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없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 마음에 드는 책 한권 손에 들고 책 속으로 피서를 떠나는 것도 무더위를 극복하는 한 방법이다. 몸은 비록 한 여름에 있지만 잠시나마 더위를 잊기 위해 강남서초 내일신문 리포터들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을 모아봤다.
<스몰 스텝>
지은이: 박요철
펴낸 곳: 뜨인돌출판사
가격: 13,800원
‘사실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의 소소한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과 성취감이 내가 ‘살아있음’을
말해주고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하루 10분, 나를 발견하는 시간
‘조금씩, 꾸준히 아주 작은 실천으로 시작하는 나다운 하루’, 이 책에서 저자는 ‘평범한 매일의 실천이 모이면 꿈꾸던 삶이 된다’고 이야기 하며 하루 10분, 저자가 3년 동안 매일 반복해온 작은 습관들의 실천 리스트인 ‘스몰 스텝’을 소개한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가?’ 우리는 누구나 더 근사하게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정작 삶의 주체가 되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식 타성에 젖어든 삶이 아닌 내가 진정 원하는 나답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무시하거나 찾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런 우리들에게 작지만 꾸준한 실천 ‘스몰 스텝’이라는 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의 취향을 알아내고 그 취향대로 꾸며지는 삶의 방식 속에서 자신이 일상의 주인공으로 살게 해주는 방법을 일깨워 준다. ‘삶의 방식이 분명해지면 타인과의 비교나 경쟁에서 자유로워진 자신의 삶이 더욱 소중해지고 그 삶을 지켜가기 위해 자신의 삶에 몰두하게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며 작은 습관들이 자신을 바로 알고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고 말해 준다.
조진영 리포터 cjyoung25@naver.com
<미스 함무라비>
지은이: 문유석
펴낸 곳: 문학동네
가격: 13,500원
“세상은 호들갑스러운 탄식과 성급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묵묵히 굴러간다”
“나쁘거나 추한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 나쁘거나 추한 상황이 있는 거”
일상의 이웃 이야기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판사
촤르륵, 촤르륵,.. 저자가 판사의 일상을 처음 목격한 날 퇴근시간까지 들리는 유일한 소리는 바로 기록을 넘기는 소리였다고 한다. 저자는 법조계에서 평생 일하기 위해 고시공부를 했음에도 정작 수습과정인 ‘시보’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판사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일반인들은 판사의 일상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는 게 당연하다. 판사의 이미지라고 해봐야 근엄한 법복을 입고 재판에 임하는 모습으로 그나마 뉴스나 드라마에서 본 게 전부일 터다. 저자는 어느 분야든지 마찬가지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화려하거나 튀지도 않는 일들을 묵묵히 반복하고 있어 오늘도 세상은 굴러가고 있으며 판사 역시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라는 말을 끊임없이 외치는 초임 여판사 박차오름과 동료 판사 임바른 그리고 부장판사인 한세상이 엮어나가는 실화를 토대로 재구성한 소설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판사들의 모습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살아가는 이웃들의 애잔한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혜영 리포터 phye022@naver.com
<소년기>
지은이: 하타노 이소코 | 옮긴이 정기숙
펴낸 곳: 우주소년
가격: 15,000원
“저도 이제 중학생이니까 어른처럼 혼자 살아 보고 싶어요.”
“사람은 슬프면 마음껏 슬퍼해야 해요. 그래야 견뎌낼 수 있어요.”
어느 어머니와 중학생 아들이 나눈 4년 간의 기록
용인 수지 동천동의 동네 서점 ‘우주소년’은 마을 사람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얼마 전 <소년기>가 재탄생했다. 동네 주민 누군가의 책장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이 발견되었고, 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70년 전의 책이 복간된 것이다. 1950년 일본에서 출간 당시 23만 부의 기록을 세웠던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4년, 미군의 공습으로 도쿄에 소개령이 내리자 이치로 가족은 갓 중학생이 된 장남 이치로를 도쿄에 남겨둔 채 시골로 피난을 떠난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된 이치로는 그때부터 어머니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이들은 서로의 경험과 의견을 나누면서 때로는 괴로움을, 때로는 기쁨을 공유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들은 인격 성장을 이루게 되고 동시에 어머니 자신도 여성으로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는 각성의 계기가 된다.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소년기>는 우리에게 여전히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라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또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붉은 낙엽>
지은이: 토마스 H. 쿡
펴낸 곳: 고려원북스
가격: 13,500원
“그때 이후로 나는 인생의 절반이 부정(否定)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서조차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못 본 체하기로 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의심은 산(酸)이다. 산은 물건의 매끄럽게 반짝이는 표면을 먹어치우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의심은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고,오랜 신뢰와 헌신의 수준을 차례차례 부식시키며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간다. 의심은 언제나 바닥을 향한다.”
