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에 재직하던 학교를 방문했다. 아마도 10년 만인 듯하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 선생님을 만나 리모델링된 학교 교무실에서 오랜만에 선생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과거 담임 반이었던 교실과 교정을 여기저기 둘러보다 안내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앞에 가던 건장한 젊은 남선생님을 불러 세우더니 말을 붙였다.
“000 선생님, 잠시만요. 선생님이 언제 졸업했죠?”
“2002년이요.”
“그럼, 여기 선생님 잘 알겠네.”
“나 알아요?”
“그럼요, 기억하죠. 선생님께 영어를 배웠어요.”
“그래요? 그걸 기억한다고?”
“예, 텀블러 들고 다니셨던 모습이 기억나요.”
남학생과 다른 여학생들의 감성에 당황하기도
아마도 교직을 시작한지 두 번째 해인가, 세 번째 해인가 가르쳤던 학생인 것 같다. 가르쳤을 당시 내 나이가 서른이 채 안 되었을 때다. 그런데 나한테 배웠다는 이 학생이 벌써 서른다섯 살이 되어 모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단다.
학교를 옮긴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전 학교의 제자들은 군대 휴가 중에, 혹은 휴학 중에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첫 교직생활에 너무나 열정이 앞서 무뚝뚝한 담임이 험한 말도 많이 했는데 찾아오는 것이 오히려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애정으로 생각했다며 굳이 찾아와준 것이 고마웠다. 그 남학교에 근무하던 세월 이상을 나는 현재의 여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해마다 5, 6월이 되면 졸업한 제자들이 보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데 이제 대다수는 여학생으로 바뀌었다.
강당 개학식에서 처음 인사를 할 때부터 환호를 보내줬던 여학생들은 남학생들과 너무나 달랐다. 학생들이 시험이 끝나고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며 우는 것 자체가 무척 낯설기도 했다. 어느 학생은 고등학교 진학 후 첫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를 찾아와서는 계속 눈물만 흘려 당황하기도 했고 주변 선생님 보기가 민망한 적도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에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영어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부모님 대할 면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마음씨가 갸륵하고 나도 마음이 아팠지만 성적을 올려줄 방법은 없지 않은가.
또, 남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남학교 때는 상상도 못할 수업시간의 열렬한 반응에 혼자 감격하여 첫 여름 방과 후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시간 되는 학생들을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가 무모하게 ‘한턱 쐈던’ 것도 기억도 난다.
첫 담임 반 학생들은 공부나 노는 것이나 모든 면에서 적극적이었다. 나의 부임과 함께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로 1학년 때 내 수업을 들어 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학교생활도 익숙한 2학년 학생들이라 무엇을 해야 할지도, 요구해야 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고 자신이 없어진 ‘초보 담임’이 되어 학생들을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학생들이 이럴 때는 이렇게 했다고 말하면 그제야 무엇을 놓쳤는지 깨닫고 이러 저리 알아보곤 했다.
제자들 덕분에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 배우기도
남학생들은 말수가 적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 면담할 때마다 애를 먹곤 했는데 여학생들은 말이 한번 트이면 거침이 없었다. 면담할 때 남학교 때의 ‘실수’를 거울삼아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대화를 시작하려 노력하다 면담이 40분 수다가 되었고, 체력의 한계를 느껴 반 학생 42명과 면담이 끝날 무렵에는 의자와 합체가 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또, 체육대회를 앞두고 응원도구를 제작하는데 차로 데려다주시면 안 되느냐는, 무뚝뚝한 남학생들에게는 보기 힘든 ‘적극적인 요구’에 감격해 차를 몰고 마트에 가서 빈 상자를 함께 모아 싣고 확성기도 구해오는 등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열정을 발휘하기도 했다. 내 딴에는 과거 담임했던 경험까지 활용해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그나마 그것을 알아준 덕분이었는지 어느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열심히 노력하시는데… 항상 2%가 부족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남학교 때 동료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하면 ‘사람이 바뀌었다’, ‘사람이 그리 남녀를 차별하면 못 쓴다’고 핀잔을 받던 기억이 난다.
첫해 시끌벅적하고 열정적인 학생들에게 휘둘리고 나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그 전해와 다르게 조용하고 예민한 학생들에게 강하게 대했다가 상처를 줬던 일을 이제는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는다. 면담이 길어질 것 같으면 중요한 이야기만 하고 다음에 계속 하자고 하는 여유도 갖추게 되었다. 면담 때 힘들어서 울면 이제는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티슈를 건넬 줄 알게 되었다.
수능을 앞두고 담임선생님에서 터무니없게 칭얼대더라도 학업 스트레스려니,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소리 들어주나 싶은 마음의 여유도 갖추게 되었다. 해결책이 없어도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만 줘도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안 그래도 무뚝뚝한 사람이 남학교 8년 동안 익숙했던 ‘단순 강인함’으로 인해 여학교에서 적응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남학생들과 어렵지 않게 가능했던 이심전심이 통하지 않아 속을 끓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그런 경우가 이따금 있지 않을까.
하지만, 힘들어 우는 친구를 보듬어 안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마음이 따스해졌으며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사랑은 배려할 때 더욱 빛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작년 우리 반 학생들에게 마지막 종례시간에 했던 이야기를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제자들에게도 하고 싶다.
“얘들아, 고마워. 무뚝뚝한 담임을 견뎌주고 조금 더 세심하고 배려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송영석 교사 (숙명여고 영어과)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