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인가. ‘부부를 중심으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사전적 정의 외에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가족의 의미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넘치는 편안한 안식처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이에게는 떨쳐버리기 힘든 짐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가족은 살아가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주는 관계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가족들끼리도 끝까지 밝히고 싶지 않은 치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가족들이 갖고 있는 비밀의 한계를 드러낸다.
걷잡을 수 없이 폭로되는 가족의 비밀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트레이시 레츠의 희곡 ‘어거스트: 오세이지 카운티’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오세이지 카운티로 모이면서 시작되는데, 그 스토리의 중심에는 엄마 바이올렛과 큰딸 바바라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구강암에 걸린 엄마 바이올렛(메릴 스트립)은 약물중독인데다가 권위적이며 오랜만에 만난 딸들에게도 안하무인으로 독설을 퍼붓는 성격이다. 교수인 맏딸 바바라(줄리아 로버츠)는 젊은 여자와 바람난 남편 빌(이완 맥그리거)과 별거 중인데다가 14살 사춘기 딸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만 애써 태연한 척한다.
근처에 살면서 엄마를 돌봐주던 둘째 딸 아이비(줄리엔 니콜슨)는 남자에게 관심 없는 태도를 일관했지만 사실은 이종사촌 찰스(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사랑에 빠져 함께 뉴욕으로 떠날 계획을 한다. 남성편력을 자랑했던 다정다감한 성격의 셋째 딸 캐런(줄리엣 루이스)은 어린 조카에게마저 치근덕거리는 호색한과 결혼을 꿈꾼다. 여기에 이모네 가족까지 가세해 서로 상처를 들춰내고 헐뜯으며 설전을 벌인다.
막장으로 치닫는 가족, 구석구석 공감요소 많아
평범한 가정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이 영화 속 가족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줄줄이 일어난다. 가족 개개인이 갖고 있는 비밀은 어느 것 하나 무겁지 않은 것이 없다. 불행요소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한두 개쯤은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 가족에게는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이 없어 갈등을 중재할 구심점이 없다.
우리의 가족문화와는 분명 다르지만 그렇다고 공감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엄마와 딸 사이의 애증, 자식에 대한 부모의 차별 감정, 부모에게 받은 설움을 그대로 자식에게 되갚고 있는 모습, 가정을 지키기 위한 은밀한 노력 등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구석구석 숨어 있다.
영화는 가족 해체로 가는 어두운 요소가 많지만 보는 관객들은 그다지 어둡지 않다. 카리스마 넘치는 메릴 스트립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웃음이 터지고, 모녀가 치고받고 싸우는 막장 상황은 오히려 막혀 있던 체증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특히, 오랜만에 줄리아 로버츠의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점도 영화에 대한 흥미를 더한다. 한편으로는 가족을 위해 딸로서, 언니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중심을 잡아보려는 책임을,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이라는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내면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가족의 굴레
서로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품고 모인 가족은 결국 실망만 안고 씁쓸하게 흩어진다. 그렇다면 이들의 만남은 무의미했던 걸까. 어쩌면 8월의 무더위만큼 치열하게 싸운 이 가족은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 치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토해내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시간이 지나 성숙한 관계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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