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펴낸 곳 문학세계사
가격 9,000원
“나는 적을 믿습니다. 신의 존재에 관한 증거라 해봐야 허약하고 부질없기 일쑤이며, 그 권능에 대한 증거 역시 못지않게 빈약하지요. 하지만 내부의 적의 존재를 뒷받침할 증거는 어마어마하고, 그 힘의 증거는 가히 압도적이지요. 내가 적의 존재를 믿는 것은, 밤낮 할 것 없이, 내 삶의 길목마다 그것과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적이란 내부로부터 파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파괴해버리지요.”
나를 파괴시키는 존재, 내부의 적
소설 속 주인공은 공항에서 연착된 비행기가 출발하기를 지루하게 기다리면서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그런 주인공 옆으로 낯선 이가 다가온다. 자신을 텍셀이라고 소개하면서 기괴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주인공은 하염없이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이 싫고, 옆의 앉은 텍셀도 탐탁치도 않으며, 그가 하는 이야기들에도 전혀 흥미가 없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말 이상하다. 어렸을 때 급우에 대한 간접 살인, 고양이 밥을 먹게 된 이야기, 그리고 젊은 시절의 강간 사건과 강간했던 여인에 대한 살인. 그냥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럽고 괴상한 이야기지만 텍셀은 그 모든 악행을 행한 것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막장스러운 이야기가 혐오스러우면서도 멈추질 못하는 것은 텍셀의 철학적 근거 속에 담긴 아멜리 노통브만의 냉소에 매력을 느껴서인 듯싶다.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까 열심히 읽어 나가다 보면 비로소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놀라운 반전에 소름이 돋는다. 인간에 대한 날카롭고 서늘한 작가의 시선과 반전의 묘미를 느껴본 시간이었다.
박혜준 리포터 jenna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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