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적 관계자 날씨 일정 주제로 환담
30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후 곧바로 공항응접실로 이동한 남측 이산가족 상봉단의 봉두완 단장 등 남측대표단은 허해룡 북한적십자회 부위원장 등 북측 일행과 함께 날씨와 향후 일정 등을 높고 40여분 동안 환담을 나눴다.
봉 단장은 이 자리에서 도착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북측에 성명서를 넘겨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봉 단장은 이날 평양 순안공항 안개 때문에 도착이 늦어진 것과 관련해 "평양사정 때문에 일정이 지체된 것 같다"고 말을 열었고 허 부위원장은 "안개가 낮 12시 넘어 걷혔다. 평양을 방문했던 나미비아 대통령도 당초 예정보다 3시간이나 넘겨 출발했다"고 공항사정을 설명했다.
고려호텔
100세할머니 75세 아들만나
"어머니. 나여 동길이…." 남측 방문단 중 최고령인 유두희(100·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할머니는 30일 6·25때 인민군에 징용당한 아들(신동길·75)을 이렇게 처음 만났다.
아들은 휠체어 위의 어머니를 끌어안고 놓지를 못했다. 어머니는 회한의 신음소리만을 뱉어냈다. 두 사람이 부둥켜안는 바람에 새로 장만한 보청기가 떨어졌지만 유씨는 부여안은 아들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눈물만을 흘리는 노령의 어머니가 안타까운 듯 동길씨는 "어머니, 날 모르겠어?"라면서 부르짖기 시작했다. 동길씨가 "어머니, 며느립니다"라고 했을 때 유씨는 비로소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봤다. "며느리여…"라면서 유씨는 며느리 리화순(66)씨의 손도 놓지를 못했다.
"너를 만나려고 죽지 않고 살아있었지. 이제는 죽어도 원이 없다"며 비로소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유씨가 "아들은 몇이냐"고 묻자 며느리 리씨는 "아들하나, 딸 둘입니다"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날 최고령으로 큰 아들을 만난 유씨는 6·25 당시 25세이던 동길씨가 인민군에 강제징집을 당하면서 헤어졌다. 고향인 원주시 문막읍에서 동길씨가 강제징집을 당할 때 유씨는 동길씨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 때문에 유씨는 50여년 동안 동길씨의 밥을 별도로 떠놓고 아들을 기다려왔고 아들의 결혼사진을 보면서 아픈 마음을 달래왔다.
동길씨는 최근까지 통조림공장 과장을 하다가 얼마 전 은퇴했다. 황해남도 과일군에서 살고 있는 그는 현재 북한의 고령자 보장책에 따른 지원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1차때 양보한 우원형씨
"오빠야,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어디 보자. 옛날 얼굴 그대로구나."
북측 여동생 옥희(64)씨를 부둥켜안은 우원형(67·울)씨의 두 눈에서는 연방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옥희씨는 30일 평양 고려호텔 2층에 마련된 단체상봉장에 들어선 원형씨를 보자마자 달려가 끌어안고 상봉장 바닥에 주저앉아 한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오빠가 살아있는 줄 몰랐어"라고 흐느끼는 여동생을 원형씨도 꼭 품에 안고 한동안 팔을 풀지 않았다.
북측의 기술자로서 노력훈장을 비롯해 10개의 훈장을 받아 옷에 달고 나온 남동생 인형(61)씨는 50년만에 만난 형의 한 쪽 팔을 붙들고 "오느라 얼마나 고생 많았냐"면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쳐냈다.
"나는 너희들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오는 동안에도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고 원형씨는 북측 동생들에게 털어놨다.
1차 상봉 때 장이윤씨의 109세 노모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에 동생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장씨에게 방북을 양보했던 그였기에 이 날의 만남은 더욱 뜻깊었다.
원형씨는 "장이윤씨가 소원을 풀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나도 소원을 풀었다"고 말했다.
돌아가신 부모님 소식 등 가족 소식을 나누며 원형씨는 가방에서 가족사진을 꺼내 하나하나 동생들에게 소개하고 족보도 전달했다.
환영만찬
단체상봉을 마친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30일 오후 7시30분께부터 인민문화궁전으로 이동해 량만길 평양시 인민위원장 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량 위원장은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 교환사업은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을 발양시키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건배하자"고 제의했다.
봉두완 남측 방문단장은 답사를 통해 "일정이 늦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에 맞춰 환대해 주신 북적 관계자 분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중앙 테이블에는 량 위원장과 봉 단장을 비롯해 이종렬 남측 방문단 부단장, 전금진 내각 책임참사,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허해룡 조선적십자회 부위원장 등이 자리를 잡았다.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방문단은 대부분 건강한 모습으로 단체상봉에 이어 만찬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박장윤(89) 할아버지 등 일부는 추운 날씨에 자리를 자주 이동한 탓인지 다소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해 남측 의료 관계자들이 한때 긴장하기도 했다.
이날 만찬은 가족을 상봉한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탓에 가족을 만난 얘기를 하느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정춘수(73)씨는 "한번 만났으니 이제 한을 풀었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머리를 다친 채훈묵(82)씨는 단체상봉장에서 아들 규칠(55)씨가 "싸웠냐고 물어보더라"면서 "너 보려 급히 오다가 다쳤다고 얘기해 줬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평양 공동취재단
30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후 곧바로 공항응접실로 이동한 남측 이산가족 상봉단의 봉두완 단장 등 남측대표단은 허해룡 북한적십자회 부위원장 등 북측 일행과 함께 날씨와 향후 일정 등을 높고 40여분 동안 환담을 나눴다.
