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위기론’과 시장주의 논리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우리사회에서는 세계화시대니, 무한경쟁시대라는 말들을 많이 해 왔다. 그만큼 외압이 심해졌고, 우리 내부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식으로 국민들 끼리의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왔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였다. “능력 없는 자는 대학에서도 퇴출당해야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서울대 신임총장이 된 정운찬 교수가 한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 신입생을 수능시험 쿼터, 내신 쿼터, 지역 쿼터 등으로 나누어 뽑는 방안을 검토, 도입하겠다고 발언하여 반향을 불러 오고 있다.
이러한 쿼터제는 여성인력할당제나 지역인제할당제 같은 것들이 그렇듯, 능력에 따라, 시장에서의 자유경쟁 결과에 따라 자리를 차지하는 순수한 형태의 능력본위나 시장주의, 경쟁주의 논리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정 총장은 IMF 직후, 재벌체제와 우리나라 경제성장체제의 개혁이 필요함을 강조한 개혁적인 인물로서, 이번에 밝힌 쿼터제는 개혁적인 측면이 있고, 그래서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벌써부터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서열화와 학벌피라미드 구조의 문제
그러나, 사실 퀴터제 같은 것만으로는 서울대 자체의 문제 뿐 아니라 서울대로 상징되는 대학입시 문제 등 일련의 ‘서울대 증후군’을 해결하는 데에는 그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대 증후군은 문제의 뿌리와 범위가 깊고도 넓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학벌문제와 취직문제, 두 축으로 되어 있다. 서울대는 그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서울대가 소위 일류대학으로 발돋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국립이었고 대부분의 대학들, 즉 사립대학들보다 등록금이 훨씬 쌌기 때문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주로 가난한 집 출신의 소위 똑똑한 학생들이 죽기살기로 국립을 갔고, 높은 성적을 증명하지 못하면 낙방했다.
서울대에 합격하고 졸업한 소위 ‘똑똑한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사법시험, 행정고시, 그리고 ‘언론고시’ 등에서 가장 높은 합격률을 자랑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대 출신’ 하면, 일단 ‘똑똑한 사람’, ‘능력을 믿을만한 사람’, ‘품질이 보증된 사람’ 하는 식의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이같은 이미지는 다시 취직에는 물론, 결혼하는 데에도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그 결과, 서울대 출신들은 한국사회의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하였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고 패권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가 흐르는 사이, 우리 사회에는 서울대를 정상으로 한 대학의 서열화 및 학벌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 또, 지방도시들에서는 지방 명문고 출신들을 정상으로 한 피라미드와 독점 및 패권의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 모든 문제를 우리는 ‘서울대 증후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가 최정상에 놓여 있고, 많은 이들의 지상목표가 되어 있으며, 거기에 이르기 위한 사교육비 투자와 치열한 입시경쟁, 경제적-교육적 낭비 등이 포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증후군이 서울대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서울대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 좋은 일자리를 향한 치열한 경쟁시스템, 이런 데에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핵심이 되는 것은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거국적인 경쟁이며, 이 경쟁은 다음과 같은 연속적인 과정들로 되어 있고, 그 정상에 서울대가 있을 뿐이다.
좋은 학교, 좋은 학벌 -> 좋은 일자리 -> 요직의 독점과 패권 -> 재생산과정;
과외비, 학원비 투자 -> 입시위주교육 -> 성적향상 -> 좋은 학교, 좋은 학벌 -> 좋은 일자리 -> 요직의 독점과 패권 -> 반복 재생산;
경쟁보다 상호 부조정신으로 위기 극복해야
그동안 제기된 ‘서울대 해체’론이나 ‘대학평준화’론 같은 것들은 결국 이러한 피라미드구조를 해체하고 평준화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울대 비판들에 대해 보수-기득권층 사람들의 반론은 한결같이 “그거 사회주의 아니냐”, “빨갱이 아니냐”, “하향평준화 아니냐”, “능력있는 사람도 함께 못살자는 것이냐” 하는 식이었다. 이들의 사고에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서울대문제를 떠받치고 있는 시장주의, 경쟁주의 논리, 바로 그것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문제를 풀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반대로 공공의식과 상호부조의 정신에 입각해야 하나씩하나씩 풀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우리사회에서는 세계화시대니, 무한경쟁시대라는 말들을 많이 해 왔다. 그만큼 외압이 심해졌고, 우리 내부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식으로 국민들 끼리의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왔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였다. “능력 없는 자는 대학에서도 퇴출당해야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서울대 신임총장이 된 정운찬 교수가 한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 신입생을 수능시험 쿼터, 내신 쿼터, 지역 쿼터 등으로 나누어 뽑는 방안을 검토, 도입하겠다고 발언하여 반향을 불러 오고 있다.
