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책 ‘협녀: 칼의 기억’

장중하고 서정적인 비주얼 무협영화

지역내일 2015-08-17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은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스타일의 영화다. 순제작비 90억 원의 투입이 이해가 될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공간적 배경이나 영화 내내 흐르는 비장함, 춤을 추듯 고혹적인 액션신은 관객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반면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이다. 동료의 배신 이후 18년간 복수의 칼을 갈아온 여전사의 이야기가 120분간 흘러간다. 

협녀


명품 배우들의 호연
스크린 안에는 주연부터 조연까지 대가들의 연기가 꽉 차있다. 배우 이병헌의 눈빛에는 왕의 자리까지 탐내는 천출 출신 유백의 검은 야심이 오롯이 묻어나고, 흔들리지도 않는 눈동자에 감정을 실으며 월소를 연기하는 전도연은 그녀가 왜 ‘칸의 여왕’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두 배우의 아우라에 결코 밀리지 않으며 홍이의 감정과 액션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신예 김고은의 연기도 놀랍다.
여기에 최근 ‘소경영’으로 불리며 다작 행보를 멈추지 않는 이경영의 다정한 스승 연기도 인상적이고, 이병헌을 경계하는 권력가 존복 역의 김태우가 보여주는 차가운 눈빛 연기 또한 일품이다. 존복의 아버지 이의명 장군 역을 맡은 문성근의 음험한 눈빛도 뇌리에 남고, 풍진삼협의 맏형 풍천 역으로 출연한 배수빈의 밀도 있는 감정 연기와 빼어난 검술 연기도 볼만하다,


상상으로 완성된 시공간
영화가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협녀’의 배경이 고려시대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비해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는 고려. 불교문화가 지배적이었다는 데에 착안한 제작진의 상상력이 더해져 영화는 거대하고 웅장하며 화려하고 고압적인 스케일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사극이 수평적 공간에 집중했다면 ‘협녀’는 수직공간에 더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무령궁 세트는 무형문화재 장인이 가벽을 세우고 금으로 용 문양을 새긴 카펫을 까는 등 2억 원을 투자해 완성했다고 한다. 유백의 사저나 무술대회장도 모두 수직공간에 신경 쓰며 위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눈 먼 검객 월소가 18년간 숨어 지내는 다원도 무척 특별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당시 아랍 상인들과 무역이 활발했다는 시대적 특징에 착안해 아랍 소품들과 아랍 패턴의 패브릭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또한 시각 외에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있는 월소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실내에 흐르는 물길을 만들어 흘러가는 찻잔을 표현해 냈다.


동적인 액션, 정적인 캐릭터
영화 속 배우들의 감정은 지나칠 정도로 무겁고 비장하다. 스승 이경영이나 영화 초반의 어린 홍이 정도가 발랄하게 나올 뿐 캐릭터들은 모두 정적이다. 하지만 영화의 장르는 무협. 동적일 수밖에 없는 무술 장면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수려하고 아트적인 무술 장면은 정적인 분위기와 동적인 영상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감독은 배우의 표현력을, 배우는 연출의 의도를, 선배는 후배의 열정을, 후배는 선배의 성실함을 보면서 끊임없이 배우며 자극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만든 이들이 과정을 즐기며 만족해하는 영화, 이제 보는 이들이 만족해할 차례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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