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의 열풍이 뜨겁다. 이놈의 드라마는 아빠들도 한때는 사랑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만들어준다.
서울에 처음 상경해서 지하철 바꿔 타는데 1시간씩 걸리던 아빠는 이제 듬직한 가장이 되었다. 지금 현재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빠에게는 자신의 과거 어설픈 모습을 회상하는 것도 하나의 자랑이 된다. 드라마에서 어설픈 20대의 행동을 보며 마음 놓고 박장대소 할 수 있는 것은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극복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목과 드라마 안의 시청각적 장치들은 아빠의 향수를 자극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드라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나정(고아라)과 쓰레기(정우)의 사랑은 향수와는 관계없는 인류 보편적인 주제라는 것이고, 이 남매 아닌 남매의 관계는 한 여자의 남자에게나 아이의 아빠에게나 관계형성을 위한 좋은 역할모델이 된다.
극 중 나정은 하숙집 딸이고 쓰레기는 어렸을 때 죽은 나정이 오빠의 친구로 하숙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 남남임을 공표하지 않으면 믿지 못할 정도로 이들의 관계는 친남매스럽다. 나정은 쓰레기가 대변을 볼 때도 화장실에 들어가서 물건을 건내 주고, 쓰레기는 나정의 속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대에 디스플레이 해놓는다. 또 이들은 정말 서로를 거침없이 공격한다.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일수고, 눈을 부라리며 서로에게 “뭘 씨부리노”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빠가 배워야할 것은 지금부터다. 이들은 절대 머리카락이 뽑히지 않을 정도만 머리를 잡고, 욕하고 싸운 다음에도 동생이 부탁한 과자를 사다주며, 오빠의 운동화를 빨아준다. 짜증을 내거나 장난을 치긴 하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열심히 가져다준다.
신뢰있는 관계는 서로가 치명타를 입지 않을 정도로만 공격하고 서로가 필요할 때 언제든 달려간다. 그런데 아이들은 대개 어느 정도가 치명타를 입지 않을 정도인지는 모른 채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아빠는 아이에게 링 위의 적이 아니라,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아이는 아빠 마음을 후벼 파서 치명타를 입혀도, 아빠는 아이의 마음을 보호해야 하고, 아이는 아빠를 오해해도 아빠는 아이를 이해해야한다. 그리고 이렇게 아빠의 신뢰를 경험한 아이는 나정과 쓰레기처럼 예쁘고 멋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우심리상담센터 성태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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