봉 단장은 이 자리에서 도착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북측에 성명서를 넘겨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봉 단장은 이날 평양 순안공항 안개 때문에 도착이 늦어진 것과 관련해 "평양사정 때문에 일정이 지체된 것 같다"고 말을 열었고 허 부위원장은 "안개가 낮 12시 넘어 걷혔다. 평양을 방문했던 나미비아 대통령도 당초 예정보다 3시간이나 넘겨 출발했다"고 공항사정을 설명했다.
고려호텔
100세할머니 75세 아들만나
"어머니. 나여 동길이…." 남측 방문단 중 최고령인 유두희(100·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할머니는 30일 6·25때 인민군에 징용당한 아들(신동길·75)을 이렇게 처음 만났다.
아들은 휠체어 위의 어머니를 끌어안고 놓지를 못했다. 어머니는 회한의 신음소리만을 뱉어냈다. 두 사람이 부둥켜안는 바람에 새로 장만한 보청기가 떨어졌지만 유씨는 부여안은 아들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눈물만을 흘리는 노령의 어머니가 안타까운 듯 동길씨는 "어머니, 날 모르겠어?"라면서 부르짖기 시작했다. 동길씨가 "어머니, 며느립니다"라고 했을 때 유씨는 비로소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봤다. "며느리여…"라면서 유씨는 며느리 리화순(66)씨의 손도 놓지를 못했다.
"너를 만나려고 죽지 않고 살아있었지. 이제는 죽어도 원이 없다"며 비로소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유씨가 "아들은 몇이냐"고 묻자 며느리 리씨는 "아들하나, 딸 둘입니다"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날 최고령으로 큰 아들을 만난 유씨는 6·25 당시 25세이던 동길씨가 인민군에 강제징집을 당하면서 헤어졌다. 고향인 원주시 문막읍에서 동길씨가 강제징집을 당할 때 유씨는 동길씨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 때문에 유씨는 50여년 동안 동길씨의 밥을 별도로 떠놓고 아들을 기다려왔고 아들의 결혼사진을 보면서 아픈 마음을 달래왔다.
동길씨는 최근까지 통조림공장 과장을 하다가 얼마 전 은퇴했다. 황해남도 과일군에서 살고 있는 그는 현재 북한의 고령자 보장책에 따른 지원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1차때 양보한 우원형씨
"오빠야,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어디 보자. 옛날 얼굴 그대로구나."
북측 여동생 옥희(64)씨를 부둥켜안은 우원형(67·울)씨의 두 눈에서는 연방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옥희씨는 30일 평양 고려호텔 2층에 마련된 단체상봉장에 들어선 원형씨를 보자마자 달려가 끌어안고 상봉장 바닥에 주저앉아 한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오빠가 살아있는 줄 몰랐어"라고 흐느끼는 여동생을 원형씨도 꼭 품에 안고 한동안 팔을 풀지 않았다.
북측의 기술자로서 노력훈장을 비롯해 10개의 훈장을 받아 옷에 달고 나온 남동생 인형(61)씨는 50년만에 만난 형의 한 쪽 팔을 붙들고 "오느라 얼마나 고생 많았냐"면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쳐냈다.
"나는 너희들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오는 동안에도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고 원형씨는 북측 동생들에게 털어놨다.
1차 상봉 때 장이윤씨의 109세 노모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에 동생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장씨에게 방북을 양보했던 그였기에 이 날의 만남은 더욱 뜻깊었다.
원형씨는 "장이윤씨가 소원을 풀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나도 소원을 풀었다"고 말했다.
돌아가신 부모님 소식 등 가족 소식을 나누며 원형씨는 가방에서 가족사진을 꺼내 하나하나 동생들에게 소개하고 족보도 전달했다.
환영만찬
단체상봉을 마친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30일 오후 7시30분께부터 인민문화궁전으로 이동해 량만길 평양시 인민위원장 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량 위원장은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 교환사업은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을 발양시키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건배하자"고 제의했다.
봉두완 남측 방문단장은 답사를 통해 "일정이 늦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에 맞춰 환대해 주신 북적 관계자 분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중앙 테이블에는 량 위원장과 봉 단장을 비롯해 이종렬 남측 방문단 부단장, 전금진 내각 책임참사,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허해룡 조선적십자회 부위원장 등이 자리를 잡았다.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방문단은 대부분 건강한 모습으로 단체상봉에 이어 만찬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박장윤(89) 할아버지 등 일부는 추운 날씨에 자리를 자주 이동한 탓인지 다소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해 남측 의료 관계자들이 한때 긴장하기도 했다.
이날 만찬은 가족을 상봉한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탓에 가족을 만난 얘기를 하느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정춘수(73)씨는 "한번 만났으니 이제 한을 풀었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머리를 다친 채훈묵(82)씨는 단체상봉장에서 아들 규칠(55)씨가 "싸웠냐고 물어보더라"면서 "너 보려 급히 오다가 다쳤다고 얘기해 줬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평양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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