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주를 가꾸는 사람들(14-15-16면)

지역내일 2002-08-15
“당신이 있어 전주는 아름답습니다”

수천의 관객들이 쏟아내는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은 소리나지 않는 공감이 있어 가능하다.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호화로운 네온사인이나 조명탑도, 으리으리한 건물이 아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본지는 욕심 내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시민들을 만났다. 고달픈 서민의 삶 자체가 아름다운 도시의 원동력이라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편집자 주 -



어린이를 위한 천국 만들겠습니다(제목)
고성재 시의원(소제목)

이제 서른 두 살의 사회 초년생인 고씨는 시의원 당선과 함께 학교주변에 통학로를 만들 것과 방과후 학습지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영유아 보육조례''를 약속했다.
영·유아 보육조례는 생활보호대상자나 저소득층 부부의 자녀를 기존의 시설에서 어느 정도 의무화하여 수용하도록 하고 그 비용을 시에서 지불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의 공약은 ''어린이를 위한 천국을 만들겠다''는 것. 그 약속을 위해서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법적인 약속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이유로 시의회 상임위도 도시건설위원회를 택했다.
"도시건설위원회는 건축, 도로 등 전주시내 도시설계에 관한 사항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범위가 넓어 일이 많은 위원회라고 알려져 있지만 초선인 저에게는 일이 많다는 게 오히려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98년 전북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았었고 그후 시민단체에서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시민단체에서는 정책팀장으로 활동하면서 아파트 공동체를 가꾸는 일의 실무를 맡아 일했었고 그러면서 아파트가 살만한 공동체의 공간이 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모색해 보기도 했다
"시민단체에서 의정감시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지적했었는데 제가 그 반대 위치에 서게되니 부담감이 큽니다. 하지만 학교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큰 재산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천국, 그리고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항상 열심히 뛰는 의원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오병화 리포터 robingg@daum.net

“배움에 나이가 무슨 소용인가요?”
소리강사 허향덕씨

‘새가 날아든다. 새중에는 봉황새, 만수문전에 풍년새…’
장구장단에 맞춰 뽑아 내는 그녀의 구성진 소리 한자락에 어깨춤이 절로 난다.
효자 4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주민들에게 민요를 가르치고 있는 허향덕(47)씨.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와 환한 웃음은 마흔 일곱이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허씨는 3년째 서곡주민자치센터에서 민요를 지도하고 있으며 삼천2동, 서완산동, 평화2동, 동서학동 등의 복지관에서도 강의를 맡고 있는 실력 있는 강사다.
"13년전 도립국악원에 입사하여 정식으로 민요를 배웠습니다. 35세란 좀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요. 어릴 적부터 국악이 너무 좋아 꼭 배우고 싶었는데 어머님께서 노래는 광대나 하는 것이라며 심하게 반대하셔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허씨는 가족들을 챙겨 보낸 후 5군데나 돼는 강의로 이곳저곳을 분주히 옮겨다니며 소리를 하고 있다.
"누구나 배울 수 있지요. 정서적으로 마음이 순화되고 폐활량과 혈액순환에 도움이 됩니다. 망설이지 말고 많은 분들이 소리를 배웠으면 합니다"
‘소리 배우는 낙으로 산다’는 노인장 수강생들의 말만으로 보람을 느낀다는 허씨는, 그녀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 계속해서 우리 소리를 주민들에게 가르칠 것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김보영리포터

헌 옷이 솜씨를 만나 맵시로 변하는 날
옷 수선하는 박가화씨

‘달그닥 달그닥 드르륵 드르륵’
발과 손이 호흡을 맞추며 쉴새없이 돌아가는 종일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는 재봉틀 소리.
그녀에게 재봉틀 소리는 때로는 친구가 되고 때로는 음악이 된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독특한 "맵시 옷 수선" 아줌마 박가화(43)씨의 삶의 현장이다.
오전 9시30분. 집안 일을 모두 마치고 그녀만의 공간인 작업실이 쉴 새없는 손놀림에 살아나는 시간이다.
맡겨진 모든 옷들을 맵시 있게 수선하는 일과 인연이 된 것은 20여년 전 의상실에서부터다.
그때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오늘에 있기까지 꾸준히 익혀왔던 박씨는 결혼이라는 중요한 시점에서 이 일을 중단했었다. 하지만 그 기술과 재능은 그녀의 관심 속에서 늘 솟구쳤나보다.
박씨는 지난 97년 아이들과 생계에 도움을 주고 싶어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이 일을 시작, 지금은 어엿한 "맵씨 옷 수선" 가게를 경영하는 사장이 됐다. 눈에 띄는 직업은 아니지만 동네에서도 인기를 누리며 지금은 왠만한 직장인들 부럽지 않는 소득을 당당히 올리고 있다.
처음엔 2∼3평의 작은 조립식 건물에서 지금은 18평의 넓은 공간으로 이전 확장, 중고품과 재활용을 이용하여 가게를 꾸민 알뜰한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옷이 작아서 입지 못하는 것을 수선하기 위해 가까운 세탁소를 찾은 주부에게 ‘맵시 옷 수선가계로 가라’고 권유해 줄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
때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찾아온 동네 아줌마들과 하나가 되기도 하고 뒤늦게 와서 막무가내로 수선을 해달라는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그래도 박씨는 경쾌한 재봉틀 소리가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고.
진정희리포터 jojo32@hanmir.com


