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고속도서 숨진 여대생 사건 유족 재수사 요구 15년만에 해결
15년동안 교통사고로 숨진 것으로 경찰이 결론 내렸던 대구의 한 여대생(당시 18세)의 사건은 피해자가 외국인 근로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고속도로를 걸어가다 발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사건발생후 유족들은 성폭행 의혹을 제기하며 재수사와 청원 등을 제기했으나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숨졌다며 사건 종결을 했으나 지난 5월 유족이 대구지검에 재수사를 요구하면서 의문의 실마리가 풀렸다.
<사진 : 5일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에서 아버지 정 모(66)씨가 휴대전화에 보관된 딸(당시 18세)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대구 = 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성폭행 당한 후 트럭에 치어 사망 = 대구지검 형사1부(이형택 부장검사)는 5일 학교축제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여대생을 끌고가 성폭행한 혐의(특수강도강간)로 스리랑카인 K(46)씨를 구속기소하고 스리랑카에 머무는 44세, 39세인 공범 2명을 기소중지했다.
여대생 정 모(당시 18세·1학년)양은 1998년 10월 17일 새벽 5시30분쯤 성폭행 당한 직후 충격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구마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쪽으로 가다가 고속 주행하던 23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국내에 머물던 K씨는 대구시 달서구 갈산네거리에서 귀가하던 정양을 자전거에 태워 2km정도 한적한 곳으로 끌고가 동료 외국인 근로자 2명과 함께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정양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운 뒤 1명은 자전거를 끌고 나머지 2명은 정양이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양쪽에서 붙잡아 성폭행 장소인 구마고속도로 주변 굴다리 근처로 끌고 갔다.
이들은 번갈아 정양을 성폭행한 뒤 현금과 학생증 등을 빼앗고 그대로 달아났다.
정양은 성폭행을 당한 후 방향 감각을 잃은 채 불과 수십m 떨어진 고속도로 위에서 트럭에 치여 숨졌다.
◆경찰, 정액 DNA 검출하고도 '단순 교통사고' = 당시 사건을 조사한 달서경찰서는 정양의 시신에 속옷이 없는 점 등 성범죄와 관계됐을 정황이 있는데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은 채 단순교통사고로 처리했다.
특히 사건 다음날 정양의 속옷에서 남성 정액 DNA를 검출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했으나 '단순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라며 성폭행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인 K씨 등은 범행 당일 아침에 성서공단의 한 공장에 출근해 태연히 일을 했고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범행을 이야기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은 범행 직후 한국어가 서툴러 정양 사건과 관련한 뉴스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공범 2명은 2003년과 2005년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강제출국 당했지만, K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국내에서 스리랑카 식료품 수입사업을 하며 계속 생활했다. 검찰에 붙잡히기 전 수차례에 걸쳐 스리랑카를 오가기도 했다.
K씨는 한국인과 결혼으로 체류자격은 얻었지만 국적은 아직 취득하지 않은 상태라고 검찰은 밝혔다.
◆"멍하고 허전한 마음 뿐" 눈물 = 영구 미제로 남을 듯했던 이 사건은 K씨가 2011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입건돼 검찰이 유전자를 대조하는 과정에서 꼬리를 잡혔다.
검찰은 지난해 9월 대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점검결과 피해자 속옷에서 발견된 정액 DNA와 K씨의 DNA가 일치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그러나 "교통사고 기록 등이 공소시효 만료로 폐기되는 등의 이유로 수사재개를 못했다"고 했다.
유족이 올해 5월말 대구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 검찰이 수사에 나서 6월초 국과수가 보관 중인 DNA를 확인한 뒤 K씨의 DNA와 일치하는 사실을 재확인한 뒤 3개월여 수사를 벌였다.
특수강도강간죄의 공소시효는 15년(공소시효 만료일 2013년 10월16일)이었지만 2010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등이 제정되면서 DNA가 확보된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 연장된 25년으로 변경됐다. 따라서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25년이다.
K씨는 지난 8월에도 20대 여성을 자신의 가게로 불러 "가게를 내 주겠다"며 환심을 산 뒤 모텔로 유인해 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K씨의 휴대전화에 여성의 알몸 사진 등이 수백장 있는 것으로 미뤄 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K씨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강제출국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국과 스리랑카 사이에 형사사법공조조약이나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지만 법무부, 대검 등과 협의해 스리랑카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공범들에 대한 사법공조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금로 대구지검 1차장 검사는 "영구미제로 묻힐뻔한 사건을 수사팀이 여러 차례 현장을 답사하고 관련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3개월여에 걸쳐 수사를 하고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등을 통한 과학적 수사기법을 총동원해 사건 진상을 밝혔다"고 밝혔다.
