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불로소득 차단의지 약해

부동산 투기와 투자 경계 애매 … 시세차익 세금 환수 강화해야

지역내일 2003-05-26 (수정 2003-05-26 오후 5:10:53)
‘부동산 투자는 괜찮지만, 투기는 안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이유는 바로 불로소득(不勞所得)의 차단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 없이 투자와 투기라는 이중 잣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부동산 투기를 엄단하겠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 현실이 있기 때문에 투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불로소득의 전형 ‘부동산 투자’ = 지난 5월 23일 김진표 재경부장관은 주택가격 안정대책을 발표하며 “부동산 투기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전인 4월 18일 건교부는 ‘재건축 아파트 투자 유의사항’이란 보도자료를 내고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할 경우 주의할 사항을 ‘친절하게’ 안내했다.
투기는 안되지만 투자는 괜찮다는 정부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기와 투자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투기란 “시세 변동을 예상하여 차익을 얻기 위하여 하는 매매 거래”이고, 투자란 “이익을 얻기 위해 어떤 사업에 미리 돈을 대는 일”로 정의된다. 투기든 투자든 시세 차액을 통한 이익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개념인 것이다.
다만 상식적인 구분은 투자는 생산에 기여를 하지만 투기는, 그렇지 않고 이익만을 노릴 때 구분해서 쓰고 있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부동산 투자는 생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투기와 똑같다.
생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 단지 땅을 샀다가 되파는 행위를 투자란 이름으로 허용하는 것 때문에 불로소득을 바라는 부동산 투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지지부진한 불로소득의 세금징수 = 자본주의 아래서는 주택이나 토지도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투자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전형적인 불로소득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를 세금으로 환수하고 있다.
김진표 재경부장관도 23일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제거하기 위해 부동산 과다보유자에 대한 조세 부담을 무겁게 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곧이어 “현재의 부동산 보유과세는 과표 현실화율이 낮고 복잡한 과세체계 등으로 인해 조세형평성이 상실되고, 부동산투기 억제 기능이 미흡하다”고 시인했다.
우리나라의 조세체계가 부동산 투자를 통해 불로소득을 챙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가 ‘온 국민의 투기열풍’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회 병폐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 노태우 정부보다 개혁적이려면 =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환수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실거래가로 양도세를 과세하는 것과 보유세의 과표를 현실화하는 것이 공통적으로 거론된다.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투기지역에 한해 실시하고 있는 실거래가 과세를 전 지역으로 확대해 실시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 보유세는 지난해 9월 4일 재경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건물에 부과되는 재산세의 경우 강남구에서 과표가 실거래가의 10%에 불과한 예가 지적됐고, 토지에 부과되는 종합토지세 과표는 공시지가의 33%를 적용하고 있어 시가와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비현실적 과표를 현실화하기 위해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89년 군사정권으로 불리던 노태우 정부는 공시지가를 국세 및 지방세의 부과기준으로 삼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비록 국회의원들의 집요한 반발로 법안이 좌절되기는 했지만 투기 억제 의지를 밝힌 것으로 당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서민을 위한 정부임을 내세우는 노무현 정부가 노태우 정부보다 개혁적임을 내세우려면, 적어도 노태우 정부가 추진했던 ‘공시지가의 과표화’를 위한 노력을 보야 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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