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지키도록 내조하겠다”

부인 권양숙씨 … 조용한 성품에 탁월한 유머감각 돋보여

지역내일 2002-12-20 (수정 2002-12-20 오후 5:28:54)
“얼굴도 모르는 장인 어른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하겠습니까.”
지난 4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때였다. 경쟁후보측에서 6·25때 장인이 부역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공격을 해오자 노무현 당선자는 이렇게 맞받아쳤다. 당선보다 낙선이 많은 정치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였던 아내에 대한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권양숙(55) 여사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던 건 그때부터였다. 1988년 당선자가 청문회 스타로 부각됐을 때 ‘노무현의 아내’는 주목받았지만 권 여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스스로가 “(당선자는) 세상을 개혁하는 바람이었고 나는 가정을 지키는 바위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말할 정도다. 남편이 바깥에서 어떤 활동을 하건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낼 뿐 정치인의 아내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보다는 가정과 아이들 지키기에 열중해왔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당선자가 “여보 나 좀 도와줘”라고 엄살을 부렸을까.
권양숙 여사와 노무현 당선자가 만난 건 고향인 경남 진양에서다. 읍내에서도 4km 가량 떨어진, 40가구도 살지 않는 시골마을. 초등학교를 마친 뒤부터 부산에서 살고 있던 권 여사는 할아버지 병구완차 고향을 찾았고 당선자는 마침 군복무를 끝내고 돌아와 있었다. 당시 동네에 젊은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서로 책을 빌려 읽으면서 “눈이 맞았다”.
‘서울 법대’를 나온 사람도 합격이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해 동네 사람들에게조차 손가락질 받던 청년을 권 여사의 어머니는 영 달가워하지 않았다. 옥사한 아버지를 둔 처녀를 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시험에 합격한 뒤 임관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냐는 염려였다.
어렵게 가족들을 설득해 73년 결혼을 하고 75년 남편이 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너무 절절하게 합격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걸쳐 78년 변호사 개업후 조세전문변호사로 이름을 날릴 때까지가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다. 밤에 피는 박꽃을 보고 권 여사를 떠올릴 정도로 ‘눈에 콩깍지가 씌어있던’ 남편은 ‘요트와 자그마한 별장 하나’를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아내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아이들과 놀아줄 정도로 자상한 아빠였다.
남편은 81년 부림사건 변론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섰고 88년 국회의원 배지를 달며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활달한 성품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달갑지 않다는 권 여사에게 정치인 아내 역할은 “체질적으로 잘 맞는 편이 아니”다. 그냥 변호사로만 만족하고 살자고 남편을 설득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92년 14대 총선과 95년 부산시장 선거, 96년 15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마했을 때도 그랬다.
“남편이 이웃이나 친척 친구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그런 (지역주의)정서에 편승해서 편하게 정치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정치)할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본인이 먼저 ‘내가 죽기 전에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나가야 되고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게 정치인 몫이다’하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남편한테 왜 그러냐고 묻지도 못했어요.”
당선자가 국회의원일 때는 그래도 편했다. 친숙한 곳에서 지역 주민들하고만 교감하는 것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대선 경쟁이 시작된 국민경선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대통령을 하려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모든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솔직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검증받고자 했다.
‘노짱 반쪼가리’. 노사모 회원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선거기간동안 권양숙 여사는 별명에 충실하게 활동했다. ‘서민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당선자의 이미지에 걸맞게 어느 지역을 가건 재래시장을 첫 번째 공략대상으로 삼았다.
권 여사는 “평생을 함께 살아왔더니 (남편) 비슷해진 것 같다”고 한다. 당선자가 “사랑하는 양숙씨는 어느새 고등학교시절 훈육주임을 닮아있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단호한 면도 그렇고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가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유머감각도 닮았다.
권양숙 여사가 대통령 부인으로서 목표하고 있는 일은 두가지다. 우선 가족들을 잘 돌보는 것이다.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부터 시작해 친척들 단속은 그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하나는 새로운 대통령 부인 상을 정립하는 일이다. 정치인의 아내로 살면서 항상 ‘남편보다 한 걸음 앞서도 뒤쳐져서도 안되고 적절한 위치를 찾는 조용한 내조’에 충실해왔는데 21세기 첫 번째 대통령 부인에 대한 기대는 사뭇 다르다는 것. 그는 “우리 현실에 맞는 새로운 대통령 부인 상을 제시하고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 여사 “남편이 소신껏, 초심을 잃지 않고” 살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했다. 오랜 지기들에게 ‘어려운 시절이나 영감님 의원님 사모님이 되어서도 변함없다’는 평을 듣는다는 그인 만큼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 성명: 권양숙
출생: 1947년 12월23일(음)
학력: 부산 계성여상 3년 중퇴(공납금을 못내 졸업장을 받지 못함)
좌우명: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럽게(노 후보와 같음)
존경하는 인물: 박경리

/ 미즈엔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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