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교육 과열, 이대로 둘 것인가
김옥조 칼럼니스트 한림대학교 객원교수
한국의 조기교육 과열이 급기야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과도한 공부부담에 짓눌려 지나치게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최근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실태를 심의, “한국은 입시경쟁이 너무 치열하여 청소년들이 제대로 놀 권리를 누리지 못해 정신적·신체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곧 한국 정부에 개선을 권고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유엔 기구의 이 같은 지적은 오늘날 사교육 대란의 기폭제가 된 2000년 4월의 ‘과외전면해금’ 헌법재판소 결정과 사뭇 다른 관점이어서 신선하다. 헌재가 과외금지를 주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권 제한이라는 점에 착안하고 있는데 반해 유엔은 이로 인한 입시경쟁을 청소년들의 놀 권리 침해라는 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청소년들이 누구인가. 이들이 곧 나라의 동량이 될 사람들 아닌가. 이들이 과도한 스트레스에 찌들려 심신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때 입을 국가·사회적인 손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다. 그런 높은 교육열로 짧은 기간에 나라를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올려놓았다. 6.25 전쟁 중에도 학교를 군인들에게 내어주고 이리저리 천막을 옮겨가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계속했던 민족 아니던가.
“입시경쟁이 청소년 성장 막아” 유엔 경고
이러한 교육열은 비록 나는 헐벗었지만 자식만은 회전의자 돌리며 도장 팡팡 찍게 하겠다는 부모들의 한까지 겹쳐 영·독·불의 2배가 넘는 대학진학률(2001년 70.5%)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교육을 중시하는 유교 영향에다가 단일민족이 상징하는 유별난 평등의식도 교육 과잉을 강력히 떠받쳤다. 앞집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면 우리 집 아이는 태권도에 피아노까지 배워야 직성이 풀리는, 거의 맹목에 가까운 부모들의 집념에 2000년의 과외 전면해금은 제어불능의 파장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작년 아파트 값 폭등의 진앙지도 학원이 많은 서울 강남일대였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 사회 모든 문제점의 한복판에 교육과열이 버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성들의 출산이 줄어들어 경제활동인구가 줄고 있다. 결혼만 하고 아이는 갖지 않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 늘고 있다. 젊은 부부들의 이민이 늘고 있다. 아이 교육 뒷바라지를 위해 부인과 헤어져 혼자 사는 외기러기 남편이 늘고 있다. 이 모두 사교육비 증가, 과도한 교육긴장이 그 주된 이유이다.
노무현 정부의 내셔널 아젠다가 될 행정수도이전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교육문제 해결 없이는 권력은 분산되겠지만 인구는 그대로이고 빨래 감 들고 다니는 교통량만 더 늘어난다. 공무원과 건물만 가고 가족은 남아 서울의 좋은 학교에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일류대학 지방이전을 서울 집중의 해결책의 하나로 주장한다면 너무 낭만적이다. 교수·교직원 자녀들이 다닐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그 초·중·고교의 교사들 자제가 다닐 학교도 서울 수준을 보장하지 않으면 결국 가족은 서울에 남게 된다.
이 같은 우리 민족 특유의 교육열을 감안한다면 그동안 교육당국의 대응은 너무 안일하다. 학부형은 사교육비 부담으로 나라를 등지기도 하고 어린 여학생이 학원비를 벌려고 몸까지 파는 일이 일어났으며 국제사회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과도한 교육 스트레스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이렇다할 대책이 없다. 오죽했으면 5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 복권 당첨자의 당첨소감 첫마디가 “애들 학원비 걱정 덜게 되어 기쁘다”였을까.
망국병 ‘고액 과외’ 강력히 규제해야
그런 점에서 2000년 헌재의 과외금지 위헌결정도 문제가 있다. 헌재도 인정하고 있듯이 “사교육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자기조절능력을 상실했다.” 자율조절이 안되면 타율이 들어가야 한다. 즉 국가가 국민들의 교육수요 과잉을 적절히 관리했어야 한다. 헌재도 국가기관의 하나다. 과외를 하고 안하고는 학생과 부모의 권리라고 파악한 헌재는 아무리 공부도 좋지만 청소년에 적당히 놀 자유도 있다는 선진사회의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고액 과외와 같이 “중대한 사회적 폐단을 가져올 과외는 제재할 수 있다”는 헌재의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국제사회의 핀잔을 자초한 정부는 더욱 비난받아도 싸다. DJ의 교육 대통령 자임이 부끄럽다.
