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정부 내년 예산안의 허실(이재승 2003.09.03)

지역내일 2003-09-03 (수정 2003-09-03 오후 9:39:58)
정부 내년 예산안의 허실
이재승 언론인·동원대 초빙교수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겨우 2.1%늘어난 117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내년도의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을 8%로 추정한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마이너스인 셈이다. 91년 이후 최저의 성장률이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것이다. 김대중정권 때와는 달리 국영기업체도 처리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처분했고 세제잉여금도 남아있지 않은데다가 균형재정의 전통을 살려보자니 긴축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심지어 내년 처음 돌아오는 공적자금 상환을 한해 더 연장했다.
건전재정은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정석이다. 이러한 교과서적 접근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불경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긴축재정이 반드시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은 이런 때를 위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정부는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경상성장률을 8%로 잡은 것도 미국의 경기회복, 일본의 탈 디플레이션 징후,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 등 세계경기의 호전에 따른 수출증대를 크게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소비와 투자 특히 국내외기업들의 투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매우 어렵다. 정부는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그 때 가서 추경편성 등 재정을 팽창시키고 심지어 재정적자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지나친 신중이 손실을 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불황은 미국의 경기침체 등 대외요인도 컸지만 지금은 대통령의 불안정한 리더십, 경제제일주의의 퇴색, 노조의 호전성강화 등 국내 기업환경 악화에 따른 기업의 투자부진이 거의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하겠다.

2.1% 증액한 긴축재정 바람직, 경기조절 미흡
한나라당이 정부와 민주당이 배제한 법인세 인하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은 내년 총선거를 의식한 정략적인 계산이라는 비판도 있으나 기업의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의미도 크다. 기업 감세정책에는 부시대통령의 감세조처가 지금 미국에서 한창 물의를 일으키듯 경기자극효과론과 재정적자확대론이 항상 대립하게 돼있다. 국내에서 이를 도입한다면 기업과 경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세율도 적절히 낮춰야 한다.
또한 긴축예산일수록 살림살이가 알뜰해야 한다. 박봉흠 예산처장관은 복지와 국방예산은 늘리고 사회간접자본(SOC)과 중소기업자금추가지원예산 등은 감축하겠다고 했는데 복지비와 국방비도 괄목할 만한 증가를 기대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번 예산의 특징은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하겠다. 긴축예산일수록 효율을 위해서는 정책의 우선순위가 명확하고 ‘선택과 집중의 묘’도 살려야 하는데 이것이 없는 것이다. 참여의 정부가 종합적인 정책프로젝트를 아직 마련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하겠다.
중점적으로 증액했다는 복지와 국방예산은 당장 눈앞의 수요를 충당하는데 급급해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중·장기계획을 체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일관성과 합리적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복지예산은 극빈층과 빈곤층의 기초생활보장, 서민 주거안정, 육아시설, 노인요양시설지원 등에 비중을 두겠다고 했는데 어느 부문에도 획기적인 진전은 없다. 극빈층에 해당하는 135만명의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게는 비교적 확실한 안전망이 설치돼있는 셈이다.
이들보다 차상위에 있는 약 320만명에 상당하는 빈곤층과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노인들의 복지문제가 풀어야 중대한 현안이다. 또한 출산감소도 심각하다. 이번예산에서 빈곤층지원비를 당초보다 70% 늘어난 3700억원으로 늘려잡았으나 선거를 앞둔 전시적인 선심지원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 3대현안은 서둘러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경제여건에 맞게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복지 국방예산 늘어났지만 정책목표에 못미쳐
국방예산은 즉흥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노대통령의 ‘자주국방’선언에 따라 내년예산 가용재원증가분의 약 절반을 국방예산에 투입하는 등 특별배려를 했다고는 하나 올해보다 8%의 증가에 그쳐 당초 크게 기대했던 국방부측에서는 실망이다. 자주국방계획이 확실히 세워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방예산 중·장기 증액계획을 발표했다가 이를 곧 철회하는 것은 당혹스럽다.
자주국방문제는 미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그 주변의 정세와도 관련된 문제이므로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이에 따른 국방력강화는 역시 중·장기적으로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편 선심성사업은 언제나 여·야의 나눠먹기에 의해 지역사업에 끼어들기 마련인데 특히 내년은 총선거의 해이므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자제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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