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이라면 운동장에서 몸을 부딪치며 땀 흘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학창시절에 나 또한 친구들과 운동을 하며 뛰어 놀았던 행복한 추억이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교사의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만 있는 아이들에게 운동하면서 느낄 수 있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축구와 농구를 시작으로 때로는 족구, 배드민턴 등 어떤 운동이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담임을 하게 되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아침운동이란 이름으로 반 아이들과 함께 축구와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이른 시간에 모일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는데, 놀랍게도 아침운동이 있는 날이면 7시 30분에 어김없이 아이들이 운동장에 집합했다. 심지어 지각을 밥 먹듯이 하던 학생도 마치 학교에서 잔 것처럼 눈 비비고 7시 30분에 운동장으로 나오면서 “선생님 저도 같이 축구해요”라고 했다. 아이든 어른이든 축구가 뭔지… 남자들은 공 앞에서는 모두 집중하고 충성을 다 한다.
물론 경기가 시작되고 10분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체력이 바닥나 헉헉거리거나 멍하니 서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웃음바다가 되어간다. 축구인지 코미디인지 아이들은 헛발질을 하기도 하고, 영화에서처럼 소림축구를 흉내 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즐거운 기억들이다.
아침운동 통해 학생들과 친해지기
학교는 학생들에게 교과지식을 가르치는 등 기능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올바른 생각과 배려하는 인성을 교육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방황하고 있는 사춘기 학생들에게 교사의 조언은 잔소리로 들리고, 반항적인 태도와 말로 돌아오곤 한다.
처음 담임을 맡게 되었을 때 무언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에게는 불편한 잔소리를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말보다는 몸으로 함께 놀아주기로 마음을 먹고, 아침축구를 시작하면서 수업을 통해 교실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과 운동장에서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 놀라웠다. 수업시간에 지루해 하던 학생도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선수처럼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며 신이 나 있었고, 별로 친하지 않았던 학생들도 서로에게 패스를 해주며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갔다. 운동장에서 내가 본 학생들의 모습은 각각의 아름다운 빛을 내는 보석들이었고, 서로가 어우러져 조화로운 하나가 되어 있었다. 담임교사로서 나 또한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빠와 함께 할 수 있을까?
토요일에 실시되는 적응활동에 함께 운동도 하고, 삼겹살 파티도 하고, 전시회나 서점 등으로 나들이도 하고, 여러 활동을 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활동은 학생들이 아빠들과 함께 축구를 했던 것이다.
담임인 내가 아이들에게 “이번 토요일 적응활동 때 너희들의 아빠들을 초대해서 축구 한 게임 할까?”라고 제안하였다. 학생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전 아빠와 대화도 잘 하지 않는데, 축구를 한다고…”
“엄마는 편한데, 아빠는 좀…”
“재미없을 것 같아요. 울 아빠는 축구도 못 하고… 잔소리만 하고…”
이런 아이들을 달래가며 아빠와 축구하며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반강제로 계획을 잡고, 바로 그 다음 주 토요일에 경기를 진행하였다. 15명 정도의 아빠들이 참여하셔서 아빠 팀과 아들 팀으로 나누어 축구 경기를 시작했다.
몇 분의 아빠들은 젊었을 때처럼 실력이 뛰어났지만 대부분은 축구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었다. 운동장에서는 축구를 잘 하는 사람들보다 헛발질을 많이 하는 ‘개발’이 많을수록 경기는 더 재미있는 법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아빠들은 아들들의 멋진 축구실력을 감상하실 뿐 헛발질의 연속이었다.
결과는 아빠 팀이 아들 팀에게 10골 차 이상으로 졌지만 아빠들은 승패를 떠나 자신의 아들과 함께 땀 흘리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감동하시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행복한 아빠의 마음은 고스란히 아들에게 전달되었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아빠들에게 “오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코끝이 찡했다.
출범! 아빠축구단
이것을 계기로 교장선생님께 ‘아빠축구단’의 창단을 건의 드렸다.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빠 회원을 모집하였고, 2013년 창단모임을 시작으로 2014년 4월부터 ‘휘문 아빠축구단’이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토요일 아침에 모여 축구를 하고, 축구한 후에 아빠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도 하고, 아빠들과 한 팀이 되어 축구대회도 나가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고, 소통하는 모임’으로 거듭나기 위해,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기대감을 가지고 상기된 모습으로 참여하시는 아빠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도 나도 행복하다. 작은 시도였지만 축구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행복했다.
조규범 (휘문중 교사. 수학, 진로진학부, 자유학기제 TFT)
www.mathpool.com (수학웅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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