이러한 쿼터제는 여성인력할당제나 지역인제할당제 같은 것들이 그렇듯, 능력에 따라, 시장에서의 자유경쟁 결과에 따라 자리를 차지하는 순수한 형태의 능력본위나 시장주의, 경쟁주의 논리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정 총장은 IMF 직후, 재벌체제와 우리나라 경제성장체제의 개혁이 필요함을 강조한 개혁적인 인물로서, 이번에 밝힌 쿼터제는 개혁적인 측면이 있고, 그래서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벌써부터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서열화와 학벌피라미드 구조의 문제
그러나, 사실 퀴터제 같은 것만으로는 서울대 자체의 문제 뿐 아니라 서울대로 상징되는 대학입시 문제 등 일련의 ‘서울대 증후군’을 해결하는 데에는 그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대 증후군은 문제의 뿌리와 범위가 깊고도 넓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학벌문제와 취직문제, 두 축으로 되어 있다. 서울대는 그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서울대가 소위 일류대학으로 발돋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국립이었고 대부분의 대학들, 즉 사립대학들보다 등록금이 훨씬 쌌기 때문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주로 가난한 집 출신의 소위 똑똑한 학생들이 죽기살기로 국립을 갔고, 높은 성적을 증명하지 못하면 낙방했다.
서울대에 합격하고 졸업한 소위 ‘똑똑한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사법시험, 행정고시, 그리고 ‘언론고시’ 등에서 가장 높은 합격률을 자랑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대 출신’ 하면, 일단 ‘똑똑한 사람’, ‘능력을 믿을만한 사람’, ‘품질이 보증된 사람’ 하는 식의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이같은 이미지는 다시 취직에는 물론, 결혼하는 데에도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그 결과, 서울대 출신들은 한국사회의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하였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고 패권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가 흐르는 사이, 우리 사회에는 서울대를 정상으로 한 대학의 서열화 및 학벌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 또, 지방도시들에서는 지방 명문고 출신들을 정상으로 한 피라미드와 독점 및 패권의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 모든 문제를 우리는 ‘서울대 증후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가 최정상에 놓여 있고, 많은 이들의 지상목표가 되어 있으며, 거기에 이르기 위한 사교육비 투자와 치열한 입시경쟁, 경제적-교육적 낭비 등이 포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증후군이 서울대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서울대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 좋은 일자리를 향한 치열한 경쟁시스템, 이런 데에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핵심이 되는 것은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거국적인 경쟁이며, 이 경쟁은 다음과 같은 연속적인 과정들로 되어 있고, 그 정상에 서울대가 있을 뿐이다.
좋은 학교, 좋은 학벌 -> 좋은 일자리 -> 요직의 독점과 패권 -> 재생산과정;
과외비, 학원비 투자 -> 입시위주교육 -> 성적향상 -> 좋은 학교, 좋은 학벌 -> 좋은 일자리 -> 요직의 독점과 패권 -> 반복 재생산;
경쟁보다 상호 부조정신으로 위기 극복해야
그동안 제기된 ‘서울대 해체’론이나 ‘대학평준화’론 같은 것들은 결국 이러한 피라미드구조를 해체하고 평준화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울대 비판들에 대해 보수-기득권층 사람들의 반론은 한결같이 “그거 사회주의 아니냐”, “빨갱이 아니냐”, “하향평준화 아니냐”, “능력있는 사람도 함께 못살자는 것이냐” 하는 식이었다. 이들의 사고에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서울대문제를 떠받치고 있는 시장주의, 경쟁주의 논리, 바로 그것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문제를 풀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반대로 공공의식과 상호부조의 정신에 입각해야 하나씩하나씩 풀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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