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터키 3~4위전이 벌어지던 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은 붉은 물결에 휩싸여 환호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치는 사람들은 식지 않는 월드컵 열기에 도취되어 어이없이 죽어가는 우리나라 청년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영화 <연평해전>은 바로 그날 죽어가던 청년들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의 아들이자, 남편이자, 남동생이었던 그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사실이 주는 힘
영화의 압권은 후반 30분의 해상전투 장면이다. 연출을 맡았던 김학순 감독이 영화의 강점으로 리얼리티를 꼽았을 정도로 영화는 그날의 치열했던 현장을 고스란히 재현해낸다. 실제 교전이 있었던 시간과 똑같이 흐르는 영화 속 시간.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이 몰아치는 파도와 그 바다 위를 오가는 포탄들, 공격으로 무너지는 함교 등 긴박했던 전투 속 상황들은 관객들에게 숨 막히는 30분을 전달한다.
영화 <연평해전>은 쉽게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제작비가 부족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총 3차례에 거쳐 후원금을 모으고 나서야 제작될 수 있었다. 돼지 저금통을 기부한 농부 부부, 아들을 군대에 보낸 가정주부, 중·고등학생까지 4,500여명의 개인 및 단체가 참여해 역대 최고 금액을 모았고, 다시 6만여 명의 후원 및 투자를 받아 완성되었다.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는 그 7,000여명의 크라우드 펀딩 참여자들 이름이 차례로 등장한다.
엔딩 크레디트까지 모두 보게 하는 영화
자기 이름이 있지 않고서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빽빽하게 채워진 엔딩 크레디트의 이름들. 굳이 그 이름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관객들은 곧 다시 의자에 앉는다. 연평해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그 당시 참수리 호에 승선하고 있었던 병사들의 실제 얼굴이 한 명 한 명 소개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2002년 당시 9시 뉴스를 통해 실제 방송 되었던 윤영하 대위의 인터뷰 장면도 있다. “저의 해군이 이번 월드컵 경기를 대비해서 최선을 다해 준비했듯이 우리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훌륭히 치러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생전의 윤 대위 모습. 30분의 해전 장면을 용케 견딘 관객들의 마음이 결국은 무너진다.
반복되어서는 안 될 비극
영화 <연평해전>은 결코 정치 영화가 아니다. 그 당시의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없다. 결코 먼저 쏴서는 안 된다는 상부의 명령 때문에 맥없이 죽게 되는 어린 해군들의 모습이 담겨있긴 하지만 영화는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행복이었고, 기쁨이었고, 희망이었을 그들. 최선을 다해 지켜줘서 고맙고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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