웃음·자신감 퍼뜨리는 ‘해피 바이러스’
정보화도우미 임해순씨

정보화도우미 대표를 맡았던 임해순씨. 그녀가 가는 곳마다 정감있는 목소리와 웃음을 퍼뜨리는 ‘해피 바이러스’로 통한다.
어느새 컴퓨터선생님으로 불리는 그녀가 컴퓨터를 친구로 만난 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강단에 서면 영낙없는 호랑이 선생님이다. 그녀는 “한 눈 팔면 못합니다. 자, 클릭하며 따라해 보세요”를 연발한다. 서툰 손놀림이지만 "임선생님이 가르쳐주니 쉽고 즐겁다"는 할아버지 학생부터 백발의 노인들이 어느새 ‘컴 도사’가 되간다.
임씨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아이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컴퓨터 배우기에 나섰다.
실력이랄 것도 없지만 용감이라는 탁월한 선택이 지금에서야 그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그녀는 정보화도우미교육을 통해 체계적인 교육을 수여하고 이제는 어엿한 컴퓨터 선생님인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목소리가 가라앉지만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랑이 가득 담긴 수업을 그대로 그들이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임해순씨의 이런 순수한 마음을 읽는 사람들은 그녀를 극찬한다.
"여기저기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언제든지 달려가겠다"는 그녀는 봉사하는 행복감에 사로잡혀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재미로 시작해 지금은 주민들에게 인터넷까지 설명하는 정보화도우미가 되었음을 자랑스럽다고.
진정희 리포터 jojo32@hanmir.com

밥 한 공기가 전주를 살찌운다
아리랑 하우스 김진오 사장

"봉사라구요? 오히려 제가 더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걸요."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하는 김진오씨(아리랑하우스 대표).
"열네살 때 뭔가를 해보겠다고 집을 나왔죠. 그후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4년여의 시간동안 배고픈 설움이 뭔가를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김씨는 고등학교 때 가세가 기울어 도시락도 못 쌀만큼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후 사업을 하는 등 사회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여러 사회경험을 거친 끝에 지금의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지 벌써 7년이 되었다. 그가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력과 함께 그가 함께 한 것은 결식아동 독거 노인 등 한끼 식사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이다
처음엔 노인 몇 분에게 식사를 대접해드리면서 시작한 일이 점점 규모가 커져 그 이외에도 해마다 200∼300분의 노인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해드리고 환경미화원들에게 점심을 대접해드리는 등 그가 제공하는 ''밥그릇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더 많은 분들에게 드리지 못하는 것이 항상 아쉽습니다. 지금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드리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걸요."
노인분들 말고도 그의 거래처(?) 한두 곳이 아니다. 몇 년 전 결식아동에 관한 통계조사를 보고 결식아동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보육원이나 복지원 등 시간만 나면 음식을 싸들고 그들을 찾아간다.
한 두 해도 아니고 7년 넘는 시간동안 묵묵하게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는 김진오씨. 지금도 신 김치를 보면 돼지고기를 사서 맛있는 찌개를 대접할 생각에 정육점을 찾는다. 아직도 우리주변에는 한끼식사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고 걱정하는 김씨. 그에게서 진정한 봉사에 대한 의미를 배운다.
오병화 리포터 robingg@hanmail.net


“누군가는 치워야 살 수 있는거 아니야?”
환경미화원 박규성씨

쓰레기가 가득 찬 지게차를 끌며 여전히 단지 안을 바쁘게 청소하고 있는 박규성(57)씨 내외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힘든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앞에서 끄는 남편과 뒤에서 미는 아내가 사이좋게 하루종일 단지 안을 청소하는 모습은 이제 서곡 주공 아파트 주민들에겐 누구에게나 익숙한 모습이다.
"저희 같은 사람 신문에 나올 일이 뭐 있습니까. 그저 주어진 대로 하루 종일 아파트 곳곳을 청소하면 그만이지요"
늘상 사람 좋게 웃고 있는 박규성씨는 몇 년전부터 아파트 단지 청소일을 하다가 작년부터 서곡 주공아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서신동에 살고 있는 그는 새벽 5시가 못돼 출근하는 그는 분리수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박씨는 "분리수거 해야 하는 품목이 17가지나 돼 힘이든다. 분리수거에 좀더 신경썼으면 한다"면서 “쓰레기를 무단투기 하면 결국 관리비에 쓰레기 봉투 값이 청구돼 관리비 인상요인이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쓰레기 무단투기는 구청에 고발해서 처벌 받게 수도 있지만 매일 얼굴보는 친숙한 주민들에게 그럴 수는 없어 항상 말로 타이른다고 한다.
항상 함께 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박씨. 그러나 주민들이 우리아파트가 다른 아파트보다 훨씬 청결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피로가 다 풀린다고. 박씨는 “힘들지만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할 생각”이라며 검게 그을린 얼굴에 환한 미소를 보인다.
김보영리포터

