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사람은 보통 초등 4~5학년 때에 이르러 자신의 모국어가 완성된다. 이 나이에 이르면 모국어의 문법 체계가 각자 수준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몸에 체화되어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문법이 체화된 원어민도 어휘력이 떨어지면 정작 수준 있는 책은 읽을 수가 없다. 말콤 엑스의 자서전에도 잘 나와 있지만, 스무 살의 말콤 엑스는 교도소에서 어떤 계기가 생겨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단어를 몰라 웬만한 책은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똑똑했고 말도 잘하던 영어 ‘원어민’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그는 먼저 두툼한 사전을 구해 일정 기간 동안 오로지 단어 공부에 전념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독서에 들어간 그는 교도소 도서관에 있던 역사, 정치, 문화에 관한 거의 모든 책을 읽어 버린다. 그는 후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가 된다.
한편 '귀여운 빌리(Born Yesterday)'라는 영화에 나오는 수다쟁이 여주인공 빌리는 하루 종일 TV만 본다. 그런데 웬만한 단어는 아는 게 없다 보니 책은커녕 신문기사 하나도 제대로 못 읽는다. 마치 어제 태어난 것처럼 무식해서(= born yesterday) 여기저기서 망신을 당하기 일쑤다. 게다가 속물 남자친구에게 이용만 당한다. 그러던 중 이런저런 이유로 또 다른 주인공인 신문기자를 만나게 되고 책읽기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단어가 문제였다. 결국 빌리는 사전을 찾아가며 열심히 책도 읽고, 신문도 읽는다. 이후 그녀는 서서히 세상 물정에 눈을 떠간다.
단어 실력은 독해에 절대적이다. 단어를 모르면 일정 수준 이상의 책들은 원어민도 읽을 수 없다. 비원어민인 우리는 더욱 그렇다. 사실 단어만 알아도 독해는 90% 이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어책들이 수능 단어 수준을 한참 벗어난다. 수능 단어라고 해봐야 사실 미국 5학년 수준에 불과하다. 필자는 초등생들이나 중등 저학년 학생들은 오히려 수능 단어를 넘어 33,000까지 공부시키는 것을 선호한다. 이렇게 공부시키는 이유는 이왕이면 수준 높은 책들까지 독서가 가능한 학생들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초등생도 33,000을 몇 달이면 척척 외운다는 점이다.
보카퍼스트학원 윤동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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