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리포터 교육칼럼]

사교육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

지역내일 2015-03-09

배움의 과정이 즐겁다면 놀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전혀 즐겁지 않은 억지 과정이라면 아이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강남을 비롯한 일명 교육특구에서 어려서부터 과도한 사교육으로 쉴 새 없이 학원을 옮겨 다니는 아이들을 목격하곤 한다. 그 아이들 중에는 간혹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배움에 대한 욕구가 남다르게 커서 자발적으로 이것저것 배우려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계획해놓은 학습계획에 따라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아이들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영어, 수학 학원을 비롯해 과학탐구교실, 독서·글쓰기, 피아노, 미술, 체육, 진로체험까지 정말 바쁘다. 엄마의 마음은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아이의 잠재된 소질을 엄마의 무능함으로 인해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배움 활동 중 아이가 특출한 소질을 보이는 부분을 발견했다면 아이가 힘들어 하는 부분은 과감히 접을 수 있는가. 다시 부모의 욕심은 커진다. “이왕 시작한 거 남들 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는 해야지”로. 배움의 과정이 즐겁다면 놀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전혀 즐겁지 않은 억지 과정이라면 아이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한 번 시작하면 점점 강화되는 것이 학습 중심 사교육
불황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녀교육 욕구는 출산율 저하와 맞물려 ‘어려서부터 아낌없이 지원하자’ 주의로 바뀐 듯하다. 유치원 혹은 초등 저학년 때 시작한 문어발식 사교육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핵심역량(?)을 키워주기 위한 방향으로 일정 부분 걸러진다.
그런데 이 핵심역량이라는 것이 천편일률적으로 같아지는 것이 문제이다. 분명 여러 가지 사교육을 시도해봤다면 아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가 있을 텐데, 초등 고학년부터 대부분의 아이들은 영어, 수학, 과학 선행학습으로 정신이 없다. 여기에 독서논술과 역사 수업까지 가세하기도 한다. 다양한 예체능 수업은 이때부터 뒤로 밀린다. “체르니 30까지는 쳐야지”했던 피아노는 고학년부터는 아이가 더 치고 싶어도 시간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가장 고민스러운 학부모들은 취미로만 생각하고 시작한 예체능 분야에서 아이가 소질과 적성을 보이는 경우이다. 아이의 관심이 크면 클수록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의 재능이 얼마나 성장할지, 경제적인 뒷받침은 할 수 있을지, 공부를 소홀히 하다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닌지 등 여러 가지로 불안하다. 아무래도 불안한 좁은 길보다는 넓고 안전한 길을 택하고자 한다. 이러한 결정에 아이의 의견이나 소질은 이미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하고 싶은 공부가 따로 있는데 하기 싫은 공부에 매달린들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아이나 부모나 억지로 밀고나가는 형국인 셈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할 때 시키는 것만큼 효과가 큰 것은 없을 것이다. 크게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면 조금 돌아간들 어떠랴.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한 경험은 인생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일그러진 입시 로드맵에 편승해야 안심
초등 고학년 때 수학, 과학, 영어 등 주요 학습과목에서 영재성을 보이게 되면 많은 부모들이 밀어붙이기에 들어간다. 부모의 기대와 아이의 자질이 일치를 보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이 이때부터 사교육에서 짜놓은 매뉴얼에 따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특목중, 특목고, 서울대, 의대를 향한 입시 로드맵의 시작인 것이다. 동질집단 속에서 경쟁심이 생겨나 자연스럽게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들도 있고, 뒤처지는 것이 불안한 부모의 회유와 강요에 의해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가장 잘 하는 ‘엄친아’와 비교 당한다.
이는 특목고 입시를 겨냥한 일부 학원에서 과도한 선행학습을 권유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주요대학 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갖춘 특목고 진학이 마치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인 것처럼 홍보하기도 한다. 아이가 힘겨워해 학원의 과정을 잠시 쉬려고 하면, 중간에 그만두면 다시는 못 따라갈 것처럼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한다. 사교육에 관심이 없었던 학부모들조차 특목고 입시학원의 홍보설명회에 한 번 다녀오면 긴장하게 되고 무언가에 쫓기듯이 아이를 사교육 틀 속에 끼워 넣곤 한다. 스스로 과제에 집착하며 공부하는 즐거움을 보였던 영재성이 과도한 사교육으로 훼손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존감 있는 아이가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
어려서부터 사교육 매뉴얼에 따라 짜놓은 스케줄로 움직이며 공부한 아이들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어쩌면 꿈과 진로조차 부모나 사교육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아이 스스로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고 정해진 꿈과 진로라면 언제까지 유효할까?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은 인생 키워드의 첫 번째로 ‘자존(自尊)’을 꼽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존감을 갖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우리 교육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교육은 아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에 기준을 두고 그것을 끄집어내기보다 기준점을 바깥에 찍죠. 명문 중학교, 특목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엄친아, 엄친딸을 따라가는 게 우리 교육입니다. 다시 말해 판단의 기준점이 ‘나’가 아니라 엄마 친구의 아들과 딸이란 말입니다."
공감하는 대목이다. 자라면서 끊임없이 비교당하면서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 그래서 다 크고 나서도 집단에서 튀어 소외당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는 아이들이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과연 즐거운 마음으로 꿈을 향해 마음껏 열정을 펼칠 수 있는 저력을 갖추게 될까. 스스로를 중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될 것이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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