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사회 생산성을 높이자③ - 복지부동으로 나라 병든다>원칙 벗어나면 ‘아니오’ 해야한다
예금보험공사 운영위 거수기 전락 … 공적자금 무원칙 배정
지역내일
2000-12-07
(수정 2000-12-08 오후 2:49:49)
은행이 심각한 졸음병에 걸렸다. 경제현장 사람들, 특히 기업인들은 이런 진단을 한결같이 내놓는 한
편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위기감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은행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것은 우리 사회를 동토처럼 얼어붙게 하는 ‘퇴출’분위기와 맥을 같
이 한다. 기업들은 은행들이 도매금융(기업대출)을 외면하고, 소매금융(가계대출)에만 치중해 경제
에 활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쏟고 있다. 은행 종사자는 엄격히 말해 공직자는 아니다. 그러
나 공익성이 강한 기능적 측면에서 은행 종사자는 현재 어떤 업종보다 중요한 공직자의 자리에 있
다. 특히 빅뱅시대 경제난국을 금융 해법에서 풀어야 하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중소벤처기업을 경영하는 김 모 사장은 “우리 회사는 아이엠에프 때도 끄덕 없었는데, 경제불황에
다 최근 일부 사이비벤처기업 때문에 건전한 벤처기업까지 매도당해 자금사정이 일시 어려워졌다”
면서 “한두 달만 지나면 자금사정이 회복되는데도 대출길이 막혀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
을 털어놓았다. 김 사장은 이 위기를 넘기기 어려우면 본의 아니게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 지도 모
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일시적 자금 경색 때문에 자칫 애꿎게 실업자만 늘어나게 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전에는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이 45%였고, 가계대출은 미미했다. 그러나 현재 중
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은 사문화돼 버렸다. 은행들은 아파트 등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에 목숨을 걸다
시피 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원들 사이에서는 ‘사명감으로 일하다가는 퇴출이 십상이다’‘기업자
금 대출은 지뢰밭 위를 걷는 것과 같다’등과 같은 분위기가 만연, 잔뜩 움츠리고 있어도 탓하는 사
람이 없다. 오히려 직급이 높을수록 기업대출만 안 하면 퇴출은 없으며, 자신의 재임기간만이라도 퇴
출을 면하면 직장인으로서 성공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해 200만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벤처기업 지원은 한동안 봇물을 이루었다. 이중에는 자격도 없으면서 부조리하게 대출을 받은
무늬만 벤처기업도 상당수 끼어 있다. 국회의원 정부고위관리 등 이른바 힘깨나 쓰는 사람의 전화
한 통화만 있으면 소나 개한테도 대출을 해주었을 정도였다는 말이 들리니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대통령이 내놓는 정책은 중요하다. 국정 통솔의 효율성을 위해 대통령의 명령은 영이 서야 한다는 것
은 백번 강조해도 마땅하다. 그러나 금융거래를 본업으로 하는 은행의 대출원칙도 중요하다. 정부 정
책에는 충실히 따르되 합리적인 원칙과 실사를 거쳐 대출여부와 규모를 결정하는 금융거래 시스템
을 정착시켜 나가지 않는 한 엉뚱한 부실로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고, 퇴출공포증이 배태한 졸음병
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
은행들은 이처럼 상황논리에는 민첩했어도 경제흐름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는 제 역할을 못
했다. 복지부동과 무소신의 전형이다.
게다가 은행들은 경영실책으로 공적자금을 하마처럼 집어삼키면서도 최고의 보수에다 일반 서민들로
서는 꿈도 못 꿀 억대의 명퇴금까지 받아 도덕적 지탄을 받고 있다.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110조 공적자금 중 60조는 회수불능이다. 중심에는 금융권 부실이 놓여 있
다. 더구나 부실 금융기관 정리시 원칙없는 산정기준을 적용하고 자금을 집행해 그야말로 ‘미운 놈
에게 떡 하나 더 주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져 국민들을 더욱 맥빠지게 하고 있다. 한 예로 예험보험
공사는 98년부터 올해 9월까지 254회의 공적자금 집행규모와 방법을 결정하는 운영위원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중 91%인 231회가 서면회의였다. 예보 운영위는 거의 대부분 공적자금을 무사통과, 거수기라
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역시 무소신의 전형이다.
자기보신에 빠져 우선 소나기부터 피하고 보자는 식의 이기적인 의식으로는 역사 발전은 없다. 기업
이 추락하면 은행도 추락하고 종내는 이 사회도 추락하게 마련이다.