나는 가족을 얼마만큼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작은 마을에서 여덟 살 소녀 에이미가 집에서 실종된다.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실종되기 전 에이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중학생 키이스. 바로 주인공 에릭의 아들이다. 에릭은 머리로는 아들의 무죄를 믿는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날 밤 아들 키이스의 불확실한 행적이 자꾸 머리에 맴돌면서 아들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괴롭다. 대학 강사로 자신의 커리어와 삶에 만족을 느끼는 부인 메러디스는 이 사건 이후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이제껏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속마음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키이스는 자신에게 씌워지는 오해를 해명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어떤 의욕도 보이지 않는다. 과연 에릭의 가족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까?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믿었던 가족 사이에 유괴 사건이라는 파편이 튀면서 서로 간의 의심과 오해로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 에릭, 메러디스, 그리고 키이스. 우리가 못 본 체하고, 애써 부정하며 넘기는 것들은 사실 애써 무시할 수 있는 작은 틈이 아니라 서로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트릴 수 있는 폭탄일 수도 있다. ‘미국추리작가협회상, 앤서니 상, 배리 상 수상에 빛나는 장편 추리소설’이라는 문구에 끌려, 오싹한 이야기로 이 무더위를 날릴 수 있길 기대하며 펼쳐 든 책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심리소설로 다가왔고, 가족이란, 믿음이란, 이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박혜준 리포터 jennap@naver.com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지은이: 하완
펴낸 곳: 웅진지식하우스
가격: 13,800원
‘꿩 대신 닭’이라고 하면 뭔가 덜 좋은 걸 얻은 것 같지만 ‘꿩 대신 치킨’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치킨은 사랑이니까. 당장이라도 맥주 캔을 따고 싶을 만큼 흥분된다. 지금 우리의 삶은 닭이 아니라 치킨이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쩌다 이런 어른이 됐습니다만’ 중에서
먹고 사는 게 뭐라고, 삶의 재정비가 필요해!
순전히 제목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야매 득도 에세이>에 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 ‘먹고 사는 게 뭐라고’ 따위의 문장에 꽂혀서 첫 장을 넘기게 됐지만, 저자의 표현법 뒤에 숨겨진 자각의 목소리가 제법 묵직하게 다가온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중략)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그리고 내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 강요하지 말고, 뺏어 가지 좀 마라. 좀’이라는 문구가 그것이다. 표현법은 직설적이지만 과연 누구를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것인지 반문한다. 자기주도적인 열정의 쓰임새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혹시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쫓으며 살아온 인생은 아니었을까?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잘살든(혹은 잘 사는 것처럼 보이든) 그렇지 않든, 모두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먹고 사는 게 뭐라고 하마터먼 열심히 살 뻔 했는지, 제 인생을 곱씹어보게 된다. 가볍게 읽고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하마터먼 놓칠 뻔한 책이다.
피옥희 리포터 piokhee@naver.com
<책은 도끼다>
지은이: 박웅현
펴낸곳: 북하우스
가격: 16,000원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입니다.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대처 능력이 커지는 것이죠. 창의적이 되면 삶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문장을 씹어가며 읽는 법을 알려준 책
최근 이런 저런 책을 잡았다가 끝까지 통독하지 못하고 내려놓기 일쑤였다. 100년 만의 더위 탓인지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잡았다. 처음 읽었을 때도 번뜩이는 느낌을 받았지만 다시 읽는 데도 여전히 그 느낌이 살아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은 책의 정의를 ‘또 다른 책을 부르는 책’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러하다. 이 책으로 인해 판화가 이철수의 책을 알게 됐고 최인훈의 <광장>을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만났으며 십 수 년 전 읽다가 너무 현학적인 표현에 지쳐 집어던졌던 김훈의 <자전거 여행>도 다시 집어 들었다. 다행히 몇 번의 이사 속에서도 버려지지 않고 책장 구석에 남아있었다. ‘책을 부르는 책’, 또 하나 이 책의 미덕은 문장 하나하나를 모르고 지나칠까 두려워 날 선 눈으로 책을 읽게 해준다. 그러다 보면 책 한 권 읽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부작용도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제목처럼 머리를 부지불식간에 도끼로 맞은 듯한 번뜩임이 느껴진다. 이 책의 저자인 박웅현. 단순한 광고쟁이가 아니라 어떤 인문학자보다 좋은 글을 쓰고 박학다식함과 그의 섬세한 감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책이다.
장시중 리포터 hahaha12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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