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 시인의 꽁트칼럼(8)

괘씸한 신랑, 멍청한 신부

지역내일 2000-11-23
결혼을 왜 했나 후회막급입니다.
며칠 째 마음이 울적하고요. 얼마 전에 집들이란 걸 했답니다. 자기친구들이 온다고 한달 전부터 챙기면서 야단법석이었거든요. 반찬은 뭐냐, 안주는 뭐냐, 어떻게 할거냐, 아는 요리는 다 불러대고 신나서 들떠 가지고 갖은 아양을 부리더군요. 이 때만 해도 나는 그 검은 속을 모르고 덩달아 신이 났었지요.
술은 또 두 박스나 들이면서 일생에 한번뿐이라며 가계부는 걱정도 안 하더군요. 야단법석도 모자라 '이쁘게 입어라, 머리 손질도 하고' 하면서 일일이 확인까지 온갖 정성이었답니다. 내, 참. 이 생각만 하면 아직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요. 이 인간이 이런 인간인 줄 진작 알았다면 결혼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을 거랍니다.
집들이에 들어간 돈을 고사하고, 고생한 걸 생각하면 기가 막혀요. 집들이 음식장만에 주위 친구들을 총동원해서 번거롭게 한 짓도 후회막급입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자기 돈까지 들여 음식장만에 열을 올렸지요. 친구들이 이렇게 도와주지 않았다면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리질 못했을 겁니다.
먼저 집에 도착한 신랑은 밥상을 보고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져 아주 흡족해 하더군요. 나도 즐거워 일일이 친구들 이름을 불러주었지요. 갈비는 혜경이 친구가, 신선로는 민희가, 술안주는 정애가 해주었다고 일러주었답니다. 뿐만 인가요? 과일은 또 어떻고요. 그 전에는 아줌마 친구들이라고 구박을 했던 게 미안할 정도로 정성을 다하는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답니다.
그런데 토요일 날 집들이 때 신랑친구 11명이 들이닥치면서 들고 온 건 겨우 세제 한 통이었습니다. 내가 쩨쩨하게 세제 한 통 때문에 이렇게 열을 올리는 건 아닙니다. 그 날 재미도 없는 집들이에 완전히 파출부 신세가 된 것도 다 참을 수 있습니다. '제수씨, 제수씨' 하며 골탕을 먹이고 무례하게 군 신랑친구들도 다 용서할 수 있어요.
세상에 결혼하면 다 이런가요?
금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애쓴 친구들에게 고마움도 표할 겸, 내친구들과도 집들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따로 또 집들이를 하면 낭비라며 친구들이 앞장서서 흔쾌히 일요일 날 모이기로 했답니다. 음식도 넉넉하게 해서 많이 남기도 했고요. 좀 미안하긴 했어요. 물론 신랑이라는 인간도 당연히 알고 있었지요.
세상에 만상에, 이런 배반이 어디 있답디까?
내 친구가 온다는 데도 꿈쩍도 안 하더군요. 시큰둥한 얼굴로 '여자들이 쓸데없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궁시렁대는 거 있죠?! 어제는 고생한 내친구들에게 한턱 내야겠다고 좋아하더니 말이어요. 내친구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은 완전히 외교적인 발언이었나 봅니다. 그럴 줄도 모르고 아침에 해장국까지 끓여 바치다니. 너무 한심한 생각이 들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요.
이쁘게 차려 입는 건 고사하고 세수도 안하고, 반쯤 누워서 내내 텔레비전에 코 박고 낄낄대는데 화가 나지 뭡니까. 점심 때 친구들이 온 다는데도 들은 척도 안더군요. 자기친구들이 올 때는 나더러 '이 옷 입어라, 저 옷 입어라' 시시콜콜 따지면서 말이어요. 내 친구들에게 먹다 남은 음식을 대접하는 미안함보다도 부시시한 얼굴로 여전히 텔레비전에 열중하는 남편이란 새신랑 꼴이 보기 싫었습니다. 이런 남자와 일평생 살아야 하는지 정말 막막하더군요. 어떻게 한 방 먹이죠?


지은이 소개 : 일년 열두 달 목욕 안 하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더러운 인간. 티셔츠를 뒤집어 입고도 태연한 인간. 한여름에 트렁크 팬티만 입고는 반바지라고 우기며 뻔뻔히 돌아다니는 인간. 테트리스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는 인간. 외국사람을 만나도 우리말로 지껄이곤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을 내는 인간. 남들 다 웃는데 혼자 심각한 눈치 없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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