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최고 직업이라더니 예측 ‘틀렸네’

애널·웹 직종 거품 빠지자 인기 시들

지역내일 2003-07-15
꺼지지 않는 테헤란벨리의 불빛은 24시간 ‘철야근무’를 마다하지 하는 벤처기업의 상징이었다.
1990년 후반 벤처산업은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우리에게 유일한 탈출구. ‘사람을 구한다’는 말에 목말라 있던 대졸구직자들이 몰렸고 대기업 직원들의 엑서더스가 연일 이어졌다. 남아있는 자는 ‘무능력’했다.
“꿈에 부풀어 있었죠.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처럼 말이에요. 밤을 새도 정말 즐겁게 일했던 시간이었어요.”
영문학을 전공한 신영숙(29)씨는 웹디자인을 6개월 간 공부하고 벤처에서 일을 시작했다.
2년 정도 경력을 쌓고 ‘더 나은 곳’으로 옮기려던 찰라 벤처산업의 거품이 빠졌다.
“갈 곳이 마땅찮았어요. 이미 웹디자이너가 넘쳐났고 프리랜서로 뛰기에도 줄을 닿기가 쉽지 않았죠.” 결국 신씨는 1년 간 다시 어학연수를 하고 들어와 한 대학의 사무직원으로 취직했다.
웹디자이너 뿐만 아니었다. 웹마스터 웹기획자 웹매니저 웹딜러 웹PD 웹코딩전문가 웹서퍼 웹마케터 전자상거래관리사 등 ‘인터넷의 꽃’으로 불렸던 수많은 ‘웹류(類)’직업은 고개를 숙였다.
20대의 젊은 사장들이 발에 치이고 코스닥과 스톡옵션으로 벤처 갑부도 등장했지만 이제는 어디서도 얼굴을 찾아보기 어렵다.
벤처열풍 2-3년간 IT인력을 대거 양산해냈던 전문학원들의 취업현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ㅈ센터는 1999년 90% 취업률이 2000년 85%, 2001년 83%로 점점 낮아졌다. H교육원의 교육생도 1999년에 비해 반 이하로 줄었다.
지난 2001년 정신영(28)씨는 전산학과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힘들어 한 IT전문교육기관에서 6개월간 숙식하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200만원이 넘는 학비를 생각해서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자제하며 열심히 했다. 아직 IT분야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었던 때였다.
하지만 졸업 후에 생각만큼 일은 잡히지 않았고 배운 과정과는 관련 없는 서비스관리를 담당하게 됐다. “그때 수업을 같이 들었던 50명 중 20명 정도만 프로그래머로 취업했죠.” 호황을 누리던 IT전문 교육기관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거나 다른 내용의 교육으로 전환하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애널리스트의 시대는 갔다”= 주식시장을 주름잡았던 ‘애널리스트’ 역시 천정부지의 연봉을 호가하며 1990년대 후반을 제패했다.
증권시장의 갑작스런 팽창과 외국인 투자자의 유입으로 한때 거품처럼 일었던 주식시장에서 애널리스트는 이름을 알리는 대로 ‘모셔오기’ 경쟁의 대열에 유입될 수 있었다.
1~2억은 ‘껌 값’. 이름께나 있는 애널리스트를 스카웃하는 데만도 5억원이 넘는 돈이 소요됐다. 펀드매니저에 이어 잠시 동안 금융계의 귀공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증권시장에 불어닥친 찬바람은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애널리스트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한 증권회사는 2년째 채용을 중단했다.
“이제 애널리스트 시대는 갔다”는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현실이다.
신세대 구직자를 거품 속으로 몰아넣었던 가장 최근의 직장은 카드회사. ‘직업’이라고 분류할 수는 없지만 금융권에서 가장 인력흡수력이 강했던 ‘인기 직종’이었다.
“신입사원 연봉이 3000만원이 넘는데 어느 누가 마다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디 가서도 ‘카드회사’ 다닌다는 말도 못 꺼내요. 1년 전만 해도 친구들을 만날 때면 ‘부럽다’는 얘기를 질리도록 들었지만 이제는 달라요. ‘안됐다.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을 더 많이 받죠.”
유명카드회사에 다니는 최상길(가명. 30)씨. 2001년 카드회사에 들어갈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모두가 ‘성공’했다고 했다.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생각도 들고 결혼 준비도 시작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한창인 지금 연봉은 입사 때보다도 훨씬 줄어든 2000만원대. 신입사원 충원도 멈췄고 각종 복리후생도 축소됐다.
90년대 중반이후 이동통신업계의 변화 판도를 봐도 그렇다.
‘삐삐’ 회사들의 폭발적인 인기가 채 가지시도 전 ‘씨티폰’ 업체가 세력을 제압했고 ‘핸드폰’업체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최고 직장’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포화된 핸드폰 시장과 불황 여파로 더 이상 이동통신업계로의 인력 유입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최고’의 직업이 ‘그저 그런’ 또는 ‘아무것도 아닌’ 직업이 되어버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 2003년 직업전망의 화두는 ‘안정성’에 맞춰졌다. 대학생의 선호 직종 1위가 ‘공무원’이라는 조사결과나 고시 또는 의대로 취업 준비생들의 행로가 옮아가는 세태가 이를 반영한다.

◆2~3년 안에 뜨고 진다= 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직업의 생사도 리듬을 타게 되는 법.
하지만 1990년대 말 이후의 유망직종의 변화는 시간의 간극이 매우 짧다. 2-3년 안에 뜨고 지는 형상이다.
“기술이나 경제 환경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불과 5년 후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옛말이 됐다. 연봉이나 안정성 등 직업선택의 기준은 개개인에게 달려있는 것이지만 이제는 ‘한때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것이 아닌 ‘좋아해서 선택하는’ 직업이 가장 안정적인 것이 아닐까.
잡링크 김현희 실장은 “기존에 단순히 ‘좋다’는 직업을 선호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충고했다.
물론 ‘유행이 끝났다’고 ‘망한’ 직업은 아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한상근 팀장은 “거품이 빠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보통신 분야의 수요는 상당히 많다”며 청년실업을 해결해주고 흡수력이 강한 분야는 IT라고 말했다.
또한 급격한 유행은 덜하더라도 “노인 및 의료관련 직업 또는 NT BT 등 국가전략사업 분야에서는 꾸준히 새로운 유망직종이 탄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진유강 기자 fotoreise@naeil.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