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DJ 귀거래사를 위한 옹호론(안병찬 2003.02.19)

지역내일 2003-02-19 (수정 2003-02-19 오후 5:44:34)
DJ 귀거래사를 위한 옹호론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아, 이제 정말 DJ가 현장에서 그 모습이 사라지는군요. 아쉽습니다. 헌신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김대중. 역사가 평가하겠지요.’
인터넷 정치평론 사이트 게시판에 뜬 글이다. 김대중의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쓸쓸하다. 지난 주 국회의장단을 비롯하여 상임위원장을 초청한 청와대 고별 만찬 때도 그의 표정에는 검은 그늘이 져있었다. 그는 대북비밀송금 문제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날 만찬에는 국회 상임위원장 18명 가운데 12명이 빠졌다. 특히 한나라당 소속 상임위원장은 단 2명(11명 중)이 참석했다. 아무리 세상이 수상하다손 치더라도 퇴임하는 대통령에게 결례가 아니냐하는 비판이 나올만하다. 이날 박관용 국회의장은 “5년 간 고생하셨다. 모든 공과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김대중 대통령 스스로도 최근 각의에서 ‘역사가 평가를 내릴 것’이라는 말을 했다.
우울한 김대중 대통령의 얼굴을 보면 두 사람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떠오른다. 우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마델라이다. 그는 인종차별을 극복할 민주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백인 총리 데 클레르크와 긴밀하게 협조하며 남아공을 화합의 사회로 이끌었다. 그 공로로 1993년 데 클레르크 총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바웬사 모형과 만델라 모형 사이에서
이듬해 실시된 남아공 최초의 전인종 총선에서 만델라는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첫 흑인 대통령이 된 그는 ‘탕평’의 큰 정치를 현실에 적용했다. 그 하나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한 과거 청산 방식이다. 설사 흑백분리정책(아파르트하이트)에 따라 저지른 범죄자라도 진실을 털어놓으면 사면하고 화해한 것이다. 만델라의 퇴장은 더욱 돋보였다. 그는 두 번째 다인종 총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했다. 그러자 정치적 아들인 타보 음베티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명예롭게 물러났다.
나는 김대중 정권 초기에 그가 ‘만델라 모형’을 배워 탕평의 정치를 실천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김대중의 집권 후기에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만델라 모형’으로 성공할 것인가, ‘바웬사 모형’으로 실패할 것인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적신호도 보내봤다. 노벨 평화상을 탈 때까지만 해도 김대중은 만델라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지금도 김대중을 만델라와 견준 해외 언론 보도를 자랑하고 있다. “감옥에서 대통령에까지 이르는 긴 인생역정이 넬슨 대통령에 견줄만하다.”(영국의 더 타임스지)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알려진 김 대통령은 취임 이후 2년간에 한국경제를 재건하고 민주주의적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뉴질랜드의 더 도미니언지) 같은 기록들이다. 지금 김 대통령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진 것은 남북화해 노선을 추진하면서 올바른 수단과 방법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등한시하고 결과에만 집착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폴란드 ‘왕년의 영웅’인 레흐 바웬사는 만델라와 다르다. 그는 폴란드 자유노조의 창설자로 민주화 혁명을 주도해 198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90년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총리인 마조베츠키와 대결해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됐다. 문제는 대통령이 된 후였다. 그의 통치는 국민적 도취감을 환멸감으로 바꾸어버렸다. 경제 기적도 정치적 안정도 없었다.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 후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민주좌파동맹 후보에게 연거푸 참패했지만 2년 후의 대선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한다.
그런 바웬사가 지난 2월 5일 ‘세계평화정상회의’에 참석하러 방한하여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대북 송금 파동 때문에 “평화를 얻고도 수난 받는 김대중 대통령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실패한 대통령인 바웬사는 ‘수난 받는 김대중’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 모양이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김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말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은 우뚝 선 성취이다
본래 김대중은 사물을 명쾌하게 처리하는 정치 체질이 아니다. 용의주도하여 ‘파격이 없는 정치인’이라는 평을 듣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문제에 관한 한 그는 쾌도난마(快刀亂麻)의 용단을 내렸다. 개인적으로 통일의 이상을 품지 않았다면 실행하지 못했을 대사(大事)다.
필자는 역사가 김대중의 대북평화정책 추구를 올바르게 평가하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북정상회담이 세상을 바꿨다”고 보는 햇볕정책 지지자와 생각을 같이한다. 한 네티즌 토론자는 “정치인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올바른 수단과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고 반론한다. 그나마 김대중이니까 일관된 민족주의적 통일관을 이 정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는 과오가 있다. 하지만 우뚝한 공로는 따로 있다. 김대중은 만델라의 성공과 바웬사의 실패 사이 어느 점에 서있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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