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재외동포란 우리가 가난할 때 작은 밥그릇 놓고 다투지 않고 다른 데서 살 길을 찾아나선 용기있는 사람들’이라고 써 있다. ‘어려울 때 자기 잘살자고 우리를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라는 질투심이 본국 국민들 사이에 퍼져있는데 이를 해소시키려고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재외동포재단을 새로 이끌게 된 이광규 신임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소외되고 가난한 재외동포를 위한 사업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한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의 후예라는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고통을 나눌 의무가 있다는 게 내 기본철학”이라며 “러시아 연해주와 볼가그라드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고려인과 같은 동포들에게도 재외동포 정책의 시야를 넓히겠다”고 말했다.
재외동포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심은 나날이 고조됐다. 재외동포재단의 권병현 전임이사장이 재직하던 무렵에는 ‘국익을 위한 재외동포 활용론’이 널러 퍼졌다. 해외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의 한국내 투자를 유치하는데 활동이 모아졌다. 세계한상대회나 한민족 네트워크는 그 일환이다.
이 신임이사장은 그같은 업적을 계승하면서도 소외지대의 재외동포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새로운 영역으로 제시했다.
그는 당초 인류학을 전공했다. 인류학은 원래 인디언 등 소수 인종을 연구해왔으나 이들이 한 국가의 국민으로 편입되면서 사회의 마이너리티(소수 소외계층)를 이뤘는데, 이 이사장이 연구활동에 한창이던 60, 70년대에 인류학은 사회의 인종적 소외계층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이사장은 해외를 돌아다니며 교포들이 왜 그곳에 살고 있는 지 그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두만강을 짚새기 한 벌로 건너간 조상들에게 ‘역사의 어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서럽지 않냐”며 “교포는 미국에 있든 중국에 있든 서로 통하는 그들이 그곳에 살고 있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돌며 다른 지역 교포들의 애환을 들려주면 동포들간의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50, 60년대에) 국제결혼한 분들이 20만명이다. 이들이 한국의 가족을 초청, 미국으로 불러들여 취직시키고 도왔지만, 지금 한인사회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국제결혼을 사시로 보는 그릇된 시각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때 김대중 대통령이 외무부 순시때 30분 얘기하는데 20분을 해외입양아에 대한 관심에 쏟았다. 그 후 우리사회에 해외입양아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됐다.” 이 이사장이 새로이 재단을 통해 개척하고자 하는 관심영역은 국제결혼을 한 소외된 재외동포들이다.
이 이사장은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 둔 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 선임되기 전까지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연해주와 연변 동포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들을 돕기 위해 애썼다.
평생을 재외동포 연구에 바쳐온 이 이사장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할 일로 ‘기록과 수집’을 꼽았다. 그는 “해외교포들에 대한 모든 문헌을 정리하려 한다”며 “미국의 한국 식당 앞에 쌓여있는 무료주간지도 10, 20년 후에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이란 공상으로 하기 쉬운데 기본적 자료가 잘 돼 있어야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 진병기 ·연제호 기자 jin@naeil.com
재외동포재단을 새로 이끌게 된 이광규 신임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소외되고 가난한 재외동포를 위한 사업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한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의 후예라는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고통을 나눌 의무가 있다는 게 내 기본철학”이라며 “러시아 연해주와 볼가그라드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고려인과 같은 동포들에게도 재외동포 정책의 시야를 넓히겠다”고 말했다.
재외동포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심은 나날이 고조됐다. 재외동포재단의 권병현 전임이사장이 재직하던 무렵에는 ‘국익을 위한 재외동포 활용론’이 널러 퍼졌다. 해외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의 한국내 투자를 유치하는데 활동이 모아졌다. 세계한상대회나 한민족 네트워크는 그 일환이다.
이 신임이사장은 그같은 업적을 계승하면서도 소외지대의 재외동포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새로운 영역으로 제시했다.
그는 당초 인류학을 전공했다. 인류학은 원래 인디언 등 소수 인종을 연구해왔으나 이들이 한 국가의 국민으로 편입되면서 사회의 마이너리티(소수 소외계층)를 이뤘는데, 이 이사장이 연구활동에 한창이던 60, 70년대에 인류학은 사회의 인종적 소외계층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이사장은 해외를 돌아다니며 교포들이 왜 그곳에 살고 있는 지 그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두만강을 짚새기 한 벌로 건너간 조상들에게 ‘역사의 어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서럽지 않냐”며 “교포는 미국에 있든 중국에 있든 서로 통하는 그들이 그곳에 살고 있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돌며 다른 지역 교포들의 애환을 들려주면 동포들간의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50, 60년대에) 국제결혼한 분들이 20만명이다. 이들이 한국의 가족을 초청, 미국으로 불러들여 취직시키고 도왔지만, 지금 한인사회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국제결혼을 사시로 보는 그릇된 시각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때 김대중 대통령이 외무부 순시때 30분 얘기하는데 20분을 해외입양아에 대한 관심에 쏟았다. 그 후 우리사회에 해외입양아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됐다.” 이 이사장이 새로이 재단을 통해 개척하고자 하는 관심영역은 국제결혼을 한 소외된 재외동포들이다.
이 이사장은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 둔 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 선임되기 전까지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연해주와 연변 동포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들을 돕기 위해 애썼다.
평생을 재외동포 연구에 바쳐온 이 이사장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할 일로 ‘기록과 수집’을 꼽았다. 그는 “해외교포들에 대한 모든 문헌을 정리하려 한다”며 “미국의 한국 식당 앞에 쌓여있는 무료주간지도 10, 20년 후에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이란 공상으로 하기 쉬운데 기본적 자료가 잘 돼 있어야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 진병기 ·연제호 기자 jin@naeil.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