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에 대한 실험이 실제가 된 소설 <파도>

집단이 우선 되는 파시즘이 부각된 잔혹한 작품

장시중 리포터 2017-02-17

자유분방한 미국의 평범한 고등학교. 한 역사교사에 의해 시작된 실험은 교실을 일치단결된 파시즘으로 가득 찬 작은 ‘파쇼 사회‘로 만들어간다. 그 속에서 강요된 평등이 만들어지고 학생들은 환호한다. 반면 어떠한 반론도 개인의 생각도 통제된다. 오직 집단만이 있을 뿐이다. 실제 미국에서 일어났던 실험을 소설로 만들어 독일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선풍적인 토론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소설 <파도>. 어떤 책인지 그 속으로 들어가 봤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관을 잃어버린다면? 그래서 가장 소중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전체의 일부가 되어간다면? 아마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 이 책은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며 나치라는 괴물을 절절히 경험한 독일 사회에 선풍적인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우리나라 역시 독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제국주의를 겪으며 그들을 그대로 물려받은 군사독재의 서슬 퍼런 암울한 시대를 오래도록 경험한 우리에게도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투영된다.
이 책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험을 소재로 소설화해서 만든 책이다. 묘사의 디테일보다는 주제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으로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실험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나치 독일의 다른 이름이었던 ‘제 3제국’을 빗대 ‘제 3파도’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실험이 진행된 곳은 실리콘 밸리에 있는 평범한 중산층들이 대부분의 구성원을 차지하는 팔로알토의 큐벌리 고등학교이다.
이 실험은 권력의 남용과 오용이 어떻게 인간 내면의 잔혹성을 표출하고 조종까지 할 수 있는지 군중심리학에 대한 중요한 실험이다.
즉, 집단과 개인에 관한 실험으로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의 힘이 개인을 통제하는, 개인을 철저히 억누르고 집단의 이익만이 살아남는 몰개성적인 그런 실험인 셈이다.



집단 속에서 개인은 어디로 갔는가 
이 책은 너무나 평범한 어느 고등학교에서 한 역사교사에 의해 시작된다. 벤 로스라는 역사교사는 어느 날 아이들에게 나치의 야만성이 가장 잘 드러난 ‘홀로코스트’에 대해 설명을 한다. 그 중 똘똘한 한 여학생이 질문을 한다. “나치는 10%에 불과했는데 나머지 90%의 독일 사람들은 왜 홀로코스트를 막지 않았나요?”라고 말이다. 실험은 이 물음에서 시작된다.
침묵은 무언의 동의이다. 당시 대다수 독일 사람들은 나치가 이런 잔혹한 짓을 하는 데도 몰랐다고 말한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이들의 눈을 가리는 데는 여론 선전선동의 대가인 괴벨스의 책동도 한 몫 했을지 모르겠다.
괴벨스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의심받지만 되풀이 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것이 군중심리인 것이다.
이렇게 출발한 실험은 2차 대전 당시 90%의 독일 사람들이 잔인한 나치 병사들이 활개 치던 상황에서 수수방관만 할 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시작된다. 즉, 권력의 교묘한 술수를 통해 개인들이 얼마나 허술하게 집단 광기에 휩쓸리면서 권력자의 뜻대로 조정될 수 있는지를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판단력과 이성을 심어주고자 하는 의도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 이 실험은 벤 로스 선생과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지금까지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며 자유분방하게 살아왔던 학생들은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실천을 통한 힘의 집결’이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거센 ‘파도’에 쉽게 휩쓸리면서 ‘파도’라고 명명된 이 실험에 무한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한 교실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말 그대로 거대한 ‘파도’를 타고 전교로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파도 회원이 아니면 눈총을 받게 되고 급기야는 학교 간 축구시합에서 응원도 못 하게 되는 ‘황당한’ 사태까지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파도 회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집단구타를 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뭔가 잘못됐다고 여기는 역사교사 벤 로스와 로리라는 똘똘한 여학생.
로리는 친구들에게 이 실험의 잘못된 점을 말하지만 이미 ‘파도’에 경도된 학생들은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파도’에 휩쓸려버린 군중심리, 그 안에서 어느새 개인과 개성은 사라지고 오직 집단의 목표만 남게 된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사건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개인의 권리와 개성은 사라졌고 ‘정해진 정답’을 향해서만 갈 뿐 어떠한 토론도 반론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집단을 위해서만 행해졌고 ‘정해진 정답’은 히틀러가 그러했듯 권력자의 의도인 것이었다.



21세기 한국의 교실에서도 그대로 진행 중인 실험(?)
이러한 실험은 한국의 교실에서도 그대로 자행되고 있다. 대학입시라는 숨조차 쉴 수 없는 권력에 모든 학생들이 경도돼 아무런 반론이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거대한 ‘파도’ 속에 휩쓸려 가는 것이다.  그 ‘파도’는 군중심리로 단단히 무장한 파시즘이다.
그토록 강고하게 둘러싼 한국 사회의 파시즘을 깨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행동할 줄 아는 국민이 되는 것’이다. 2차 대전을 겪은 독일이나 자유분방함의 상징에서 도널드 트럼프로 대변되는 신보수주의에 물들어 가는 미국, 그 안에서 토론 DNA를 일깨우는 청소년들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소설 <파도>.
이 책과 같은 내용이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연출을 맡은 김수정 감독은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인 ‘환상적인 실험’을 보고 모티브를 얻어 ‘파란나라’라는 연극을 만들게 됐다.
그녀는 지난 1년여 동안 직접 연극교사로 수업을 진행하며 한국의 교실풍경과 학생, 교사들의 모습을 취재했으며 그들과의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원하는 교실과 학생들의 모습을 찾아갔다. 그 속에서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중학생부터 고3까지 출연을 원하는 학생 39명을 캐스팅하기도 했고 실제 출연까지 감행했다. 지난해 11월 무대에 작품을 올려 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파시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파란나라’는 초연의 뜨거움을 몰아 올해에도 11월 2일부터 열흘 간 10회 공연을 기획하고 있어 다시 한 번 파란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소설 <파도>는 독일에서 영화 ‘디 벨레’(데니스 간젤 감독)로 만들어져 그해 ‘독일 영화상 동상’과 ‘독일 영화상 프레데릭 라우 최고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럽을 비롯해 소설이 쓰인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청소년들 토론의 교재로 쓰일 정도로 완성도 높은 소설 <파도>. 시국이 여러 모로 수상한 요즘의 한국 사회에도 경종을 울릴 교재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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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중 리포터 hahaha12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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