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교단일기

메르스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강남 학생들

강혜원(중동고 인문논술팀장)

지역내일 2015-06-22

2015년 6월, 대한민국, 메르스
"저 메르스 같아요." 요즘 들어 이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다. 아이들이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이런 농담을 하면 나도 모르게 살짝 뒷걸음질 치게 된다. 굳이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감기 걸린 아이들만 봐도 살짝 거리를 두게 된다. 적어도 ‘선생(先生)’이라면 이럴 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전염병 따윈 무섭지 않은 척했어야 했는데 이미 0.1초 만에 몸과 정신이 반응해 버렸다. "병원은 다녀왔니?", "괜찮아. 조금만 고생하면 나을 거야." 뭐 이런 멋진 말을 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래 뭐 "선생도 사람이니까"라며 스스로 위안해 보지만…
전염병이라니… 후진국에서나 걸릴 법한 바이러스 전염병이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불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에서, 강남에서 대유행하고 있다. 역시나 이로 인한 온갖 괴담들이 지역사회에 난립하며 이 일대의 모든 일상을 흔들어 놓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평소처럼 공부하고 밥을 먹지만,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공부하는 갑갑함을 감수할 만큼 메르스 공포가 크다. 학교의 모든 계획도, 학원의 일정도 각종 매체에서 시시각각 전달되는 메르스 소식에 맞춰 조정될 수밖에 없다. 


공포가 현실로 나타나다
아이들의 일상은 대부분 ‘장난’ 아니면 ‘농담’이다. 장난으로 던진 농담 한마디에 개구리가 죽는다는데, 아이들은 항상 철딱서니 없이 장난을 친다. 이런 전염병이 창궐한 가운데서도 노심초사 어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장난을 친다. 부모와 선생의 걱정은 그저 노땅(?)들의 불필요한 잔소리쯤으로 여기기 일쑤다. 그러니 이런 대규모 전염병이 퍼지면 어른들의 걱정은 더욱 커진다.
‘목숨이 경각에 달릴 정도의 위험’만 아니라면 아이들은 전염병에 걸릴 때 얻게 되는 이익에 보다 관심이 많다. 심리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당당한 ‘질병 결석’ 혹은 ‘인정 결석’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볼거리나 눈병이 유행할 때, 아이들은 서로의 눈을 비벼 주는 동지애를 발휘하기도 하고, 심지어 돈을 주고받으며 바이러스를 매매하기도 한다. 1회 접촉에 500원 하는 식으로… 옛날 같았으면 장가가도 될 고등학생 녀석들도 그러니 저학년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처음에 아이들은 그저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 정도로 치부했었다. 그러다 강남에 있는 근처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바이러스와 괴담이 함께 퍼지면서 아이들은 틈만 나면 교실에서 메르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르스에 대한 일정한 정보가 언론을 통해 전달되면서, 자기들처럼 ‘신체 건강한 젊은 사람’에게는 그저 ‘멍멍이 고생’ 정도의 영향밖에 없다는 것에 안심하는 듯했다. 학교가 휴업하기만을 바라면서 PC방 갈 계획까지 철저히 짜기도 했으니까.
그로부터 1주일 후, 며칠 만에 잡힐 것 같았던 바이러스는 세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더욱 광범위하게 퍼지고 말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이들이 꽤 늘었다. 아이들 역시 조금이라도 열 기운이 있는 친구들을 살짝 경계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에어컨을 틀기 시작한 시점이라 학교에서는 목감기, 열 감기에 걸린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교실마다 한두 명씩은 억울하게 메르스 환자로 몰리기도 한다. 실제로 요즘 고3 교실에서는 감기 기운이 있는 친구에게 “너, 메르스 아니냐?”라는 의심 섞인 농담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신종플루 기억이 나는가?
지금 고3들은 전염병의 공포에 대한 내성을 이미 어느 정도 갖고 있다. 20년 가까이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전염병을 학창시절에 모두 겪은 세대이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사스, 볼거리, 신종플루 등 어마어마한 전염병을 크게 작게 치르며 왔는데, 수능시험을 몇 달 앞두고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메르스까지 맞았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서울 시내의 많은 초등학교가 그해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여행이면서 부모의 시야를 벗어나 처음으로 공식적인 장기 외박을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 초등생들이 지금 고3이다. 전염병이라니 얼마나 지긋지긋하겠는가.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들은 어른인 우리보다 침착하다. 교사와 학부모간에 학교 휴업을 논의할 때에도, 이 아이들은 학원과 PC방 등을 근거로 휴업의 무용성을 이야기했다. 휴업이라니, 이처럼 당당하게 놀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멘탈은 바이러스를 이긴다.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그 해, 우리 학교도 감염자가 있어 며칠 간 휴업에 돌입했다. 모두들 잔뜩 웅크린 채 행여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필자 역시 출산 직후 수유 중이었으므로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신생아에게 옮을까 극도로 조심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교실에 나와 감독도 없이 평소처럼 공부에 집중하는 멘탈 ‘갑’들이 있었다. “학교가 가장 안전하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이었다. 실제로 당시 그 아이들은 아무도 신종플루에 감염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공부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어 그들에게는 기회가 되었는지 실제 입시 결과도 매우 좋았다.
사실, 지금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는 일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모든 일상을 그만두고 모든 행동을 멈출 수는 없다. 보건 당국도 최초의 감염자도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을 보상해 줄 수 없다.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오히려 교실 안 아이들은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더욱 불안해하는 듯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예방해야겠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은 우리의 멘탈로 지켜야 한다. 이런 점은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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