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북 생존전략과 미 세계전략의 충돌(고유환 2002.10.22)

지역내일 2002-10-22
북 생존전략과 미 세계전략의 충돌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 북한학


북한이 비밀 핵무기개발 계획을 추진중이라는 사실을 미국측에 시인한 것으로 밝혀져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다시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시인한 것 자체가 사실인지, 왜 이 시점에서 시인한 것인지, 무엇을 얻기 위한 행동이었는지는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시인은 1994년 10월21일 체결한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문의 파기를 의미하고 주변국가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임으로 핵개발 시인이 갖는 의미는 ‘핵폭발’ 이상의 파장을 불러오는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북미간 갈등의 핵심은 제네바 합의의 이행문제와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관련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상대방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제네바 합의 무효화 또는 파기를 언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북한은 노동신문 9월3일자에 실린 ‘미국이 찾아야 할 교훈’이란 논평에서 1994년에 채택된 북미 기본합의문에서 핵심사항은 북한의 핵동결 대 미국측의 2003년 경수로제공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국제원자력기구 핵사찰 요구에 대해 미국이 먼저 대북한 적대시정책의 해소와 경수로제공지연으로 인한 전력손실보상을 요구했다. 북한은 제네바합의문에서 그들이 해야할 바를 100%이상 충실히 이행해 이미 종착점에 와 있지만 미국은 합의문이 채택된지 8년이 된 지금까지 아직도 출발선에서 맴돌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미국은 켈리 특사의 평양방문을 통해서 핵·미사일·재래식 무기, 인권문제 등 이른바 ‘우려사항’을 북한이 먼저 해결해야 북미관계는 물론 북일관계와 남북관계도 순조롭게 풀릴 수 있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 북한은 미국의 ‘선 우려사항 해소, 후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 노선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선군정치에 따라 필요한 모든 대응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 핵개발은 생존전략, 미 반테러 전략과 충돌
최근 북한은 미국의 ‘선 우려사항 해소, 후 대화’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선 미국의 대북 강경적대시정책 해소와 경수로제공 지연으로 인한 전력손실보상, 후 미국의 우려사항 해결’ 또는 이들 문제의 일괄타결(package deal)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켈리 특사에게 미국측이 선제공격을 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북미 평화조약 체결과 북한의 경제체제를 용인할 경우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북한체제를 보장할 경우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향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선 우려사항 해소’라는 무장해제에 가까운 요구를 하면서 ‘전쟁이냐 외교적 해결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갈등은 협상에 임하는 기본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미국은 반테러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이라는 세계전략에 따라 북한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해, 북한은 생존전략 차원에서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카드를 활용해서 북미 적대관계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대량살상무기개발과 관련한 북미간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양국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지금의 한반도정세에서 미국변수는 ‘상수(常數)’에 해당한다고 할만큼 미국 부시행정부의 반테러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에 대한 의지가 워낙 확고함으로, 북한은 미국의 의도와 정책에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는 수세적인 구조적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1993~94년 핵위기때와 같이 또 다시 벼랑끝 전술을 편다면 국가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엄혹한 시련의 연대’를 보면서 내부 자원이 거의 다 고갈됐다. 핵위기를 조성해서 인민들에게 또 다시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강요할 경우 김정일 정권은 정당성과 효율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제 북한이 장기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량살상무기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와 붕괴된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다. 북한도 이점을 인식하고 최근 내부적으로 계획경제의 개선 조치와 신의주특구 설치 등의 개혁·개방조치를 취하면서 남북관계 원상회복과 대외관계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북미 갈등 해소에 한·일·중·러 공조해야
당초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은 다음 개혁·개방을 본격화할 계획이었으나 미국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개혁·개방을 먼저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일련의 변화의지를 보이면서 미국과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대화를 시도했지만 일관된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으로 다시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 핵무기 개발계획 시인 발표로 북한이 취하고 있는 경제개혁과 대외관계 확장 등 일련의 정책변화 노선은 다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돼야 북한의 생존을 담보받을 수 있고 경제재건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불거진 핵개발의혹이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우려사항’ 해소 요구와 북한의 미국에 대한 ‘대북 강경적대시정책 포기와 체제보장’ 요구 등과 관련한 현안문제의 일괄타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미 양국과 국제사회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 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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