만 신탁통치 파동 중에 좌우익 양측에서 자신의 의사도 묻지 않고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벽초는 좌우익 양측 모두와 분명한 선을 긋고 중간파 정치지도자들과 함께 중간파 정당활동에 나서게 된다. 특히 문맹 타파, 과학사상 보급, 여성의 지위 향상과 같은 정책을 내세운 계몽적 성격이 강한 민주독립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당 결성 이후 중간파 정치세력은 남북한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의 회합을 구상하고 추진한다. 벽초의 노력으로 지난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된다. 벽초는 당시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남측대표로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북행 길에 오르게 되며 이때 남북연석회의 이후 북에 잔류하게 된다. 북에 남은 홍명희는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부수상에 임명되기도 하는 등 팔순의 나이로 북에서 사망할 때까지 고위직에 남아 있었다. 벽초는 평양 교외 애국열사릉에 부인 민순영과 함께 안장돼 있다. ◆죽어서도 모이지 못한 가족들 = 벽초 일가의 굴곡진 삶은 친일행적을 한 조부 홍승목(1843~1925)으로부터 비롯된다. 홍승목은 구한말 성균관 대사성,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1907년 2월엔 대동학회 부회장을 맡았는데 대동학회는 전직 고위관리들이 모인 친일 유교단체다. 일제의 조선 총독인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자금을 받았고 총회 때 그를 초청해 연설을 들었다. 홍승목은 아들 홍범식이 자결한 해인 1910년부터 1921년까지 조석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찬의를 지냈으며 1912년 일제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독립운동을 한 아들과 손자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더욱 불행한 것은 월북한 벽초로 인해 가족들이 남북으로 갈라섰고 결국 죽어서도 벽초 일가는 모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벽초의 조부 부친 생모와 계모는 충북 괴산군 제월리에 묻혀있다. 벽초가 4살 때 홍범식과 결혼한 계모 조씨, 제수 김씨는 1948년 벽초와 함께 월북을 않고 고향에 남았다가 6.25 전쟁때 월북자 가족이라해서 사살됐다. 벽초 일가의 비극과 영광이 중첩된 삶이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런 벽초 일가의 기구했던 삶의 여정은 지금도 재연되고 있다. 지난해 충북 괴산군에 있는 벽초 고택은 괴산군이 매입해 어렵사리 복원됐지만 보수단체의 반대로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다. 이름도‘괴산 동부리 고가’라고 붙어졌다. 또 홍명희 이름의 문학제가 열리고 있지만 그의 호를 딴 ‘벽초 신인문학상’역시 보수단체 반대로 무산됐다. 여기에 최근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벽초가 상속권자인 16만평에 달하는 땅을 환수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면서 자신도 독립운동을 했지만 조부의 친일이력 때문에‘친일파 후손’이란 멍에만 떠안을 판이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충북 괴산 ‘홍명희 고택’에 가보니 ‘벽초 흔적’ 찾기 힘들어 방치하다 ‘임꺽정’ 출간 뒤 옛모습 찾아 지난 14일 충북 괴산. 벽초 홍명희 선생 고택으로 가는 길엔 흔한 안내 표시판 하나 없었다. 막상 도착해도 어리둥절한 건 마찬가지였다. ‘홍명희’란 이름 대신 ‘홍범식 고택’이라는 표시만 붙어있다. ‘고택’이라더니 깨끗한 새 건물이다. 새 기와에, 새 흙벽 마치 사극 세트장 같다. 홍명희 고택엔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 지역엔 홍명희 선생하면 아직 ‘빨갱이’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괴산군청 관계자 말이다. 고택에 홍명희 대신 아버지 홍범식 이름을 앞세운 이유다. 신간회 활동과 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한 지식인이지만 월북해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이들이 아직 많다. 괴산 군청이 이 건물을 매입해 ‘홍명희 고택’이라고 명명하자 보수단체 사람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강하게 항의했을 정도다. 오랜 기간 방치되면서 고택의 원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허물어 져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을 때도 월북인사 집이라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1984년엔 문화재 200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