김옥조 칼럼니스트 한림대학교 객원교수
김옥조 칼럼니스트 한림대학교 객원교수
한국의 조기교육 과열이 급기야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과도한 공부부담에 짓눌려 지나치게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최근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실태를 심의, “한국은 입시경쟁이 너무 치열하여 청소년들이 제대로 놀 권리를 누리지 못해 정신적·신체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곧 한국 정부에 개선을 권고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유엔 기구의 이 같은 지적은 오늘날 사교육 대란의 기폭제가 된 2000년 4월의 ‘과외전면해금’ 헌법재판소 결정과 사뭇 다른 관점이어서 신선하다. 헌재가 과외금지를 주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권 제한이라는 점에 착안하고 있는데 반해 유엔은 이로 인한 입시경쟁을 청소년들의 놀 권리 침해라는 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청소년들이 누구인가. 이들이 곧 나라의 동량이 될 사람들 아닌가. 이들이 과도한 스트레스에 찌들려 심신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때 입을 국가·사회적인 손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다. 그런 높은 교육열로 짧은 기간에 나라를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올려놓았다. 6.25 전쟁 중에도 학교를 군인들에게 내어주고 이리저리 천막을 옮겨가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계속했던 민족 아니던가.
“입시경쟁이 청소년 성장 막아” 유엔 경고
이러한 교육열은 비록 나는 헐벗었지만 자식만은 회전의자 돌리며 도장 팡팡 찍게 하겠다는 부모들의 한까지 겹쳐 영·독·불의 2배가 넘는 대학진학률(2001년 70.5%)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교육을 중시하는 유교 영향에다가 단일민족이 상징하는 유별난 평등의식도 교육 과잉을 강력히 떠받쳤다. 앞집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면 우리 집 아이는 태권도에 피아노까지 배워야 직성이 풀리는, 거의 맹목에 가까운 부모들의 집념에 2000년의 과외 전면해금은 제어불능의 파장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작년 아파트 값 폭등의 진앙지도 학원이 많은 서울 강남일대였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 사회 모든 문제점의 한복판에 교육과열이 버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성들의 출산이 줄어들어 경제활동인구가 줄고 있다. 결혼만 하고 아이는 갖지 않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 늘고 있다. 젊은 부부들의 이민이 늘고 있다. 아이 교육 뒷바라지를 위해 부인과 헤어져 혼자 사는 외기러기 남편이 늘고 있다. 이 모두 사교육비 증가, 과도한 교육긴장이 그 주된 이유이다.
노무현 정부의 내셔널 아젠다가 될 행정수도이전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교육문제 해결 없이는 권력은 분산되겠지만 인구는 그대로이고 빨래 감 들고 다니는 교통량만 더 늘어난다. 공무원과 건물만 가고 가족은 남아 서울의 좋은 학교에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일류대학 지방이전을 서울 집중의 해결책의 하나로 주장한다면 너무 낭만적이다. 교수·교직원 자녀들이 다닐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그 초·중·고교의 교사들 자제가 다닐 학교도 서울 수준을 보장하지 않으면 결국 가족은 서울에 남게 된다.
이 같은 우리 민족 특유의 교육열을 감안한다면 그동안 교육당국의 대응은 너무 안일하다. 학부형은 사교육비 부담으로 나라를 등지기도 하고 어린 여학생이 학원비를 벌려고 몸까지 파는 일이 일어났으며 국제사회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과도한 교육 스트레스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이렇다할 대책이 없다. 오죽했으면 5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 복권 당첨자의 당첨소감 첫마디가 “애들 학원비 걱정 덜게 되어 기쁘다”였을까.
망국병 ‘고액 과외’ 강력히 규제해야
그런 점에서 2000년 헌재의 과외금지 위헌결정도 문제가 있다. 헌재도 인정하고 있듯이 “사교육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자기조절능력을 상실했다.” 자율조절이 안되면 타율이 들어가야 한다. 즉 국가가 국민들의 교육수요 과잉을 적절히 관리했어야 한다. 헌재도 국가기관의 하나다. 과외를 하고 안하고는 학생과 부모의 권리라고 파악한 헌재는 아무리 공부도 좋지만 청소년에 적당히 놀 자유도 있다는 선진사회의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고액 과외와 같이 “중대한 사회적 폐단을 가져올 과외는 제재할 수 있다”는 헌재의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국제사회의 핀잔을 자초한 정부는 더욱 비난받아도 싸다. DJ의 교육 대통령 자임이 부끄럽다.
김옥조 칼럼니스트 한림대학교 객원교수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