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지금은 작지만 크게 될 제자들을 위하여

지역내일 2016-03-11

26년 전 나는 무더운 여름날 수업 시간에 졸음을 쫓기 위해 애쓰는 학생들에게 얄팍한 관상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었다.
“눈썹이 짙고 양미간이 넓으며 코가 오뚝하니 너는 이다음에 큰 인물이 되겠구나!”
“선생님 전 어때요?”
“흠, 너는 참 좋은 관상인데 지금 노력이 부족한 듯하다. 넌 부지런함이 곁들여져야 대성(大成)할 수 있는 얼굴이로구나.”
어느새 모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곧 수업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내가 체감하는 학교의 일 년은 매우 단순하다. 입학식으로 시작해서 여름방학으로 한 학기가 마무리되고 수능시험이 끝나고 겨울방학, 그리고 졸업식으로 이어지면서 일 년이 쉽게 가버린다. 그런 식으로 23년이 훌쩍 흐른 4월의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졸업생 한 명이 스승의 날을 맞아 MRI 무료 검진을 해준다며 나와 몇 분 선생님을 초대했단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방문했고 원장님이 바쁘시니 먼저 촬영을 하자는 간호사의 권유에 불안한 마음으로 MRI 검사를 했다.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이들보다 뇌가 깨끗하다는 기분 좋은 소리를 들은 나는 제자인 원장을 기다리며 병원에 내건 약력을 읽었다. 국내 유명 의대 출신이겠거니 했던 나는 원장의 약력을 보는 순간 크게 놀라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그때 선생님께서 제 얼굴을 보고 관상이 참 좋은데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힘들 때마다 노력해야 할 관상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지요. 그 말씀 덕분에 의사가 될 수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관상학의 전문가도 아니면서 용기를 주자고 한 말을 제자가 마음에 담아두고 정말로 노력했다니. 순간 미안함과 고마움에 나도 제자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또 다른 제자와의 인연
“이 녀석 또 학교에 안 나왔구나! 이번엔 어디로 튄 거야.” 녀석과 잘 어울리는 몇 놈이 동시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함께 떠나지 못한 다른 반 한 녀석이 나의 추궁에 못 이겨 행선지를 불고 말았다. 녀석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크고 작은 규칙을 자주 어겨 학생부 출입이 잦았다. 회초리를 대던 시절이라 모질게 때려도 보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며칠을 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예 무관심한 척했다. 한 번 더 처벌을 의뢰하게 되면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할 지경이었다. 격하게 보낸 고등학교 생활을 한 녀석은 지방대에 간신히 합격을 했고 졸업을 했다. 역시 세월이 흘러 이 녀석의 존재를 잊을 즈음이다.
“선생님,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저……”
“너 이 녀석? 내가 어찌 잊을 수가 있어?”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제자는 고교 졸업 이후의 이야기를 했다. 서울의 유명 대학으로 편입을 했고 뒤늦게 공부에 맛을 들여 박사 학위까지 받고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고 했다.
“제가 가출하고 강릉으로 몰래 놀러갔다 왔을 때 선생님께서 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하시고 처벌하지 않은 덕분에 학교에 다시 적응하고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그 말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누구나 남다른 재주를 몸 속 어딘가에 하나씩 지니고 있음도 믿는다. 비록 고교 시절에 그 재주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조금 늦게 주목을 받을 친구들이 언젠가부터 내 눈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이 숨겨진 재주를 훗날 꺼내 쓸 수 있도록 믿음을 주고, 좌절하지 않도록 지켜보고 말을 건네는 것이다.


대기만성, 믿고 기다려주자
교직 30년을 바라보는 지금 후회가 되는 일이 많다. 기다려주지도 않고 고교 시절에 왜 그 재주를 드러내지 않느냐고 채근한 일도 많았고, 쉽게 넘어갈 일도 감정을 섞어 회초리를 대었던 일도 있었다. 부장교사가 된 지금 후배 교사들에게 잘 하는 제자들만 챙기지 말고 공부에 관심도 적고 말썽도 많이 부리는 제자들에게도 늘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끊임없이 다독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3월이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과 2, 3학년으로 진급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실 것이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녀라면 걱정할 일이 적으시겠지만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하는 자녀라면 아직 자녀의 재능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드러날 뿐이라고 생각하시길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재능 발현을 위해 끊임없이 믿어주고 격려해주시기를 함께 권한다. 혼자의 격려가 힘들다면 학기 초 담임교사와 상담할 때 자녀의 장단점을 솔직하고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교사가 격려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면담마저도 불편하시다면 여러 날에 걸쳐 자녀의 장단점과 장래희망 등을 생각하고 메모하셨다가 편지 형식으로 보내주셔도 좋을 것이다.
동기 또는 선배들의 명문대 합격소식을 들으면서 더욱 위축될 제자들이 걱정된다. 이들에게 남들보다 조금 늦었지만 열심히 해서 사회에 훌륭하게 적응하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사람은 변하고 교육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고교 시절 작아 보이는 친구들이 20여년 후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작아 보이는 내 자녀, 내 제자의 숨어있는 재능을 키워서 미래에 발현되도록 용기를 주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SKY 대학에 많이 보내 환호하는 것보다 작아 보였던 제자가 큰 사람이 되어 다시 찾아주었을 때, 사고뭉치 제자가 자기 몫을 훌륭하게 하고 있는 사회인이 되어 방문해주었을 때 더 크게 웃는다.
나는 오늘도 관상을 보는 척하고 제자를 격려한다. 내 눈에는 관상이 나쁜 제자가 한 명도 안 보인다. 아니 있을 수 없다.


박기혁
박기혁 교사 (세화고 교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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