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신당창당이 정치개혁인가(손혁재 2003.06.18)

지역내일 2003-06-16 (수정 2003-06-18 오후 4:17:43)
신당창당이 정치개혁인가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최근 정치권은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리모델링에 앞서가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대선 패배 이후 한동안 정신적 공황에 빠졌던 한나라당은 새로운 당 개혁안에 따라 새로운 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 있다. 민주당 해체와 신당창당까지 논의가 나아갔던 민주당은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 논의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을 뿐 아직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리모델링의 성공과 실패는 전적으로 당 대표 경선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나오는 우려처럼 ‘줄 세우기''와 금품 및 향응제공 등으로 경선이 혼탁하게 치러진다면 한나라당의 리모델링은 실패할 것이다. 개혁에 실패한다면 한나라당은 영남지역에 과도하게 기대는 기득권 수구정당의 멍에를 벗지 못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정권재창출에 성공했으면서도 한나라당보다 더 어려운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민주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개혁신당파와 리모델링하자는 통합신당파간의 감정적 골은 깊을 대로 깊어졌다. 지난 대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바탕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명분은 사라져 버리고 당권다툼만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통합신당이 되건 개혁신당이 되건 신당 창당의 프리미엄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상처뿐인 영광만이 남는 셈이다.
사실 민주당은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 자생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조심스럽게 도입했던 국민참여경선이 뜻밖의 흥행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정치권 당권경쟁, 간판 바꾸기로 갈등 증폭
그러나 경선 직후부터 시작된 ‘노무현 흔들기’와 대선 때의 소극적 선거운동으로 당내 갈등이 심화되었고 민주당은 창당 4년 만에 당 간판을 내릴 운명을 맞고 말았다. 이른바 ‘친노’ 진영은 ‘반노’ 진영의 적전 분열은 대선 이후 민주당이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음을 이미 예고한 것이었다. 작년에는 정몽준 의원에게 당을 갖다 바치려는 어이없는 일이 있었고, 이번에는 원내 의석 2석의 꼬마 정당인 개혁국민정당에게 빨리 신당을 만들라고 재촉을 당하고 있으니 집권당의 체면이 우습게 되어버렸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이렇게 리모델링(또는 재건축)에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정치개혁의 차원에서 정당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정당의 뿌리깊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 기득권을 버릴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정책이나 이념, 노선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에 압도적인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카리스마적 1인 보스를 중심으로 모인 무원칙한 연줄정당의 성격이 강하다. 1인 보스의 사당에서는 당내민주주의가 실종되어 정당의 운영과 의사결정이 비민주적으로 이뤄졌다. 정당의 창당과 해산, 정당간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정치인의 당적 이동도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무원칙하게 일어났다. 당원의 지지와 참여 없이 정경유착과 사조직에 기초해서 소수 기득권층이 멋대로 운영하는 역사 없고 뿌리 없는 과두정당(oligarchical party)이 되고 말았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정치를 사실상 독점하는 선거정당의 성격이 강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권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권력불임의 정치결사체였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을 권력창출의 사례로 볼 수 있지만 실상은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정당보다는 ‘준비된 지도자’와 특정지역에 의한 권력창출의 성격이 더 강했다.
한국정당의 개혁 방향은 망국적 지역대결구도의 해소와 경직된 보수정당체제의 탈피가 되어야 한다. 인적·물적 토대를 제대로 구축한 자생정당이 되기 위해 먼저 진성 당원의 당비에 의한 정당재정의 자립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념,정책따라 새판 짜고 정당개혁해야
재정의 자립과 민주적 운영이 전제되지 않는 정당의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또 시민적 토대를 바탕으로 이념과 정책, 노선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대중적 정책 정당의 양상을 지녀야 한다. 정책의 차별성을 바탕으로 한 정당대결구도가 만들어지고 보수 정당 뿐만 아니라 혁신 정당이 병존할 때 정당정치가 올바르게 이뤄질 수 있다.
정치개혁은 시급한 과제이다. 정치개혁의 과제 또한 정당개혁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신당을 창당하는 것, 또는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의 새판짜기를 하는 것 자체가 크게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당개혁 없이 간판만 바꿔 달거나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이나 명분 없는 합종연횡은 오히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더욱 키울 것이다.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신당을 창당한다면서 통합신당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정치구도를 그대로 끌고 가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바람직한 신당논의의 방향은 눈앞의 선거를 겨냥한 제 정파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개혁과제를 중심으로 한 정책정당의 창당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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