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 개포 시영재건축 무엇이 문제인가?

"아저씨! 집이 깨지고 있어요" 강남구 예비안전진단 "엿장수 맘대로"

지역내일 2003-04-22
강남구 대치동 시영아파트(1970세대)의 주민들은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고있다.
아파트 단지 내 곳곳에 도시가스가 새고, 벽은 가로와 세로의 균열이 진행되고 있으며 아파트 옥상의 기와는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아파트 입구 계단은 균열이 진행돼 이미 주저앉아 있다. 벽면은 보기에도 곧 무너질 것 같아 보는 이로 하여금 아찔함을 느끼게 한다. 벽 속의 전화선이 끊어져 외부로 선을 별도로 연결해야하는 곳도 여러 곳이며, 누수로 인한 누전으로 화재가 수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4년 동안 단지 내 300㎜ 도시가스관이 파열돼 15차례나 보수공사를 실시했으며 현재도 한 곳은 보수 중이다. 아파트 내벽은 누수로 인한 얼룩이 길게 이어져있으며 계단과 벽의 이음 부분은 균열이 진행되고 있다.
손봐야 할 곳이 널려 있는 상태다. 아파트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관계서류를 펼쳐 보이며"최근 2년 간 관리사무소가 자체적으로 하자 보수한 건만 5200건에 달한다"고 밝히며 "지금도 계속 크고 작은 보수공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엄두가 안 난다"고 토로했다.
◇이해할 수 없는 ''재건축 불가'' 판정 = 하지만 작년 9월 31일 강남구가 위촉한 심의위원들은 예비안전진단에서 ''재건축 불가 판정''을 내렸다. 이유는 ''과다한 수선·유지비가 소요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주거환경이 재건축이 불가피 하다고 판단키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루가 불안한 주민들로서는 참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구나 불과 3개월 전, 바로 옆에 위치한 대치동 주공1단지가 심의를 무난히 통과한 상태였기 때문에, 상태가 훨씬 더 안 좋은 시영아파트는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인접한 두 단지를 둘러본 기자 역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시영아파트가 훨씬 더 노후해 보였으며, 수선·유지를 하려면 단지 전체에 가스와 수돗물 공급을 중단해야하는 등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며 현실적으로 수선·유지가 가능한지 조차 의문스러워 보였다.
◇전문가 "정밀조사 하면 D등급" = 해서 전문가에게 진단을 의뢰해보기로 했다.
중앙안전기술연구원 윤종문 원장(구조기술사)은 "조립식주택의 중요 포인트는 연결기술인데 당시 처음 도입되다보니 누수 등 많은 문제점이 야기 됐다"면서 "이 공법은 구조적으로는 수평력이 약한 측면이 있는데 쉽게 말하자면 태풍이나 지진 등에 약한 구조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80년대 초 중반에 조립식 공법으로 지어진 아파트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한다면 대부분 D등급 이상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단지는 1998년 조합이 용역을 의뢰해 실시한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재건축가능 등급)이 나왔으며, 최근 E등급을 받은 고덕 주공1단지 역시 조립식공법으로 지어진 아파트여서 윤원장의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강남구 심의기준은 "엿장수 마음" = 1983년 조립식공법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준공 당시 부실시공으로 관계공무원 13명이 징계를 받았고 1년간에 걸친 하자보수 후 겨우 준공을 받은 곳이다. 1983년부터 입주해 살고있는 박 모씨는 "84년에 지어진 고덕 주공1단지는 정밀안전진단에서 E등급(즉각 사용금지 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우리는 사람 몇몇이 와서 휘 둘러보고는 재건축 불가라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니냐"며 "강남구의 심의기준은 엿장수 마음이냐" 분통을 터뜨렸다. 이승희 개포시영아파트재건축 조합장은 "강남구청이 은마아파트의 안전진단 통과에는 열을 올리면서 정작 상태가 심각한 시영아파트에 대해서는 찬밥 대우를 한다"며 "3월 한달 동안 은마아파트는 두 번에 걸쳐 예비안전진단을 실시했지만 3월 재진단을 요청한 우리에게 온 회신은 순서가 많이 밀려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은 수 차례 구청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주무국장인 주택국장조차 현장 한번 방문한 적이 없다
취재 중 6살박이 여자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다가와서는 "아저씨! 우리 집이 깨지고있어요"라고 얘기한 뒤 달아났다. 아이의 이 한마디는 현장을 돌면서 느낀 점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재건축 추진을 방지하려고 강화한 예비안전진단이 자치구청에 의해 멋대로 운영되면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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