“당신 없으면 동네가 재미없어 안되지”
효자동 주민자치회장 은혜경씨

효자동 아줌마 부대 주민 자치회장 은혜경(45)씨.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기독병원 입원실에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고3딸이 장염으로 아침부터 입원해 있단다.
집을 나와 있는 통에 오늘 하루 연락이 안되었을 뿐,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았을 터인데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왔는지 은혜경씨 주위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북적댄다.
그리고 딸 아픈 것은 차치하고 동네에서 맡아하던 일, 오늘 하지 못했던 일을 연신 걱정하는 것이다.
남의 일을 나의 일처럼 발벗고 나서고 남의 일 동참해 거들다보니 하루해가 짧을 수밖에. 은혜경씨의 음식솜씨 또한 일품이어서 한동안 그녀가 다니던 교회 사람들을 위해 식사 준비를 도맡아하는 봉사활동을 하더니 때로는 김치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이웃을 나눠주는 정을 베푼다.
마을 사람들은 은씨를 두고 ‘잡동사니 상담가’라고 생각한다.
이가 아파 어느 치과에 갈 것인가 고민될 때, 채소가게나 과일가게를 이용할 때에도 그녀가 알려 준대로 단골을 삼는다면 틀림없이 나중에 후회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그녀가 이용하는 부동산, 그녀가 이용하는 빵집, 그녀가 이용하는 식당은 왠지 가더라도 손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신기하게도 대체로 그러하다.
오죽했으면 취직을 생각하던 그녀에게 남편은 “이웃 사람들 생각해서 다시마약도 만들어야하고 이리저리 상가나 음식점 기웃거리며 어디가 좋은가 평판도 해야 하고 사람들일에 끼어 들어 이러쿵저러쿵 해결사 노릇도 해야하는데 당신이 없으면 이 동네 재미없어서 안되지”라고 말렸단다.
주민이 모이는 자리엔 언제나 그녀가 있어 꽉 차 보이고 허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글보글 짧은 파마머리에 너무 아줌마스러워서 빛이 나는 여자. 효자동엔 은혜경씨가 살고 있어서 이웃을 챙기고 서로 도와 가는 따뜻한 인심만 무럭무럭 커나가겠다.
정선아 리포터jjss701@yahoo.co.kr

동네 인심을 지켜주는 아저씨
효자동 아파트 경비실 홍성오씨.

“OO어머니, 유치원 차왔는디 뭣허신데요?”
시끌벅적, 바쁜 아침, 인터폰을 통해 들려오는 경비 아저씨 홍성오(59)씨의 목소리다.
유치원 갈 아이의 유치원 차는 도착해 있는데 정작 주인공은 없으니 다급해진 홍성오씨가 인터폰으로 직접 연결해 알려주는 것,
경비 일을 맡은 지 2년째, 이렇게 하루를 여는 홍성오씨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에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많다.
아파트 앞 건널목에서, 주차장에서 또는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을 챙기는 그가 있기에 아파트 아줌마들 사이에 성실하고 사람 좋은 아저씨로 입 소문이 자자하다.
그리고 아이들을 대하는 말투는 영락없는 친한 친구. 201동에 사는 진이가 가방 2개를 들고 학원에 가는 모습을 보고
"진이야! 왜 가방을 2개나 들고 가? 무겁게."
202동에 사는 지수가 비오는 날 학원 차를 기다리고 서 있을라치면
"지수야! 비오니까 이리 들어와. 차 오면 내가 알려 줄께."
그래서 그의 친절함과 따스함에 마음을 뺏긴 아이들에게 홍성오씨는 단연 최고 인기다.
이렇다보니 경비실은 편하게 들락거리는 아이들 방문객이 연일 끊이질 않고 외출한 엄마들이 잠깐씩 아이를 부탁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무조건 아이들이 예쁘다고 귀여워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거나 막무가내인 아이. 언행에서 버릇없이 구는 아이는 그 자리에서 나무란다. "언젠가 계속 음식을 버리는 아이가 있어 나무란 적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아이엄마한테 했더니 `우리 아이는 그럴 리가 없어요`하는 표정을 하더라고요. 모든 사람들한테 제가 만족스러울 수는 없겠죠.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이의 단점이 보이는데 부모의 눈엔 아이의 그런 점들이 보이지 않나 봐요."
하지만 홍성오씨의 지적에 아이들이 말투에서나 쓰레기를 버리던 사소한 행동까지 고쳐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한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하면 마음 따뜻해지는 이웃 아저씨,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친구(?)한테 말을 건넨다.
"송이야 어디 가냐?"
정선아 리포터jjss70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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