원칙에 벗어나는 것은 작은 소리로나마 '아니오'라고 말하고 조용히 실천에 옮기는 용기에 발전의 밑
거름이 있다. 복지부동 무소신이 범람하는 이 시대 잘못된 것을 보고 아니라고 말하고 실천에 옮기
는 조용한 '아니오 정신'은 고통받는 서민들이 공직자에게 바라는 작은 희망이기도 하다. 거기에 실
타래처럼 얽힌 경제난국을 풀어갈 생산적 해답이 있기도 하다.(끝) 문상식 기자 ssmun@naeil.com
편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위기감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은행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것은 우리 사회를 동토처럼 얼어붙게 하는 ‘퇴출’분위기와 맥을 같
이 한다. 기업들은 은행들이 도매금융(기업대출)을 외면하고, 소매금융(가계대출)에만 치중해 경제
에 활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쏟고 있다. 은행 종사자는 엄격히 말해 공직자는 아니다. 그러
나 공익성이 강한 기능적 측면에서 은행 종사자는 현재 어떤 업종보다 중요한 공직자의 자리에 있
다. 특히 빅뱅시대 경제난국을 금융 해법에서 풀어야 하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중소벤처기업을 경영하는 김 모 사장은 “우리 회사는 아이엠에프 때도 끄덕 없었는데, 경제불황에
다 최근 일부 사이비벤처기업 때문에 건전한 벤처기업까지 매도당해 자금사정이 일시 어려워졌다”
면서 “한두 달만 지나면 자금사정이 회복되는데도 대출길이 막혀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
을 털어놓았다. 김 사장은 이 위기를 넘기기 어려우면 본의 아니게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 지도 모
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일시적 자금 경색 때문에 자칫 애꿎게 실업자만 늘어나게 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전에는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이 45%였고, 가계대출은 미미했다. 그러나 현재 중
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은 사문화돼 버렸다. 은행들은 아파트 등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에 목숨을 걸다
시피 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원들 사이에서는 ‘사명감으로 일하다가는 퇴출이 십상이다’‘기업자
금 대출은 지뢰밭 위를 걷는 것과 같다’등과 같은 분위기가 만연, 잔뜩 움츠리고 있어도 탓하는 사
람이 없다. 오히려 직급이 높을수록 기업대출만 안 하면 퇴출은 없으며, 자신의 재임기간만이라도 퇴
출을 면하면 직장인으로서 성공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해 200만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벤처기업 지원은 한동안 봇물을 이루었다. 이중에는 자격도 없으면서 부조리하게 대출을 받은
무늬만 벤처기업도 상당수 끼어 있다. 국회의원 정부고위관리 등 이른바 힘깨나 쓰는 사람의 전화
한 통화만 있으면 소나 개한테도 대출을 해주었을 정도였다는 말이 들리니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대통령이 내놓는 정책은 중요하다. 국정 통솔의 효율성을 위해 대통령의 명령은 영이 서야 한다는 것
은 백번 강조해도 마땅하다. 그러나 금융거래를 본업으로 하는 은행의 대출원칙도 중요하다. 정부 정
책에는 충실히 따르되 합리적인 원칙과 실사를 거쳐 대출여부와 규모를 결정하는 금융거래 시스템
을 정착시켜 나가지 않는 한 엉뚱한 부실로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고, 퇴출공포증이 배태한 졸음병
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
은행들은 이처럼 상황논리에는 민첩했어도 경제흐름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는 제 역할을 못
했다. 복지부동과 무소신의 전형이다.
게다가 은행들은 경영실책으로 공적자금을 하마처럼 집어삼키면서도 최고의 보수에다 일반 서민들로
서는 꿈도 못 꿀 억대의 명퇴금까지 받아 도덕적 지탄을 받고 있다.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110조 공적자금 중 60조는 회수불능이다. 중심에는 금융권 부실이 놓여 있
다. 더구나 부실 금융기관 정리시 원칙없는 산정기준을 적용하고 자금을 집행해 그야말로 ‘미운 놈
에게 떡 하나 더 주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져 국민들을 더욱 맥빠지게 하고 있다. 한 예로 예험보험
공사는 98년부터 올해 9월까지 254회의 공적자금 집행규모와 방법을 결정하는 운영위원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중 91%인 231회가 서면회의였다. 예보 운영위는 거의 대부분 공적자금을 무사통과, 거수기라
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역시 무소신의 전형이다.
자기보신에 빠져 우선 소나기부터 피하고 보자는 식의 이기적인 의식으로는 역사 발전은 없다. 기업
이 추락하면 은행도 추락하고 종내는 이 사회도 추락하게 마련이다.
원칙에 벗어나는 것은 작은 소리로나마 '아니오'라고 말하고 조용히 실천에 옮기는 용기에 발전의 밑
거름이 있다. 복지부동 무소신이 범람하는 이 시대 잘못된 것을 보고 아니라고 말하고 실천에 옮기
는 조용한 '아니오 정신'은 고통받는 서민들이 공직자에게 바라는 작은 희망이기도 하다. 거기에 실
타래처럼 얽힌 경제난국을 풀어갈 생산적 해답이 있기도 하다.(끝) 문상식 기자 ssmu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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