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이승우 산업팀장/경제대란설 막을 방법없나

지역내일 2000-10-25



12월 경제 대란설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재계는 說(설)이 아닌 실제상황임을 현장에서 직
감하고 있다. 때문에 기업마다 얼마를 벌어들이느냐 보다 어떻게 지탱하느냐의 연명에 놓여
있을 만큼 화급해졌다. 만나는 재무담당 임원마다 살얼음을 걷는 것보다 힘겹다고 말한다.
지금 기업의 생존문제가 우리경제를 고비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IMF 때 경험했던 경제위기의 징조가 현재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 서곡은 현재 당면한
기업의 자금난이다. '한빛은행 불법대출'과 '정현준 게이트'로 이어지는 금융사고는 기업대출
을 사실상 거절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다. 제1, 제2금융권은 값진 담보를 제공하겠다는 기
업대출요청도 '노'라고 단호히 말한다. 심지어 경제위기를 우려해 4대재벌그룹의 대출자금까
지 빨아들이고 있다. 자금줄의 한 가닥 희망이었던 사채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사채업자나
엔젤투자자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나머지 기업에 대한 자금사정은 구태여 열거할 군말
이 필요 없다.
기업의 눈덩이 채무가 경제위기의 시한폭탄으로 다가오고 있다. 30대그룹이 예외 없이 갚아
야 하는 채무는 12월 한달 동안 8조7000억원, 3월까지 도래하는 회사채만도 26조원을 육박
한다. 공장과 부동산을 팔아치우고 경비도 아끼고 계열적자기업을 매각한다손 치더라도 갚
을 제간이 없다. 주식시장이 붕괴되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환사채의 외국자본 도입
은 꿈도 못 꾼다. 째깍 째깍 경제대란의 시간을 재촉하고 있다.
수출채산성 악화도 우리경제를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치닫게 한다. 생산원가를 자극하는 원
부자재 값 폭등이 기업들의 수출의욕을 싸늘하게 식도록 하고 있다. 반도체 등 극히 일부제
품을 제외하고 국제장터에 내다 팔아봐야 적자다. 실제 상장기업의 35%이상이 이자도 못
버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설령 이익을 낸다하더라도 영업이익보다는 저금리의 혜
택을 톡톡히 본데서 기인하고 있다. 때문에 대다수 업종의 기업들은 오히려 생산량을 줄이
는데 몸살이다.
지금과 같은 적자수출이 계속된다면 무역수지의 적자는 불가피하다. 거시경제 기조가 뿌리
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고작 환율을 올려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한다는 졸속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인위적 환율 조정은 경제의 득보다 종국엔 실이 더 많음을 알면서 실
책을 선택했다.
정부의 경제실책이나 신뢰성 상실도 시장을 불안으로 몰고 있다. 증시를 패닉으로 몰아넣는
주된 요인은 현대와 대우다. 현대의 유동성 위기 때 경제파급을 우려해 자금을 어쩔 수 없
이 지원했으면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수수방관자세로 돌
아섰다. 대우처리에는 손도 못 대고 있다. 부실기업 처리도 시장의 신뢰성을 추락시켰다. 처
음 리스트에는 400개가 올라왔으나 정치권의 압력이나 퇴출기업들의 로비공세로 지금은 10
여개로 축소됐다. 원칙이 무시됐다. 부실기업정리는 대란을 막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 하
더라도 필요조건이고 최소한 시발점이다.
정부의 기업개혁 드라이브 의지에도 제동이 걸렸다. 꺾인 개혁의지는 시장의 신뢰를 떨어
뜨리고 있는 것이다. 재계가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개혁이 물 건너가지 않았나 하
는 안타까움이다. 지배구조개선은 재벌의 입김과 로비에 밀려 유야무야이다. 경제단체들이
경제장관들을 초청, '조찬이다' '오찬이다' 하는 식사대접으로 정부기업정책을 몰아붙이고 있
다. 재벌들에게 빚을 줄이고 적자기업도 자력으로 없애 국가경쟁력을 강화해달라고 설득하
려 찾아간 장관이 어찌된 영문인지 설득을 당하고 만다. 간담회는 경제위기를 초래한 요체
가 재벌이 아닌 정부와 금융의 탓으로 돌려지기 일쑤다.
국제통화기금(IMF) 서울사무소가 연초에 "1년 동안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지 않으면 시장
신뢰를 상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충고는 딱 들어맞았다. 실물부문 부실과 금융부실이 악
순환 되는 부실의 고리를 끊지 못해 경제는 분명 좌초되고 있다.
결국 대란을 막을 방법은 하나다. 정부와 기업이 피를 흘려 썩은 경제의 환부를 도려내는
길밖에 없다. 그래야 외국자본이 붙고 증시도 활성화되어 기업의 자금줄도 터진다. 정부가
몸이나 사리고 기업은 전근대적인 차입경영에 계속 의존하려는 생각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근거 없는 희망은 3년전으로 회귀할 수 도 있음을 명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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