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아침. 이번 영국 방문에서 사실상 마지막 일정이다.
내일 오전에는 다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런던에서 600km 떨어진 잉글랜드 북쪽 호수지대에 머물러 있다. 오늘 여정의 가장 큰 목표는 ‘서둘러 남쪽으로 내려가기’. 비가 세차게 뿌리는 가운데 M6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북쪽지방의 높은 산에 낮은 비구름이 부딪쳐 내린 지형성 강우였는지 맨체스터 가까이에서부터 빗줄기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2시간 정도를 달려 다시 국도를 타고 맨체스터(Manchester) 남부에 있는 ‘네더 올더리 밀(Nether Alderley Mill)’이라는 15세기 방앗간 유적지에 들렀다.
왕복 2차선의 한적한 시골길 한 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방앗간 유적은 원래 15세기에 만들어진 물레방앗간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지금은 20세기 빅토리안식 기계들을 사용해서 밀을 빻고 있다.
부유했던 튜더시대를 대표하는 목조건축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내셔널트러스트 사이트가 있었다. ‘리틀 모턴 홀(Little Moreton Hall)’이라는 장원저택으로 비교적 평화롭고 부유했던 튜더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이 모턴 가문의 저택은 1440년에서 1580년 사이에 지어졌는데, 이 주택의 화려한 건축양식은 당시 수도원 파괴령과 함께 수도원에 딸려 있던 광대한 토지들이 세속지주들에게 팔려나갔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곳 미들랜드에서는 목재가 주된 건축자재였다. 튜더시대 상류층들은 목재패널을 쌓아 돌출부를 만드는 방식의 화려한 건축으로 자기 재산을 과시했다. 저택 주위는 직사각형의 해자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방어 목적보다는 장식적 의미가 강한 것이라고 한다.
해자를 건너 정문으로 들어가니 지금까지 영국에서 만난 여성 가운데 가장 예쁜 자원봉사 검표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부끄러운 미소와 함께 허리를 숙여 촬영에 응해주었다.
안에는 금발의 중년 아주머니가 방문객들을 맞았다. 이 아주머니는 약간의 보수를 받는 아르바이트 직원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곳은 내셔널트러스트 자산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적자운영을 하고 있는데, 내셔널트러스트 본부에서 적자분을 충당한다고 한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의 참나무 패널과 흰색의 회벽, 다양한 색상의 납창살로 구성돼 있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된 나머지 부분부분 사각 패널의 기본틀이 일그러진 곳이 많았다. 2층보다 3층이 돌출한 양식인 데다 구조재가 뒤틀린 곳이 많아 전체적으로 묘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조건축의 구조재로 소나무를 쓴다. 소나무는 송진을 머금고 있어 잘 썩지 않고 뒤틀림도 적다.
참나무는 단단하긴 하지만 비를 맞으면 금방 썩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모턴 가문의 이 저택은 3층 이상의 대규모 건축물인데 밖으로 드러난 구조재까지 대부분 참나무를 썼으니 이처럼 건물이 뒤틀릴 수밖에.
그래도 이 저택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 저택을 소개하는 인쇄물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의심할 바 없이 가장 훌륭한 목구조와 해자가 둘러진 대저택’이라며 ‘호화스러운 갤러리가 맨 위층에 있고, 술 취한 것처럼 비틀린 남측면과, 자갈로 된 안마당과 홀의 주 부분은 개방을 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셰익스피어 출생지 트러스트’에서 보전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배고픔을 참고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버밍엄(Birmingham)을 지나 마지막 방문지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생가를 향했다. 생가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었는데, 이 도시는 셰익스피어 탄생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활기에 넘치는 곳이었다.
생가에서 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갔는데, 걸어가는 동안 도시 곳곳이 마치 축제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도시 북쪽으로 아본(Avon) 운하가 흐르고 운하를 건너자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소읍이 나타났다.
중국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방문했다. 생가 앞 헨리 스트리트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보행자거리로 형성돼 있었다. 생가 건너편 상가에는 셰익스피어 관련 상품들로 가득했지만 거리에는 흔한 노점상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 일대에는 셰익스피어와 아내의 집 등 셰익스피어 가계의 4개의 집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고 이 유적지들을 모두 ‘셰익스피어 출생지 트러스트(Shakespeare Birthplace Trust)’라는 단체에서 보전하고 있다.
이 유적지들은 단순한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현세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보전·관리되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파는 상품들은 대부분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보전이 전제된 상품화만이 많은 사람들을 찾게 한다는 원칙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이 도시에도 내셔널트러스트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다. 이번 일정에서 만나는 마지막 내셔널트러스트 가게가 될 것 같아 우리 일행도 여기에서 몇 가지 기념상품을 샀다.
품질에 비해 가격도 싼 편이었다.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만든 순모 양털담요가 우리 돈으로 약 4만원. 다음날 히드로 공항 면세점에서 보니 보통 작은 목도리 하나에 10만~20만원을 호가했다.
영국 곳곳에 있는 내셔널트러스트 가게들은 내셔널트러스트 중앙본부와 협력의 관계에 있다.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며 내셔널트러스트 사이트들의 다양한 사진자료들과 지역 사이트 특성을 살린 각양각색의 상품들이 많다.
