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를 ‘유토피아(Utopia)’라 부른다.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으로, 16세기 초 영국의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지은 공상사회 소설에 나오는 곳이다. 공산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 체제 및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가상(假想)의 이상사회를 그린 작품이다. 다시 말해 인간 세상에서 실현될 수 없는 사회이지만, 완벽함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인간은 절대자가 아니기에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의미다. 다만 완벽을 추구할 뿐이다. 인간은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며, 마치 신과 같이 완벽한 것에 가까워지려 노력한다. 불완전한 인간이 완벽한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분야 또한 그렇다. IQ가 200이었다는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에 의해 만들어진 ‘본성 대 양육(nature verse nuture)’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은 그동안 교육계의 계속된 논쟁거리였다. 이블린 폭스 켈러(Evelyn Fox Keller)는 그의 책 <본성과 양육이라는 신기루>(The Mirage of a Space between Nature and Nurture)에서 의도하는 것처럼 본성과 양육 사이에 존재한다고 여겨져 왔던 ‘간격(space)’이 ‘신기루(mirage)’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이고자 했다. 본성이든 환경이든 사람의 특성이 어떤 결정적인 요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각 단계별로 유연하게 적응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특성이 어떤 결정적인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은 우리 인간의 착각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학습이란 다름 아닌 유연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 현장에서 학습이란 여러 방향 중 어느 한 방향의 해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방향에서도 이를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황수비수학학원 황수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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