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사장 어디 갔어!”

지역내일 2002-11-27 (수정 2002-11-29 오후 1:17:13)
자다가 일어나면 다시 잠이 잘 오지 않는 체질이다.
집사람을 깨우기 싫어 거실에 나와 서성이는데 아내가 안방에서 나오며 묻는다.
“그 사건 때문에 그런 거예요?”

“사장은 어디 갔어? 내 친구가 죽었단 말이야!!”
유족 측이 동원한 청년들이 사무실에 난입할 때 사장은 다행히(?) 방에서 나가 외근 나가던 참이었다.
외주업체 직원이 시스템 점검 중 감전사고로 사망, 외주업체 사장이 현장에서 유족과 협의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게 며칠 전이었다.
산업재해보험이나 기타 현장에서 가입하는 보장성 보험액 등으로는 유족과 타협하기 어렵고 원청사인 당사가 일부 지원해주어야 풀릴 것이라는 보고가 있어 고심 중인 터였다.
사람값을 돈으로 따진다? 참으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법과 현실이 요구하는 사람값과, 유족이 감정적으로 느끼는 값(?)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 갭을 줄이기 위해 유족이 드디어 힘(?)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관리 담당은 당분간 사외에서 근무하면서 외주 업체와 유족들간의 협상 결과를 지켜보라고 조언하지만 사장이 이름도 성도 모르는 자들의 행패 때문에 회사를 비워야 한다면 ‘개가 웃을 일이다’싶기도 하나 그네들의 폭언과 폭행이 두렵기도 한 터였다.
아니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따져? 돈으로 보상하라는 말야? 어이없긴 하지만 흥분할 일은 아니다. 난감한 일이다.
“당신 자식이 결혼하기도 전에 현장에서 죽었다고 생각해봐요! 돈이 문제예요?”
유족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집사람은 다그친다.
“이 사람아 나는 뭐 나무로 만들었어? 나도 가슴이 아파. 가슴이 아파서 잠이 오지 않는단 말이야.”
돈이 얼마냐보다는 기업 한다는 자가 현장에서 난 사고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느냐, 어떻게 재발방지를 해야 하느냐가 개별협상보다 중요하다고 강변하며 아내의 의견을 비켜가려 하지만 어디에선가 내 모습을 지켜볼지도 모르는 망자에게는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날이 밝도록 생각에 생각을 더해봐도 딱부러지는 결론은 없고, 뜬눈으로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꼭 해결해주고 오세요!!”

/ 권형기 한라산업개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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