아쉽지만 셰익스피어의 열정을 뒤로하고 계속 남동쪽으로 달렸다. 영국 도착 첫날 묵었던 런던 근교의 레딩(Reading)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1주일 동안 누적된 자동차 거리계는 1400마일, 약 200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 글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내일 오전에는 다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런던에서 600km 떨어진 잉글랜드 북쪽 호수지대에 머물러 있다. 오늘 여정의 가장 큰 목표는 ‘서둘러 남쪽으로 내려가기’. 비가 세차게 뿌리는 가운데 M6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북쪽지방의 높은 산에 낮은 비구름이 부딪쳐 내린 지형성 강우였는지 맨체스터 가까이에서부터 빗줄기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2시간 정도를 달려 다시 국도를 타고 맨체스터(Manchester) 남부에 있는 ‘네더 올더리 밀(Nether Alderley Mill)’이라는 15세기 방앗간 유적지에 들렀다.
왕복 2차선의 한적한 시골길 한 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방앗간 유적은 원래 15세기에 만들어진 물레방앗간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지금은 20세기 빅토리안식 기계들을 사용해서 밀을 빻고 있다.
부유했던 튜더시대를 대표하는 목조건축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내셔널트러스트 사이트가 있었다. ‘리틀 모턴 홀(Little Moreton Hall)’이라는 장원저택으로 비교적 평화롭고 부유했던 튜더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이 모턴 가문의 저택은 1440년에서 1580년 사이에 지어졌는데, 이 주택의 화려한 건축양식은 당시 수도원 파괴령과 함께 수도원에 딸려 있던 광대한 토지들이 세속지주들에게 팔려나갔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곳 미들랜드에서는 목재가 주된 건축자재였다. 튜더시대 상류층들은 목재패널을 쌓아 돌출부를 만드는 방식의 화려한 건축으로 자기 재산을 과시했다. 저택 주위는 직사각형의 해자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방어 목적보다는 장식적 의미가 강한 것이라고 한다.
해자를 건너 정문으로 들어가니 지금까지 영국에서 만난 여성 가운데 가장 예쁜 자원봉사 검표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부끄러운 미소와 함께 허리를 숙여 촬영에 응해주었다.
안에는 금발의 중년 아주머니가 방문객들을 맞았다. 이 아주머니는 약간의 보수를 받는 아르바이트 직원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곳은 내셔널트러스트 자산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적자운영을 하고 있는데, 내셔널트러스트 본부에서 적자분을 충당한다고 한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의 참나무 패널과 흰색의 회벽, 다양한 색상의 납창살로 구성돼 있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된 나머지 부분부분 사각 패널의 기본틀이 일그러진 곳이 많았다. 2층보다 3층이 돌출한 양식인 데다 구조재가 뒤틀린 곳이 많아 전체적으로 묘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조건축의 구조재로 소나무를 쓴다. 소나무는 송진을 머금고 있어 잘 썩지 않고 뒤틀림도 적다.
참나무는 단단하긴 하지만 비를 맞으면 금방 썩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모턴 가문의 이 저택은 3층 이상의 대규모 건축물인데 밖으로 드러난 구조재까지 대부분 참나무를 썼으니 이처럼 건물이 뒤틀릴 수밖에.
그래도 이 저택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 저택을 소개하는 인쇄물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의심할 바 없이 가장 훌륭한 목구조와 해자가 둘러진 대저택’이라며 ‘호화스러운 갤러리가 맨 위층에 있고, 술 취한 것처럼 비틀린 남측면과, 자갈로 된 안마당과 홀의 주 부분은 개방을 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셰익스피어 출생지 트러스트’에서 보전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배고픔을 참고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버밍엄(Birmingham)을 지나 마지막 방문지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생가를 향했다. 생가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었는데, 이 도시는 셰익스피어 탄생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활기에 넘치는 곳이었다.
생가에서 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갔는데, 걸어가는 동안 도시 곳곳이 마치 축제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도시 북쪽으로 아본(Avon) 운하가 흐르고 운하를 건너자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소읍이 나타났다.
중국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방문했다. 생가 앞 헨리 스트리트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보행자거리로 형성돼 있었다. 생가 건너편 상가에는 셰익스피어 관련 상품들로 가득했지만 거리에는 흔한 노점상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 일대에는 셰익스피어와 아내의 집 등 셰익스피어 가계의 4개의 집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고 이 유적지들을 모두 ‘셰익스피어 출생지 트러스트(Shakespeare Birthplace Trust)’라는 단체에서 보전하고 있다.
이 유적지들은 단순한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현세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보전·관리되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파는 상품들은 대부분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보전이 전제된 상품화만이 많은 사람들을 찾게 한다는 원칙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이 도시에도 내셔널트러스트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다. 이번 일정에서 만나는 마지막 내셔널트러스트 가게가 될 것 같아 우리 일행도 여기에서 몇 가지 기념상품을 샀다.
품질에 비해 가격도 싼 편이었다.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만든 순모 양털담요가 우리 돈으로 약 4만원. 다음날 히드로 공항 면세점에서 보니 보통 작은 목도리 하나에 10만~20만원을 호가했다.
영국 곳곳에 있는 내셔널트러스트 가게들은 내셔널트러스트 중앙본부와 협력의 관계에 있다.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며 내셔널트러스트 사이트들의 다양한 사진자료들과 지역 사이트 특성을 살린 각양각색의 상품들이 많다.
아쉽지만 셰익스피어의 열정을 뒤로하고 계속 남동쪽으로 달렸다. 영국 도착 첫날 묵었던 런던 근교의 레딩(Reading)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1주일 동안 누적된 자동차 거리계는 1400마일, 약 200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 글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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