대구지검은 또 15년 동안 겪은 유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위로금을 지급하고, 외국으로 출국한 공범들에 대해서도 형사사법공조 절차 등을 통해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숨진 정양의 아버지 정 모씨는 "당시 사건 담당 경찰관도 죽거나 퇴직하고 없다. 뒤늦게 나마 억울한 죽음의 의문이 일부나마 밝혀져 다행이지만 멍하고 허전한 마음 뿐이다"고 말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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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동안 교통사고로 숨진 것으로 경찰이 결론 내렸던 대구의 한 여대생(당시 18세)의 사건은 피해자가 외국인 근로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고속도로를 걸어가다 발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사건발생후 유족들은 성폭행 의혹을 제기하며 재수사와 청원 등을 제기했으나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숨졌다며 사건 종결을 했으나 지난 5월 유족이 대구지검에 재수사를 요구하면서 의문의 실마리가 풀렸다.
<사진 : 5일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에서 아버지 정 모(66)씨가 휴대전화에 보관된 딸(당시 18세)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대구 = 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성폭행 당한 후 트럭에 치어 사망 = 대구지검 형사1부(이형택 부장검사)는 5일 학교축제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여대생을 끌고가 성폭행한 혐의(특수강도강간)로 스리랑카인 K(46)씨를 구속기소하고 스리랑카에 머무는 44세, 39세인 공범 2명을 기소중지했다.
여대생 정 모(당시 18세·1학년)양은 1998년 10월 17일 새벽 5시30분쯤 성폭행 당한 직후 충격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구마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쪽으로 가다가 고속 주행하던 23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국내에 머물던 K씨는 대구시 달서구 갈산네거리에서 귀가하던 정양을 자전거에 태워 2km정도 한적한 곳으로 끌고가 동료 외국인 근로자 2명과 함께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정양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운 뒤 1명은 자전거를 끌고 나머지 2명은 정양이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양쪽에서 붙잡아 성폭행 장소인 구마고속도로 주변 굴다리 근처로 끌고 갔다.
이들은 번갈아 정양을 성폭행한 뒤 현금과 학생증 등을 빼앗고 그대로 달아났다.
정양은 성폭행을 당한 후 방향 감각을 잃은 채 불과 수십m 떨어진 고속도로 위에서 트럭에 치여 숨졌다.
◆경찰, 정액 DNA 검출하고도 '단순 교통사고' = 당시 사건을 조사한 달서경찰서는 정양의 시신에 속옷이 없는 점 등 성범죄와 관계됐을 정황이 있는데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은 채 단순교통사고로 처리했다.
특히 사건 다음날 정양의 속옷에서 남성 정액 DNA를 검출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했으나 '단순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라며 성폭행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인 K씨 등은 범행 당일 아침에 성서공단의 한 공장에 출근해 태연히 일을 했고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범행을 이야기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은 범행 직후 한국어가 서툴러 정양 사건과 관련한 뉴스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공범 2명은 2003년과 2005년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강제출국 당했지만, K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국내에서 스리랑카 식료품 수입사업을 하며 계속 생활했다. 검찰에 붙잡히기 전 수차례에 걸쳐 스리랑카를 오가기도 했다.
K씨는 한국인과 결혼으로 체류자격은 얻었지만 국적은 아직 취득하지 않은 상태라고 검찰은 밝혔다.
◆"멍하고 허전한 마음 뿐" 눈물 = 영구 미제로 남을 듯했던 이 사건은 K씨가 2011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입건돼 검찰이 유전자를 대조하는 과정에서 꼬리를 잡혔다.
검찰은 지난해 9월 대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점검결과 피해자 속옷에서 발견된 정액 DNA와 K씨의 DNA가 일치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그러나 "교통사고 기록 등이 공소시효 만료로 폐기되는 등의 이유로 수사재개를 못했다"고 했다.
유족이 올해 5월말 대구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 검찰이 수사에 나서 6월초 국과수가 보관 중인 DNA를 확인한 뒤 K씨의 DNA와 일치하는 사실을 재확인한 뒤 3개월여 수사를 벌였다.
특수강도강간죄의 공소시효는 15년(공소시효 만료일 2013년 10월16일)이었지만 2010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등이 제정되면서 DNA가 확보된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 연장된 25년으로 변경됐다. 따라서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25년이다.
K씨는 지난 8월에도 20대 여성을 자신의 가게로 불러 "가게를 내 주겠다"며 환심을 산 뒤 모텔로 유인해 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K씨의 휴대전화에 여성의 알몸 사진 등이 수백장 있는 것으로 미뤄 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K씨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강제출국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국과 스리랑카 사이에 형사사법공조조약이나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지만 법무부, 대검 등과 협의해 스리랑카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공범들에 대한 사법공조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금로 대구지검 1차장 검사는 "영구미제로 묻힐뻔한 사건을 수사팀이 여러 차례 현장을 답사하고 관련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3개월여에 걸쳐 수사를 하고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등을 통한 과학적 수사기법을 총동원해 사건 진상을 밝혔다"고 밝혔다.
대구지검은 또 15년 동안 겪은 유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위로금을 지급하고, 외국으로 출국한 공범들에 대해서도 형사사법공조 절차 등을 통해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숨진 정양의 아버지 정 모씨는 "당시 사건 담당 경찰관도 죽거나 퇴직하고 없다. 뒤늦게 나마 억울한 죽음의 의문이 일부나마 밝혀져 다행이지만 멍하고 허전한 마음 뿐이다"고 말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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