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이어 혼인빙자간음죄가 합헌이란 판결을 내리자 “사생활까지 범죄로 다스려야 하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합의부는 지난달 31일 혼인빙자간음죄가 자유의사에 따른 성교를 규제한다며 김 모씨가 낸 헌법소원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그러나 9명의 재판관 중 2명은 위헌소지가 있다며 소수의견을 제출, 여운을 남겼다.
국제적으로도 혼인빙자간음과 간통을 사생활 영역으로 간주,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는 추세다. 이를 범죄로 취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 일부 이슬람국가 등에 국한돼 있다.
◇헌재 고민 끝에 합헌결정= 혼인빙자간음죄는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 항목 중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로 규정돼있다. 개인적 법익이란 다름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 강요나 협박, 위계 등으로 이루어진 성관계는 여성(남성)의 권익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논란 끝에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최종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남녀간의 성문제는 은밀한 사생활 영역이므로 범죄적 측면보다는 도덕 윤리적 측면이 강하다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아직까지 우리사회 정서에는 혼전 성관계는 여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남성이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 성관계를 요구할 경우 여성이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정황도 고려했다.
반면 소수의견을 낸 두 명의 재판관은 ‘최종 선택은 여성의 몫’이라며 반대 논리를 굽히지 않았다. 권 성 재판관은 “구애에는 과장이나 상대를 현혹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속임수가 기본 요소”라며 “남성들의 구애에는 묵시적 혹은 명시적인 혼인약속이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주장과 상충= 지난해 말 간통죄가 헌재의 도마에 올랐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헌재는 부부간 성적 성실의무와 간통으로 인한 가족문제는 법이 개입해야 할 문제라며 간통죄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 이야기만 나오면 여성계는 불편해진다. 지금까지 여성계가 주장해왔던 ‘여성의 성적 자유’와는 상충되기 때문이다.
혼인빙자간음은 성관계가 결혼상대자와만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또 보호의 대상을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로 한정해 여성의 정조관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1년동안 70여명의 여성들을 농락해 법정에 선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씨는 ‘내가 만난 여성 중 처녀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내세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적이 있다.
또 간통죄는 경제력이 있는 남성과 경제력이 없는 여성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남성의 경우 대개가 ‘합의’를 하고 빠져 나오지만 여성은 실형을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간통죄의 경우 ‘가정을 버린 남성’보다 상대 여성에게만 ‘남의 가정을 파탄 낸’ 책임을 묻는다는 주장도 있다.
◇여건성숙되면 폐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간통이나 혼인빙자간음에 대해 금전적인 피해보상이 충분하지 않은데다 남성들은 ‘유치장에 들어가야만’ 위자료 협상을 제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없다면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남성들에 대한 제재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혼인빙자간음과 간통죄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지만 두 법 모두 “계속 존치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생활에 법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이 법이 협박이나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현실론에 안주해 시대착오적인 법의 존속을 지지할 것인가라는 주장과 여성에 대한 보호장치 마련 전에는 폐지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은 당분간 접점을 찾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홍식·김진명 기자 hss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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