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웠던 시절을 저축 삼아 사는 사람

"아내는 잘 모르는 일이랍니다"

지역내일 2000-11-04
어려웠던 시절을 저축 삼아 사는 사람
-녹양동 김근창씨
"아내는 잘 모르는 일이랍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려웠던 시절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려웠던 시절을 저축 삼아 이웃과 항상 나누며 사는 사람이 있다. 녹양동 축협 건물 지하에 자리한 중부유통, 이곳에서 야채 코너를 맡고 있는 김근창씨.
특별한 마음이 있는 게 아니었고 잘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었다. 6남매 중 셋 째인 김씨가 7살 때 가족 모두 고향 해남에서 상경하게 된다. 어머니가 두부장사를 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식이었고, 간장 된장이 반찬의 전부였던 시절.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통업체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다. 그 후 두 사람은 결혼해 아이(딸 셋)를 낳아 기르며 집 장만하느라 뒤도 안 돌아보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물건을 잔뜩 사러 온 사람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서울역 노숙자에게 김밥을 싸다 줄 재료라고 해서 자신도 모르게 선뜻 당근 한 상자를 건네게 되었다.
순간 예나 지금이나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준 서울역(대합실. 지하도)이 눈앞에 펼쳐졌다.
서울역과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혼 초 잠시 실직하고 있을 때 집에는 이야기도 못하고 용돈 천 원을 타 갖고 배회하곤 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종일 신문 한 장 사 보고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저녁 무렵이 되면, 배는 고프고 수중에는 집에 갈 차비도 없다. 그러면 면목동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서 갔다. 그 게 인연이 돼 생활하면서 이웃을 조금씩 돌아보게 됐다. 소록도와 거동이 불편한 무의탁 노인에게 조금씩 지원하고, 다른 곳에는 형편에 따라 물건을 지원하기도 한다.
벌어들이는 몫의 일정부분은 지역사회에 환원해야 하고 자신의 생계가 확실하다면 이웃과 나누는 몫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내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알아도 좋아할 겁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웃음을 머금고 돌아서는 김과장이었다.
신성자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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